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평강의 왕인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서
새해는 평강의 왕인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서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3.02.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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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설교
내 생각만 믿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핍박했는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 사울의 이름으로 지낼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면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주장했다. 사울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이들은 사기꾼들이야! 선량한 시민들을 현혹시켜!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거짓말을 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사울을 사로잡아서 그때부터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다. 사울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그 길로 가면서, 그 생각이 사탄으로부터 온,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울은 계속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는 일을 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깜짝 놀랐다.
‘내가 내 생각에 속았구나! 예수님이 사셨는데, 살아 계시는데, 그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내 생각만 믿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했는가… !’
사울은 뉘우치며 돌이켰고, 그때부터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서 살지 않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살았다. 그 전에는 사울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된 것이다.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열왕기하 7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네 명의 문둥이가 있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주린 나날을 보내며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물론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고 있던 아람 진(陣)에는 양식이 풍성했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아람 진에 가면 군사들이 우리를 죽일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네 명의 문둥이에게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그들은 곧 아람 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른 마음 하나가 그들을 이끌어간 것이다. 그들이 전에는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렇게 나아가는 그들 앞에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1962년까지는 내 생각과 판단을 따라서 살았다. 그때 항상 내가 잘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결과는 너무 허무하고 더럽고 비참했었다. 1962년에 내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면서부터, 아무 소망이 없던 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축복과 은혜가
찾아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하고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 ”(마 1:18~20)
요셉은 자기와 정혼하고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부정하게 여겨 자기 생각을 따라서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셉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인도가 나타났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제 요셉이 그때까지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이나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은혜롭게 이루어진다. 마리아 역시 자신이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남자와 동침한 적도 없는데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
 
‘선하냐 악하냐?’가 아니라,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후, 나는 옛날의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소망이 넘치고, 나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 생명의 역사가 이어지고 … .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삶이 시작되었다. 기쁨과 평안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전에 나를 괴롭히던 어두움과 죄악과 거짓은 모두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내가 얼마나 선하냐, 악하냐?’를 따질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 우리 마음을 따라서 산다면, 그것이 나 보기에는 좋고 내 마음에는 친숙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오랫동안
마귀에게 이끌림을 받아왔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생각을 따라서 살면 우리는 망하고 슬픔에 빠지며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때부터 어떤 사람이든지 놀랍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지배하셔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좇아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늘로부터 오는 수많은 축복과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병에서, 절망에서 건지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빈 몸을 가지고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은 마귀의 권세를 밟고, 모든 어두움과 불의를 물리치고, 모든 더러움을 씻고, 모든 불행을 제하고, 우리를 평강으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결과는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사느냐? 얼마나 부지런하게 사느냐? 얼마나 정직하게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서 주님의 다스림 안에 있느냐, 아니면 나를 지배하던 사탄의 음성을 듣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복음 안에서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사람이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형편이 좋든 어렵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 사람의 삶이 복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병 가운데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뒤 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난 뒤 그 삶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머무는 것을 보았다. 절망 속에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소망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숱하게 보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어둠에서, 병에서, 절망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으면 죄에 빠질 수 없고,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으면 절망에 빠질 수 없다.

 

2013년부터는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얼마나 복된 삶을 살게 되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때때로 사탄에게 속아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내 생각을 따라가고 내 욕망을 따라갈 때가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처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자기 생각을 따라가고 욕망을 따라간다. 그래서 옛날처럼 다시 비참한 상태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간교한 사탄에게 속아서 깨닫지 못할 뿐이지,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평강을 얻을 수 없다. 기쁨을 얻을 수 없으며,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평안하고 건강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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