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40) -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교회사(40) -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 이한규 (기쁜소식동서울교회 목사)
  • 승인 2014.07.03 13: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회사(40회)

 

 

 

교황의 면죄권(免罪權)과 돈
로마카톨릭 교회사를 보면, 교황이 면죄권을 대대적으로 행사한 적이 있었다. 11세기 말 십자군전쟁 때였다. 7세기 중엽 신흥종교였던 이슬람교를 따르는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했고, 그 후로 줄곧 이스라엘을 장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 우르반 2세는 기독교의 성지 탈환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1세기 말에 십자군운동을 일으킨다. 그는 십자군 (十字軍)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십자군에 참여해서 전사하거나 살아서 돌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죄의 징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십자군전쟁이 한창 진행되면서 엄청난 전비(戰費) 문제가 대두되었다. 돈 많은 거상(巨商)이나 귀족들이 전쟁을 위해 돈을 내놓기 시작했고, 전비에 쪼들리던 교황은 참전하지 않고 돈만 내놓는 사람들도 면죄해 주었다. 교황의 면죄권(免罪權)이 돈과 결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등장한 면죄부
십자군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잠잠해졌던 교황의 면죄권은 15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른 목적을 위해 또 나타났다. 루터가 직접 접한 면죄부는 교황 율리오 2세가 1510년에 공포한 ‘희년 면죄부(the jubilee indulgence)’였다. 이 면죄부의 판매 대금의 일부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 기금으로 쓰였다. 베드로 대성당 건축은 율리오가 150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르면서 시작했는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성당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꿈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율리오 2세 사후에는, 씀씀이가 헤펐던 교황 레오 10세가 1513년에 면죄부 판매를 다시 시작했다. 1515년 3월, 레오 10세는 마인츠와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大主敎)요, 할버스타트의 주교인 알브레히트(Albrecht)를 소환해서 그의 교구와 브란덴부르크 (Brandenburg) 일부 지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도록 지시했다. 알브레히트는 3개의 교구를 맡기 위해 큰 빚을 지고 있었고, 푸거(Fugger) 가(家)의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교황은 그에게 8년 동안 면죄부를 팔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면죄부 판매금의 반으로는 빚을 갚고 반은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위해 교황에게 바치게 했다. 알브레히트는 요한 테첼(Johann Tetzel)을 면죄부 판매 책임자로 임명했다. 테첼은 1504년 이후 푸거 가와 교황을 위해 면죄부를 팔았던 도미니칸 수도사였다.

테첼의 면죄부 판매
요한 테첼은 면죄부의 효력을 과장했다. 그는 면죄부라는 가짜 ‘만병통치약’을 팔겠다고 다니는 약장수 같았다. 테첼은 “하늘 문이 열리노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면죄부를 팔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면죄부는 모든 죄에 대해 완전한 면책을 보장해 주며, 적당한 돈을 지불할 경우 면죄부의 혜택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까지 미친다고 했다.

“면죄부는 하나님의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오시라. 나는 여러분이 범하려고 하는 죄도 이미 용서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잘 인(印)쳐진 문서를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성 베드로의 사람들을 위한 나의 특권을 변경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면죄부로 사도가 설교를 통해 구원한 영혼보다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면죄부가 사하지 못할 큰 죄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면죄부는 산 자의 죄뿐 아니라 죽은 자의 죄도 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여, 귀족이여, 상인이여, 아내여, 청년이여! 처녀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와 친구들이 지금 저 무저갱 바닥에서 애타게 울부짖고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까? ‘우리가 너희를 낳고 양육하고 재산까지 남겨주었는데, 너희는 어찌 그리 잔인하고 인색해서 작은 돈을 내어 우리를 건져내려고도 하지 않느냐?’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전이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납니다. 여러분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께서는 더 이상 당신이 통치하지 않고 모든 권세를 교황에게 주셨습니다.”
이런 일은 루터를 크게 자극했다. 테첼이 면죄부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루터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테첼은 한때 인스프럭(Inspruck)에서 간음과 여러 수치스런 죄를 범했고, 맥시밀리언 황제가 그를 자루에 넣어 강에 던지라고 언도했으나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의 개입으로 겨우 용서받은 자였다.

테첼의 설교가 비텐베르크 인근까지 미치자, 스승 슈타우피츠의 격려와 권유를 받은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조항들을 작성했다. 루터는 이 논제들을 라틴어로 세 부를 만들어 하나는 교회 정문에 붙이고, 하나는 알브레히트에게 보냈으며, 하나는 브란덴부르크의 감독인 제롬 스쿨테투스(Jerome Scultetus)에게 보냈다. 당시 라틴어가 국제학술 언어로 통용되고 있었음을 미루어볼 때, 이 조항들은 대학의 교수나 학자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공개 토론을 위하여 게시했던 95개 조항이…
루터는 면죄부와 이를 매매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일인지를, 교회를 위한 충정의 마음으로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다. 모두 95개 조항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루터가 95개조 논제들을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그는 단지 면죄부 판매를 공격하기 원했다. 그 공격도 면죄부 판매책인 테첼에 맞추어져 있었다. 95개조 논제를 공표한 날, 루터는 알브레히트에게 면죄부 판매를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와 함께 95개조 논제 복사본을 보냈다. 거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땅의 찌끼와 같은 제가 존귀하신 당신께 접근함을 용서하소서. 거룩하신 당신께서 먼지와 같은 이 글을 살피시고 나의 탄원을 들으소서. 당신께서 나의 명제들을 살펴보신다면 면죄부의 교리가 얼마나 의심스러운 것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알브레히트는 그 사본을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냈고, 교황은 그것을 보고 “술 취한 독일 사람이 이 글을 썼는데, 술에서 깨어나면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전해진다. 1517년 10월 31일 정오, 루터는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글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대학 부속 교회의 정문에 붙였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서, 그리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사
(文學士)요 신학사(神學士)요 신부(神父)인 마르틴 루터에 의해서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그는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수많은 신학자들과 종교인들 가운데 누구도 면죄부 판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루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면죄부의 문제성을 제기했다.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던 루터의 나이 34세 때였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게시한 다음날은 ‘만성절(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날)’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95개 조항을 주목했고, 그 조항들은 순식간에 독일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2주 만에 전 독일에 퍼졌고, 4주 만에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다. 거기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인쇄술 덕분에 95개 조항이 문서로 빠르고 값싸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루터의 반박문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도 느끼고 있던 대로 면죄부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이며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루터는 비록 학자들 간에 토론할 목적으로 95개의 논조를 게시한 것이었으나, 그로 인해 개혁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루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교회의 개혁’이라는 역사의 새로운 막이 오르고 있었다. 루터에게 찬동하는 사람들이 불같이 일어나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로마카톨릭교회와 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루터는 비난, 공격, 위협, 저주를 받았으며, 동시에 사람들의 찬동과 격려도 받았다.

