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영월교회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기쁜소식영월교회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 편집부 엮음
  • 승인 2013.12.1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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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성탄 이야기

 

“걱정하지 마세요.
또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이용찬 전도사 (기쁜소식영월교회)

 
‘영월은 안 돼!’
슬픔이 깃든 도시 영월. 인구가 4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영월은 단종의 묘인 장릉(莊陵)이 있는 곳이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단종의 억울한 죽음이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하는 영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거리가 신기할 만큼 조용하고, 사람들은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다. 강원도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와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이 나에게는 자주 한계로 느껴졌다. 영월에 온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영월은 안 돼!’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 마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지난 10월 6일부터 나흘간 교회에서 집회를 허락하셨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집집마다 전단지를 돌렸다. 성도가 많지 않기에 한 자매님은 이틀 휴가를 내서 집회 소식을 알리고 사람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갖는 잔치라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형제 자매들과 내 마음에 동일하게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영월 교회는 안 돼! 4년이 지나도록 구원받는 역사가 없었잖아. 집회도 여러 번 했지만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았잖아. 안 돼!’
합당한 생각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었기에 교회에서 굳이 감출 필요도 없었다. 형제 자매들은 마음에 있는 어두운 생각들을 표현하였고, 나는 이 부분을 두고 기도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저절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다. 창세기 1장에서 태초에 땅은 흑암 가운데 있었다. 소망 없는 그 땅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데, 땅이 하는 일은 없었다. 역사가 일어나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그려진,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시는가였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당신의 마음에 그려진 소망을 넣어주고 싶어하셨다. 박옥수 목사님이 해주신 교제도 생각났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역자들이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쓰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겁니다. 교회는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니 평안했다. 예배 시간에 그 마음을 이야기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소망을 넣으십니다. 마귀는 두려움을 주고요. 우리 교회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복음 들을 사람들을 하나님이 집회에 보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시지 않으면 안 받으면 됩니다. 이 집회는 우리가 기뻐하는 집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회입니다. 우리는 쉽시다. 하나님이 이 집회를 주셨다면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쁘고 재미있게 집회를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 주고 우리를 이끌어 가셨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교회가 새롭게 단장되고 필요한 것들도 채워졌다. 교회의 형제 자매들 모두 그 모습을 보며 무척 기뻐했다.

 
‘영월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가 보다!’
집회 시작일이 되어 강사 목사님이 도착하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변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요동쳤다. 사역을 시작하고 갖는 첫 집회인데 그래도 사람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근 도시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도 오셨는데, 그래도 그분들이 상담할 사람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회 첫날, 내 원함과 달리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중간에 한 아저씨가 들어오는데,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분은 설교 시간 내내 졸더니 상담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집회에 참석한 몇 분이 목회자들과 상담을 나누었지만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첫 집회인데… 하나님이 너무하셨다! 정말 쉬지 않고 전도를 다녔는데…. 영월은 역시 안 되는구나. 아니, 영월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가 보다!’
마귀는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내 속에 생각을 넣었다.
그날 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강사 목사님에게 꺼내놓고 밤늦도록 교제를 나누었다. 나는 복음을 전하면서 한 사람의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사역을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교회에 누를 끼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나를 지키고 나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내 판단이 무엇을 보는 기준이 되어 있는 내가 정확히 보였다. 그리고 내 판단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곳으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만을 선으로 여기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이런 상처, 저런 상처를 가지신 분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다음날 아침, 전날 술을 마시고 왔던 아저씨가 일찍부터 교회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고등학교 음악 교사였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아내가 막내를 출산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 후 여러 일들을 하면서 큰 빚을 지고 다 망했습니다. 지금은 용역 일을 하는데, 평생 음악만 배우고 가르친 저에게 이 일은 너무 힘듭니다. 무엇도 되는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고 찾았습니다. 진리를 찾아서 이 교회 저 교회 열심히 다녔지만 실망뿐이었습니다. 목사들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교인들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그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보였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상처받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우리 집회에 보내길 원하셨다. 그 아저씨를 시작으로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생명의 말씀 앞으로 이끌어 오셨다. 진리를 찾아 헤매다 전단지를 보고 찾아오신 노신사, 우연히 집회에 참석해서 복음을 듣고 기뻐하신 아주머니…. 이런 상처, 저런 상처를 가지신 분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나중에는 교제할 사역자가 부족해서 형제 자매들이 복음을 전했다. 교회가 꼭 병원 같았다. 의사가 환부의 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꿰매듯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있는 죄와 생각을 걷어내고 치료하는 참된 병원이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고통당하던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평안해했다.

그날 밤, 나는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나는 성도 수가 늘어야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역자에 대한 평가는 결국 성도 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았다. 이 생각은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었고, 전도하면서도 자주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의 마음은 달랐다. 교회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상처난 사람들의 마음을 말씀으로 어루만져 주는, 마음의 병원이었다.
‘하나님이 그래서 교회를 기뻐하시는구나! 복음이 이토록 소중하구나!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도우실 수밖에 없구나!’
그날 밤, 나는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첫째는 내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내가 참된 교회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었으며, 마지막은 이렇게 형편없고 부족한 나를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고 가르치고 이끄시기 때문이었다.

