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이 태어나던 날!
새 생명이 태어나던 날!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3.03.13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 | 잊지 못할 전도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기쁨들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거듭난 성도에게는, 죄에 사로잡혀서 영원한 멸망으로 가던 사람이 하늘에 속한 생명을 받아들여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 거듭난다면 더없이 행복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해마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단기선교사로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그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직접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한 해, 많은 단기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늘에 속한 생명들이 태어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들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복음을 전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우와! 대박!”

최호진_인도

 
한 형제와 떠난 5일간의 무전전도여행. 어떤 분이 우리를 기쁘게 영접해주어 그 집에서 사흘을 묵으며 전도하고, 마지막 날에는 다른 곳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그 집을 나왔다.
첫 번째 방문한 집에서 함께 간 형제가 멋진 신사 분에게 복음을 전했다. 형제는 영어를 무척 잘했고, 옆에서 듣는 내 마음에도 감동이 될 만큼 복음을 잘 전했다. 그런데 듣던 아저씨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를 쫓아내듯 밀어냈다. 두 번째 집을 방문하면서는, 비록 영어가 서툴지만 이번에는 내가 복음을 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나 형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집에서 우리를 받아들여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생각해놓은 내용이 없었다. 가족들을 앉혀놓고는, 성경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5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요한복음 8장을 펴서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서툰 영어로 버벅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계속 되물었다. 그렇게 겨우 이야기를 마치자, 사람들이 ‘내 죄가 다 씻어졌다’며 기뻐하고 감격스러워했다. 내 마음에도 감동이 밀려오고, 그 놀라운 역사 앞에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분들이 정말 고맙다면서 케이크를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했다. 케이크를 먹고 집을 나설 때에는 복음을 전해줘서 고맙다며 차비를 주었다. “우와! 대박!” 하고 소리쳤다. 돌아가는 내내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영어도 서툴고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무전전도여행 마지막 날에 만났던 그 가족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느꼈던 감동과 행복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환한 얼굴로 행복해하던 곳 사람들의 얼굴이…

장민수_짐바브웨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한국에서는 전도를 거의 해보지 않았다. 짐바브웨에 가서 보낸 1년의 삶을 돌아보면, 복음을 전한 시간들이 가장 값졌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복음이 귀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짐바브웨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은 듣는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나에게도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하나님이 느끼게 해주셨다. 그래도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부담스럽고, 때로는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부터 바뀌었다. 복음이 내 마음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복음을 듣는 사람을 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경우가 많다. 성경도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 말씀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을 펼쳐서 이야기하면 말씀을 받아들인다.
나는 짐바브웨에서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특별히 무전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한 일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한 친구와 함께 떠난 무전전도여행. 오지 마을에 있는 한 집을 방문하자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마당엔 양이 뛰어다니고…. 저녁마다 그 집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할머니 부부와 근처에 사는 친척 분들과 마을 사람들이 참석하기로 했다. 할머니 집에서 나흘을 묵기로 했기에 모임을 네 번 가져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구약시대의 속죄제사부터 이야기하기로 했다.
첫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들으면서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나도 덩달아 기뻤다. 말씀을 마치자 ‘이런 말씀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저녁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복음을 전했고, 많은 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모임을 마치자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났다고 하며 우리에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시골의 오지 마을이어서 교회도 없기에 나중에 꼭 다시 와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돌아오던 날, 할머니 친척 분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 돈을, “이곳까지 와주어서 고마워요.” 하며 우리에게 주었다.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환한 얼굴로 너무나 행복해하던 그곳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평생 못된 짓만 했는데, 이젠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강병훈_미국

