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 키즈마인드
  • 승인 2013.06.1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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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국보훈의 마음이란?
6월을 맞아 학교나 여러 기관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바쁠 거예요. 키즈마인드 친구들도 호국보훈의 정신을 담은 글짓기, 포스터 그리기, 표어 짓기 대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요.
해마다 이맘때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고, 6.25 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보호한다’는 뜻의 ‘호국’과 ‘공훈에 대해 보답한다’는 뜻의 ‘보훈’이 합쳐져 생긴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호국보훈의 의미도 모르고, 국가의 소중함이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가치를 모른 채 현충일이나 6.25를 지나치고 있어요.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는 우리가 집이나 학교나 동네에서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울타리예요. 그런 울타리가 없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 생활을 해야 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잘 알 수 있어요. 지금처럼 가족들과 집에서 즐겁게 지낼 수도 없고, 학교에 가서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울 수도 없을 거예요. 친구들과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놀 수도 없고 어쩌면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몰라요.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소중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고 소중한 목숨까지 버린 분들이 아주 많아요. 특히 19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신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지요. 또 한반도를 공산화시키기 위해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북한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돌아가신 군인들도 참 많아요. 얼마 전에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으로 우리 국토를 지키던 삼촌과 형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버린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마음을 흘러받아 이 나라를 아름답게 지켜나가야 해요. 이것이 바로 참된 호국보훈의 마음이랍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고 6.25라는 가슴 아픈 전쟁도 치렀어요. 지금도 한반도는 언제 포탄이 터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요. 이럴 때일수록 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야합니다.
 
 
2 6.25 영웅들에게 배워요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상 전투게임과 같은 슈팅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최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전략을 구상하여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지요. 그런 게임을 즐기다 보니 전쟁이나 테러를 박진감 넘치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매우 끔찍하고 참혹한 일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참혹한 전쟁터에 나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고 싸운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도 죽음이 두렵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나라의 부름을 앞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것이지요. 뛰어난 정신력과 강한 마인드로 감동과 교훈을 남기신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6.25 전쟁 때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1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군에는 전투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근석 대령은 경비행기를 총동원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200피트의 낮은 고도로 비행을 했어요. 그러면서 폭탄을 손으로 직접 떨어뜨려 공격함으로써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오는 것을 늦추었어요. 그 뒤 미군이 제공해 준 전투기 10대를 받아 북한군과 전투 중 적의 대공포에 엔진을 맞았는데,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한 이 대령은 그대로 북한군의 전차로 돌진하여 전투기와 함께 산화(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했어요.
 
 
2 개성 북쪽에 위치한 송악산은 개성을 지키기 위해 잃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군인들은 빼앗긴 송악산 고지를 되찾기 위해 공격해 올라갔지만 북한군의 진지에서 빗발치듯 뿜어대는 기관총 사격을 당할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적의 진지로 돌진할 특공대를 짰는데, 서부덕 상사와 김종해, 윤승원, 이희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 하사까지 9명이 자원을 했어요. 이들 9명의 용사들은 81㎜ 박격포탄을 가슴에 안고 각자 목표로 한 진지를 향해 돌진했어요. 물론 북한군이 기관총을 무참히 쏘아댔지만 총상을 입으면서도 기어이 목표지점까지 접근하여 몸을 던져 자폭함으로써 9개의 북한군 진지를 부수었어요. 그렇게 9명의 용사들의 희생으로 송악산 고지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 한편, 이에 앞서 박창근 하사가 적의 진지를 부수기 위해 혼자 수류탄 7개를 들고 돌진하여 전사했는데, 그때부터 박 하사와 9명의 용사를 합쳐 ‘육탄 10용사’라 부른답니다.
 
 
3 이태영 중령은 동해와 서해의 옹진반도 등 작전수행이 어려운 바다를 누비며 적함을 위협해 유엔군들로부터 이 중령의 배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의미로 ‘고추함’이라고 불릴 만큼 용맹을 떨쳤어요. 그러다가 북한군이 물속에 설치해 놓은 폭탄에 부딪쳐 침몰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다른 전우가 더 깊은 바다에 빠져 실종되지 않도록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는 진한 전우애를 발휘했다고 해요.
 
