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동행한 행복한 페스티벌
말씀과 동행한 행복한 페스티벌
  • 편집부
  • 승인 2013.04.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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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굿뉴스코 페스티벌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월 12일, 11기 굿뉴스코 단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기쁜소식강북교회로 모여들었다. 귀국발표회 준비를 위한 합숙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선배 단원들도 모여들었다. 공연하는 후배들을 돕고, 스태프로 일하고, 필요할 때면 먹을 것도 사주기 위하여.
대륙별, 공연 내용별로 팀을 구성한 후, 팀당 한 명씩 담당 사역자가 세워졌다. 공연에 대해 함께 의논도 하고, 마음이 어려울 때면 이야기도 나누기 위함이다. 굿뉴스코 페스티벌 전체 진행을 맡은 김성은 목사는 11기 단원들에 대해 “역대 단원들 가운데 재주는 많이 부족하고, 말씀은 가장 잘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격렬한 댄스를 하다 보니, 평소 춤과 거리가 먼 단원들이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사용해 부상자도 속출했다고. 공연할 내용을 만드는 데에도 유난히 어려움이 많아 광주에서
첫 공연이 끝나자 담당 사역자들은 다 감격스러워서 울었다고 한다.
단원들이 사람의 재주로 멋진 공연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힘을 얻어 멋진 공연을 선보인 2013년 굿뉴스코 페스티벌.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해마다 학생들의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함을 느끼며

글 | 김병조(5기 미국 단원)

 
2013년 굿뉴스코 페스티벌은 나에겐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굿뉴스코 5기 단원으로 미국에 다녀온 나는 발레와 한국무용을 전공해 국립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전공 까닭에 IYF에서 활동할 기회가 참 많다. 해마다 굿뉴스코 페스티벌 연습과정에도 함께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학생들이 무용이나 예체능 전공자들이 아닌데도 공연들의 수준이 매우 높고 감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나는 무용 전공 대학생들도 지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굿뉴스코 학생들만의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굿뉴스코 학생들은 마음이 낮다. 낮은 마음으로 페스티벌을 준비하기에 서로 하나가 되고, 지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 마음을 다 쏟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올해는 아이 출산과 무용단 스케줄이 페스티벌 기간과 겹쳐서 함께 준비하지 못하고 공연만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태어나 5일의 출산휴가를 받아 휴가 기간에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11기 학생들이 준비하는 공연들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대에 올리기엔 구성이나 표현이 많이 미흡해서 ‘이 팀이 과연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되었다. 그런데 굿뉴스코 학생들의 진가는 어려운 형편에 처할수록 더 확실히 발휘되는 듯하다. 보통 학생들은 일이 안 되거나 막히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데, 굿뉴스코 학생들은 ‘상황이 어렵고 힘들수록 은혜를 입는다’는 소망을 갖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려움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형편은 어렵지만 그 마음과 정신은 행복하고 깨끗하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유럽 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려움도 많고 멤버도 부족해 연습을 늦게 시작했고, 자연히 다른 대륙에 비해 댄스의 완성도가 떨어져 학생들도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과연 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서로 어려움을 표현하면서 그것들이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닌 게 되었고, 서로 보듬으며 마음이 하나가 되어갔다. 하나 된 마음으로 준비하자 연습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아름답게 진행되어서, 학생들과 내 마음에 ‘이 공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행복을 느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드디어 굿뉴스코 페스티벌 순회공연이 시작되고, 첫 공연을 마친 날 유럽 팀장 학생이 나에게 전화해서 ‘우리 모습과 상관없이 공연이 무대에 아름답게 올려졌고 팀원들 마음에 믿음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무용을 전공하게 하시고 IYF와 굿뉴스코의 일에 써주신 주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굿뉴스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 해마다 공연하는 학생들의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함을 느끼기에 나도 다시 한 번 굿뉴스코를 지원해서 그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믿음과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그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후배들이 살면서 어려움과 힘든 형편을 만나더라도 굿뉴스코 단원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행복과 기쁨을 잃지 않기를 바래 본다.
굿뉴스코 11기 파이팅!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빠의 미소가 무척 따뜻했다
 