루터와 로마교회와의 싸움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모든 죄가 사해져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복음을 깨달은 루터에게 면죄부 판매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영혼의 구원을 위해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만들고, 그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성도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 어떻게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의 진리에서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대상이라고 루터는 확신했다. 이에 루터는 95개 조항을 제시하며 그 문제를 주제로 대학 내에서 공개토론을 하고 싶었다.

테첼은 95개 조항에 격분하여 106개 조항에 달하는 반론을 펼쳤다. 이에 루터는 ‘면죄부와 은혜에 대한 설교’로 답했다. 이제 루터와 거대한 로마 교황 세력은 타협이 불가능해졌으며,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루터는 자신의 태도를 확실히 밝히고 자신의 신앙을 더욱 명백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교황은 도미니칸 교단의 실베스터 프리에리아스(Sylvester Prierias)를 사절로 보내어 루터에게 답변하도록 했다. 1518년 7월, 프리에리아스는 ‘로마교회와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며 루터에게 놋쇠 머리와 철의 코를 가진 문둥병자 같은 녀석이라고 욕했다. 이에 루터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응수했다.

“내가 테첼을 멸시했지만 그는 당신보다는 똑똑했다. 당신은 성경이라곤 하나도 인용하지 않고, 주장만 하지 이유는 대지 않으며, 악독한 마귀같이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당신은 교회가 교황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는데, 교황들의 꼴을 보라. 율리우스 2세의 피 흘린 범죄, 보니페이스 8세의 잔학한 독재를 보라. 그들은 격언처럼 늑대같이 나서서 사자같이 다스리고 개같이 죽지 않았는가?”

루터는 당시 교회의 타락상에 대해 그 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로마교황청은 퇴폐에 물들어 있고, 병독에 감염되어 있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음란하고, 식도락을 즐기며, 사기꾼 집단이고,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져 있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모독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옛 초대교회 시대보다 현재가 더욱 사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1516년)

95개 조항
루터가 제시한 95개 조항의 내용은 ‘교리적인 면’과 ‘비판적인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루터가 60대인 1545년에 쓴 라틴어 작품들을 위한 서설에 보면, 루터는 자신이 95개 조항을 쓸 당시에는 로마카톨릭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의 고백처럼 95개 조항에는 어느 정도 로마카톨릭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루터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은 교황의 사면권을 비판하는 것이며, 결국 교회의 사죄권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구원에 대하여, 특히 사람이 의롭게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루터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받는 문제에 대해, 첫 번째로 참된 의미의 회개를 1~4 조항까지 다루고 있다. 그의 논제의 중심이 여기에 있다.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신자들의 전 생애가 회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聖禮典)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 이해할 수는 없다.
3.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억누르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내적 참회를 계속하는 한에는) 형벌이 계속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그것이 계속될 것이다.

루터는 참된 회개가 필요하며, 로마카톨릭교회의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는 것이 회개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고해성사는 죄 사함과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오히려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6. 교황은 아무 죄도 사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사해진 사실을 천명하고 확증하고 따를 따름이다.

8~29조항은 ‘연옥의 불에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한 면죄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비판적인 면의 조항은 제26항에서 제40항까지인데, 대체로 면죄부 판매 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론을 펴고 있다. 제26항에서 루터는 교황이 연옥에 있는 영혼까지 관할할 수 있다는 데에 반대하였으나 연옥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면죄부가 연옥에 갇혀 있는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21. 따라서 면죄부에 대해 설교하는 자들이,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에 의해 모든 인간은 형벌로부터 사면되고 구원받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7. 연보궤에 넣은 돈이 바닥에서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빠져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31.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같이 진심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극히 드물다.
32. 면죄부에 의하여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든지 형벌과 죄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누리게 되는데, 이는 면죄부 없이 그에게 주어진다.
62. 교회의 참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
72. 면죄부를 파는 자들이 하는 설교의 뻔뻔스러움과 방종에 대항하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77.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혜를 나누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교황의 문장(紋章)으로 장식된 십자가 상이 그리스도가 매달려 죽으신 그 십자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86. 또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교황의 수입은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자의 수입보다도 많은데, 왜 교황은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 같은 성당을 세우지 않는가?

이와 같은 내용의 95개 조항은 어느 정도 로마카톨릭적 색채를 보이기 때문에 <로마서 강의(1515~
1516)>나 <갈라디아서 강의(1516~1517)>만큼 프로테스탄트적인 복음주의 신학의 선언(A Protestant Manifesto)은 아니지만, 부패할 대로 부패한 로마교황청의 환부를 드러내고 교회에서 증거되어야 할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