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밝은 사춘기 보내기
건강하고 밝은 사춘기 보내기
  • 키즈마인드
  • 승인 2013.08.20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Q&A
고민을 말해 봐!
 사춘기를 맞은 친구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고민을 뽑아 각 분야별 전문가 선생님들께 해답을 여쭤 보았어요.

 
 
 
 
 
 
 
 

청소년기에는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어요. 이러한 감정기복은 시간이 지나면 안정이 된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마음속에 꽁꽁 감춰놓고 끙끙 앓고 있는 생각들도 꺼내놓고 보면 쉽게 풀리는 것들이 많아요. 다행이죠? 이제부터 주위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놓으세요.

도움 말씀을 주신 김응대선생님(베카에듀 전문학습코치), 김영복 선생님(의정부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전문가), 최미희 선생님(푸른아우성 책임상담원)께 감사드립니다.
 

 

 

 

 

 

 

사춘기를 무난하게 보내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께 반항하며 요란하게 지나는 친구들도 있어요. 2012년부터 아이티에서 선교하고 있는 이한솔 선교사님(28세)은 학창시절 꽤나 말썽쟁이 학생이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선교사로, 마인드강연 전문가로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그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들어볼게요.
 
 
 
Q: 학창시절, 어떤학생이었나요?
A: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어요. 한번은 학교에 안 가고 오락실에서 놀고 왔다가 아버지께 매를 굉장히 많이 맞았어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가출도 했어요. 학교에 가도 아침 조회시간부터 오후 종례시간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잘 때도 많았어요. 거의 매일 피씨방에 가서 놀다가 집에는 늦게 들어갔어요.
 
Q: 부모님과는어떻게지냈나요?
 
A: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이세요. 게다가 성격이 잘 다려진 와이셔츠 같으신 분이셨죠. 조그마한 구김도 허용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했어요. 한번은 제가 나이키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교회 형제 자매들도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 목사 아들이 유명메이커 신발을 신냐?”고 하시면서 사주지 않으셨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목사 아들이라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어. 싫어!’ 하는 생각을 했죠. 불만들을 얘기하지 않고 참았지만 부모님과의 관계는 점점 더 안 좋아졌어요. 누르면 누를수록 높이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요.
하루는 부모님께서 다투시는 것을 봤어요.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마구 소리를 지르며 물건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죠. 부모님이 방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하셨지만 이미 제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어요. 방에 있던 물건들을 다 부순 뒤에야 방에서 나와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 시절의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과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었죠.  
 
Q: 부모님과처음마음을나눈것은언제인가요?
A: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요, 하루는 친구들과 노느라고 저녁예배에 가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그걸 아시고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혼날 각오하라고 하셨어요. 전에도 아버지가 엄하게 매를 드신 적이 많았기 때문에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무조건 화를 내시는 것이 서운했어요. 그래서 전화를 끊고 바로 집을 나갔어요.
돈도 하나도 없이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매고 아파트 계단에서 쪼그려 자면서 지냈어요. 삼일째 되는 날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너희 아버지가 전화하셔서 모든 걸 용서할 테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시더라.”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제가 아는 아버지는 용서하기 전에 먼저 매를 드시는 분이었거든요. 저는 집으로 가지 않고 집 근처를 서성였어요. 그런데 벽에 수많은 종이들이 붙어 있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한솔아, 모든 걸 용서할 테니 돌아만 오너라.” “아버지가 잘못했다. 어서 집으로 오너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그제야 제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쭈뼛쭈뼛 집으로 들어갔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덥석 안더니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도 울고 동생도 울고 온 가족이 울었어요. 나의 잘못보다는 내가 집 나가서 못 먹고 고생했을 것을 걱정하시는 것을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처음 느꼈어요.
 
Q: 해외봉사활동이마음이바뀌는데에역할을했다고요?
A: 제 삶은 끝 없는 터널 같이 캄캄했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21살 때 부모님의 권유로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떠났어요. 카메룬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가난하지만 늘 웃는 사람들, 어렵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돕고 사는 사람들은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리고 많은 것을 갖추었지만 불행하게 사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했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좋은 환경이나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지요.  
 
 
 
Q: 지금아이티에서는어떻게지내고있나요?
A: 아이티는 2010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20여만 명이 죽거나 다쳤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고 학교와 직장을 잃었어요. 아이티 사람들의 눈에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우리는 절망 가득한 아이티를 위해 월드문화캠프, 영어캠프 등을 진행했어요.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마음을 나누고 영어와 댄스를 배우고 마인드 교육을 통해 건전하고 밝은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던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행복해하는 모습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는 어느 학생이 우리를 만나 희망을 품고 앞으로 영어를 배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을 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어요.
그리고 또 감사한 것은, 제가 아이티에 와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지만 마음은 함께 있는 것처럼 가까워졌다는 거예요. 가끔씩 어려울 때, 부모님께 연락해서 기도를 부탁하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부모님은 나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이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어요.
 
 
 
Q: 사춘기를맞는독자들에게말씀
A:저는 친구들에게만 마음을 열고 부모님께는 마음을 닫고 살았어요. 어른들은 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과 싸우기 일쑤였고 싸움을 피하기 위해 아예 말을 안 하고 지내기도 했어요. 그런 삶은 저를 고립되고 삐뚤어지게 해서 젊은 시절을 어둠 속에서 허비하게 했죠. 그런데 답답하고 지겹게 여겼던 부모님의 잔소리가 저를 바로잡아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죠. 여러분은 지금부터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보세요. 그러면 많은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고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