글 | 이민지(영국 단원)

 
다른 나라 단원들보다 일찍 귀국한 유럽 단원들이 귀국발표회 준비를 위해 먼저 대덕 수양관에 모였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달랑 세 명. 실망에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박정영 목사님과 가진 모임에서, 목사님은 매년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건 과정일 뿐 결과는 아름답게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형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하셨다.
실제 준비 기간에도 공연 인원이 모자랐지만, 하나님이 아름답게 채워주셨다.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다른 팀보다 늦게 시작한 준비 과정은 너무나 어려웠다. 팀 분위기는 어둡고 팀원들은 기가 죽었으며 서로 마음을 열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댄스를 할 때 제일 앞에 서야 했다. 춤을 못 추는 나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낙망이 되는 일이었다. 머리론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너무 속상하고, 분을 못 이겨 울기도 했다. 하나님은 내가 부족한 것을 알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건데, 나는 나를 보며 낙망했다.
하나님이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셔서 우리 팀도 공연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곧 순회공연이 시작되고, 우리 집이 있는 대구 공연 때였다. 평소에는
‘딸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다정하지만 교회 이야기만 꺼내면 날카롭게 반응하시는 아빠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며 ‘딸이 한달 동안 뭘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다른 부모님들은 다 오는데 나만 쓸쓸히 있길 바라냐?’ 하며 귀국발표회에 오시라고 호소했지만 여전히 쌀쌀맞으셨다.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급해져 아빠에게 재촉하는 전화를 했다가 아빠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좌절! 하나님은 그 순간 교제할 수 있게 해주셨다. 아빠가 우리 아빠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이 아빠를 이끌어주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즐기면 되겠다! 내가 못 해도 하나님이 행복과 감동을 주시겠다!’ 마음이 따뜻했다. 실제로 공연 때 많이 실수했지만, 평소 같으면 기가 죽었을 텐데 마음이 평안했다.
공연이 끝나고 아빠를 만났다.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빠의 미소가 무척 따뜻했다. 아빠는 내가 예쁘다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으셨다. GNN방송국 기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청하자 사양하다가 응하셨다. 어리기만 한 딸이었는데 해외봉사를 다녀와 성숙해져서 좋다는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아빠의 열린 마음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공연 장비를 다 철수할 때까지 아빠는 공연장에 남아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하나님이 아빠의 마음을 계속 녹여주시면 조만간 아빠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귀국발표회는 박정영 목사님의 말씀대로 정말 아름답게 끝났다. 순회공연을 마쳤을 때, 모래알 같다고 생각했던 유럽 팀은 헤어지기 싫고 잊지 못할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함께 많은 걸 배우고 발견했으며, 많은 생각과 틀이 깨지고 말씀의 선이 짙어졌던 시간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 우리 가족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비록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두 분 다 하나님께 관심이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구원하셔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실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내 인생의 박카스, 귀국발표회!

글 | 강경륜(볼리비아 단원)

 
합숙 첫날, 같은 남미 단원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을 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다른 팀은 재밌고 좋아 보이는데, 우리 팀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순회공연이 시작되고, 우리 팀은 속빈 강정 같았다. 결국 큰일이 터졌다. 대전 공연 때 팀원 두 사람이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담당 목사님이 오셔서 “이번 공연에서 남미 팀은 빠질 수도 있어. 지금 너희들은 공연이 중요한 게 아니야. 마음을 돌아봐라.” 하셨다. 팀원들 모두 심각해졌다. ‘우리가 귀국발표회를 망치는구나!’
리허설이 끝나고 박옥수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요단 강에서 씻으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화를 낸 나아만 장군. 그게 어찌 화를 낼 일인가?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내 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는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나아만 장군 말씀이 내 마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아만이 마음을 바꾸고 요단강에 들어간 것처럼 나 또한 내 마음을 바꾸어야 했다. 내 속에 있는 마음들을 단원들과 솔직히 이야기하며 마음을 함께했다. 팀원들이 빠르게 하나가 되고 행복해졌다. 떠나갔던 두 친구도 돌아와서 밝고 하나 된 마음으로 순회공연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웠다.
지금도 우리는 카카오톡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만약 천국에도 카카오톡이 있으면 꼭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다. 내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준 내 인생의 박카스, 귀국발표회! 그 날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뜨겁고, 그 시간들이 그립다.



