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악사와 공주
거지 악사와 공주
  • 그림/배은미
  • 승인 2014.02.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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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나라에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습니다. 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신랑감을 찾기로 했습니다.
나라 안의 멋진 청년들이 공주에게 청혼을 했지만 공주는 번번이 퇴짜를 놓았습니다.

“흥,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니까.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나처럼 예쁜 여자와 결혼하려고 들다니.”
시간이 갈수록 공주의 콧대는 높아만 갔습니다. 왕은 점점 걱정이 커졌습니다.
‘우리 공주가 예쁘긴 하지만 너무 거만해서 큰일이야. 저러다 제때 결혼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거 아냐?’
고민 끝에 왕은 방을 붙여 공주의 신랑감이 되고자 하는 청년들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나라 안팎의 청년들이 연회장에 모였습니다. 내로라하는 집안의 청년들은 물론이고 이웃나라의 왕자들까지 왔습니다. 공주는 턱을 치켜 든 채 청년들을 빙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겉모습을 비웃었습니다.
“당신 몸은 곰처럼 뚱뚱하군요!”
“당신은 비쩍 말라서 볼품이 하나도 없어요!”
공주의 말에 청년들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공주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회장을 돌아다니던 공주는 턱이 약간 휜 청년을 보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호호호호! 당신은 턱이 꼭 지빠귀 부리처럼 생겼군요! 당신 같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얼굴은 처음 봐요. 지빠귀 부리 씨.”
그 청년은 이웃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결국 공주의 신랑감을 찾지 못하고 연회가 끝났습니다. 공주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면 뭐해요? 나에게 걸맞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걸요.”
“공주야, 네가 거만하게 구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제 나는 너를 거지와 결혼시키겠다. 너의 교만에 대한 벌이니 무조건 따르거라!”
“거지와 결혼을 하라니요! 말도 안 돼요, 아버지!”
공주가 깜짝 놀라 대들었지만 왕은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누더기를 걸친 거지 악사가 궁궐 앞에 찾아와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했습니다. 왕은 시종에게 그 악사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자네는 떠돌이 악사인가?”
“예. 집이 있지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노래하고 구걸하며 삽니다.”
“음, 자네 노랫소리가 내 마음에 드네. 내 딸과 결혼해 주게나.”
“아버지, 잘못했어요. 다른 청년하고 결혼할 테니 용서해 주세요.”
공주는 아버지께 매달렸지만 왕은 공주와 거지 악사의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제 너는 거지의 아내가 되었다. 당장 네 남편을 따라 떠나거라!”
왕의 냉정한 말에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거지 악사와 함께 궁궐을 떠났습니다.
 

공주는 악사를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드넓은 초원에 이르러 공주가 물었습니다.
“이 넓은 초원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이 초원의 주인은 지빠귀 부리 왕이지. 당신이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이 초원이 당신 것이 되었을 텐데.”
거지 악사의 대답에 공주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해질녘이 되어 두 사람은 큰 도시에 들어섰습니다. 공주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화려한 도시를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이 도시의 주인도 지빠귀 부리 왕이지요. 당신이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이 도시도 당신 것이 되었을 텐데.”
그 말에 공주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 처량한 내 신세야. 그때 내가 왜 그렇게 도도하게 굴었던가!”
거지 악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앞장서 걸어갔습니다. 공주는 힘없이 그를 뒤따라갔습니다.
공주가 거지 악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초라한 오두막집이었습니다. 공주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 좁고 허름한 집이 내가 살 곳인가요? 하인들과 하녀들은 어디에 있죠?”
“하인과 하녀는 없소.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당신이 직접 해야 하오.”
그날 밤, 공주는 지칠 대로 지쳐서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거지 악사는 다음 날 새벽부터 공주를 깨워 쉴 새 없이 집안일을 시켰습니다. 공주는 너무나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갈 데가 없어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뒤, 거지 악사가 공주를 불렀습니다.

“둘이 먹으니 양식이 금세 떨어지는군. 오늘부터는 광주리를 짜서 내다 파시오.”
거지 악사는 버드나무 가지를 잔뜩 꺾어다 주며 공주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공주는 버드나무 가지에 손가락이 찔려 피를 뚝뚝 흘리며 광주리를 짰습니다.
“어서 시장에 내다 파시오.”
거지 악사의 말에 공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시장에 나갔다가 자기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공주는 시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광주리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술에 잔뜩 취한 군인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광주리를 모두 밟아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어째! 광주리를 팔지 못하면 양식을 살 수 없는데…….”
 
공주는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지 악사는 그녀를 달래 주었습니다.
“광주리를 길가에 너무 넓게 펼쳐 놓으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요.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만 울어요. 내일부터는 광주리 파는 일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시오. 궁궐에 허드렛일을 거들 사람이 필요하다니 가보시오.”

 이렇게 해서 공주는 궁궐로 들어가 요리사의 심부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이 모두 끝나면 그녀는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서 거지 남편과 함께 먹었습니다. 배고픔은 덜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너무나 피곤하고 비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에서 왕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넓은 연회장 안은 멋진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공주는 부끄러워 문 뒤에 숨어서 연회장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렇게 멋진 남자들이 많은데 난 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아,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이렇게 서글픈 생각이 들자 공주의 눈가는 어느 새 촉촉하게 젖어들었습니다.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이 공주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을 보고 음식을 조금씩 덜어주었습니다.
‘이 음식을 가져가면 남편이 좋아하겠다.’
공주는 하인들이 준 음식을 종이로 싸서 품 안에 넣었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되어 왕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목에 금목걸이를 건 왕은 연회장 안이 환해질 만큼 멋있었습니다. 갑자기 왕이 공주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공주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나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네?”
공주는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뺐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왕은 예전에 그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웃고 조롱했던 지빠귀 부리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공주에게 쏠렸습니다. 공주는 왕의 손에 이끌려 쩔쩔매며 들어가다가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음식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종이에 싼 음식을 보고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놔주세요. 이만 돌아가겠어요!”
공주는 왕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왕은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지빠귀 부리 왕이오. 바로 이 나라의 왕이지. 그리고 당신의 남편인 거지 악사이기도 하다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당신이 시장에서 광주리를 팔 때 망가뜨린 군인도 바로 나요.”
“네? 뭐라고요?”
공주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속여서 미안하오. 당신이 교만함을 버리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소. 그동안 거지 악사인 내 말을 따라주고 사랑해주어 고맙소. 이제 나와 정식으로 결혼해주시오.”
왕은 공주에게 청혼했습니다.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저처럼 못된 여자는 당신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요.”
 

“그런 말 마시오. 난 당신이 달라졌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그러니 부디 나와 결혼해 주시오. 오늘이 내 결혼식인데 신부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소?”
그 말에 공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곧 시녀들이 달려와 공주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얼굴과 머리를 손질해 주었습니다. 공주는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성대한 결혼식이 시작되자 공주의 아버지가 왔습니다. 왕은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새 공주의 눈에도 감사와 행복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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