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종이 되어!
이젠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종이 되어!
  • 최준혁, 이한솔 선교사
  • 승인 2013.12.1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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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충만한 선교사들의 생생한 간증 시리즈 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두려워했다
내가 선교하고 있는, ‘마드라스’라고도 불리는 인도의 남쪽 ‘첸나이’는 정말 덥다. 어느 정도로 덥냐면, 여름에 모기가 없다. 모기 알이 다 타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어려운 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거나 주위가 더럽거나 거지들이 많고 냄새가 나거나 하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통해서 첸나이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원하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박옥수 목사님이 “율법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율법처럼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한계들을 만나는데,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도구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내 삶에는, 내가 하는 사역에는 한계가 참 많았다.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형편들로 인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두려워했다.

“예수님 앞에서 자네를 높일 수 있는가?”
2년 전 인도 월드캠프 기간에 박옥수 목사님이 아주 바쁘신 중에도 짧게나마 목사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목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목사님, 목사님은 자신을 세우려고 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인도의 여러 선교사들보다 내가 더 든든히 서고 싶고 나를 더 나타내고 싶습니다.”
내 말이 마치기 무섭게 목사님이 물으셨다.
“만일 내가 자네 교회에 가면 누가 말씀을 전하지?”
“그야 당연히 목사님이 전하시죠.”
“그렇다면 자네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자네가 예수님 앞에서 자네를 높일 수 있는가?”
목사님의 이야기에 내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목사님이 예수님을 아시는 것과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달랐다. 목사님이 왜 자신을 세우지 않고 인위적으로 교회를 이끌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목사님과 마음과 마음이 만나니, 내 속에 있던 거짓된 마음들이 사라지고 목사님 안에 있는 밝은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바꾸었다.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아내는 나에게 자주 사역을 그만두자고 했다. 귀가 좋지 않아서 고음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꽤 비싼 보청기를 했어도 잘 듣지 못했다. 특히 잡음이 많은 곳에서는 형제 자매들이 “사모님!” 하고 불러도 들리지 않으니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일들이 아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내가 밖에서 전도하거나 말씀을 전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내가 슬프니까 내게 있던 기쁨도 사라져버렸다.
아내 마음에 있는 슬픔을 벗겨주고 싶었다.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기도 하고, 아내를 달래 보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내게는 아내에게 있는 어두움과 절망을 이겨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38년 된 병자의 마음에 맺힌 한이 많았던 것처럼 우리 부부의 마음에도 맺힌 한들이 커져 갔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박옥수 목사님을 찾아갔다. 아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목사님, 저는 귀도 잘 안 들리고…. 사역하는 게 안 되겠습니다.”
나는 목사님께서 좋은 보청기를 권하든지, 그래도 사역을 하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사역을 그만두라고 하시든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그의 병세가 어떠한지 묻지 않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 것처럼, 그리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나는 굉장히 놀랐다.
