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Masada
마사다 Masada
  • 관리자
  • 승인 2014.05.08 1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지 순례 (17회)

 

 

마사다 요새
쿰란 지역에서 남으로 50km 가량 떨어진 곳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있는 언덕 하나를 만나는데, 그곳이 마사다 요새다. 히브리 말로는 ‘메짜다’라고 부르는데, ‘요새’라는 뜻의 단어 ‘메쭈다’와 연관이 있다. 마사다 요새는 높이 약 450m의 절벽 위에 있는 언덕으로, 길이 600m, 폭 250m 가량의 평지다.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북쪽 절벽에 큰 계단을 만들어 놓은 듯한 3층 구조의 계단식 건물의 터가 보인다. 그곳이 바로 화려했던 헤롯1세의 겨울 궁전 터다. 헤롯 궁전은 고대 건축물 중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마사다의 첫 번째 이야기
AD 66년에 유대의 극우주의자들이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는 군대를 보내 70년 여름에 타이투스 장군이 반란군을 제압한 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유대인들의 항쟁은 그렇게 끝맺는 듯했으나, 결사 항쟁을 결의한 유대교인 960명이 ‘엘리아쟈르 벤 야이르’의 통솔 하에 예루살렘을 탈출해 마사다로 올라가 그곳에서 마지막 항전을 벌여, 마사다의 두 번째 역사가 쓰여졌다.

3층 구조인 헤롯 궁전의 모형.

마사다의 첫 번째 이야기는 헤롯1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롯의 명으로 BC 31~37년에 이 요새는 만들어졌다. 학자들의 상당수가, 반란과 소요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헤롯이 만일의 경우 예루살렘에서 도망해 이 요새에 몸을 숨긴 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주장한다. 향락을 즐겼던 헤롯이, 지대가 높은 예루살렘이 겨울에 유난히 추웠기에 긴 겨울을 따뜻한 사해 지역에서 즐기며 보내려고 지은 겨울 궁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마사다 안에 갖춰진 향락시설을 보면 두 주장 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당시 헤롯 왕은 이 요새에 큰 성벽을 쌓고 그 안에 주거지를 만든 후, 절벽에 화려한 보석과 돌로 치장한 궁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사다를 귀빈들을 위한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마사다에는 현대로 말하면 사우나나 한증막 같은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모자이크 문양이나 벽화와 타일 등의 유물이 일부 남아 있는데, 그 호화스러움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깜짝 놀랄 정도다.
 

헤롯 궁전의 욕실에 그려져 있던 벽화 가운데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

헤롯은 겨울에 마사다에서 로마나 인근 강대국의 세력가나 유명인사들을 초청해서 즐기며 보냈다고 한다. 그가 왕이 되기 전 피신 중에 있을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을 입었는데, 나중에 클레오파트라를 헤롯 궁으로 초청했다는 이야기는 사가들의 입에 유명한 에피소드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마사다에서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마사다 요새는 난공불락의 어떤 성보다 무너뜨리기 어려워서. 무적의 로마군도 3년간 요새를 에워싸고 공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로마군의 지휘부는 요새의 가장 큰 약점으로 물을 얻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포위하고 있으면 목이 말라서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흘러갔다. 로마 군병들은 매일 1~1.5리터의 물을 수통에 공급받았는데, 그들은 요새 위에서 내려다보는 유대인 앞에서 물병을 열어 물을 땅에 쏟기도 하고, 수백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수통을 흔들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목이 마를 것으로 추측한 유대인들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요새 위에서 유대인 여자들이 빨래를 하며 물에 흠뻑 젖은 큰 수건이나 옷을 두 사람이 잡고 돌려서 짜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쓰다 남은 물은 언덕 밑으로 양동이째 콸콸 쏟아 부었다.
‘저 높은 곳에서 도대체 어디에서 물을 얻는단 말인가?’ 로마군은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 답은 이러했다. 이스라엘의 우기(雨期)인 겨울에 지대가 높은 예루살렘에 내린 빗물은 지대가 낮은 유대광야 쪽으로 흘러갔다. 마사다 요새를 만든 사람들이 그 점을 이용해, 마사다 언덕의 중간 부분에 큰 구멍을 파고 물이 그곳으로 흘러들도록 작은 물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엄청난 양의 물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비축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새 정상까지 한 사람이 나귀를 타고 오갈 수 있는 꼬불꼬불한 길을 만들어서, 나귀에 물항아리를 싣고 물을 날라 정상에 있는 물 저장고에 채워서 사용했다. 요새 정상에 있는 물 저장고들에는 수백 명이 1년간 쓸 수 있는 물을 보관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곡간 등으로 쓰였던 헤롯 궁전의 여러 방들.

