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엔 고통의 땅에서, 이젠 기쁨과 소망의 땅에서
전엔 고통의 땅에서, 이젠 기쁨과 소망의 땅에서
  • 김양미
  • 승인 2012.12.20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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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굿뉴스코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해외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생각에 선택했다. 1년 정도면 해외 경험도 할 수 있고 관광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특별한 이유 없이 멕시코행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편하게 지내던 습관, 가족 품에서 항상 부모님을 의지하며 살던 삶, 그리고 내 편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나님, 저에게 시간을 더 허락해주세요.”
2010년 초, 스페인어의 알파벳과 기본 인사인 “올라(Hola)”도 모른 채 멕시코에 입국하던 날 눈앞이 캄캄했다. 그저 외국에 나가기만을 원했던 나에게 봉사단원의 삶은 너무나 힘겨웠다. 23년간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1년 동안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욕심에 멕시코까지 왔지만 어려운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스페인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다. 알파벳도 읽을 줄 모르는 내가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두 번째로, 멕시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잠들 때까지 함께 지내면서 마음에서 부딪히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오해와 여전히 나를 위해 살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불평이 올라오고 멕시코 사람들에 대해 거부감이 생겼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내 마음은 더 어두워졌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부담스러운 일이 닥치면 피하고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산 삶. 그렇게 1년이 다 지나갈 즈음, 하나님께서 다른 단기선교사들을 통해서 내 마음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항상 멕시코 사람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컸는데, 다른 단기선교사들은 그들과 마음으로 친구와 가족이 되어 있었다. 나와는 반대로 한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왜 그들과 다른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1년의 삶을 돌아보았다. 굿뉴스코 프로그램의 모토인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를 보면서
‘지난 1년 동안 내가 멕시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선수범하여 일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누가 나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주어도 나는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특히 나는 성경 말씀이나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그날만큼은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시간을 더 허락해주세요. 제가 이곳에서 그동안 못했던 봉사나 복음 전하는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제가 1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지냈는지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제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그리고 멕시코에서 사랑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은 내게 1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허락해주셨다. 나는 1년 더 멕시코에 남게 된 것이다.

“언제든지 돌아오면 지낼 집과 가족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줘.”
2011년은 여러 지역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바쁘게 한 해를 보냈다. 어색했지만 사전을 들고 서툰 말로 멕시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피차 이해를 못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해보니 말이 느는 것보다 더 빨리 마음이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멕시코 청년들도 내가 하는 일을 조금씩 도와주고, 말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멕시코 월드캠프를 준비하면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캠프를 홍보하기 위해 교회 청년들과 함께 전단지를 들고 무작정 시내로, 학교로, 버스 정류장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서 공연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도 배웠다. 부담스러운 일이 닥치면 항상 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기던 내가 부담스런 일들에 부딪치면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이 만들어졌다. 몸은 고되었지만 멕시코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행복했다.
월드캠프가 끝난 후에는 ‘베라크루즈’라는 도시에 있는 지역 교회에서 5개월 가량을 지냈다. 그곳에서는 특별히 ‘한글 아카데미’가 기억에 남는다. 할라파 주(州)의 청소년부 부장인 ‘로레나 피뇬’을 만나 한글 아카데미에 대해 설명을 드려 청소년부의 지원으로 할라파에서 매주 목요일에 두 번 한글 아카데미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베라크루즈, 보까데리오, 코사말로아판, 산라파엘, 미산틀라 등의 도시에서 한글 아카데미를 해달라고 요청해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베라크루즈 주(州)를 돌아다니면서 매일 2시간씩 한글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한글 아카데미에서 많은 멕시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주 각 도시에서 15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학생은 ‘한글을 배우고 싶어서 인터넷도 찾아보고 강의처도 알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며 울기도 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느꼈던 감동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겉으로는 건강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마음에는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항상 1시간 동안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성경 말씀과 마음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많은 청년들이 구원을 받았다.
로레나 피뇬 청소년부 부장님의 초대로 그분 집에도 방문해 내 간증도 하고 성경 말씀도 전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분도 마침내 구원을 받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셔서 아름다운 시간들을 허락해주심이 너무나 감사했다.
멕시코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큰 학생들이 많다. 이곳에도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의 한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글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런 만큼 책임감도 느꼈다. 수업 시간에 마음의 이야기도 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아니라 서로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내게 했던 말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아카데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생들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네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놀랐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때 친구들이
“네가 언제든지 돌아오면 지낼 집과 가족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줘.”라고 하는데,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다. 전에 감정이 메마른 삶을 살았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송별회 때 학생들에게서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나를 향한 그들의 마음과 사랑이었다.

