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하는 나 그리고 행복한 캠프
어려워하는 나 그리고 행복한 캠프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2.11.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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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명도 그 공격에서 나를 변호하지 못했다
“내년에는 가나에서 월드캠프를 하게 될 것입니다.”
2007년 8월 가나에서 있었던 서부 아프리카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날, 수양회에 참석한 서부 아프리카 형제 자매들이 테마 교회 마당에 다 모인 가운데 박옥수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데, 내 속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월드캠프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리저리 돌려 생각해봐도 계산이 안 되었다.
그처럼 계산이 안 되던 일이 2008년 8월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열린 첫 번째 월드캠프. 나이지리아에서 캠프에 참석한 사람은 2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캠프 기간 내내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매일 누군가가 남편과 나를 찾아왔다.
“나이지리아 사모님이시죠? 나이지리아 학생들이 교제를 거부하고 따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반 나이지리아 여학생들이 말도 않고 아침에 나가서 오후에 들어왔어요.”
“나이지리아 학생들이 캠프 일정을 전혀 따르지 않아요.”
여기저기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하면 나이지리아 학생들이 끼어 있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캠프 분위기를 생각하니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하루는 김성훈 목사님이 ‘선교사 사모 모임’에서 와서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캠프가 나이지리아 학생들 때문에 활기가 넘칩니다.” 하셨다. ‘활기라니?’ 문제에 갇혀버린 내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없었다.
나이지리아 학생들이 내겐 너무 버거웠다. 그들 가운데 그나마 교제가 되거나 복음을 들은 30~40명은 따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은혜를 입기도 했지만,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후 아무도 교회에 연결되지 못했다.
숙제 같은 이 일은 내 마음속에서 나를 탓하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늘 나를 공격했다. 그 어떤 변명도 그 공격에서 나를 변호하지 못했다.

과연 월드캠프를 할 수라도 있을까?
“2010년에는 세계 30곳에서 월드캠프를 가질 것입니다.”
2009년에 비해 두 배나 되는 나라에서 월드캠프를 할 것이라는 박옥수 목사님의 마음을 남편은 그대로 받고 싶어했다. ‘이렇게까지 밀어주시는데 이때 안 하면 영원히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월드캠프를 하겠다고 선교회에 신청한 후, 노트를 펴놓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한번 적어보았다.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의 비자(이왕이면 무비자), 월드캠프 장소, 학생들 숙소, 그라시아스 합창단 숙소, 캠프 중에 가질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장소, 캠프 홍보, 식사, 자원봉사자, 후원 업체…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았다. 분명히 그림 안에 들어 있기는 한데…. 한국에서 오는 분들의 무비자를 신청하려면 수도인 아부자 이민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아부자 교회 전도사님이 몇 달 동안 이민국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님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 이민국에서 드디어 허락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나이지리아 대사관으로 협조 편지를 보냈답니다.”
하지만 알아본 결과, 한국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는 그런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전도사님이 힘들다 보니 그냥 거짓말을 한 것이다. 너무 화가 났다.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뒤늦게 한국에서 입국할 분들이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하자, 인원이 너무 많다며 10명에게만 비자를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강사 목사님과 스태프들, 그라시아스 합창단, 링컨스쿨 학생들만 해도 100여 명이 되는데…. 그라시아스 합창단에서는 비자를 다 받지 못하면 몇 명만 들어오겠다고 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한다고 광고를 다 했기에 너무 난감했다.
토고에 있는 나이지리아 대사관의 은혜를 입으면 어떨까도 생각했는데,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토고에 입국하는 날이 금요일이고 출국하는 날이 다음 주 월요일이기에 도저히 비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과연 월드캠프를 할 수라도 있을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긍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 긍휼을 입는 것 외에는 100퍼센트 길이 없었다.
며칠 후, 토고의 이준현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고의 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언제라도 여권만 들고 오면 비자를 주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드는 비자 비용보다 좀 더 싼 값으로요. 너무 염려 마십시오.”
가나의 조경원 목사님이 토고 선교사님에게 토고에 있는 나이지리아 대사관에 가서 은혜를 입어보라고 부탁하셨던 것이다.
월드캠프의 1막 1장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은혜의 시나리오를 하나님이 써나가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어떻게 쓰여져 가는지를 내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기간에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월드캠프의 1막 2장이 시작되었다. 2010년 초부터 찾기 시작한 캠프 장소. 학교, 예식장, 호텔, 방송국, 국립극장, 교회… 다닐 만한 곳은 다 다녔지만 캠프를 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캠프 시작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건물을 빌리는 비용은 비싸고, 건물 구조는 캠프와 맞지 않고….
하루는 라고스에 있는 무역센터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무역센터 가까이에 호텔과 모텔이 하나씩 있어서 숙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197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에는 아주 멋졌을 것 같은데, 보수를 거의 하지 않아서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멀쩡한 곳이 없었다. 입구 문은 부서져 있고, 화장실은 거의 폐허 상태, 여기저기 비가 새서 이끼가 끼어 있고, 심난한 전기선과 물 사정…. 아무튼 캠프 장소로는 도저히 쓸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남편은 무역센터 담당자를 만나봐야겠다고 했다. 남편은 담당자에게 우리가 할 캠프의 프로그램을 소개한 후, ‘만약 당신이 보수해줄 수 있다면 우리가 이곳을 쓰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최선을 다해서 보수하겠다고 약속했고, 남편은 계약을 했다.
며칠 후, 비가 온 다음날 우리 부부는 몇 사람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우리는 일제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건물 안이 홍수가 난 것 같았다. 비가 새는 정도가, 건물 안에서는 우산 없이는 서 있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붕을 보수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붕 전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담당자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기간에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말했다. 그런 말은 그분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아닌데…. 정신이 멍했다.
그 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3월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거의 매일 오다시피 했다. 월드캠프 기간에 비가 오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니,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하지만 다른 곳을 찾으려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매일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할렐루야! 월드캠프 시작 이틀 전부터 캠프가 끝나고 이틀까지 약 열흘 동안, 하나님은 계속 화창한 날씨를 주셨다. 형제 자매들은 그처럼 멋진 날씨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굉장히 감격스러워했다. 그렇게 1막 2장도 하나님의 은혜로 막이 내려졌다.