 
2012년 10월, 뉴올리언스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마치고 성경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루는 시내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팔에 문신이 많은 흑인 아저씨가 지나갔다. 뉴올리언스에는 몸에 문신을 새긴 사람들이 많기에 괘념치 않고 말을 건넸다.
아저씨는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경찰이 다가오자 자리를 피했다. 경찰은 우리에게 “너희들 허가 받고 하는 거냐? 허가 받지 않았으면 빨리 테이블을 치우고 가거라.” 하고 말했다. 경찰이 가고 테이블을 치우려고 하는데, 그 아저씨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성경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후 다시 만나자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저씨의 이름은 브라이언트였다.
다음날, 뉴올리언스 교회 목사님이 나에게 “너, 브라이언트를 아니?” 하고 물으셨다. 전날 전도하다 만난 아저씨라고 말씀드리자, “그분이 오늘 우리 교회로 찾아오기로 했다.” 하셨다.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그날 저녁, 목사님은 아저씨와 나눈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아저씨는 나에게서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도중에 경찰이 와서 자리를 피한 것은, 아저씨가 옛날에 갱이었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었다. 아저씨는 마약도 하고, 안 지어본 죄가 없을 만큼 악하게 살았고, 결국 경찰에 검거되어 무기징역 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숨김없이 진술하면 형을 60년으로 줄여주겠다고 해, 당시 아저씨 나이가 40세였으니 60년 형을 살고 나면 100살이 되지만 어쨌든 무기징역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검사 말대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행운이 찾아와 수감된 지 10년 만에 가석방이 되어 나왔다. 다른 친구들은 다 감옥에 있는데 혼자 나온 것이다.
내가 아저씨를 만난 것은 출소한 지 3개월 가량이 지난 후였다. 아저씨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족들에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가족들이 아예 상대를 해주지 않아 몹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 젊은이를 만났을 때도 일자리를 구하러 가던 중이었어요. 어떤 아시아인이 다가오더니 ‘죄가 있냐?’고 물어서 열을 받았지요. 하지만 성경 이야기를 해주어서 참 좋았어요. 나는 평생 못된 짓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그 후로 아저씨는 매일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는데, 아저씨는 평일에도 교회에 찾아온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도 매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매일 말씀을 들으면서 아저씨는 한 걸음 한 걸음 예수님의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가 매일 교회에 오는 이유를 며칠 뒤에 알았다. 출감한 후 옛 친구들이 계속 전화를 해서 같이 활동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친구들에게 ‘다시 감옥에 가기 싫다. 다시는 그런 삶 살기 싫다’고 말했지만, 유혹이 너무 강해 금방 끌려갈 것 같아서 매일 교회에 온다고 했다. 인생의 많은 날들을 어둡게 살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새 삶을 찾아가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본래 뉴욕에서 지냈던 나는 며칠 후 뉴올리언스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아저씨의 소식을 더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저씨를 교회 안으로 인도하신 예수님이 아저씨의 삶을 복되게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이야기해주면 안 돼?”

이찬경_탄자니아

 
2012년 8월에 탄자니아 월드캠프가 있었다. 참석자가 1,000명 가량 되었는데, 90퍼센트 이상이 우리 교회와 처음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기독교인도 많고, 무슬림도 많고, 참석자들은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캠프 중에 한 무리가 모여 있기에 친해질 겸 다가갔다. 백인(아프리카에선 인종을 흑백으로만 구분한다)이 무리에 들어오니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 남자 대학생이 나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문득 그 학생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확 올라왔다. 이번에는 내가 그 학생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자기는 다른 나라에까지 다니면서 큰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부르고 기도도 해준다고 했다. 죄는, 울면서 회개기도를 하면 싹 사라진다고 했다. 죄를 지었는데 회개기도를 하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러면 지옥에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너는 지옥에 갈 확률이 있지 않냐?’고 묻자 그는 할말을 잃었다.
그 학생은 꽤 유명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따랐는데, 이야기가 그가 몰리는 쪽으로 전개되자 학생들이 하나 둘 떠나고 두 사람만 남았다. 두 학생은 나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이야기해주면 안 돼?” 하고 부탁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서툰 영어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신기했다. 말하다 보니 마음에서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와, 이게 복음 전하는 기분이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두 친구가 복음을 받아들였다. 구원받고 기뻐하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한국에서는 복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기에,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복음을 전하니까 하나님이 나에게도 역사하시는구나!’
우리는 서로 많이 친해져서 캠프 기간 내내 같이 다녔다. 두 친구의 이름이 키스와힐리어로 외우기 어려워서 내 성을 따서 ‘이바울, 이은총’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렇게 불렀다. 캠프 마지막 날 두 친구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사진 두 장. 캠프 중에 찍은 사진을 인화한 것이었다. 고마웠다.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가르쳐준 그날의 전도, 그리고 그때 구원받아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두 친구가 그립다.

