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챙총과 샌드위치
칭챙총과 샌드위치
  • 글/김성훈
  • 승인 2014.04.01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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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챙총♩~! 칭챙총♬~!”
‘어휴, 또 저 소리야!’
아침부터 장난기 가득한 잭 아저씨의 노랫소리에 청년은 머리가 아팠어요. 그런 청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잭 아저씨는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칭챙총♩~! 칭챙총♬~!”
“아저씨, 그만 좀 하세요!”
“칭챙총을 칭챙총이라고 하는 게 뭐 잘못 됐나? 껄껄!”
부둣가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것도 힘든데, ‘칭챙총’이라고 놀림까지 받는 것이 청년은 못내 서러웠어요. 

 
청년의 이름은 조진창. 한국에서 박사가 될 꿈을 안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서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진창아, 큰일 났다. 네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서주었는데 그게 잘못되어 아버지 사업과 집이 모두 넘어가버렸어.”
“네? 그게 정말이에요?”
“이제 네 생활비도 못 보낼 형편이 됐으니 어쩌면 좋으냐?”
“여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셔야 해요.”
 
진창은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학비는 장학금을 받고 있었지만, 기숙사비나 용돈은 부모님께 받아쓰고 있던 터라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할지 막막했어요.
다음 날부터 진창은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음식을 배달하며 생활비를 벌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지내기가 빠듯했어요. 게다가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공부는커녕 잠 잘 시간도 없었어요. 하루는 친구가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어요.
“토요일마다 항구에 화물선이 들어오는데, 거기에서 짐 나르는 일을 하면 돈을 많이 준대. 토요일에만 일하면 되니까 공부에 지장도 없고 좋지 않겠니?”
진창은 곧장 항구로 찾아갔어요. 현장감독은 비쩍 마른 진창을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진창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겨우 허락을 받아 일을 하기로 했어요. 진창은 부둣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헬로, 마이 네임 이즈 진창 조(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진창입니다).”
“뭐, 칭챙총? 왓하하하!”
한 사람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껄껄 웃어댔어요. 부리부리한 큰 눈, 북실북실한 콧수염에, 상처 난 팔뚝, 기름때투성이인 작업복까지. 영락없는 부둣가 막노동꾼의 모습을 한 잭 아저씨였어요. 칭챙총은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을 놀릴 때 쓰는 말로, 중국영화에 ‘칭’ ‘챙’ ‘총’ 하는 소리가 많이 나와서 생긴 말이에요. 그런데 ‘진창 조’라는 이름이 칭챙총과 발음이 비슷해 웃었던 것이었어요. 아저씨가 웃자 다른 일꾼들도 따라 웃었어요. 놀림감이 된 진창은 기분이 언짢았어요.
매주 토요일 6시에 시작되는 항구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작은 체구로 덩치 큰 일꾼들과 보조를 맞춰 일하자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어요. 저녁 6시,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가는 버스를 탈 때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어요.
그런데 일보다도 진창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잭 아저씨였어요. 다른 아저씨들은 진창을 ‘이봐, 진!’이라고 부르는데, 잭 아저씨는 여전히 ‘칭챙총!’ 하고 불렀어요. 그것도 노래를 부르듯 리듬과 멜로디까지 넣어서 말이에요. ‘저러다 말겠지’ 싶어 꾹꾹 참던 진창도 그날은 짜증과 설움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어요.
“그만 좀 하라고요!”
진창은 씩씩거리며 작업모를 벗어 던지고 돌아섰어요. 등 뒤로 잭 아저씨의 흥얼거림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진창은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어요.