나에게 말씀을 주시려고 그랬구나!

글 | 손정연(중국 단원)

 
나는 중국 팀의 팀장을 맡았다. 우리 팀은 어려운 문제들을 위해 함께 기도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공연 시작 이틀 전, 연습 중 팀원들이 장난을 치다가 내 왼쪽 인대가 늘어났다. 아픈 어깨로 공연에 합류했다. 고향이 광양이기에 광주에서만큼은 꼭 무대에 서고 싶어서, 주위에서 말렸지만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맞고 무대에 올라갔다. 당연히 상태가 악화되어 다음 공연은 할 수 없었다. 예비 팀원이 내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다쳤다. 그 친구가 울면서 나에게 “내가 못 하면 팀 구성이 안 되니까 꼭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광주 공연 때 욕심만 안 부렸어도 지금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담당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마음을 돌아보라’고 하셨지만 원망만 했다.
다섯 번째 부산 공연을 앞두고 무대에 너무나 올라가고 싶어서,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 많이 듣고 새겼다고 했지만 다 날아가고 간수된 말씀이 없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시려고 그랬구나!’ 다친 다른 단원은 바로 마음에 말씀을 담고 무대로 올라갔었다.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받고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담당 목사님을 찾아가 마음을 바꾸었으니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허락하셨다. 내 마음에 말씀이 자리잡아서 감사하고 고맙다고 하셨다. 다시 생각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잘하려고만 했구나…!’ 그 후로 모든 공연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귀국발표회를 통해 내 마음에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정말 감사하다.



하나님은 내 병을 치료하고 계셨다

글 | 오혜민(자메이카 단원)

 
2011년 자메이카에서 8개월쯤 보냈을 때, 한 친구가 “너, 너무 가식적이야. 너, 자메이카 사람들한테 기억되고 싶댔지? 근데 우린 너 잊어버릴 걸? 너, 우리한테 마음 안 열었잖아.” 하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하나님께 시간을 더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 1년의 시간을 얻었고, 2012년은 현지인들과 붙어 지냈다. 자메이카 사람들은 순수해서 그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았다. 문제는, 11기 굿뉴스코 단원들과는 또 마음을 열고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귀국발표회를 준비하면서 그런 내 모습이 드러났다. 팀장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열심히 일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고 소외감을 느꼈다. 설 연휴 기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교만하다고 여겨져 목표를 세웠다. 첫째, 자메이카에서 만난 하나님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 둘째, 나랑 의견이 반대인 사람 판단하지 않고 배우기. 설이 지나고 나는 팀장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빠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돌아가신 후, 나는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고 나 외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자메이카에서 마음을 열고 지내면서 잘못된 내 모습을 조금씩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귀국발표회를 하는 동안 하나님이 나를 더 밝게 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댄스를 준비하면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났다. 내가 너무 말라서 준비하는 동안 살이 찌지 않으면 댄스팀에서 빠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나는 23년 동안 40kg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라고?’ 어두운 마음만 올라와 담당 목사님께 그대로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체질이 어디 있어? 예민해서 안 찌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열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계란 여섯 개를 먹고 바로 자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인지 3kg 가량 쪘다. 하나님이 내 입을 열게 해 내 마음의 불신을 제거하셨다.
은혜로 무대에 서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른 몸이 보기 좋지 않아 키가 작은데도 구석에서 댄스를 해야 했다. 그래도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자메이카 팀 댄스는 위치 변화가 많아 뒤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려니 너무 힘들었다.
순회공연 시작 전날 리허설 때 우리 팀의 잘못된 모습이 드러났다. 담당 목사님들이 무대에 서지 말고 교만한 마음을 돌이키라고 하셨다. 그런 일을 두 번 겪으면서 우리 마음이 심각해졌다. 우리 공연을 보고 행복해 할 자메이카 사람들을 생각하니, 공연을 못 한다는 게 서글펐다. 팀원들은 불신이 가득했다. 나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하소연하듯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뜻밖에 좋지 않은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나는 마음을 열었는데 너희들은 왜 나를 향해 마음을 안 열어?’ 하고 말했지만, 팀원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마음이 닫혀 있었다. 나는 팀원들을 믿지 않았다.
자메이카에서 내 마음에 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하나님은 그 병을 치료하고 계셨다. 내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는데, 자메이카로 돌아가서 링컨스쿨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받은 사랑을 자메이카 청소년들에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 기쁘고 감사했다. 그러고 보니 귀국발표회를 시작할 때 가졌던 두 가지 목표가 다 이루어졌다.