▲ 하나님이 주신 장소 나이지리아 무역센터에서 제1회 나이지리아 월드캠프를 가졌다.

 

“사람이 적게 모이는 게 왜 문제가 되요?”
더 큰 문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매일 월드캠프에 참석하라고 홍보를 나갔지만 캠프에 참석하겠다고 등록하는 학생이 별로 없었다. 가나에서 개최된 월드캠프를 홍보할 때에는 반응이 있었는데, 라고스에서 월드캠프를 한다고 하니까 오히려 호응이 적어 캠프 시작 일주일 전까지도 등록자가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코가 석 자, 바로 내 상태였다.
가나 월드캠프에 참석해서 답답한 심정을 가나 교회의 사모님에게 하소연하니, 사모님도 여간 염려되지 않으셨는지 가나 월드캠프에 와 있던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박은숙 단장에게 이야기했다. 박 자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적게 모이는 게 왜 문제가 되요? 우리는 하나님이 아프리카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보내셨기 때문에 100명이든 200명이든 상관없어요. 우리는 어디서든, 누구 앞이든 노래를 부를 거예요.”
사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박 자매님의 마음을 나에게 전달해주셨다. ‘사람이 적게 오는 게 왜 문제가 되냐?’는 물음이 내 속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잘해보려고 하는데 이게 죈가?’
교회 컴퓨터가 고장나서 속을 썩였다. 하는 수 없이 현지인 사역자가 쓰던 작은 랩톱(laptop) 컴퓨터를 썼는데, 그것마저 그 사역자가 들고 나갔다가 도둑을 맞고 말았다. 당장 컴퓨터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정지되어 우리는 속만 태웠다. 다행히 교회의 한 형제에게 랩톱이 있어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나에 있는 동안에 한 형제가 자기 학교에서 캠프를 홍보하겠다며 허락도 없이 컴퓨터를 들고 나갔다가 랩톱 컴퓨터는 물론 다른 장비까지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듣고는, 캠프가 정말 코앞인데 속이 새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누구를 향해서인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속에서 올라왔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잘해보려고 하는데 이게 죈가?’
잘해보려는 마음, 나는 한 번도 그 마음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사라질까봐 걱정했다. 불씨를 꺼뜨릴까봐 조심하듯.
가나 월드캠프 기간에 박영국 목사님이 선교사 사모 모임 때 ‘캠프를 잘해보려고 하지, 성령의 인도에는 관심이 없다. 잘해보려는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분명 내 마음이었다.

