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가 짧아진 까닭
바지가 짧아진 까닭
  • 키즈마인드
  • 승인 2013.05.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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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고 있었어요. 그 부자에게는 딸이 셋 있었어요. 좋은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세 딸은 서로 자기가 아버지를 제일 사랑하는 딸들이라고 자그락거렸어요.
첫째 딸이 말했어요.
“나는 첫째라 아버지 마음을 가장 잘 살피지.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가장 든든하게 생각하셔.”
둘째 딸이 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했어요.
“나는 둘째로 태어나 언니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치였어. 그런데도 아버지를 섭섭해하지 않고 잘 모시잖아. 그러니 내가 가장 좋은 딸이야.”
그러자 막내딸도 언니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말했어요.
“나는 아버지가 제일 귀여워하시는 막내딸이야. 나는 시집도 안 가고 아버지를 모실 거야.”
사실 세 딸이 아버지에게 잘하는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함이었지요. 부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 딸들이 세상에서 가장 효성스러운 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어느 친구의 집을 찾았어요. 그 친구도 딸이 셋 있는데 사업이 어려워져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허름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루에 앉아 있던 친구가 부자 친구를 반갑게 맞았어요.
“아이고, 이게 누군가? 어떻게 여길 다 찾아왔나?”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나 나눌까해서 들렀네.”
“그래, 잘 왔네. 어서 들어오게.” 
“그런데 자네 옷차림이 이상하구먼. 아직 날이 쌀쌀한데 짧은 바지를 입고 있구먼.”
무릎까지 올라오는 겨울바지를 입은 가난한 친구는 멋쩍은 듯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고 웃기만 했어요. 부자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사업이 기울어 살림이 어렵다더니 오래된 겨울바지를 잘라 입은 모양이군.’
가난한 친구는 부자 친구를 방으로 끌고 가 앉히더니 헤벌쭉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이 바지가 짧아진 데에는 웃지 못할 사정이 있다네. 들어보겠는가?”

“지난겨울,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거리에서 이 바지를팔길래 하나 사가지고 왔다네. 다음날, 바지 길이가 너무 길어서 집사람에게 ‘이 바짓단 좀 줄여줘’ 하고 출근을 했지. 그래서 오후에 집사람이 내 키에 맞춰서 바짓단을 잘라 놓고 시장엘 갔는데, 마침 작은딸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바지를 보고 전날 내가 한 얘기가 생각나서 자기 딴에는 엄마를 도와준다고 바짓단을 또 잘라서 줄여놓은 거야. 그런데 회사에 갔던 큰딸도 퇴근하고 와서는 ‘어제 아버지가 바짓단을 줄여달라고 하셨지? 엄마나 동생은 바빠서 못했을 텐데, 내가 해 드려야겠다’ 하고 또 잘라서 줄여놓았지 뭔가! 그래서 이 겨울바지가 반바지가 되었다네. 밖에 입고 나가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집안에서만 입고 있는 걸세. 그래도 나는 애들이 줄여놓은 이 바지가 나에게 꼭 맞는 바지라고 생각하네. 하하”
 
이야기를 듣던 부자는 친구의 바지가 짧아진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어요.
“자네는 정말 효심이 지극한 딸들을 두었구먼.”
부자는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집을 나섰어요. 그리고 친구가 한 것처럼 바지를 하나 사들고 집에 들어갔어요.
 
다음 날, “이 바짓단 좀 줄여줘.” 하고 큰소리로 말하고는 회사에 나갔어요. 부자는 친구의 바지처럼 짤막한 모습으로 자신을 맞을 바지 생각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바지는 어제 자신이 놓았던 그 자리에 놓여 있었어요. 길이도 어제 상태 그대로였어요. 부자는 아내를 불러 물었어요.
“어제 내 바짓단 좀 줄여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부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넛방에 있는 큰딸을 향해 소리쳤어요.
“아니, 첫째가 안 줄여놨나? 첫째야, 아버지 바짓단 줄이는 것 어떻게 했니?”
첫째 딸이 말했어요.
“나는 바빠서 둘째한테 시켜놓았어요.” 
그러자 아내는 둘째 딸의 방으로 가서 물었어요.
“너 아버지 바짓단 줄였니?”
둘째 딸이 대답했어요.
“학교 공부 하기도 바쁜데 내가 그걸 어떻게 해요? 그런 일이라면 막내가 해야죠.” 
그러자 셋째 딸이 방에서 나오며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나는 바느질이 서툰데 어떻게 내가 그걸 해요? 세탁소에 갖다 주면 금방 다 해 주는 일을 가지고 왜들 이렇게 시끄럽게 해요?”
아내와 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부자는 기가 막혔어요. 한동안 멍하니 서서 씁쓸한 마음을 달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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