“전도사님, 이제 우리 무슨 재미로 살아요?”
술을 마시고 집회에 참석했던 위재성 씨는 구원을 받고 ‘20년 동안 지니고 있던 응어리가 풀렸다’며 기뻐하셨다. 남은 집회 시간에는 여러 가지 악기로 찬양을 드려 교회에 기쁨이 되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며 형제 자매들이 큰 힘을 얻었다. 가난하고 작은 교회라고 생각했던 우리 교회가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복음을 가지고 있는 힘있는 교회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내가 구원받았던 때를 생각해 본다. 많은 상처와 고통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그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셨다. ‘복음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마음이 든다. 이 복음을 마음에 품고 있는 성도,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 이 교회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집회는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게 해주었다. 집회 마지막 날, 한 자매님이 말씀하셨다.
“전도사님, 이번 집회 너무 행복했어요! 벌써 집회 마지막 날이네요. 이제 우리 무슨 재미로 살아요?”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로 후속 집회 하고요. 여성회관 빌려서 가질 다음 집회 준비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또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우리 마음을 이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청정 숲길에서 깊은숨을 쉬듯
평안을 찾았다
위재성

 
아버지의 도박과 그런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원망과 분노로 전쟁터 같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항상 불안과 공포, 초조한 상태로 살았다. 스물 셋에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지만, 아내는 막내를 낳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 여덟. 내게 남은 것은 많은 빚과 어린 자식들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웠다.
신앙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겨져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다. 아이들이 큰 문제 없이 자라 주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쉽지 않았다. 교회에서 내가 생각했던 하나님은 발견할 수 없었다. 설교는 성경 말씀이 아닌, 듣기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작은 교회로 가면 신앙이 자랄까 하여 개척교회로 옮겼다가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우리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예배당을 건축하고 빚을 갚지 않아 우리 집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소송 끝에 집을 되찾았지만 신앙생활에 환멸이 찾아왔다.
내가 원하는 참된 교회는 없었다. 믿음을 갖고 싶어도 이 세상의 교회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마음을 가졌다. 직분을 사고 파는 교회, 양무리를 돈으로 보는 교회, 그곳에 진정한 구원이 있을 리 없었다. 하나님과 교회를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기쁜소식영월교회 자매님들을 우연히 만났다. 몇 번인가 문전박대하고 무시했던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나를 집회에 초청한다고 하기에 그 말에 이끌려 교회를 찾았다.
교회에 앉아 초대 교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헌금을 강요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억지로 이끄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힘이 생겼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싶었다.
그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음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해서 비로소 죄 사함을 받았다. 거기에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설교, 인간 중심으로 변형된 교회에서 내가 꿈꾸던 것이었다. 집회 후에도 계속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있는데, 마음이 참 평안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음악가였고, 나도 음악만을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않게 해주셨다.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주일학생들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가르치게 해주신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5년이나 10년 후 교회의 일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지난 한 달, 나는 진정 평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를 잘 만나야 살아날 수 있듯, 나는 말씀이 살아 있는 참된 교회를 만나 영생을 얻었다. 마치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 때문에 숨쉬기가 어렵다가 푸른 청정 숲길에서 깊은숨을 쉬듯 내 신앙도 평안을 찾았다. 내가 생각해온, 징벌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 아닌 나를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진정한 구원이 있는 이 교회가 감사하다.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문창순

 
구원받은 지 오래되었지만 믿음 없이 살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는 자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후회도 자책도 해보지만 똑같은 삶을 사는 나를 보면서 나로서는 변화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의 나는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형편없는 사람인 것을 하나님은 가르쳐 주셨다.
집회를 앞두고 전도사님이 예배 때 ‘이번 집회는 우리가 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자’고 하셨다. 집회가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까지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되었다.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집회를 기뻐하시는구나!’ 나와 상관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기뻤다. 형제 자매들도 행복해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을 주시고 사랑과 행복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생명을 얻는 즐거움과 행복
최정의

 
집회를 한다고 했을 때 떠오른 생각은 ‘하나마나일 텐데…’였다. 집회에 초청할 사람을 써내라고 했을 때 그냥 출근길에 보았던 이름 모르는 여학생을 써냈다. 그런 내 모습이 나를 어렵게 했다.
예배 시간에 에베소서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라는 말씀이었다.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전단지를 돌리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첫날 아파트 단지에 전도하러 갔다가 쫓겨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참된 내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어렵지 않았다.
장릉(莊陵) 쪽으로 가고 싶어서 그쪽으로 가다가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의자를 내주며 “나는 거듭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기쁘던지! 하나님이 그분을 예비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엄상섭 씨는 집회에 참석해서 구원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부담스러워하는 나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람들 앞에 서게 하셨다. 회사의 부장님, 천주교에 열심이던 아주머니, 출퇴근을 담당하시는 기사님…. 이분들을 집회에 초청할 때마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이 선한 일을 하게 하셨어!’라는 마음이 부담을 이겨 주었다.
초청한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했고, 구원받은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넉넉하고 편한 데에서 쉼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했지만 진정한 평안과 즐거움은 생명을 얻는 길에 있었다. 미련한 생각에 붙잡혀 있던 나를 이 기쁘고 감사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집회가 정말 감사하고, 다음 집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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