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야이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4.05.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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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늘 소망을 이야기한다

 

야이로의 선택
마가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를 만나신 이야기가 나온다. 야이로에게 외동딸이 있었는데,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찾아와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간청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그의 병이 나았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사이에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고 말씀하셨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갔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그의 딸에게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 하셨고, 아이가 곧 일어나 살아났다.

항상 들려오는 두 가지의 음성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는 항상 두 가지 음성이 나온다. 먼저, 야이로가 들은 것처럼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예수님이 와도 소용없습니다. 왜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합니까? 빨리 장례나 치르지요” 하는 절망적인 이야기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소망의 이야기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듣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딸이 살아난다는 소망의 이야기도 들었다.
성경은 전부 그런 이야기로 되어 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극심한 기근으로 아이를 삶아먹는 죽어가고 있는 사마리아 성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다. 내일 이맘때에 양식이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그때 한 장관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요?” 하였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두 가지 음성이 우리 마음에 들려온다. 하나는 절망적이고 안 된다는 사탄으로부터 오는 소리다. 사탄은 형편을 내세워서 ‘너는 안 돼!’ 하고 말한다.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한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두 가지 음성 중에서 우리가 어느 음성을 듣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밝아진 눈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는다. 그때 마르다의 마음에 ‘우리 오빠가 죽었어요. 예수님이 진작 오셔서 살려 주시지, 이제는 늦었어요. 썩어서 냄새가 나잖아요. 안 돼요!’ 하는 음성이 속에서 계속 들렸다. 반대로 다른 편에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소망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와가 뱀에게 꼬임을 받아 그 열매를 따먹고 말았다. 그 후 그들은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다. 그때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밝아진 눈은,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에게 주신 눈과 전혀 달랐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눈이 정상적인 것 같지만,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눈이 만들어진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눈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시는 눈과 우리가 보는 눈은 전혀 다르다. 어떤 형편이나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문제 앞에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산다”는 소망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데 마르다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에 의해 ‘어떻게 오빠가 살아? 썩어 냄새가 나는데…!’ 하며 예수님의 보시는 것과 전혀 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계집아이 안에는 하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이 나온다. 문둥병에 걸린 그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작은 계집아이를 사로잡아와 자기 아내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형편을 보면, 그 계집아이는 얼마나 불행한가! 포로로 잡혀와서 가족도 못 보고 원수 나라의 장군, 그것도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한평생 종노릇을 해야 하니…. 계집아이는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기 눈으로 보는 세계가 아닌, 하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계집아이의 눈으로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비참하고 절망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불면증에 시달려야 하고, 우울증에 걸려야 하고, 그러다가 병이 들어서 죽고 말아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소녀에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 장군님이 문둥병에 걸렸구나.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면 저 문둥병이 반드시 낫는데, 장군님은 이걸 모르시겠지….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사마리아에 가서 엘리사 선지자님을 만나 문둥병이 나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래, 문둥병만 낫겠어? 구원도 받고 오시겠지!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시겠구나. 장군님이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집이 얼마나 변할까?’
하나님이 보여 주신 세계는 계집아이의 눈에 보이는 세계와 전혀 달랐다. 계집아이는 형편 앞에서 고통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 속에서 소망을 주신 것이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나아 집으로 돌아온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가 “여보, 내가 오랜 세월을 병들어 고생했는데, 이제 깨끗이 나았소! 여기 등을 보시오. 다리를 보시오. 내가 이렇게 나았소!” 하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계집종을 보고는 꼭 안으며 “고맙다! 너 때문에 내가 문둥병이 나았어! 내가 한평생 문둥병자로 살아야 하는데, 네가 나에게 새 생명을 주었어. 네가 나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어. 너는 이제 종이 아니야. 우리 딸이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정말 신비로운 이야기다.

오늘도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계신다
계집아이가 나아만의 집에서 종으로 있으면서 똑똑하다고, 잘났다고, 얼굴이 예쁘다고, 꾀가 있다고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으로도 절망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이의 마음에 소망을 넣어 주시니까 어두운 형편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마음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가져다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 참 많고 절망적인 일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새로운 소망을 부어 넣어주셨다. 그것이 정말 신비롭다. 나사로가 죽어서 절망 속에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셨다. 간음하다 잡혀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여자에게 예수님은 자유를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으며, 그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 차게 하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계신다. 내가 형편을 보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내 마음에 만들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내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생기고, 감사가 일어나고, 소망이 생긴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소망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우리 눈으로 보는 현실을 좇아서 ‘난 안 돼! 기도해도 안 되고 전도해도 안 되고, 나에겐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아!’ 하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전해 준다.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말씀하시니 땅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했다. 마치 그것처럼 성경은 우리 마음에 수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속에서 절망과 어두움이 물러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세계를 늘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생각 속에 빠져서 염려하고 괴로워하며 살 때가 많다. 언제든지 성경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말씀이 우리 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망을 말씀하신다.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서 딸이 살아나는 은혜를 입었다. 오늘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고 야이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소망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에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하나님과 함께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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