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종이 되어!
이젠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종이 되어!
  • 김진수 선교사, 전형식 선교사
  • 승인 2013.08.16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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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충만한 선교사들의 생생한 간증 시리즈 ①

 

 
 


 
핀란드에 3년쯤 사니까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핀란드에서 8년 가까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에게 찾아오는 생각을 내가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은 안 돼! 핀란드 사람은 교만해!’ 하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덮었다.
핀란드는 날씨가 굉장히 춥다. 11월부터 4월까지 6개월이 겨울로, 겨울에는 해가 10시경에 떴다가 2시쯤이면 지고, 낮에도 햇빛이 약하다. 거기에다 잘사니까 사람들이 프라이버시가 강해서 마음을 꺾기 싫어해 개인의 울타리 안에서만 산다. 혼자 살고, 잘살고, 날씨 안 좋고, 햇빛 없고, 이렇게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사람의 정신이 안 좋아진다는 사실을 핀란드에서 살면서 깨달았다. 나는 성격이 굉장히 밝아서 한국에서는 혼자 가만히 있는 경우가 없고 늘 이야기를 하고 살았는데, 핀란드에서 3년쯤 사니까 혼자 있는 것이 좋고 말이 사라졌다.
핀란드는 국토는 넓지만 인구가 5백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다. 처음 핀란드에 갔을 때 ‘조용한 이 나라에서 우리가 시끄럽게 살자. 밖에 나가서 전도하고, 사람들을 교회에 초청하자’ 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전도했다. 그렇게 사니까 교회에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떨어져나갔다. 다시 전도하면 사람이 느는 것 같다가 또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 3년, 4년, 5년이 되자 한계가 찾아왔다. ‘사역을 그만두어야겠다. 왜 날 핀란드에 보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내가 왜 구원받았지?’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왜 태어났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음이 굉장히 어려웠다.
어려운 마음을 이야기할 대상이 주위에 없었다. 아내는 나만 바라보고 있고, 어린 두 아들도 나만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온 단기선교사들도 나만 바라보았다. 유럽 지역 사역자들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서 스스로 ‘어려운 마음을 이야기해도 교제해 주겠나?’ 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더 힘들어지더니, 나중에는 ‘이래서 사람이 자살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울증이 조금 찾아온 것 같았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자살을 안 했으면 교제를 잘한 거야.”
3년 전, 박옥수 목사님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월드캠프에 오셨다. 나는 항상 목사님 앞에 잘하는 사역자로 서고 싶었다. “목사님, 이번에 복음을 전해서 50명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 일이 없으니 목사님을 만나면 할 말이 없었다. 러시아 월드캠프 때에는 사역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러시아로 갔다. 한국에서 박 목사님이 도착하시고 다른 사역자들은 반가워서 나가는데, 나는 뒤에 서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하셨다.
“김 전도사, 어둡지?”
“네? 저 밝은데요.”
“아니야, 어두워.”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여겨져, 내 마음을 이야기하러 목사님 숙소로 찾아갔다. 목사님이 몇몇 사역자들과 교제하고 있는데, 어두운 마음을 말씀드렸다.
“목사님, 왜 저를 날씨도 안 좋고, 사람들도 교만하고 정신이 안 좋은 나라 핀란드에 보내셨습니까?”
“이 사람아, 날씨 안 좋은 곳에 살면서 정신이 안 좋고 외로운 사람들한테 선교사가 필요한 거야.”
“그렇네요…. 그런데요, 핀란드에 온 단기선교사들이 핀란드에 있을 때는 좋은데 한국에만 가면 교회와 연결이 안 됩니다. 제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핀란드에 있을 때는 좋았는데, 한국에 가니까 안 좋아져?”
“네.”
“그럼 그건 누가 문제야? 그 학생들이 한국 어느 교회 소속인데?”
“그게…. 목사님, 저는 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 선교를 보냈습니까?”
“우리 선교회는 원래 그렇게 보내. 브라질에도 그렇게 보냈고….”
“그렇네요…. 목사님, 제가 자살하려는 사람과 신앙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바뀝니다.”
“잠깐만! 그 사람이 자살했어, 안 했어?”
“자살은 안 했습니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자살을 안 했으면 교제를 잘한 거야.”
어떤 이야기도 내 생각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하나님이 자네를 핀란드에 보내셨잖아.”
그날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셨다. “어이, 하나님이 자네를 핀란드에 보내셨잖아.”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아, 하나님이 나를 핀란드에 보내셨는데, 내가 하나님을 떠났구나!’
나는 그동안 핀란드에서 역사를 일으키고 싶었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이나 미얀마에서처럼 사람들이 500명쯤 구원받아서 예배당도 멋지게 짓고 싶었다. ‘나도 그런 나라에 갔어야 하는데…’ 하고 그곳 선교사님들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핀란드에 보내신 것이다. 그때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 43:1) 하나님이 실수로 나를 핀란드에 보내신 것이 아니고, “김진수, 핀란드!” 하고 나를 지명하신 것이다.
마음에 그 사실이 믿어졌다. 정말 신기한 것이, 굉장히 어두웠던 마음이 바로 밝아졌다. 그리고 러시아 월드캠프 기간에 나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사역을 잘하고 받은 것이 아니라, 사역을 그만두려고 갔다가 안수를 받은 것이다.

