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토막으로 만들어 낸 기적의 발명품
나무토막으로 만들어 낸 기적의 발명품
  • 최순식 선생님
  • 승인 2014.06.03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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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와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까지, 종이는 사람의 생각과 사건 등을 기록하여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종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나무토막이나 풀잎으로 만든 책을 가지고 공부하고, 아침마다 나무판에 인쇄된 신문을, 주일마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성경을 들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 흔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문자와 인쇄술과 함께 인류문명을 발달시킨 3대발명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종이에 대해 알아봅니다.
 
기록을 남길 무언가가 필요해
문명이 발달하면서 고대인들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기록을 남겨놓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용한 것이 나무토막이었고, 평평한 돌이나 동물의 뼈에 뾰족한 칼로 파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 강변에서 자라는 식물로 키가 2∼3미터, 굵기가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갈대 모양의 풀입니다. 줄기를 잘라 얇게 저며서 가로 세로로 얽어놓고, 끈적거리는 액체를 발라 눌러놓았다가 말리면 지금의 종이와 비슷한 형태가 됩니다. 영어로 ‘paper(종이)’는 파피루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양에서는 파피루스와 함께 양피지(羊皮紙), 즉 동물(주로 양)의 가죽을 얇게 펴고 말려서 종이처럼 사용했습니다.
 
획기적인 문서기록의 시작
지금의 종이와 같은 형태를 처음 만들어 알린 것은 중국의 채륜(105년)이었습니다. 채륜은 중국 후한시대 때 황실에서 물품 구입을 담당하는 관리였습니다. 궁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할 일이 많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황제의 명이나 주요사항을 적은 공문을 적어 전국 곳곳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쓸 재료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나무 조각을 잘라 만든 ‘간(簡)’과 나무를 작게 쪼갠 ‘목편(木片)’을 썼는데, 간과 목편은 모두 기록하기가 어렵고 무거워서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또 비단을 쓰기도 했지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그래서 채륜은 생각에 생각을, 고민에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나무 조각보다 얇고 가벼운 것에 기록하면 좋을 텐데, 여인들의 치마처럼 얇고 가볍고 부드러운 뭔가가 없을까?’
궁(窮-궁리)하면 통(通)한다, 즉 궁리하고 고민하면 길이 열린다는 말처럼, 채륜은 수없는 궁리와 수 백 번의 실패를 통해 마침내 종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나무껍질, 마, 창포 등의 식물 섬유를 돌절구에 넣고 찧어서 얇게 편 뒤 건조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지금의 펄프(나무를 잘게 조각내어 기계적, 화학적 가공으로 만든 종이의 원료)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시 문서기록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종이의 발달 과정
채륜의 제지술(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꾸준히 발달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베트남 등의 아시아에 빠르게 보급되었습니다. 벌레가 먹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진을 바르고 여러 가지 색을 입히기도 하고 금박을 뿌려 화려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보다 문명이 발달한 유럽에는 650년이 지나서야 제지술이 들어갔습니다. 중국이 서양으로의 제지술 보급을 막은 이유도 있었지만, 제지술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문자의 기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이나 권력층 등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파피루스 구입에 필요한 재산과 파피루스를 만들 노예들의 노동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얼마든지 동물의 가죽을 구입해서 양피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종이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751년에 벌어진 중국의 당나라와 사라센 제국(7∼15세기에 번영했던 중세 이슬람 국가. 바다와 육지를 통한 활발한 무역으로 문화, 과학, 건축, 공예가 발달하였음)과의 전쟁에서 당나라가 크게 패하는 바람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사라센으로 잡혀갔습니다. 그 중에 제지기술자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종이 만드는 기술이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럽인들에게 종이는 새로운 문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보관이 쉽지 않고 내구성이 약한 파피루스, 부피가 크고 무겁고 값이 비싼 양피지는 결코 값싸고 재질이 뛰어난 종이와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양피지로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600여 마리의 양가죽이 필요했으니, 어떻게 종이와 비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본격적으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발명으로, 종이는 없어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실용에 편리한 기계나 기구)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제지술이 더욱 발달하여 종이의 질도 급속도로 좋아졌습니다. 1690년 네덜란드에서 나무 섬유를 갈아 대량으로 종이를 만들었고, 1770년 영국의 와트 먼이 도화지를 만드는 기계를, 1860년 독일의 펠터가 펄프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종이가 지닌 특별한 의미
이렇게 발달한 종이기술은 지식의 전파와 함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세계인이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역사를 쉽게 기록하여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이는 지식의 축적뿐 아니라 인류 화합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2007년 미국 타임지는 채륜을 ‘역대 최고의 발명가’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습니다.
오늘날은 컴퓨터,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이 발달하여 사무와 통신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종이 사용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첨단기기들도 인류의 말과 글을 담는 재료로서 종이가 가진 친근함과 편리함을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쁜 종이에 정성스런 손글씨로 메시지를 적어 전달해보세요. 종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관심까지도 담아 전달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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