호진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

글 | 전광호(카메룬 단원)

나는 귀국발표회 트루스토리 팀에서 연극을 했다. 스태프를 하려고 지원했는데 연극팀에 들어가 연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본이 자꾸 바뀌고 공연 시작 전날에야 대본이 완성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연극의 내용은, 부모님의 성격 차이로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두 분이 헤어지고, 자신도 방황하던 중 인도로 굿뉴스코 활동을 떠나 삶이 변한 최호진 단원의 이야기였다. 내가 맡은 역은 최호진 단원에게 변화를 가져다준 이야기를 하는 선교사님이었다.
대본을 외우면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이게 호진이 집 이야기인가, 우리 집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가 선교사님이 호진이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인가?’ 우리 집도 호진이 집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광주 공연 때 연기를 너무 못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연기인지라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내 마음에 ‘호진이 집은 이렇게 변했는데 우리 집은 뭐지?’ 하는 어두운 마음 때문에 연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주위에서 연기를 너무 못 한다며 선교사 역할을 바꾸자고 하고, 내가 봐도 내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내가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광주, 전주, 대구, 부산…. 공연할 때마다 ‘오늘이 내가 선교사 역할을 하는 마지막 날이구나. 리허설을 마치면 바뀌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는데, 이상하게 바뀌지 않고 내가 계속 하고 있었다. 문득 ‘하나님이 이렇게 하게 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보이시려고 이러실까?’
대전 공연 때 어느 전도사님, 그리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집 형편을 다 이야기하고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형편을 믿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씀이 참된 실상이기에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 집도 이미 행복한데, 나는 내 눈에 보이는 형편을 믿고 살았던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아빠가 변하실 거야’ 하고 살았기에 늘 어두운 형편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어려워했다.
순회공연 동안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셨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어떤 형편이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지. 그렇기 때문에 기뻐한다! 하나님께서 내 어려운 형편을 가장 잘 아시지!’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카메룬에서 귀국한 후 집에 있을 때는 마음이 무척 곤고했는데, 귀국발표회를 하면서 마음이 살아났다. 무엇보다 ‘우리 아빠는 안 돼!’라는 생각에 갇혀 살았는데, ‘아빠가 하나님 안에서 이미 변했구나! 우리 집은 이미 행복한 가정이다!’ 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이 변했다. 형편과 고통에 매여 살 수밖에 없었던 나를 트루스토리 팀이 되게 하시고, 선교사 역할을 하게 하셔서 내 마음에 당신의 말씀을 심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나 보다

글 | 김혜진(인도 단원)