일제히 아무 문제 될 것 없다고 했다
가나 월드캠프를 마치고 라고스로 돌아왔을 때는 나이지리아 월드캠프가 이틀 후였다. 무역센터 건물은 그냥 홀이어서 무대를 만들어야 했기에, 가나로 가기 전에 무역센터에서 일하는 대행업체에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무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 형편없이 만들어놓아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캠프 선발팀은 벌써 나이지리아에 도착했는데, 미안하리만큼 제대로 준비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만들어놓은 무대마저 뜯고 다시 만들어야 했다. 선발팀으로 오신 분들은 일제히 아무 문제 될 것 없다고 했다. 정말 걱정도 안 하시는 것 같았다. 부엌일을 도우러 오신 사모님들도 ‘부엌도 이만하면 됐다’고 하시며 일을 척척 진행해 나가셨다. 나이지리아에 있는 유일한 한인 성도인 양 형제님과 최 자매님 부부도 힘에 넘치도록 부엌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셨다.
조경원 목사님은 “일은 다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며, 가나의 현지 사역자 20여 명을 나이지리아 캠프 교사로 지원해주셨다. 선발팀은 그분들과 함께 만들어놓은 무대를 뜯고 새 무대 만드는 일을 거뜬히 해냈다.

나이지리아의 한인(韓人)들도 감동한 칸타타 공연
캠프 첫날과 둘째 날, 학생들이 직접 캠프 장소에 와서 참석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450여 명이 모여 월드캠프를 치를 수 있었다. 2년 전 가나 월드캠프 때와 달리 학생들이 말씀을 듣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에 모두 빠져들어서 굉장히 기뻐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있었던 7월의 마지막 토요일. 라고스에서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은 청소하는 날이어서, 오전 10시까지는 차든 사람이든 아무도 밖에 나가면 안 된다. 칸타타 공연을 준비하러 스태프들이 라고스대학으로 떠나야 하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고 여전히 무역센터 안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무역센터에 있는 경찰의 호의로 라고스대학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칸타타 공연을 본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칸타타를 관람하러 왔던 나이지리아의 한인(韓人)들도, 그 공연 후로는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 강사 목사의 말씀을 들은 후, 자신들도 그 사실을 믿는다고 손을 들어 표현하는 캠프 참가 학생들.

“사모님, 월드캠프를 즐기세요.”
부족한 것은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머물렀던 숙소나 모임 장소의 화장실이나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부엌으로 만들어놓은 곳도 비가 오면 대책이 없는 곳이었다. 부엌에서 일하신 사모님들은 선플라이(Sun fly)라는 파리에 물려,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고생하셨다는 뒷이야기까지 들으니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무역센터가 있는 지역은 아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의지해야 했다.
내게는 뭐든지 문제였다. 그런데 외부에서 오신 분들은 아무것도 문제삼지 않으셨다. 나이지리아에서 월드캠프를 하다니 말할 수 없이 은혜롭다고 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장소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사모님, 월드캠프를 즐기세요. 도영이, 소현이(필자의 자녀) 너무 신나 하잖아요.”
박은숙 자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월드캠프를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내 마음, 잘하라고 하는 마음. 좋아 보이고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죽이고 있는 마음이었다. 율법과 같은 것이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7:12~13)
잘하려고 하는 마음에 잡히면 잡힐수록 하나님을 느끼는 감각은 죽어서, 은혜에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님의 세계나 감사해야 할 일들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캠프를 진행하는 동안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나의 어떠한 것도 문제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였다. 아무리 부족한 형편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히 준비되어 있었고, 문득 그 은혜가 보이는 순간 다시 한 번 나의 어리석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 월드캠프 후, 반영선 선교사가 '야네구아' 마을을 처음 방문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4년 동안 얻은 것보다 한꺼번에 더 많이 얻었다
라고스에서 동쪽으로 차로 10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12명이 인터넷 광고를 보고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그들은 우리 선교회에서 복음을 들은 어느 목회자를 통해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한 목회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삶이 드러나 그 교회에서 나와 따로 모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구심점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월드캠프에 참석해 우리 교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전해지는 말씀,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노래, 크리스마스 칸타타, 링컨스쿨 학생들의 공연…. 그들은 이처럼 환상적인 시간은 자신들의 생애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월드캠프를 마치고 나이지리아의 동부인 아바, 포타코트, 야네구아 세 도시에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80여 명의 형제 자매들을 얻었다. 우리가 나이지리아에서 사역한 4년 동안 얻은 것보다 월드캠프를 마치고 한꺼번에 더 많은 것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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