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 구원열차
  • 승인 2013.01.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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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원작/오 헨리
 
 
1달러 87센트. 이것이 델라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었다. 그 중 60퍼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 이 동전들은 잡화상이나 채소 가게, 푸줏간에서 억지를 써서 한두 푼씩 모은 돈이었다. 델라는 그 돈을 세 번이나 다시 세어 보았다. 여전히 1달러 87센트였다. 그리고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초라한 소파에 주저앉아 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인생이란 흐느끼고 울고 훌쩍거리고 또 어떤 때는 싱글벙글 웃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훌쩍거리는 일이 가장 많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델라는 흐느낌에서 그 다음 단계인 훌쩍거림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혔다. 델라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일주일에 8달러짜리 가구가 딸린 셋방이다. 아직 구걸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칫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얼마 후 델라는 울음을 그치고 창가에 서서 잿빛 고양이가 뒷마당의 울타리 위를 걸어가는 것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짐에게 줄 선물을 살 돈은 고작 1달러 87센트밖에 없었다. 몇 달 동안 모을 수 있는 돈을 다 모았는데도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델라는 남편을 위해 무슨 선물을 사는 것이 좋을까 하고 이 궁리 저 궁리하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슴 벅차하며 행복하게 보냈던가! 그 선물은 반드시 훌륭하고 흔하지 않으며 값진 것이어야 했다. 짐의 명예에 어울릴 만한……. 짐은 델라에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델라는 창가에서 몸을 돌려 거울 앞에 섰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20초도 지나지 않아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델라는 서둘러 머리를 풀어 길게 늘어뜨려 보았다.
제임스 딜링검 영 부부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물건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할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 물려받은 짐의 금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델라의 머리카락이었다. 만약 시바의 여왕이 델라의 방 건너편 방에 살고 있었다면, 머리를 말릴 때마다 창문 밖으로 내놓는 델라의 머리카락 때문에 여왕의 보석이나 선물들이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솔로몬 왕이 온갖 보물을 지하실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지키는 문지기였다면, 짐이 지나갈 때마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는 시계가 탐이 나 턱수염을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델라의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작은 갈색 폭포처럼 물결치듯 반짝거리며 그녀의 몸 둘레에 드리워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내려와 마치 머리카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델라는 다시 초조한 듯 서둘러 자신의 머리카락을 감아 올렸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며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낡아빠진 붉은색 융단 위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 델라는 갈색 재킷과 모자를 걸치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스커트 자락을 펄럭이며 계단을 내려가 거리로 나섰다.
 
델라는 ‘마담 소프로니의 가발 상점’이라는 간판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그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인에게 물었다.
“제 머리카락을 사시겠어요?”
“머리카락이라면 사지요.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을 보여 주세요.”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델라가 모자를 벗자 머리카락이 갈색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20달러 드리죠.”
주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좋아요. 빨리 주세요.”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델라는 장밋빛 날개에 실려 즐겁게 보냈다. 델라는 짐에게 줄 선물을 찾아 여기저기 상점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그녀는 선물을 찾아냈다. 그것이야말로 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는 백금으로 된 호주머니 시곗줄이었다. 훌륭한 물건들이 그렇듯 화려한 장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더욱이 짐이 갖고 있는 시계에 달기에 손색이 없을 만한 것이었다. 델라는 그 시곗줄 값으로 21달러를 지불하고 나머지 87센트를 갖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짐의 시계에다 이 시곗줄을 달면 짐은 누구하고 있든 거리낌 없이 시계를 꺼내 시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짐의 시계는 훌륭한 것이었으나 시곗줄 대신 낡은 가죽 끈을 달아 놓았기 때문에 짐은 남몰래 시계를 꺼내 보곤 했었다.
델라는 집에 돌아오자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엉망이 돼 버린 머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40분도 안 되어 그녀의 머리는 아주 자잘한 곱슬머리로 바뀌었다. 그녀는 개구쟁이 남학생처럼 보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 아주 꼼꼼하게 쳐다보았다. 그 머리 모양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짐이 나를 보면 코니 아일랜드의 합창단 소녀 같다고 할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1달러 87센트로는 어떤 선물도 살 수 없었으니까.”
델라는 7시가 되자 커피를 끓이고 고기를 구울 수 있도록 난로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았다. 짐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델라는 시곗줄을 두 겹으로 접어 손에 쥔 다음 현관문 앞 테이블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이윽고 그녀는 짐이 아래층의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평소에 아주 조그만 일에도 입 속으로 짧은 기도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델라는 지금도 입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하나님, 그이가 저를 여전히 예쁘다고 생각하게 해 주세요.”
문이 열렸다. 짐은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메추리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꼼짝 않고 델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노여움도 놀라움도 또 꾸지람이나 두려움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예상하고 있었던 어떠한 표정도 아니었다. 델라는 그에게 다가가 외치듯 이야기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당신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고 싶어서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어요. 하지만 머리카락은 또 자랄 테니까 걱정 말아요. 괜찮죠, 여보?”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짐이 무거운 말투로 물었다.
“네. 그래도 전처럼 저를 좋아하죠? 긴 머리카락이 없어도 저는 여전히 저잖아요?”
짐은 문득 잠에서 깨기라도 한 것 같이 델라를 꼭 안아주었다. 짐은 외투 주머니에서 꾸러미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오해하지 말아요, 델라. 당신이 머리카락을 자르든, 면도를 하든 또 머리를 감든 그런 것 때문에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줄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 선물꾸러미를 풀어 보면 왜 내가 멍하게 있었는지 알게 될 거요.”
델라는 재빨리 포장지를 풀어 보았다. 델라의 입에서는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쁨은 곧 눈물과 통곡으로 바뀌고 말았다. 짐은 다정스럽게 델라를 달래 주었다. 거기에는 머리핀 한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은 델라가 브로드웨이의 한 상점에서 오랫동안 보고만 오던 것이었다. 가장자리에 보석이 박히고 자라 껍데기로 만든 아름다운 핀들은 없어져 버린 델라의 머리카락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머리핀을 돋보이게 해 줄 머리카락이 이제는 없었다. 그녀는 그 선물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그러고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짐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짐, 제 머리카락은 아주 빨리 자라요!”
그러고는 델라는 깜박 잊고 있던 그녀의 선물을 내밀었다.
“아주 훌륭하죠, 이것을 찾느라 두 시간 동안 시내를 뒤지고 다녔어요. 당신은 이제 하루에 100번이라도 시계를 꺼내 볼 수 있을 거예요. 어서 시계를 꺼내서 줄을 달아봐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빨리 보고 싶어요.
짐은 시계를 꺼내지는 않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빙긋 웃었다.
“델라. 아주 멋진 시곗줄이오. 정말 고맙소. 하지만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얼마 동안 간직해 두기로 합시다. 너무나 훌륭한 선물들이라 지금 당장 쓰기에는 아깝구려. 사실 나는 당신 머리핀을 사려고 시계를 팔았소. 자, 이제 저녁이나 먹읍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동방 박사들은 아주 현명한 분들이었다. 구유속의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가져온 분들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게 된 것도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현명했기 때문에 그들의 선물도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것들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집안의 제일 소중한 물건을 서로를 위해 가장 어리석은 방법으로 희생시킨 두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요즘을 살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선물을 하는 사람과 선물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이들 두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 이런 사람들이 가장 현명한 이들이며, 또 이런 사람들이 하는 선물이 바로 진정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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