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로등
낡은 가로등
  • 원작|안데르센 그림|배은미
  • 승인 2014.01.22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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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변두리 마을에 낡은 가로등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하늘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마당 한가운데 살고 있는 가로등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너무나 심심해. 전에는 사람들이 늘 북적대는 곳에서 살았는데. 난 예쁜 아주머니와 멋진 차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는 도시가 더 좋아.”
사실 낡은 가로등이 처음부터 이 변두리 마을에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가로등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자동차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시내 한복판이었습니다. 그때 가로등은 밝은 빛을 내뿜으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 저 가로등 좀 봐!”

“우와! 정말 예쁘다!”
“우리 가로등에 불이 켜지는 것도 구경하고 갈까?”
사람들은 가로등이 켜지기 훨씬 전 시간에 와서 시간을 보내가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밝은 빛 아래서 즐거운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갔습니다.
가로등이 내려다보는 세상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가로등 밑에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 맞은편 이층 집 방안에서는 한 소녀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가로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나 기쁨, 혹은 슬픈 사연들, 그리고 마음이 몹시 아픈 이야기도 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가로등은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사는구나! 그 중에 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행복한 일이야!’
그런데 가로등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가로등은 자기의 밝은 빛을 믿고 몸체를 닦는 것을 필요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가로등 옆에 사는 분수 아저씨가 늘 세수를 하라고 했지만 가로등은 짜증을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날도 분수 아저씨는 가로등을 불러 말했습니다.
“얘야, 지금 네 얼굴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아니? 세수 좀 해라.”
“싫어요. 저는 안 닦아도 괜찮아요.”
“너 그러다가 다시는 밝은 빛을 밝힐 수 없게 된다.”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씻는 일처럼 귀찮은 일은 또 없을 걸요.”
가로등은 분수 아저씨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거리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가로등을 설치하는 아저씨와 함께 가로등을 찾아왔습니다. 가로등은 오랜만에 보는 가로등 아저씨께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어머, 아저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가로등의 인사에 반갑게 대답해 주실 줄 알았던 아저씨는 예상과 다르게 시무룩한 얼굴로 가로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벌써 네가 여길 떠날 때가 되다니! 그동안 관리를 잘했다면 이렇게 빨리 쫓겨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가로등 아저씨의 중얼거림이 또렷이 들렸지만 가로등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아저씨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들고 온 가방을 열어 무시무시하게 생긴 연장들을 꺼냈습니다.
“아저씨, 설마!!”
 
그 순간 가로등의 머릿속에는 무서운 생각들이 휙휙 지나갔습니다. 며칠 전에도 친구 가로등이 어디론가 떨어져 나갔고 그 전에도 다른 가로등 친구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실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저씨! 저는 아직 이곳을 떠날 때가 안 됐어요. 왜 하필 저죠?”
저만치서 보고 있던 분수 아저씨는 안타까운 마음을 참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습니다.
“잘 가라. 어디를 가든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꾸나.”
그렇게 자신의 앞날을 걱정해 주는 분수 아저씨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도시를 떠나온 지 3년. 낡은 가로등은 하늘과 가까운 마을로 옮겨와 옛날을 추억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가로등을 켤 시간이면 밝은 빛을 비출 수 있게 손도 닦고 말입니다.
그런 가로등의 모습을 지켜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습니다. 가로등은 처음엔 그분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가로등이 스스로 씻기 어려운 아주 높은 곳의 먼지를 털어 주고 가시곤 했습니다. 차츰 가로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마음을 열었고, 그런 가로등의 마음을 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로등을 더욱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관리인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가로등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말렸습니다.
“낡은 가로등을 뭐 하러 가져가시려고요?”
“가져가시면 분명히 짐만 될 거예요.”
그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로등을 집으로 옮기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두 분의 얼굴에는 새 식구를 맞는 설렘이 역력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은 가로등이 처음 있었던 도시 거리보다 훨씬 좁고, 그동안 살고 있던 마을 마당보다 어두웠지만 무척 아늑했습니다. 낡은 가로등 불빛이 마치 축제라도 열릴 듯 할아버지 집 마당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비록 겉모습은 낡은 가로등이었지만 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강렬하게 할아버지의 마당을 밝혀주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비추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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