 
합숙훈련 첫날, 공연할 춤이 만들어진 팀은 우리 인도 팀뿐이었다. 그날 모든 단원들 앞에서 인도 공연을 선보였는데, 내 몸이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몸 관리에 들어가 끼니를 거르거나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예수님이 내 죄는 가져가셨지만 배고픔을 가져가지 못하신 듯했다.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렇게 지냈다.
인도 팀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팀이었다. 우리는 팀원들이 서로 친하고 분위기도 좋아서 자꾸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당연한 것이었고,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늘 졸았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높아진 것을 몰랐다. 마음이 높다는 말을 들으면 자중하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공허한 마음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 오전 모임 시간에 인도 팀을 해체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우리는 마음이 담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고, 우리는 너무 감사했다. 그런 일들을 한 번 두 번 겪으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갔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굶다 보니 그 역시 내 마음에 어두움이 되었다. 너무 지치고 기력도 없고, ‘내가 이것을 왜 하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저녁 모임 시간에 “불신을 믿지 말자. 내가 보는 세계를 빼버리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하나님이 다 하실 텐데 왜 내가 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좌절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나는 음식 양 조절은 하되 믿음을 가지고 음식을 먹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내 살이 빠졌다고 했다. 일주일 만에 살이 빠져봤자 얼마나 빠질까.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날씬하게 보이게 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믿음으로 광주 공연부터 시작했다.
하나님이 모아주신 사람들과 함께해서 정말 좋았다. 겉으로만 하하 호호 웃던 우리는 마음에 담긴 이야기들을 그대로 하는 사이가 되었고, 공연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순회공연 말미 대전에서 인천으로 올라오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차에 난방이 안 되어 무척 추워서 한 자매가 아팠는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았다. 그게 서운했던지 자매는 너무 아프다며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누워만 있었다.
공연시간은 다가오고 우리는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모임 중에 한 자매가 뛰쳐나가고, 나를 나무라는 듯한 선배 언니의 말에 내가 말다툼을 벌여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 무대에 올리셨다. 그날 밤, 우린 진솔한 모임을 가졌다. 한 선배 단원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일하시니까 질투가 난 마귀가 지금 우리 마음에 이런 일을 한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난 울며 선배의 말이 맞다고 했다. 그날 우리가 은혜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모임을 가지며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서울 공연을 끝으로 감사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우리는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서울.경기 연합예배 때 특별히 인도 댄스 <범범볼레>를 보고 싶다며 인도 팀을 초청해 전국에서 팀원들이 모여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앙코르공연을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나 보다. 인도 팀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이 나로 춤을 추게 하시고

글 | 김현정(북미 단원)

 
선배 단원들과의 만남,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의 합숙, 맛있는 음식과 간식!! 행복하고 즐거운 귀국발표회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국에 다녀온 나는 북미 댄스팀이 되었다. 미국에서 다리를 다쳤지만 댄스를 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했다. 무대에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스태프 친구들을 생각하면 내가 조금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뮤지컬 <멤피스> 노래도 좋고, 댄스도 무척 멋있었다.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다리 통증이 심해졌다.
광주에서의 첫 공연. 에어 파스를 잔뜩 뿌렸다. 잘하고 싶었다. 첫 공연이고, 우리 부모님도 오시기 때문이었다. 구원받지 않은 부모님은 우리 교회를 향해 마음을 닫고 있기에 정말 잘하고 싶었다. 드디어 무대에 서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다리 통증도 잊을 정도로. 모든 공연이 끝나고 부모님을 만났다. 부모님은 중국 공연이 멋있고 북미 공연은 별로라고 하셨다. “기대 많이 했는데 지루하더라. 댄스는 네가 제일 못하더라.” 괜히 부모님을 오시라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 짜증을 냈다. “파스 사왔어?!! 주고 빨리 가!!”
돌아서서 눈물이 났다. ‘내가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니 미국에 같이 다녀온 언니가 우리 부모님이 공연장에 오신 것만도 감사하다고 했다. 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은 계속되고 다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걷기조차 힘들었다. 울산 공연 때에는 근육이완제를 맞았는데 너무 아팠다. 의사는 한두 시간 아프고 다음날 아침이면 나을 거라고 했지만 더 아팠다.
여섯 번째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다리 아픈데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두 번이나 전화해서 날 힘들게 하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전화로는 말할 용기가 없어 문자메시지로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난 엄마에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보낸 글을 보고, 그동안 날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난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시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공연 전 분장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꽃바구니와 케이크가 배달되어 왔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엄마가 멀리까지 선물을 보내신 것이다. 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 되게 좋고, 좋았다.
일곱 번째 대전 공연 때에는 너무 아파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안마 하는 교회 형제님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형제님은 근육통이 심해졌고 주사 부작용이 일어났다고 하셨다. 형제님은 앞이 안 보이지만 정말 마음으로 치료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자매가 댄스 하는 거 기뻐하셔.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하나님이 나로 춤을 추게 하시고, 보는 분들을 행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도 행복을 주셨다. 마지막 서울 공연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무대에 설 때만큼은 하나님이 다리의 통증을 없애주셨다.
팀원들과 부딪히고, 마음이 어려워서 담당 목사님과 이야기하고,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위로하며 성경 말씀을 나누면서 지냈던 귀국발표회, 그 순간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이 내 마음에 새겨졌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난 20일의 여행