 

 

“나, 이런 말씀 생전 처음 들었다.”

양주희_대만

 
대만에는 ‘원주민’과 중국에서 건너온 ‘평지인’이 함께 산다. 평지인은 대부분 불교를 믿고 원주민은 기독교를 믿는다.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원주민 마을로 전도를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먹을 때쯤 돌아오는 짧은 전도여행을, 한 달 동안 갖기로 했다. 처음엔 많이 부담스러웠다. ‘누가 우리를 맞아주기나 할까?’ 걱정이 되었고, 점심을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용기를 내서 사람들을 만나 전도를 시작했다. 대부분 교회를 다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 분들은 중독성이 강한 ‘삥랑’이라는 각성제와 술을 자주 먹기에 자신들은 죄가 있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전도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주머니가 있다. 하루는 같이 전도 다니던 짝이 바뀌어 다른 단기선교사 언니와 함께 갔는데, 언니는 대만 말이 서툴러서 내가 주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데 언니와 함께 찾아간 마을에는 집집마다 커다란 개가 있었다. 나는 개를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회관에서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행사를 갖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점심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으로 거기 계속 있었지만 행사가 좀체 끝나지 않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토란 말린 ‘위토’를 조금 주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뭘 하려고 기다리라 하시나?’ 궁금했는데, 아주머니는 우리를 신경도 쓰지 않더니 나중에는 우리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너희들 여기서 뭐하지?” 하고 또 물으셨다.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며 아주머니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아주머니는 집에 가서 밥을 사주고,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보여주면서 무척 비싼 거라고 하셨다. 원주민들은 주로 수공예품을 만들어서 판다. 며칠 전에 다른 마을에 전도하러 간 언니들이 수공예품을 받아온 것을 보고 부러운 적이 있었기에 갖고 싶었지만, 보여주기만 해서 ‘내가 복음 전하러 왔지’ 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복음 전할 기회를 엿보았다.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말이 끊긴 틈을 타 신앙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다. 아주머니는 복음을 다 듣고도 “아직까지 나는 죄가 있다. 어떡하냐?” 하셨다. 내가 예를 들어가면서 다시 복음을 설명하자 아주머니는 비로소 복음을 깨닫고 우셨다. “나, 이런 말씀 생전 처음 들었다. 너희들이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 아주머니는 울며 기뻐하셨다. 내가 더 감사했다. 꼭 내가 구원받은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교회의 장로였는데, “너희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갑자기 나가더니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들고 와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 자리에서 직접 열쇠고리도 만들어서 주셨다. 처음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수공예품을 갖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부끄러웠다.
마을회관에 있었던 50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아주머니와 만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지금도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고, 그 마을에 다시 가보고 싶다.

 

 

“언니, 일어나 한국에 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전보람_중국

 
중국인 언니와 함께 전도하러 나간 날. 식물인간이 된 딸을 간호하고 있는 중국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식물인간이 된 딸이 한국어를 좋아해서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했다면서, 딸에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해보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식물인간인데 반응할까…?’ 하며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고
“언니.” 하고 불렀다. 그러자 누워 있던 언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깜짝 놀랐고, 신기했다.
“나, 한국에서 왔는데 내가 기도해줄게.”
그러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반응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는데….
“언니, 내 이야기 들려? 내 이야기 듣고 일어나서 우리 함께 한국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언니가 다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반응했다.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붙였다가 반응하는 언니를 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하나님, 이 언니를 도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어요!’ 속으로 기도하면서 언니 몸을 마사지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우리에게 쏟아부어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일어날 수 있으니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 반응하던 언니, 언니가 내가 전한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언니와 헤어진 후에도 주님이 언니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계속 기도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언니가 생각나면 기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