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목적지가 저 멀리에 있기에
가야 할 목적지가 저 멀리에 있기에
  • 최영호
  • 승인 2012.10.29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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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달려가면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딴 후 최형호 형제는 고민에 빠졌다. 다음단계인 계기 비행 교육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길을 가려면 교육비도 더 필요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힘든 나날들이 다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정형편도 마음에 짐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선교회에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다음 단계를 배워야 할 만큼 촉급한 일이 아닌 것 같고, 그에 비해 짊어져야 할 부담과 삶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때 내가 왜 조종사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건 내 뜻이 아니었어요. 나는 정말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이 걷게 하셨어요 . 그렇다면 시기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복음의 일을 위해 비행기를 조종할 때가 올 것이 분명했어요. 비행기를 조종한다면 날씨가 좋은 날에만 할수는 없을 거예요. 어느 날은 형제 자매들을 태우고 가다가 안개나 구름이 자욱해서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만날 거예요. 그때는 계기만을 의지해서 비행해야 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계기 비행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또 선교회에서 당장 자가용 비행기를 사서 운용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비행기든지 조종할 수 있는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최형호 형제는 직업적인 조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선교회에 비행기가 생기면, 비행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조종사가 몇 사람은 필요했다. 그러려면 젊은 조종사들이 양성되어야 했다. 최형호 형제는 자신이 이 길을 걷기 전에 박옥수 목사가 들려주었던 ‘앞으로 대학을 시작하면 운항학과를 만들려고 하니 최 형제가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학생을 가르칠 교관이 되려면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얻은 후 교관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쉬웠다.

그러고 보니, 비행교육훈련원에 입학하기 전 신체검사를 받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최형호 형제는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얻는 데 필요한 2종 신체검사를 받을 생각이었다. 합격하려고 검사를 받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하도 조종사 면장(免狀)을 따라고 하니까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신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종인지 2종인지를 정확히 몰라 딸에게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묻자 딸 도연이가 1종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사업용 비행기도 조종할 수 있는 1종 신체검사는 2종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 그런데도 최형호 형제는 1종 신체검사에 합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 그 길을 가게 하신 것이었다.

“저는 눈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데, 박 목사님은 마라톤 결승점에 라인을 그어둔 것처럼, 우리 교회가 가야 할 목적지를 저 멀리에 정해놓으셨어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달려가면 거기에 도착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도 그 길을 가도록 인도하신 거예요.”

 
친숙하지 않은 계기, 노안(老眼)의 눈

계기 비행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지 않고 오직 계기만 보고 비행하는 것으로,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를 대비한 교육이다.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계기를 보고 비행하면 아주 안전한데, 문제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처리해야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의 속도는 빠르고 봐야 할 계기는 많고, 계기가 나타내는 데이터를 종합 판단해서 바로 비행에 적용해야 하기에 늘 시간이 모자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고 다니는 비행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어서, 이륙한 후 이 장치를 작동시키면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비행한다. 기장은 장치에 이상이 없는지만 살피고, 목적지에 이르면 탈 없이 착륙하면 되는 것이다. 비행 훈련 때 타는 비행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지도 않지만, 자동항법장치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는 직접 조종해야 하기에 조종사가 계기를 읽고 판단해서 조종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 기기는 굉장히 발전되었지만, 최형호 형제는 컴퓨터 기기와 담을 쌓고 산 사람이었다. 7월호에 게재된 2회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비행훈련원에 입학하기 전에 컴퓨터를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 ‘항공법’ 국가 시험장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 한 번 찍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신체 기능이 쇠퇴한다. 시력도 대체로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노안(老眼)이 찾아와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최형호 형제 역시 노안이어서 작은 글씨를 또렷이 볼 수 없었다.
계기 비행에는 비행 스케줄이 적힌 차트가 미리 주어진다. 항로, 고도, 속도 등 차트에 기록된 대로 비행해야 한다. 그런데 차트의 작은 글씨를 젊은 학생들은 짧은 순간에 볼 수 있지만 최형호 형제는 찬찬히 보지 않고는 읽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차트를 외워서 비행을 하지만 다 외우지는 못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계기 보랴, 차트 보랴 정신이 없었다.
“많은 계기가 보여주는 데이터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차트에 기록된 대로 비행기를 조작해야 하는데, 제 눈이 그것을 못 따라가는 겁니다. 계기를 빨리 못 보면 비행기 속도가 빠르니까 100피트(약 33미터) 벗어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실제로 한번은 비행하다가 고도가 800피트나 떨어졌는데도 계기를 보지 못해서 몰랐습니다. 낮은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다면 땅에 박았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젊은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친숙하게 자랐기에 최형호 형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계기 비행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게다가 훈련원에는 두 대의 비행 시뮬레이션 기기가 있어서 학생들은 실제로 비행하기 전에 연습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 외에도 비행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어떻게 비행해야 할지 정보를 쉽게 얻어냈다. 기기를 다루는 것이 몹시 서툰 최형호 형제는 학생들이 늘 이용하는 시뮬레이션 비행 기기를 사용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번 해보고 싶어도,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들에게 ‘나도 한번 해보자’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기를 빨리 보기 위해 반복 훈련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계기를 먼저 봐야 할지 생각하고 연습을 되풀이해야 하는데, 최형호 형제는 실제로 비행기를 타서야 훈련이 가능했다.

