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싸워 거둔 승리
믿음으로 싸워 거둔 승리
  • 글/김성훈, 그림/이가희
  • 승인 2014.07.1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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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 중 북쪽에 있던 어느 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북쪽의 오랑캐들이 걸핏하면 쳐들어와 백성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늘 임금님의 걱정이었습니다.
“북쪽 오랑캐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니 어쩌면 좋겠소?”
영의정이 아뢰었습니다.

“폐하, 이참에 무예와 병법이 뛰어난 장군을 보내 오랑캐들을 소탕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좋소. 그럼 누구를 보내야 하오?”

“도성 서쪽 깊은 산골에 양백이란 장수가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갑이 넘었지만 젊어서부터 무예를 닦고 병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오랑캐들을 무찌르고 국경을 든든히 지킬 것이옵니다.”
“오, 그런 인재가 있었단 말이오? 속히 양백을 부르시오.”
임금님의 부름을 받은 양백은 한걸음에 궁궐로 달려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이번에 오랑캐를 물리치는 일을 맡기려 그대를 불렀소.”

“소신이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한 가지 부탁이 있사옵니다.”
“말해 보시오. 내 무엇인들 못 들어주겠소.”
“제게 군사 50만을 주십시오.”
“뭐라고? 50만!”
임금님은 물론 신하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신하들은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50만이라면 이 나라 군사의 3분의 2가 넘는 수가 아니오?”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라도 그 많은 군사들을 끌고 딴마음이라도 품으면, 임금님은 꼼짝없이 나라를 빼앗기고 말 것이오.”
그쯤 되자 신하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고 나섰어요.
 

“폐하, 오랑캐를 쳐부수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그곳에 군사 50만을 보낸다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러하옵니다. 게다가 양백을 어찌 믿고 그 많은 병사를 내준단 말입니까?”

“경들의 뜻을 잘 알겠소. 그러나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 양백을 대장군에 임명하고 군사 50만 명을 맡길 것이오. 양백 장군,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대장군이 된 양백은 부하장수들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꼬박 나흘을 행군한 끝에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장수들이 말했습니다.

“저 성이 오랑캐들의 본거지입니다. 당장 공격하여 단숨에 무찌르시지요.”
양백 장군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우선 저 성을 둘러싸고 진을 칠 것이다. 너희들은 진지를 든든히 지키되, 절대 공격해선 안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땅을 갈고 씨를 뿌려 농사를 시작하라.”
“예에? 싸움을 해야 할 군사들에게 농사라니요?”
부하장수들은 양백 장군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백 장군의 군사들이 몇 달 동안 진을 치고 꼼짝도 하지 않자, 오랑캐들이 성문을 열고 몰려와 ‘야, 이 겁쟁이들아!’ 하고 조롱하며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화가 난 장수들은 당장 달려 나가 싸우고 싶었지만, 싸움에 응하면 큰 벌을 내리겠다는 양백 장군의 명령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양백 장군의 군사들은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반년을 지냈습니다. 장수들은 여러 번 양백 장군을 찾아가 ‘이제 오랑캐를 칠 때가 되었다’고 말했지만, 양백 장군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습니다. 장수들 사이에 그런 양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공격하면 저깟 오랑캐쯤이야 금세 박살낼 수 있어. 그런데 장군님은 대체 뭣 때문에 싸움을 피하시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혹 장군님이 딴마음을 품은 건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인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싸움 한번 하지 않고 농사만 짓는 게 말이나 돼? 어쩌면 장군님이 여기에 터를 닦은 뒤에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건지도 모르지.”
“엥? 설마 그러려고?”
양백 장군에 대한 소문은 퍼지고 퍼져 도성의 신하들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신하들이 급히 임금님을 찾아갔습니다.
 
“폐하, 대장군 양백을 불러 엄히 벌하시옵소서.”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양백은 여섯 달이 지나도록 싸움은커녕 한가롭게 농사나 지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사옵니다. 게다가 오랑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속히 양백을 끌어내리시고 다른 장군을 보내셔야 합니다.”
“음, 양백에게 특별한 뜻이 있는가 보군.”
“50만 대군을 손아귀에 쥔 자가 품은 뜻이라면 이 나라를 집어삼키는 것 말고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그만들 하시오. 도성에 있는 우리가 먼 변방 사정을 어찌 알겠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돌아들 가시오!”
임금님의 불호령 앞에 신하들은 더 이상 입도 벙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백 장군은 부하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그동안 나한테 섭섭한 것이 많을 테지?”
한 장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고 투덜댔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군! 우리는 오랑캐를 무찌르라는 임금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싸울 생각은 전혀 없고 농사나 지으라니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대체 오랑캐들은 언제 칠 작정이십니까?”
양백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금껏 공격을 미뤄 온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네.”
장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첫째, 우리 군사들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살다 보니 춥고 거친 북쪽의 기후에 익숙하지 않네. 이전까지 우리가 오랑캐들을 진멸할 수 없었던 것은 무작정 덤볐다가 추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둘째,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지. 그러면 먹을 양식도 많이 필요한데, 그 많은 양을 도성에서 가져다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농사를 짓자고 한 것이네.”
“아, 예.”

“마지막으로, 오랑캐도 결국 우리 백성이 되어야 할 사람들일세. 우리가 수가 많다고 무조건 치고 들어간다면 그들도 목숨을 걸고 맞설 테니 양쪽 다 큰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공격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도 우리가 자기들을 해칠 뜻이
없다는 것을 알 걸세. 게다가 저 성은 양식이 떨어질 때가 되었으니
곧 항복할 걸세.”
“장군의 깊은 뜻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장수들은 무릎을 치며 양백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랑캐들은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습니다.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승리를 거둔 양백과 50만 대군은 위풍당당하게 도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무릎을 꿇고 엎드린 양백에게 말했습니다.
“양백 장군,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오랑캐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으니 참으로 장하오. 내가 큰 상을 내리겠소.”
“폐하, 이 승리는 소신이 이룬 것이 아니오니 상을 거두어 주옵소서.”
“그게 무슨 뜻이오?”

“폐하께서는 시골 노장에 불과한 소신을 믿고 대군을 내주셨습니다. ‘양백이 딴마음을 품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폐하께서는 개의치 않고 소신을 믿어주셨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믿고 기다려주셨기에 제 목숨이 붙어 있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음…….”

“또한 소신도 임금님께서 저를 이해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안심하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하장수들 또한 저를 믿고 제 명령을 따라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이 승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전쟁은 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믿음이 이루어낸 것이옵니다.”
임금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백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양백 장군, 나는 오랑캐들을 물리친 것보다 현명한 신하를 얻은 것이 더 기쁘오.”
백성들과 신하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양백 장군 만세! 임금님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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