4 이 밖에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자원하여 군대에 들어간 일도 있었어요. 그들은 겨우 방아쇠 당기는 법만 익힌 채 전선으로 나가 열심히 싸우며 죽어갔지요. 얼마 전, 포항전투에서 전사한 한 학도병의 군복 주머니에서 피 묻은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어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 학도병은 어머니께 쓴 편지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음날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어요. 이렇게 군번도 이름도 없이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 학도병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이우근 학도병이 어머니께 쓴 편지글의 일부예요.
 
 
 
5월 18일, 구름이 낀 흐린 날씨 속에 기자단은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찾았어요. 좌우로 펼쳐진 웅장한 건물의 중앙계단을 올라가자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국군발전실 등의 실내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었고 실외에는 대형장비 전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먼저 1층에 위치한 전쟁역사실에 들어갔어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까지의 전쟁 장면을 기록한 그림과 각종 칼, 창, 군복 등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외세의 침략을 자주 당하다보니 무기도 발전을 하여 이동식 발사무기인 ‘신기전기화차’, 소년이나 부녀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자동 활 발사장치인 ‘수노기’, 수많은 왜선을 격파한 거북선 등이 있었는데, 전쟁과 땔 수 없는 역사를 보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선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어요.
 
전쟁기념관의 본격적인 관람은 2층에 위치한 6·25전쟁실에서 시작돼요. 이곳은 북한군의 남침배경과 전쟁의 경과 및 정전협정까지 6·25 전쟁의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어요.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군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할 목적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공격을 해왔는데,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당했다고 해요. 그때 대부분의 군인들이 휴가를 떠나는 등 국군이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전시실 스피커에서 서둘러 대피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어요. 하던 일을 멈추고 갑자기 집을 떠나는 사람들의 실물 모형을 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아팠어요. 
 
한강을 넘어오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다리를 부수며 벌인 전투장면은 모형과 3D 컴퓨터 그래픽, 사운드로 표현되어 당시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어요. 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뒤 가장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다부동 전투의 일부 지형을 실제 규모로 재현한 모습을 보니 당시의 긴박감과 공포가 느껴졌어요. 박격포탄과 폭약을 품에 안고 적의 진지에 돌진하여 자폭, 장렬히 산화한 ‘육탄 10용사상’을 보면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그분들의 애국심에 마음이 숙연해졌어요.
 
 
6.25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지요. 우리는 전쟁의 흐름을 역전시켰던 인천상륙작전을 체험하기 위해 4D상영관에 갔어요. 우리는 화면 속 가상 군인이 되어 배를 타고 육지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어요. 그때 굉음과 함께 육지에서 적의 포탄과 총알이 날아왔어요. 머리위에서 비행기가 우리를 호위해 주었지만 육지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막아주진 못했어요. 적의 공격을 피하려다 보니 배가 좌우로 뒤집힐 듯 흔들렸어요. 실제로 흔들리는 의자와 커다란 입체화면 때문에 긴장감이 넘쳤어요. 드디어 배가 육지에 닿아 적을 섬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어요.
“전시물을 관람하고 전장 체험을 하니까 실감나서 재밌기도 했지만, 너무 끔찍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원구, 대구대청초등학교 5학년)
 
가상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와 우리 기술로 만든 장갑차, 헬리콥터, 전투기, 미사일 등을 관람했어요. 그 방대한 양과 멋진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어요. 그런데 안타까웠던 것은 2002년 우리가 월드컵으로 떠들썩했을 때 제2연평해전이 일어났다고 해요. 그때 북한군과 싸운 해군 고속정 참수리357호를 실제크기로 복제해 전시해 놓았는데 배의 몸체에는 수많은 총탄 구멍이 뚫려 있었어요. 배 안으로 들어갔더니 포탄에 맞아 파손된 실내, 깨진 유리창 등이 재연되어 있었어요. 해전 당시 6명의 군인이 전사했다고 하니 당시의 참혹한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이 수많은 피를 흘렸어요. 어린이들이 전쟁기념관에 와서 그분들의 고마움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갔으면 좋겠어요.” (김형완, 전문안보해설사)
 
관람을 마치고 전쟁기념관을 나오면서 광장에 서 있는 커다란 6·25전쟁 조각상을 보았어요. 그 옆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를 얻기까지 많은 희생이 치러졌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6월에는 키즈마인드 친구들도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전쟁역사와 순국선열들의 마음을 만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내길 바래요.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에요. 기본관람요금은 무료이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warmemo.or.kr)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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