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19) -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
교회사(19) -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
  • 이한규 목사
  • 승인 2013.01.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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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함께한 교회의 역사
   
 

 

   
 

죽음을 이긴 순교자들의 믿음과 소망

초기 기독교는 모진 박해의 파고(波高)를 헤치고 살아 남았다. 4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란칙령>과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기 전인 1~3세기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모진 고문과 죽음의 위협도 결코 그리스도인을 굴복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강렬한 소망,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사로잡혀 있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였다.

어느 시대에나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세상의 통치자들과 관원들, 거짓 종교의 지도자들은 복음을 대적하고 핍박하였다. 특히 사단은 이 세상에서 거듭난 교회를 말살하기 위하여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방법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였다. 사단의 목표는 이 세상을 복음이 없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회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지켰다. 사탄이 성도의 몸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죽일 수는 결코 없었다.

 

순교자들

신약 시대 첫 순교의 면류관을 쓰는 영광은 스데반에게 돌아갔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했고, 복음을 증거하는 그의 얼굴은 천사 같고 악의가 전혀 없었으며, 죄인들을 향한 긍휼이 가득했다.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로디아의 오라비였던 아그립바의 칼에 의해 처형당했다. AD 67년경에 순교한 베드로는,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시키려는 형리(刑吏)에게 '나는 나의 구주께서 돌아가신 자세로 죽기에 합당치 못하니 내 머리를 아래로 향해 죽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안드레는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가야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두 나무를 중앙에서 가로지르는 카이(X) 모양의 십자가에 달려 백성들을 권하고 기도하면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AD 67년경 네로의 박해 때 순교한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고 목을 베어 죽였다고 전해진다. 폴리갑은 불꽃 속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육체를 떠나 영원한 주님의 나라로 들어갔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AD 115년경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맹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영적 목자들을 세우고 창에 찔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런 분들 외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변치 않는 약속 안에 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고후6:9)

어떤 사람은 끓는 기름에 던져졌고, 어떤 사람은 사지를 절단 당하거나 갖가지 방법으로 고안해낸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들과 정혼한 신랑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달려나갔고, 박해는 순교자들의 믿음을 별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불과 칼, 십자가형이나 황제의 위협 아래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품으며 복음을 전파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이방 종교가 거의 멸절해버릴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나 존 폭스의 <순교자>, J.M 캐롤박사의 <피 흘린 발자취> 등을 통해 여러 교회사가들이 전해주는 순교사화 중 초대 및 중세의 순교사화 몇 가지만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202년 '유대교와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데, 그때 북아프리카의 페르페투아(Perpetua)가 순교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페르페투아는 20대의 결혼한 귀족 여성으로, 간수의 허락을 받고 젖먹이를 데리고 감옥에 갇혀 있었다. 곁에는 필리키타스(Felicitas)라는 임신한 노예 소녀와 몇 명이 같이 있었다. 재판 날이 다가오자 딸을 끔찍이 사랑했던 페르페투아의 아버지가 감옥으로 찾아와서 딸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설득했다.

   
 

"얘야, 내 흰머리가 가엾지 않니? 내게 아버지라 불릴 만한 가치가 있다면 네 아비를 불쌍히 여겨 다오. ...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게 해다오. ... 네 아들을 생각해 봐라. 네가 없으면 그 아이가 어떻게 살겠니? 자존심 때문에 우리 전부를 파멸시키지 말아 다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애원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의 결심은 아버지를 몹시 격노케 해서 아버지는 딸을 심하게 때리고는 며칠 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총독 마누티아수는 그녀에게 황제를위해 제사를 드리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했다. 그녀는 싫다고 대답했고, 아이를 빼앗긴 채 컴컴한 굴 속에 던져졌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찾아와서 아주 부드럽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을 온전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재판장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생명과 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어린 아기의 인생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오셔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으시더니, 턱수염을 잡아뜯고 얼굴을 감싸쥐시고는 살아오신 날들을 저주하기 시작하셨고... 나는 노년에 이런 불행을 끼쳐드려 너무나 슬펐다."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을 받을 때 페르페투아는 그리스도로부터 온 믿음과 사랑의 위대한 힘을 훌륭하게 증거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육체의 고통과 혈육의 정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 있었다.

함께 사형 판결을 받은 펠리키타스가 진통이 찾아와 소리지르자 간수가 "이만한 고통에도 소리를 지르는데, 맹수들에게 던져질 때는 어떡할래?" 하고 물었다. 펠리키타스는 "나의 고통은 나 자신의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내가 맹수들을 대면할 때, 내가 그분을 위하여 고난 당하기 때문에, 내 안에 거하셔서 나를 위해 고통을 담당하실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딸을 낳았고, 그 아이는 한 그리스도인이 데려가 친딸처럼 키웠다. 원래 로마정부는 임신한 여성은 처형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하기를 사모했다. 그들이 영원한 본향으로 가던 날, 총독 앞을 지나가면서 "당신은 우리를 심판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대여섯 명의 거룩한 순교자들은 카르타고의 검투장에서 처형되었다.

