한밤중에 우리 가족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한밤중에 우리 가족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 안병국
  • 승인 2012.10.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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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캠프에 참석한 외국 귀빈들이 입국할 즈음, 민박을 담당한 목사님에게서 ‘
민박을 할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저는 하고 싶은데 아내가 … ” 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내는 올해는 준비가 부족해서 어려우니 내년에 하자고 했다.
며칠이 지나 폐막식을 앞둔 일요일저녁, 서울 지역 연합 예배에 참석해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장관에게 복음을 전한 말씀을 들었다.
나도 빌립처럼 한 나라의 장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받고 싶어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민박 담당 목사님께 신청 문자메시지를 드렸다.

민박 전날, 아내에게 이야기할까 망설이다가 말하면 아내가 잠을 설칠까봐 그냥 잤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거실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아내가 웬일이냐고 묻기에, ‘오늘 밤에 시에라리온 장관 일행이 우리 집에 민박을 온다’고 사실대로 고했다. 아내는 방방 뛰었다.
여름 이불이 두 채 필요한데 한 채밖에 없고, 그것도 세탁해야 하고 … . 꼭 민박을 해야겠다고 강하게 말했으면 미리 준비라도 했을 것 아니냐고 했다. 최소한 이틀 전에는 말해주어야지, 장관 일행이 이웃집 동네 아저씨냐고 따져물었다.

잠시 설전이 오간 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내는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레 당일 민박을 맞닥뜨린 아내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집안의 야전사령관이 된 아내의 명령에 따라 아들과 나는 출근도 뒤로 미룬 채 화장실 청소 등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날 밤, 월드캠프 폐막식이 끝나고 시에라리온 장관과 차관, 그리고 선교사님을 모시고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50분이었다. 장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새벽 1시 30분이었다. 손님들께 방 3개를 내주고 아내와 나와 둘째 아들 여광이는 서재 바닥에 누웠다. 아내가 ‘이 일이 끝나면 내게 조목조목 따지겠다’고 했다. 여광이도 아버지가 너무하셨다며 어머니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를 난감하게 만든 나는 아내에게 큰 죄를 지었다.

 

잠시 후 잠이 들었는데, 책장 위에서 물체가 떨어져 아내의 얼굴을 덮쳤다.
차양이 넓은 멕시코 밀짚모자였다. 다들 너무 피곤해서 얼른 불을 끄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 후, 묵직한 물체가 책장에서 또 떨어졌다. 아내는 느낌이 이상해서 반사적으로 얼굴을 피했다.
내가 구원받기 전에 세상에서 받은 두꺼운 크리스털 감사패였다. 그 패가 박살이 났다. 떨어진 자리를 보니 아내 얼굴이 있던 곳이었다.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최소한 실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유리 파편이 그냥 두고는 잘 수 없을 만큼 많이 생겼는데, 그 모든 파편들이 아내를 비켜갔다.
새벽 3시. 우리 가족은 손에 테이프를 두른 후 유리조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는 날을 새야 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손님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진공청소기를 돌린 후, 셋이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실토했다. 이불은 이웃 자매님이 빌려주어서 해결되고 음식도 교회자매님이 도와주었지만, 분주한 마음에 세 끼 식사는커녕 물도 못 마시고 ‘씨~ 씨~’ 하면서 일했다고. 아들이 ‘어머니가 당장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한마디 했다 . 아내가 즉시 마음을 바꾸겠노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죄인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위치가 역전되었다. 한밤중에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앞에서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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