따냐를 시작으로 마리나, 미야, 안니, 수산네…
캠프를 마치고 핀란드 국경을 넘어가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차를 운전해 가면서 혼자서 소리를 쳤다.
“핀란드 사람들아! 하나님의 종이 여기 있으니, 내 말을 들으라!”
신이 났다. 하나님이 날 보내셨으니 한 사람도 구원받지 않아도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었다. 마음이 담대해졌다. 전에는 자살하려는 사람은 피해다녔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다. 하루는 단기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공부하던 ‘따냐’라는 여학생이 교회에 찾아왔다. 혼자 오기 부담스러워서 ‘마리나’라는 언니를 데리고 왔다.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설교집을 주면서 “우선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하고 말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느껴지는 게 있냐고 묻자 따냐는 “잘은 모르겠는데, 찬찬히 읽다보니 죄가 없데요.” 하고 말했다. 곧 복음을 전해서 따냐가 구원을 확신했다.
그 주 예배 시간에 따냐가 나와서 간증을 했다.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며 자살을 기도한 이야기를 했다. 팔에 칼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자살하려고 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서 늘 한국 드라마만 봤어요. 그런데 한글학교에 가고, 거기에서 이 교회에 가라고 해서 왔더니, 목사님이 책을 주면서 읽으라고 하셨어요. 무슨 책인가 하고 읽다보니 내 죄가 씻어진 거예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새 삶을 찾았어요.”
그 후로 따냐는 매일 교회에 왔다. 매일 안 와도 괜찮다고 했더니, 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오라고 했다. 교회에 오면서 따냐가 바뀌었다. 따냐는 한국 드라마를 아주 많이 봐서 한국말을 무척 잘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내가 한국말로 설교하면 따냐가 핀란드 말로 통역을 했다. 그 전에는 내가 핀란드 말이 서툴러서 영어로 설교하고 있었다. 따냐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말에 능숙한 것도 주님이 하신 일이었다.
따냐가 구원받고 이어서 마리나가 구원받았다. 그리고 미야가 구원받고, 안니가 구원받고, 수산네가 구원받고…. 하나님이 핀란드 사람들을 계속해서 구원해 주셨다. 그때 하나님이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봐! 네 생각이 틀렸잖아!”

시글락이 불탄 것은 헤브론으로 가는 축복이었다
지난 5월에 런던 대전도집회를 마치고 핀란드로 돌아오니, 월세로 살던 집의 주인이 사람이 너무 많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 일을 두고 기도하면서 박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데, ‘시글락이 불탄 것은 저주가 아니라 다윗을 헤브론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믿어졌다. ‘우리가 다른 집을 월세로 얻어도 문제가 안 생길 수 없으니, 집을 사자!’ 하고 마음을 정했다.
주일 예배 때 형제 자매들에게 간증을 했다.
“여러분, 시글락이 불탔는데, 그것은 헤브론으로 가는 주의 축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집주인에게 쫓겨나는데, 이건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집을 삽시다.”
박 목사님께 집을 사겠다는 내용과 도움을 부탁드리는 이메일을 드렸는데, 목사님께서 ‘이 일로 말미암아 핀란드 교회가 믿음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며 기도하고 돕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정말 행복했다.
‘핀란드가 행복한 나라였구나! 핀란드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구나! 핀란드가 복음 전하기 좋은 나라였구나!’
그동안 나는 유럽에서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불가리아에서 현지 목회자 24명이 구원받아 말씀을 전해 달라고 박옥수 목사님을 초청했다. 그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지 우리는 모른다. 포르투갈에서는 기성 교회 목회자가 우리 선교사를 만나 마음이 열려서, 그 교회 신자들을 다 모아서 집회를 하기로 했다. 누가 유럽에서는 복음의 역사가 안 일어난다고 했는가? 내 생각이! 사탄이! 그래서 내 생각은 사탄의 생각이다.