 
“당신은 집으로 가세요”

눈으로 보고 비행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최형호 형제는 그래도 계기비행을 얼마든지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다. ‘비정밀 접근’ 시험 중에 차트에 ‘어느 지점에서는 몇 피트로 비행하라’고 기록된 고도(高度)를 이탈한 것이다. 떨어지긴 했지만 최 형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착륙은 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관은 활주로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산도 있고 하니까 고도를 굉장히 민감하게 체크했다. 특별히 훈련생이기에 정확성을 요구해서 기준 고도의 오차 한계인 100피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용납하지 않았다.

 
최형호 형제는 두 번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 역시 ‘비정밀 접근’ 시험중에 지시된 고도를 이탈하고 만 것이다.
입술이 터지고 어금니 잇몸이 부어 염증이 생겼다. 오늘은 계기 비행 재시험에서 떨어졌다. 모든 게 끝났구나! 보따리를 싸서 돌아가야 하는구나!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조종을 못 하는 사람이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지내왔음이 생각되었다. 아내와 도연이와 교회 사모님이 기도해주겠다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기억났다. (2011년 5월 16일 일기 중에서)
두 번 떨어졌다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훈련원의 책임자인 보리스 교수가 최형호 형제를 불렀다.
“당신은 여기서 교육받을 자격이 없으니 다른 교육기관에서 다시 교육을 받든지, 아니면 집으로 가든지 하세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만 국가 기관의 심사관으로서 이런 일은 정으로 처리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당신은 비행 시험에서 탈락했으니 집으로 가세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보리스 교수는 마지막으로 담당 비행 교수와 면담을 해보라고 했다.
“저를 담당한 비행 교수는 아주 우수했어요. 나보다 젊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리에 맞게 일들을 처리했어요. 그분이 내게 ‘치프(chief)가 다 이야기한 걸로 안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이불과 옷가지 등을 차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하나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미련도 없었고요. 그런데 전에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결정했다가 잘못된 경험이 있기에 중요한 결정들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았어요.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는요. 시험에서 떨어졌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교수에게 내 입으로 알겠다고, 집으로 가겠다고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어요. 다시 떨어지면 군소리 않고 떠나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교수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숙소로 돌아온 최형호 형제는 서글픈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 교육비를 담당하기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생각났어요.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 도연이도요. 잘해도 모자란 판에 떨어졌으니 … . 또 산에 올라가서 하늘에 있는 별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 ‘내가 왜 여기에 왔지? 애초에 안 되는 일이었는데 … ’ 하면서요.”

▲ 비행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비행기 계기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비행 기기.

어! 내 눈이 왜 이렇게 밝아졌지?

드디어 마지막 시험 날, 비행기 시동을 걸기 직전에 최형호 형제 핸드폰으로 “김OO 기장 딸 결혼, O월 O일 어디” 하고 문자메시지가 왔다. 35년 전 사관학교 생도 시절에 함께 훈련받던 동기생이 기장이 되어서 딸의 결혼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온 것이다.

“그 친구가 35년 전에 웃던 모습이 생각났어요. 당시 나는 잘 나갔고 그 친구는 보통이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배우고 있는 어려운 과정을 다 지나 조종사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마음이 낮아졌어요.”
곧 시험관이 옆자리에 타고, 최형호 형제는 비행기를 몰고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눈이 밝아진 것이다. ‘어! 내 눈이 왜 이렇게 밝아졌지? 계기가 잘 보이네. 차트에 적힌 글씨가 보이네!’ 그 전에 최형호 형제는 비행 스케줄을 적은 차트의 작은 글씨들이 보이지 않아서, 차트를 코팅한 후 그 위에다 주요 지점을 통과할 때의 고도와 속도 등을 유성펜으로 크게 써놓고 보았다. 그런데 그날은 차트의 작은 글씨들을 볼 수 있을 만큼 눈이 밝아진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눈이 밝아지니까 비행에도 자신이 생겼어요. 속으로 ‘천사가 또 나를 돕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테스트가 2/3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오늘은 합격이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차트에 기록된 사항을 다 지키면서 활주로에 매끄럽게 착륙했어요. 시험관이 합격이라며 이번에도 나보다 더 기뻐했어요.

코가 굉장히 맵고 눈물이 주룩 흘렀어요. 참 신기한 하루였어요.”
할 수 없는 최형호 형제, 그리고 해내는 최형호 형제. 그 사이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조건을 극대화시켜서 일들을 성취하지만, 최형호 형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불가능해 보이는 길들을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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