일주일 후, 진창은 감독에게 꾸중을 듣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어느 새 12시가 되었어요. 즐거운 점심시간이지만 진창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점심 도시락을 싸올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늘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해야 했거든요. 이날도 진창은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어나려는데, 어디선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쳇! 이 맛없는 연어 샌드위치를, 그것도 두 개씩이나 싸 주다니! 이 여편네는 내가 무슨 고양이인 줄 안다니까.”
잭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는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큰소리로 떠들었어요. 진창은 눈살을 찌푸렸어요.
‘흥,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도 있는데, 저 맛있는 샌드위치를 놓고 투정이라니.’
진창이 일어나자 아저씨가 진창을 불렀어요.
  “이봐, 칭총! 이 샌드위치 하나 먹지 않을래?”
  “네? 아녜요, 됐습니다.”
진창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휘 저었어요. 늘 자신을 놀리는 아저씨에게 점심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싫었거든요.  
  “그러지 말고 하나만 먹어줘. 나는 아침을 워낙 잘 먹은 데에다 연어를 지독히 싫어하거든.”
 “정 그러시면…….”
진창은 못 이기는 척 샌드위치를 건네받았어요. 한 입 베어 물자 담백하고 고소한 연어의 맛과 싱싱한 야채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어요. 진창은 샌드위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어요. 아저씨는 남은 샌드위치를 내밀었어요.
“자, 이것도 마저 먹어.”
“아저씨는요?”
“아까 말했잖아. 연어 안 좋아한다고. 자네라도 맛있게 먹으니 다행이네.”
“고, 고맙습니다.”
두 번째 샌드위치는 첫 번째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어요. 진창이 맛나게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던 잭 아저씨가 입을 열었어요.
“자네, 앞으로 나와 도시락 친구하면 어떻겠나?”
“네에? 도시락 친구요? 저는 도시락을 못…….”
 
진창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잭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을 이었어요.
  “허허! 우리 마누라가 든든히 먹어야 힘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도시락을 얼마나 많이 싸주는지, 나 혼자선 도저히 못 먹을 정도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소화도 잘 안 되는데 말이야. 껄껄껄!”
‘이게 웬 횡재냐!’ 진창은 뛸 듯이 기뻤지만, 지난주에 아저씨에게 언성을 높인 것이 생각나 선뜻 대답을 못했어요. 그 다음부터 아저씨는 큼지막한 스테이크와 빵, 샌드위치를 잔뜩 싸가지고 와 진창에게 나눠주었어요.
그러기를 몇 달, 처음에는 석탄포대 하나도 못 들던 진창은 어느 새 포대를 들쳐 메고 뛰어다닐 정도로 체력이 좋아지고 일도 능숙해졌어요. 진창은 점심을 먹으려고 잭 아저씨를 찾았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어요. 감기에 걸려 일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신세만 졌는데, 오늘 찾아가봐야겠다.”
일이 끝나자마자 진창은 감독에게 주소를 물어 잭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어요. 
  “아저씨, 계세요? 저 칭총이에요.”
  “어이, 칭총! 자네가 웬일인가? 콜록콜록! 어서 들어오게.”
며칠 새 얼굴이 해쓱해진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편찮으시다기에 걱정돼서 왔어요. 이참에 아주머니께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집에 안 계신가 봐요?”

  “허허, 고맙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사실 내 아내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네.”
  “네? 그러면 그동안 가져오신 도시락은…….”
  “허허허! 홀아비가 요리한 것 치고는 맛이 괜찮았지? 콜록콜록!”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하시면서 도시락을 준비해오셨어요?”
 
 “자네가 일을 하러 올 때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칭챙총이라고 장난을 쳤네. 그런데 오히려 자네 기분을 상하게 해 미안했어. 마침 자네가 도시락을 못 챙겨오는 것을 알고, 기분 나쁘지 않게 점심을 주고 싶어서 있지도 않은 아내의 험담까지 하며 도시락을 준비한 것이라네. 껄껄껄!”
  “아저씨!”
진창은 코끝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고개를 얼른 숙였어요. 두 눈에 고인 눈물 너머로 굳은살 박인 아저씨의 손이 비쳤어요. 투박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정성껏 요리한 아름다운 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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