‘문제가 아니라고요…?’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자네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 내가 자네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을 믿어줄 수는 없다.”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이 마음에서 믿어졌다.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라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마음에서 아내에 대한 모든 짐이 벗겨졌다. ‘아, 이거 아무 문제가 아니구나!’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씀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고통과 어두움에서 벗어났다. 아내는 곧 보청기를 빼버렸다.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월드캠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올해 인도에서는 여덟 곳에서 월드캠프를 가졌다. 작년에 델리에서 가진 월드캠프를 마치고 내 속에서 ‘박 목사님께 인도에서는 힘들어서 월드캠프를 매년 할 수 없고 2년에 한 번씩 하면 좋겠다고 건의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선교사들도 내 생각에 공감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은 “앞으로 인도에서 월드캠프를 열 곳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깜짝 놀랐다. 첸나이 교회 형제 자매들은 월드캠프를 후원하기 위해 물질적으로 이미 많은 짐을 졌고, 다른 지역 교회의 형제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곳에서 가진 월드캠프도 힘겹게 후원했는데, 어떻게 열 곳에서 하지? 더욱이 열 곳 가운데에는 첸나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월드캠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이번에는 우리가 헌금을 드리지 말고 후원을 받아서, 그리고 캠프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내는 회비로 캠프를 하고 싶습니다.” 하고 광고했다. 나는 어떤 착각을 하고 있었느냐면, 나를 믿었기에 내가 형제 자매들을 위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겼다. 형제 자매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어느 형제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도사님, 그동안 우리는 박옥수 목사님이 첸나이에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월드캠프를 개최해서 목사님이 첸나이에 오실 것을 생각하니 감격스럽습니다! 우리가 이 캠프를 위해 헌금을 작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는 바로 1렉(약 400만 원)을 작정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보였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쉴 줄을 몰랐다. 복음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갔다. 박 목사님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시는 것을 본다. 그런데 나는 부담을 하나 넘으면 쉬고 싶었다. 인도에서 힘겹게 월드캠프를 했으니 좀 쉬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교회와 갈라설 수밖에 없고, 결국엔 교회를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서 복음의 멍에를 벗겨 편하게 해주려고 했지만 내가 잘못된 것을 알고 마음을 돌이켰다. 나도 쉬려는 마음을 버리고 달음질을 시작했다. 형제 자매들은 캠프를 위해 마음을 다해서 헌금했다. 그렇게 보내는 가운데 신기하게도 세 형제의 월급이 올랐다. 인도에서는 월급이 아무리 올라도 2~3만 원인데, 셋 다 20만 원이 올렸다. 형제 자매들이 복음을 위해서 많은 물질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하게 하시지 않았고, 어려움을 겪게 하시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다.

힘든 일 같았는데,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지난 여름 한국에 가기 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사흘 동안 무전전도여행을 떠났다.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아내가 굉장히 기뻐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시 무전전도여행을 가자고 했다. 무전전도여행은 분명히 힘든 일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한국에 가면서 교회에 남아 있는 단기선교사들에게 <회개와 믿음>을 읽고 레포트를 쓰고, 성경도 얼마만큼 읽으라고 숙제를 많이 주었다. 무척 어려워하고 힘겨워할 줄 알았는데, 단기선교사들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이런 시간을 또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올해 단기선교사들은 그 전의 단기선교사들보다 조금 어렵게 지내게 했는데 오히려 더 좋아했다. 한 형제는 첸나이로 유학을 오고 싶다고 한다. 첸나이가 그렇게 더운데….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 것이다.

‘모든 고난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끝났구나!’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마 27:34)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람들이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드렸다. 당시에는 마취제가 없었기 때문에 쓸개 탄 포도주가 마취제로 쓰였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극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맛보시고는 드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모든 고통을 당하고자 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다 끝내길 원하셨다. 복음 안에서 살면서 당하는 우리의 모든 고난은 십자가에서 다 끝이 난 것이다.
‘그렇구나.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면서 만나는 모든 고난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끝났구나!’
돌아보면 내가 인생에서 만났던 한계들, 고난들은 다 복된 일이었다. 한 번도 저주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형편만 보고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니었다. 나를 예수님 안으로 인도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징검다리였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종으로 세우신 것이 믿어진다
내가 있는 첸나이가 속한 타밀라드 주(州)에는 6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으셔서 나를 그곳에 보내셨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몸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그동안 마음으로 짓는 죄가 컸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 행위로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악한 일이었다.
나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이 악한지 모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뜻에 귀가 기울여지지 않았다. 그냥 내 생각을 따라서 살았다.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자 하는 분명한 믿음의 길이 있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사역자 모임을 계속해서 갖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해 목사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나에게도 성경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길이, 하나님의 뜻이 보였다. 그것이 보이니까 교제가 사모되고, 다른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로웠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첸나이에 당신의 종으로 세우신 것이 믿어진다. 정말 감사하다. 그동안 이 믿음이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소중한 교제 속에서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세워 주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감사하다.