요새 안의 유대인들은 물뿐 아니라 텃밭에 곡식과 채소를 가꾸어 먹을 것을 얻었고, 절벽 한 쪽에 큰 규모의 비둘기 집들을 만들어 비둘기를 키워서 그 알로 영양을 보충했다. 이스라엘의 절기 때에는 비둘기를 잡아 희생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가끔 비둘기를 잡아먹었다고 전해진다. 요새에는 헤롯이 만든 회당과 세례 장소도 있어서 매일 종교행사를 가질 수 있었다. 마사다에 머물렀던 유대인들은 항쟁의 와중에도 율법서를 필사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 안에서 큰 돌들을 공처럼 둥글게 깎아서, 한 번씩 요새 위로 기어올라오는 로마군을 향해 굴려 위협하며 3년간 요새를 지켜냈다고 한다.
 

요새 위로 기어올라오는 로마군을 향해 굴렸던 둥글게 깎은 돌들.

960명 모두 죽어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로마군은 정예병을 증파하고, 유대인 노예들을 동원해 절벽의 뒷부분에서 흙으로 언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언덕을 쌓아 올라가 점점 요새의 정상과 같은 높이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마사다 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버티는 것뿐이었다. AD 73년 5월, 로마군은 대공격을 감행해 마침내 성벽을 무너뜨리고 요새 안으로 진입했다. 그때 그들은 깜짝 놀랐다. 960명의 유대인들이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는 숨어 있던 두 명의 여자와 다섯 명의 어린아이가 살아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유대 학자들이 전원 죽어 있었다고 말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37?~100?)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로마의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유대의 규례 때문에 자살할 수는 없었기에 먼저 남자들이 자기 가족을 칼로 죽이고, 제비를 뽑아 뽑힌 소수가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고, 다시 제비를 뽑아 또 죽이고, 마지막 한 사람은 칼 위에 엎드러져 자결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한다. 후에 발견된 유물 중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토기 열한 조각이 있었는데, 그 하나에는 960명을 이끌었던 ‘벤 야이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마사다의 비극은 그렇게 끝이 났고, 1960년대에 들어와 적극적으로 유적 발굴 작업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일부 시설물들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관광객들이 당시 모습을 추측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마사다의 비극을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정신교육을 위해 이스라엘 군인들은 반드시 마사다를 등반하게 한다고 한다.
 
셀라하마느곳, 분리하는 바위
마사다에서 있었던 일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이 일에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먼저, 마사다에서 죽은 이들의 상당수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이거나 그 자녀들일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믿음과 사상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복음을 배척한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입지 못하고 처참한 마지막을 맞아야 했다.
성경에서 다윗은 수없이 적들에게 에워쌈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임해 그를 살리셨다. 사무엘상 23장에 보면, 다윗이 마온황무지에 갔을 때 사울의 군사들이 사방으로 에워싸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블레셋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셔서 사울은 다 잡은 다윗을 앞에 두고 블레셋 군대를 막으러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불렀는데, ‘분리하는 바위’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위기를 맞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기에서 분리하여 내고 지키시는 것이다.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지혜로워서 3년을 잘 버텼으나, 에워쌈을 당한 데에서 건짐을 받지는 못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믿었던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입지 못했는가?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상관없는,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잘못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그 안에 예수님의 피가 함께하고 있다. 거듭난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하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재앙과 위기에서 분리시킨다. 우리도 모르게 다가오는 재앙과 위기에서도 말이다. 거듭난 성도에게는 셀라하마느곳, 곧 분리하는 바위가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모든 어둠의 권세를 파하고 이기셨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