▲ 멕시코 월드캠프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캠프 참가 학생들과).

 

“이제 멕시코 사람 다 됐네요.”
멕시코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언제 돌아가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멕시코에 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멕시코에서 일을 하고 싶어졌다.
특별히 멕시코에 한국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보시고 내 능력과 관계없이 좋은 직장을 허락해주셨다. 나는 지금 멕시코의 한국 대사관 문화홍보팀(한국문화원)에서 행정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문화원에 들어오기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셨다. 이곳에서 직장을 알아보다가 근무 조건이 좋은 한 회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IYF 활동과 봉사는 그만하라’고 했다. 제멋대로 살았던 나, 감사할 줄 모르던 나를 바꾸어준 교회와 IYF를,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다른 직장을 찾고 있을 때 2012년 1월에 몬테레이에서 영어 캠프가 시작되었다. 캠프 시작 이틀 전에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내가 멕시코에서 2년간 보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 2월부터 근무하라고 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영어 캠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캠프 중간에 회사에서 메일을 두 통 보냈다. 출근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서류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휴대폰도 없고 캠프 중이라 메일을 확인할 시간도 없어서 회사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못했다. 캠프가 끝나고야 메일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답장을 보냈지만, 다음날 입사 취소 통보 메일을 받았다. 억울한 마음에 캠프에 참석한 것도 후회가 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재훈 선교사님은 ‘이런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거야. 너에게 더 좋은 직장을 주려고 하시는 거야’라고 교제해주셨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이 직장이 나에게 맞지 않구나. 정말 더 좋은 곳을 허락하려고 하나님께서 취소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문화원 개원식을 앞두고 행정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격 조건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국 문화를 알릴 열정이 있는 자”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나는 한글 아카데미를 하면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만났고,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듣고 함께 고민도 했기에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경력이나 특이사항이 없었던 나는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이왕 도전하는 것,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싶었다. 내가 내세울 것은 2년간의 멕시코 생활이 전부이기에, 학력이 아니라 굿뉴스코 단원으로 내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적었다. 멕시코 사람들과 살면서 배운 것들, 나를 변하게 만든 일들, 그리고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자세히 적어서 보냈다.
일주일 후, 서류 심사에 통과되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 중에 스페인어나 한국어와 상관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면접관은 나에게 멕시코에서 보낸 삶에 대해 물었고, 나는 겪은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스페인어와 전혀 상관없는 원광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내가 어떻게 스페인어를 배웠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IYF와 굿뉴스코 이야기를 하며 나의 체험기를 스페인어로 이야기했다. 면접 분위기가 아주 좋았고, 면접관 가운데 멕시코 분은 “이제 멕시코 사람 다 됐네요. 그렇게 말하는 게 신기하네요.” 하며 놀라워했다.
학원을 다닌 적도 없고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멕시코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배웠을 뿐인데, 내 경험을 높게 평가해서 최종 합격했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2년 동안 교만한 내 모습을 보여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을 꺾는 법,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 기도하는 법, 복음을 전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멕시코에 살고 싶은 마음 모두를 허락해주셨다.

▲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한글 아카데미>를 가졌다 대학생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 한국문화원에서 멕시코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그들 마음에 복음을 소개한다.

 

이 땅에서 구원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미래를 주셨다
나는 지금 한국과 멕시코 문화교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지난 6월 18일부터 19일까지는 캘리포니아반도에 있는 멕시코의 ‘로스카보스’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20개국 이상의 정상들이 모인 큰 국제 행사로, 나도 한달 가량 그곳에 출장을 다녀왔다. 내 역할은 한국에서 온 기자단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나를 도와주셨다. 기자단을 수행한 덕분에 로스카보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고, 호텔 관계자들과도 가까워졌다. 교회에서 배운 낮은 마음과 웃음으로 멕시코 사람들을 대하면 그들 또한 나를 향해 마음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밝게 지내냐고 묻는 분들에게는 ‘내 속에서 성경 말씀으로 말미암은 새 힘이 공급된다’고 이야기해 드렸다.
구원받기 전, 교회나 성경은 나에게 원수 같은 존재였다. 그 자체를 거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멕시코 청년들에게 말씀이 어떻게 나를 이끌고 있으며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구원의 확신도 없이 도피처로 찾아온 멕시코. 하나님은 이 땅에서 나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미래를 주셨다. 말씀 안에서 사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한계를 극복해가면 말씀이 주는 지혜와 힘을 얻음을 배웠다. 앞으로 멕시코에서 보낼 삶들을 생각하면 무척 소망스럽고,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날지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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