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Jericho
여리고 Jericho
  • 관리자
  • 승인 2014.02.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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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14

 

‘향기’의 도시 여리고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예수님의 향취가 물씬 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의 여리고는 그렇지 않다. 요단강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치구로, 유대인들은 여리고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려면 정부에서 관광 목적 등으로 발급해 주는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여리고에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이 2만 명 가량 살고 있다.
고도가 해발 마이너스 250m인 여리고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옛 여리고가 사람들이 유혹을 받을 만큼 살기 좋은 곳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주위는 다 메마른 광야지만 여리고는 발전된 성읍 도시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 고도가 높아서 겨울에는 추운 예루살렘에서 따뜻한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리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그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여호수아 6장에서 그 성이 무너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구약 시대의 여리고 이야기는,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기생 라합이 자기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맨 이야기일 것이다. 사사 시대에는 모압 왕 에글론이 이곳을 정복했다. 다윗 시대에 암몬 왕 나하스가 죽어 다윗이 조문하라고 신복들을 보냈을 때 나하스의 아들 하눈이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옷을 중동볼기까지 잘라 욕을 보였는데, 그때 다윗이 그들의 수염이 자라기까지 머물게 한 곳도 여리고였다(삼하 10:5). 히스기야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곳도 여리고였다(왕하 25:5, 렘 39:5).
베냐민 지파의 땅에 속한 여리고는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 그곳에 다니시고 많은 역사를 이루시면서 우리와 더욱 친근해진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 삭개오 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과 믿음을 전해준다. 신약 시대 여리고의 중심은 현재 발굴된 구약 시대의 여리고 유적지보다 6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이것은 신약 시대의 여리고가 구약 시대의 여리고보다 넓었음을 짐작케 한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보니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언제 보아도 삭막하다. 풀 한 포기 없는 광야 산, 그리고 군데군데 자리잡은 유목민족 베두인의 집들. 어릴 적에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 이야기에서, 그 사람이 숲에 숨어 있던 강도에게 변고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길을 다니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를 보면서 웃음이 났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예수님이 이용하셨던 길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여리고로 가는 길 중간에 유대인들이 사는 ‘여리고 미쯔페(여리고의 전망대)’라고 하는 작은 동네에 들어가 전망대에서 여리고의 전체 모습을 멀리서 사진에 담았다. 잠시 후, 차를 타고 여리고 시내로 들어서니 마치 ‘이곳은 팔레스타인 자치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듯 온통 아랍어로 된 간판이 가득하고 아랍 복장의 사람들이 거리에 북적거렸다.
 

시험산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시험산’이 여리고 근처에 있어서 가보았다. 광야에 있는 세 개의 큰 봉우리 가운데 중간 봉우리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산이라고 오랫동안 전해져 오고 있다.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금식할 때 물도 마시지 않는다.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이라는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보통 유대의 종교인들은 대속죄일, 유월절 예비일, 부림절 전날, 성전 파괴일 등을 기념하기 위해 일년에 일곱 번 정도 공식적으로 금식했다. 헤롯 시대에는 금식할 때 초췌한 모습으로 숄을 뒤집어쓰고 회당과 길거리를 오가며 자신이 금식중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관례였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더라도 종교인들과 반대로 하셨다. 기도할 때에도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셨다.
시험산에서 마귀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다.
 

 

 

삭개오의 나무
무너진 여리고의 옛 성터 자리라고 추정하는 유적지를 둘러본 후, ‘삭개오의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유명한 나무를 찾아갔다. 나무는 그리스정교회가 세워져 있는 곳의 정원에 심겨져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목임에는 틀림없지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빌면 예수님 시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삭개오가 여리고에 살았고, 그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뵌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나무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가 한글 성경에는 뽕나무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쉬크마’ 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나무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자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아보는 동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한글 성경에 왜 뽕나무로 번역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히브리 말로 딸기와 그와 비슷한 종류의 열매, 즉 오디(뽕)와 같은 열매들을 통상적으로 ‘투트’라고 불렀다. 옛 유대인들은 오디처럼 나무에서 열리는 것은 ‘나무 투트’라고 부르고, 땅에서 열리는 것은 ‘땅 투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 쉬크마는 옛 이스라엘에서 자라던 뽕나무처럼 투트의 한 종류로 분류되어 그렇게 불렸다. 일부 아랍 사람들은 아직도 뽕나무와 쉬크마 나무를 모두 ‘쉬크마’라고 부르고 있다. 쉬크마와 뽕나무를 같은 단어로 칭했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서는 뽕나무로 번역된 것이다.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
아무튼 나는 가짜 ‘삭개오 나무’ 아래서 삭개오를 생각해 보았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 당시에 세리장을 하려면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사람들의 목을 죄는 일을 많이 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죄인’ 하면 첫째는 창녀고, 둘째가 세리이며, 그 다음이 살인자일 정도로 세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런 삭개오에게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었을까? 어쩌면 삭개오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과 함께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했을지 모르겠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날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과 만났다. 삭개오가 깜짝 놀란 것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삭개오는 마음이 움직였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 계셨다.
‘저 친구, 마음이 곤고하구나. 내가 가서 친구가 되어야겠다.’
삭개오 이야기와 대조적인 이야기가 마태복음 7장에 나온다. 거기 보면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 주의 이름으로 …”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행한 많은 일을 예수님 앞에 들고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다. 그냥 모른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데….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이름까지 알고 계셨다. 여러분은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는가?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서 의인으로 만드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여러분을 의롭게 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는가?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다. 그는 밤늦도록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을 것이다. 삭개오를 찾아가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영혼을 복되게 하시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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