나는 핀란드의 D. L. 무디
7월에 있었던 한국 월드문화캠프에 참석차 귀국한 선교사들이 박옥수 목사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배웠다. 신앙생활은 구원받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우리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된다는 것이다. 구원받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신앙생활에 필요한 온전한 믿음을 주셨는데, “밥 팔아서 똥을 산다”는 말처럼 나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팔고 내 행위로 돌아가버렸다. 그것이 타락이었다. 내가 구원받을 때 얻은 믿음이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능력의 전부인데, 나는 특별한 믿음이 있는 줄 알고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연초에 박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D. L. 무디 같은 하나님의 종이 50명
일어날 것이다’고 하셨는데, ‘아멘!’ 하고 내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빨리 받아들였다. 내가 구원받을 때 내 모습과 상관없이 의인이 된 것처럼, 내 모습과 상관없이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모습이 어떠하든 “나는 핀란드의 D. L. 무디입니다.” 하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하다. 이 행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이탈리아에 선교를 간 지 8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했다. “이탈리아의 전형식 선교사, 선교 참 잘한다.”는 소리를 한번 듣고 싶었다.
잘해보려는 마음 하나 가지고 살았지만 안 되었다. 그럴 때마다 ‘이탈리아 말이 서툴러서 그런가?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나의 연약함을 고쳐보려고 애썼다. 주위에 있는 선교사님들과 교제도 하고, 마음도 낮춰보려고 했다. 하지만 무얼 해도 안 되었다. 박옥수 목사님을 한번씩 만나 교제하면, 목사님은 늘 “그렇게 해서는 안 돼! 그 길로 가면 망해!” 하셨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와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목사님과 교회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내 마음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안에서 살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자신감인지, 나를 믿는 마음인지도 모르고 그냥 잘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비자도 나오지 않고, 전도도 안 되고, 결국 한계에 이르렀다.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 채 지내고 있는데, 박 목사님이 우크라이나 캠프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내서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목사님, 제가 이탈리아에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비자도 못 받고, 사람들도 구원을 받지 않고요….”