 

줄리안(Julian)

길리기아 태생 줄리안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체포되어 고통을 당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어떤 노력도 그의 신앙을 버리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사람들은 그를 채찍으로 때린 후 독사와 전갈이 잔뜩 들어 있는 가죽가방 속에 집어넣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블란디나(Blandina)

고울(Gaul) 지방에 혹독한 핍박이 찾아왔을 때 남프랑스의 노예 소녀 블란디나는 이방 신들 믿기를 거부하여 사람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끌려나갔다. 15세 난 소년 폰티쿠스(Ponticus)는 제일 먼저 죽었고, 블란디나는 제일 나중을 위해 남겨졌다.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며, 그리스도 앞에서 다시 만나자고 권면했다.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되었고, 맹수들 앞으로 가는 그녀는 마치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결혼식장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맹수들 앞에 섰으나 맹수들이 그녀를 해치려 하지 않아, 그녀는 불에 달구어진 의자에 앉혀졌다. 기력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몸이 타는 것을 알고도 저항할 수 없었다. 고통과 공포가 오고 기진맥진하여 죽기 직전의 모습이 되자 그녀는 황소가 갇혀 있는 감옥에 던져졌고, 성난 황소가 뿔로 그녀이 온 몸을 들이받아서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피에 물들고, 불에 탄 그녀의 몸은 사람의 형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에는 목을 잘랐는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마지막 고난이며 영원한 영광에 참예하는 일이었다. 참혹한 고통을 통과하여 그녀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고 그리스도의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시신은 6일 동안 시민들에게 전시되었고, 이후 불태워 재를 론강(江)에 뿌렸다. 177년 프랑스 리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리아 드 코시카오(Maria de Coceicao)

   
 

'마리아 드 코시카오'라는 젊은 여인이 오빠와 함께 리스본에 살고 있었는데, 종교 재판관에게 체포되어 고문대에 올려졌다.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재판관이 요구하는 대로 고백하고 말았다. 쇠사슬이 풀리고 다시 감방으로 보내져, 그녀는 팔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재판석에 불려나가 그녀가 고백한 것을 재인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완강히 거부하면서, 전에 고백한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억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답에 화가 난 재판관은 그녀를 다시 고문대에 누이라고 명했다. 그녀는 다시 연약한 본성에 휩쓸려 전에 한 고백을 또 하고 말았다. 그녀는 즉시 감방으로 보내졌다. 세 번째 재판관 앞에 불려나온 그녀는 고백에 서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이번에도 전과 같이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나는 내 육체의 연약함에 두 번이나 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고문대에 있는 동안 또다시 약해져서 그렇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100번 고통을 준다 해도 고문대에서 풀려나오자마자 나는 고통으로 인해 억지로 고백한 사실들을 다시 부인할 것입니다."

재판관은 그녀를 세 번째 고문하도록 명령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 그녀는 아주 꿋꿋하게 고통을 견뎠다. 그녀의 믿음과 인내가 증가되자 재판관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로 끌고 가면서 매질을 한 뒤 10년 동안 추방시켰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이처럼 무서운 박해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복음을 향해 전진해갔고, 성도들의 피[血]라는 풍성한 수액을 공급받아 쑥쑥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장기간의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교회는 폭력이나 물리적인 저항으로 맞서지 않고 진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는 거룩한 믿음으로 맞섰다. 이 믿음의 장렬함이야말로 가장 견고하고 아름다운 무기였다. 하늘에서 받을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사모하는 소년 소녀들까지 거룩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 죽음을 향해 달려나갔다. 신앙을 지키느라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피의 증인들>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이 땅의 어떤 종교도, 무기를 들지 않고 영적인 힘으로 황제와 박해와 원수들을 이겨낸 종교는 없다.

기록된 순교 사례들 가운데 가장 처참한 모습은 주로 원형극장에서 자행되었다. 군중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뻘겋게 달궈진 쇠사슬에 결박되고, 그로 인해 살이 타들어가며 내뿜는 악취와 연기가 질식할 정도로 사방에 진동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더러는 조개껍질이나 쇠갈고리로 온몸이 토막났고, 어떤 경건한 처녀들은 검투사나 포주에게 넘겨져 욕을 당했다. 227명의 회심자들이 달귀진 쇠로 한쪽 다리를 절단 당하고, 한 쪽 눈이 후벼 패인 채 광산으로 보내졌다는 사료(史料)도 있다. 더러는 소금과 식초에 절여져 고문대에서 피흘리며 죽었다. 말 한마디만 하면 그 참혹한 고통을 면할 수 있었는데도.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족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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