글 | 전요섭(짐바브웨 단원)

 
마지막 서울 공연. 아프리카 팀의 <하투아> 공연을 무대 옆에서 지켜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옆에서 스태프 담당 전도사님이 “왜 다 끝나서 울고 그래? 울지 마라.” 하시는데, 기쁨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프리카 음악의 비트가 내 마음을 쿵쿵 때렸다. 마음을 나누는 큰 행복, 내 마음과 상관없이 말씀이 이루는 평안한 삶, 고마운 팀원들이 생각났다. 공연을 마치고 한 여자 팀원이 말했다.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행복에 겨워 소리치며 공연했어요! 마음에서 만난 팀원들이 그냥 좋아요! 너무 사랑스러워요!”
행복했던 이 순간과 달리 과정은 몹시 어두웠다. 아프리카 대륙장(長)으로 함께한 귀국발표회. 합숙 훈련 동안 이헌목 목사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이 귀국발표회를 이미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며, 형편 앞에서 올라오는 불신을 제거하자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마음이 평안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팀은 모임을 갖고 이야기도 하지만 뭔가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댄스도 배워갔지만 마음은 지쳐갔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이 불신으로 가득 차 있고 내가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각자 자신의 말만 하는 팀원들을 보며 ‘이런 오합지졸들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여길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짐을 싸서 합숙 장소를 나왔다가 ‘담당 목사님께 말씀은 드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가서 한 전도사님과 교제를 했다. 전도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내 마음이 부딪쳤다. 우리 팀은 안 된다는 불신, 팀원들이 안 바뀔 거라는 불신…. 다 예수님과 다른 마음이었지만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았다. ‘왜 마귀 같은 저를 이곳에 부르셨습니까?’ 하는 마음이 들고, 악한 내 모습이 보인 후에야 내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타이트한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몸이 아픈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병원에 가기도 하고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기도 했지만, 아픈 팀원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운 건, 여전히 어두운 팀원들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을 때 그가 어떤 상황에 있었던지와 상관없이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된 병자는 걸을 수 있었다’는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일하시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다른 팀원들도 마음에 포기가 찾아오고 길이 없자 말씀을 의지하고자 했다.
인천 공연이 끝나고 우리 팀은 드디어 첫 번째 칭찬을 들었다. 다들 굉장히 행복해 했다. 서로 하고 싶은 간증들이 모임 시간을 가득 채웠다. 말씀이 우리를 바꾸신 것이다. 이후 우리 모두는 큰 행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이 이미 아름답게 해놓으신 귀국발표회였다. 분명히 아름답게 하셨다. 그런데 과정에서는 사탄이 참 많은 어두운 생각과 불신을 넣었다. 20일의 시간! 나는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걸 배워 간다. 우리 팀원들은 아직도 함께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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