갑자기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말씀하셨다.
“전 형제, 이야기를 잘 들어봐.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 된 병자가 걸으려고 해서 안 됐어. 그렇지?
“예.”
“그런데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하셨어. 그래서 병자가 걸어갔어. 그렇지?”
“예.”
“이해가 돼?”
“예.”
“전 형제가 한번 말해 봐.”
순간 무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히 목사님이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고, 이해도 가는데, 말해보라고 하니까 엉뚱하게 내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이탈리아가 어떤 나라인가 하면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설명해 가면서 목사님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전 형제, 잘 봐. 38년 된 병자가 해서 됐어, 안 됐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걸어갔어, 안 걸어갔어?”
“걸어갔습니다.”
“이해가 돼?”
“예.”
“확실해?”
“예.”
“믿어져?”
“예.”
“말해봐.”
목사님이 설명하실 때는 분명히 이해가 가고 믿어졌는데, 이야기를 하려고 입을 열자 “이탈리아는 비자 받기가 힘들어요….”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목사님이 너무 답답하신지, 바닥에 벌렁 누우셨다.
“어이, 전 형제. 38년 된 병자가 다리를 안 써서 말랐어. 나무막대기야. 안 된다니까. 이해가 돼?”
“예.”
“그런데 이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어. 그래서 일어났지?”
“예.”
“어떻게?”
“믿음으로요.”
“확실히 이해가 돼?”
그렇게 30분쯤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만 하고 목사님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 것이다. 그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구원받은 후 주님은 교회 안에서 종을 통해서 나를 이끌어 주셨는데, 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나를 믿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서 주님의 음성이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 없이 형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이 전형식인데, 나는 정말 형식적으로 살고 있었다. 선교사로 8년을 지내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내 안에는 말씀이 한 마디도 거하지 않고 ‘내가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품고 살았던 것이다. 늘 말씀을 들으면서 늘 내 생각을 따라 산 것이다. “그 길을 가면 망해! 저주받아!” 하고 아무리 외쳐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으니까 여전히 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삶 속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일이 안 되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만나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미친 채 살아온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생각을 믿고 살아온 것이 너무 비참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니라
내 모습이 보인 후 목사님께서 요한1서 4장 17절 말씀을 주셨다. 말씀 후반부의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신기하게, 그 말씀이 내 마음 안에서 내가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계속 품게 해주고, 내가 가질 수 없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
‘주님이 내가 거룩하기를 원하시니까 내가 거룩하구나. 주님이 내가 의롭게 되기를 원하시니까 내가 의롭게 되는구나.’
말씀이 내 마음에서 그렇게 반응되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주님이 내가 로마에 살기를 원하시니까 비자도 주시겠구나. 내가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님이 행하시겠구나.’
주님의 어떠하심을 살필 수 있는 마음을 말씀이 계속해서 만들어 주었다. 전에는 ‘내가 어떠한가? 내가 볼 때 어떠한가? 저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고 주변을 살피고 사람을 살폈다. 그 결과는 다 망한 것이었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처럼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비참하고 괴로운 위치에 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통해서 주의 어떠하심을 살피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주의 어떠하심이 무엇입니까?’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걸어갈 때도 그 말씀을 품고, 잘 때에도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보았다. 그러자 그 말씀이 통로가 되어 교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말씀들이 하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금을 만들려고 했구나. 금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있는 것인데….’ 하는 사실을 알았다. 신앙생활이나 선교는 내 수고나 열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려고 한 것처럼 신앙생활이나 선교를 내 수고와 열심으로 잘하려고 했다. 그렇게 산 내가 보였다.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되면 옆 차의 배터리를 연결해서 시동을 걸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내 옆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도 내 배터리가 방전된 줄 모르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듣지 않는 것은 무시하는 것이고, 무시하는 것은 내가 그보다 잘났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정말 어리석은 삶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내가 해서 안 되니까 처음으로 옆에 있는 목사님의 배터리에 케이블을 연결시켜 보았는데, 내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연결을 통해서 내가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들이 컸다.

주님, 이제 저의 귀를 뚫어주십시오
얼마 전, 한국 월드문화캠프 기간에 한국을 방문해서 박 목사님과 선교사님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던 때였다. 하루는 새벽에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말씀이 마음을 두드렸다. 출애굽기 21장에는 히브리 종에 대한 율례가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실패해서 어느 집의 종이 되면, 6년을 살다가 7년째에는 자유할 수도 있고 영영히 주인의 종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종이 주인과 함께 살다가 7년째가 다가오면 ‘내가 나가서 자유할 것이냐, 영영히 종이 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주인이 좋다는 생각도 하고, 주인이 싫으니까 얼른 자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살지만, 6년을 마치는 날에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은 내가 분명하게 선택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나는 이 선택 없이 그냥 살았구나. 그래서 내 생각도 가지고 말씀도 믿고, 교회와 종도 따르고 내 생각도 따르고 살았구나. 그런데 이제는 주님이 내가 분명하게 선택하기를 원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내가 교회와 복음을 만나지 못했다면 술주정뱅이가 되었거나, 껄렁거리다가 누구에게 맞아죽었거나 했을 텐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받아주셨습니까? 그런데도 제가 내 마음 하나 품고 살면서 교회와 종을 무시하고 살았는데, 이제 제가 선택을 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이제 당신의 음성만 듣겠습니다. 주님, 저의 귀를 뚫어주십시오.’
그동안 내 귀에는 여러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소리도 들리고, 자식의 소리도 들리고, 형편의 소리도 들리고…. 그런데 그날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분명한 선을 긋게 해주셨다. 이제 내가 복음 앞에, 교회 앞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분명한 선을 긋고 거기에 내 생명 전부를 드려야겠다고. 내 마음에 귀를 뚫으니까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길이 없다. 오늘도 “일어나 걸어가라.”는 주님의 음성 외에는 내게 소망이 없다. 하나님이 주님의 음성 외에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나를 이끌어 주셨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제 이탈리아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 기대된다. 한국에서 교제하는 동안 이탈리아를 향한, 또 로마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를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한 부분 한 부분 내 마음에 새기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했다. 내가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종과 함께 복을 받는 자가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내 모습은 형편없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도 믿음의 종처럼 똑같이 복을 받겠다는 마음이 들어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소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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