 
 

 
 ‘저는 아니지요’
10여 년 전 내가 학생이었을 때, 박옥수 목사님은 “여러분, 내일 이맘때에, 1년 후 이맘때에, 10년 후 이맘때에 여러분은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꾸실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저는 아니지요’ 하며 웃었다. 그 후 하나님이 내게 많은 일을 하셔서 마하나임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하루는 박 목사님이 “우리 목회자 아들들 가운데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들을 바꾸셔서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외치게 하실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 믿지 않았다.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바꾸실까요?’ 나에게는 하나님이 내게 일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없었다.
누구보다 오래 있었던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아이티에 선교사로 가서도 믿음을 갖지 못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나는 신령하지 않아.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 일하셔도 나는 아니야.’
아이티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내가 유산하는 일이 일어나 나는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더 깊게 자리했다.

장갑 없이 맨손으로 시멘트를 비비면서도…
신기한 것은, 그런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계속해서 일하셨다. 2012년에 가진 영어 캠프 때 5천 명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캠프 시작 전에 나는 두려웠다. 아이티에는 이종훈 선교사님과 내가 함께 있는데, 이 선교사님이 일을 나눠서 하자며 나에게 36명의 자원봉사자를 담당하라고 하셨다. 자원봉사자들은 말도 안 듣고, 게으르고, 마음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들과 워크숍을 열 차례 가져야 했고, 워크숍 때마다 내가 말씀을 전해야 했다. 아이티에 간 지 2개월 정도 된 때여서 불어로 말씀을 전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매번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학생들이 점점 졸고, 안 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하나님이 역시 나에게는 일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미국에서 캠프 선발대로 오신 목사님들이 나에게 “자네가 보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아냐. 사람들이 마음을 여느냐, 안 여느냐도 아니고. 이 일이 누구로 말미암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냐 아니냐를 보아야 해. 아이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셔. 그렇다면 사람이 적게 오면 어떻고, 마음을 좀 닫으면 어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거기에 마음을 합해서 일하면 돼.”
나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달랐다. 미국에서 캠프 선발대가 오면서 워크숍의 내용이 바뀌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질의응답 시간도 가지면서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마음을 열었다. 캠프를 시작하는 날, 자원봉사자 가운데 늦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마음을 다해 캠프를 도왔다. 캠프에 참석한 5천 명의 학생들은 기쁨으로 일하는 36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이티에서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며 신기해했다.
영어 캠프가 끝나고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간증을 했다.
“저는 이 땅이 지옥 같았습니다. ‘왜 우리는 지진을 만나야 했고, 왜 나는 부모님을 잃어야 했으며, 왜 학교에 다닐 수 없어야 했나?’ 살기가 싫었습니다. 밥을 먹는 날보다 먹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 마음이 더 이상 지옥 같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소망이 내 마음에 심겨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힘들지 않습니다.”
아이티 사람들은 대부분 2010년에 일어난 지진 때 가족을 잃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들이 영어 캠프를 통해 구원받으면서 마음의 깊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았다. 밝게 변한 그들을 보면서 내 마음도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 후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영어 캠프 자원봉사자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방학 동안 아예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공사를 도왔다. 이곳은 모든 것이 너무 열악해서, 건축 장비는 물론 때론 장갑도 없어서 맨손으로 삽을 들고 시멘트를 비비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학생들의 손이 다 상했는데, 그런데도 그들은 기뻐했다. 이전의 삶이 너무나 비참했고 우리를 만나 소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수감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영어 캠프가 끝나고 한 형제가 어느 백인의 아이패드를 훔쳐 교회에 가지고 와서 자랑했다. 아이패드를 도둑맞은 백인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그 아이패드에는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었고, 추적 장치에 우리 교회의 주소가 떴다. 곧 검사와 경찰들이 주인과 함께 우리 교회를 찾아와 다짜고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모르는 우리는 검사에게 따졌고, 어느 형제가 아이패드를 훔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 아이패드를 꼭 찾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훔친 사람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잘못 가르쳤으니 내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알겠다면서, 아이패드만 찾으면 된다며 흔쾌히 용서하겠다고 했다. 아이패드를 훔친 형제는 이미 어딘가에 숨은 후였다. 아이티에서는 도둑질하다 잡히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때려서 죽이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를 보내어 아이패드를 가져오게 해서 돌려주었다. 그렇게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검사가 “형사 사건으로 접수되었으니 경찰서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검사가 고소장에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가 아이패드를 훔쳤다”고 기록하고는 가버렸다.
나와 함께 간 두 형제가 그 자리에서 구속되었다. 경찰은 최소한 일주일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지 않으니까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간 형제들은 굉장히 어려워했다. 구속된 상태로 하루만 지나도 호적에 전과 사실이 기록되고, 그러면 앞으로 직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마음에 잡혀 있다가 문득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라고 박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 생각해 보니,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형제들에게 “우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하고 사람들을 모아 달라고 했다.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 스무 명 가량이 방에서 나왔다.
내가 “여러분 가운데 죄 있는 사람 있습니까?” 하고 묻자 다 손을 들었다. 다시 “저는 이곳에 있는데 죄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에서 포커를 하거나 딴짓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다 밖으로 나왔다. 두 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 가운데 죄 있는 사람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찬송을 불렀다.
두려워하던 형제들과 내 마음이 살아났다. 굉장히 기뻤다. 형제들이 나에게 “전도사님,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와 함께하시면 여기서도 복음 전하며 살겠습니다!” 하였다. 그날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분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선교사님, 여기서 주무십시오.” 하고 거기에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깔아 주고 베개를 놓아 주셨다.
내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아이티 시장님이 듣고 화가 나셨다. 시장님은 한국 월드캠프에 참석해서 구원받은 후 IYF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 시장님은 바로 구치소 소장에게 전화해서 나를 내보내라고 했지만, 소장은 ‘검사가 한 일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시장님은 직위가 높은 검사와 함께 보좌관들을 데리고 여러 대의 차를 몰고 구치소로 오셨다. 시장님은 내가 구치소에서 어려워하고 있을까봐 걱정이었는데, 편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동행한 이종훈 선교사님에게 “내가 너무 빨리 온 것 같네요. 이렇게 편하게 자고 있는 줄 알았으면 일주일쯤 있다가 와도 될 것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시장님의 도움으로 바로 풀려났는데, 우리 마음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듯 나도 일으키셨다
이처럼 많은 역사들을 경험하고도 내 마음 한쪽에서는 ‘너는 악하게 살았잖아. 너는 믿음이 없잖아’ 하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변화된 아이티의 학생들을 보면 말할 수 없이 감사한데도 나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아이티엔 전기가 하루에 많이 들어오면 7시간이고, 보통 2~3일에 한 번씩 들어온다. 전기가 들어와도 인터넷은 잘 안 된다. 그러니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어서 성경을 본다. 나는 성경을 보면서도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는 거야. 형편이 좋아지면 나는 다시 옛날처럼 안 좋은 삶으로 돌아갈 거야’ 하는 생각을 가졌다. 교회는 나에게 “하나님이 너를 아이티에 보내셨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셔.” 하는 마음을 주고 싶은데, 나는 그 음성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고 내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만을 잡고 살았다.
지난 여름, 한국에 나와서 박옥수 목사님과 선교사들의 교제 시간에 말씀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박 목사님이 38년 된 병자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병자에게 하신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말씀을 하시는데 “한솔아, 네가 믿음을 갖고 싶으냐?”는 음성으로 들렸다. “예, 목사님. 저, 믿음을 갖고 싶어요. 그런데 내 안에는 말씀이 없어요. 전 영적이지 않아요. 저는 지난날 너무 나쁘게 살았어요.” 예수님은 그런 나에게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하셨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보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있구나!’ 나는 말씀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 10년 전에 박 목사님이 내가 변할 것이라고 하셨을 때도, 선교학교에서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외칠 것이라고 하셨을 때도,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이티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내가 정말 어리석게 살았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항상 함께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말씀이 없고 믿음이 없다고 했구나!’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듯 나도 일으키셨다. 나에게도 이 시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아이티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나는 못났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신다. 당신의 말씀으로 나를 붙드시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복음 전도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말씀이 이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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