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광야 The Judean Desert
유대광야 The Judean Desert
  • 관리자
  • 승인 2014.09.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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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21회)

 

유대광야의 위치와 자연환경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사해 방향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황량한 들과 산들이 펼쳐져 유대광야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유대광야는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사해死海를 끼고 남북으로 76km, 동서로 26km 가량 펼쳐져 있다. 히브리 음으로는 ‘미드바르 하 예후다’라 부른다.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네게브사막은 시내광야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데 반해, 유대광야는 누군가가 광야를 양쪽에서 세게 눌러서 만들어진 것처럼 거친 모양의 협곡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그래서 유대광야를 찾는 이들 가운데에는 ‘작은 그랜드캐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대광야의 연간 강수량은 100~150㎜로 비가 아주 적게 내린다. 그중에서도 동쪽은 연간 강수량이 50㎜밖에 되지 않아 마르고 건조한 기후가 계속된다. 낮에는 높은 기온이 이어져 그곳에 들어서면 마치 사우나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유대광야에 몇 년간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당시에 태양이 지면의 열기를 섭씨 70도까지 올린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광야의 서쪽은 동쪽에 비해 기후가 좋고 선선하여 올리브·밀·보리 농사를 할 수 있으며, 유대 산지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유대광야의 여름 평균 온도는 섭씨 44도, 겨울에는 26도 정도다. 겨울이 되면 추운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유대광야 인근의 사해 쪽으로 여행을 온다. 옛날에 헤롯 1세도 겨울에는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광야 쪽으로 와서 즐기며 보냈는데, 그곳이 바로 마사다Masada 요새이다. 마사다 요새 정상에서 바라보면, 유대광야는 그 진면목을 보여 주는 듯 장관을 펼치고 있다.
유대광야에는 사막 기후에 맞는 동식물들이 생존하고 있다. 사막가시나무·소돔사과·들무화과, 사막도마뱀·사반·가젤처럼 생긴 산양 등등 진귀한 동식물들이 있다. 맹독을 지닌 살모사류의 뱀과 사막 표범도 살고 있지만 근래에는 그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광야는 암석과 모래가 섞인 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에 소돔이라 불렸던 사해 지역으로 가면 아주 짠 맛을 내는 돌소금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광야와 근처의 이야기들
이스라엘은 국토의 반 이상이 사막인데, 남쪽에 유대광야가 있고 그 아래에 네게브사막이 펼쳐져 있다. 네게브사막에서 홍해 방향으로는 요르단 평지가 있고, 네게브사막을 넘으면 이집트 땅인 시내광야가 이어진다. 유대광야에서 네게브사막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우리 귀에 익숙한 에돔이 나오고, 좀 더 가면 바란광야의 끝자락이 나온다. 에돔과 바란광야는 정확한 지역을 알 수 없고, 대략 추측만 할 뿐이다. 네게브사막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사막 도시 ‘브엘세바’와 같은 큰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다.
유대광야에는 다윗이 숨어 있었던 엔게디 황무지, 로마의 침공에 대항했던 이스라엘의 마지막 항전지 마사다 요새,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인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 소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곳인 요단강 줄기 등등이 나온다. 그리고 여리고, 헤브론, 베다니 같은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들이 유대광야와 연결되어 있다. 헤브론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정탐꾼의 포도’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열두 두령이 가나안 땅을 탐지했을 때 정탐들이 포도송이를 나무에 꿰어 어깨에 매고 왔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도송이가 그때만큼 크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포도 알이 크고 굵기로 유명하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광야는 구약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우리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세례 요한에 관한 내용과 예수님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성경에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막 1:13)라고 했는데, 이 광야가 유대광야를 말한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신 광야도 유대광야다. 여리고 끝자락에는 지금도 ‘시험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어 그 일을 기념하고 있다.

 

아사셀의 협곡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40년간 생활했던 광야는 시내광야와 요르단 동편 지역이다. 그들이 유대광야나 네게브사막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지만, 사막의 특성상 유대광야를 통해서도 그들이 시내광야에서 어떠한 환경에서 지냈는지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특별히, 시내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성막을 짓고 희생과 속죄제사를 드린다. 속죄제사의 규례 중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가 광야로 보내지는 이야기가 레위기 16장에 나온다. 대제사장 아론이 두 손으로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둔 후,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염소를 광야로 보내어 죽거나 사라지게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염소가 지고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성막이 있었던 시대에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미리 정한 사람에 의해 시내광야 쪽으로 보냈지만, 솔로몬 성전 시대와 스룹바벨 성전 시대에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유대광야로 보내졌다고 한다. 지금도 유대광야의 어느 자락에는 ‘아사셀의 협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솔로몬 성전 시대에 제사장들이 염소의 머리에 죄를 넘기고, 아사셀을 위한 그 염소를 끌고 가서 사라지게 한 장소’라고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보통 미리 정해진 사람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의 시작 부분에서 약 12km를 더 끌고 가 무인지경에서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나타내는 그림자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그 죄를 없애러 가신 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사셀’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말을 사용한다. 저주가 섞인 말이나 욕설을 할 때 히브리 말로 “아사셀을 위해 가버려” 하거나 “아사셀에게로 가버려”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제기랄!” 혹은 “빌어먹을!” 같은 상스러운 말이다.

 

광야에서 사는 베두인들
유대광야는 울퉁불퉁한 지대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지만, 옛날부터 길이 반듯하게 뻗어 있어서 이 길을 통해 남쪽 지방에서 사마리아까지 바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차를 타고 네게브사막에서 출발해 유대광야의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북으로 계속 올라가 보았다. 유대광야에는, 특별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천막을 치고 사는 베두인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양을 몰고 가는 베두인 목동도 보이고, 지나가는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코를 흘리는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이스라엘 곳곳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은 이스라엘 외에도 이집트 등 중동 땅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은 천막에서 생활하며, 염소 젖을 먹고, 아랍어를 사용한다. 얼마 전부터 이스라엘 정부에서 베두인들을 위해 복지정책을 펼쳐 집도 지어 주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많은 베두인들이 정착생활을 시작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다시 천막 생활로 돌아가는 이들도 일부 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어느 집에 초대되어 생각지 않게 베두인 음식을 먹었다. 아랍 쌀에다 양고기와 우유를 섞어, 소금을 뿌리지 않은 음식이었는데, 먹으면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기와 우유를 섞어서 만든 이 음식 때문에, 유대교인들이 율법에 금한 일을 하는 베두인들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소란을 피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광야는 마음을 비우고 말씀을 세우는 곳
유대광야에 서서, ‘이 광야는 우리 마음을 비우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얼마 전에 아랍계 아가씨 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 그 아가씨는 자신이 아랍계 기독교인으로서 유대인에게, 무슬림에게, 그리고 기독교 내에서는 아랍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리스정교회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으며 살았던 고통스런 삶을 이야기했다. 하나님이 그 아가씨의 마음을 광야처럼 곤고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마음을 광야처럼 아무것도 없고 메마른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것은 복잡한 우리 생각을 비우고 우리 마음 안에 당신의 말씀을 세워 당신으로부터 새 힘을 얻게 하시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유대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이 주리신 예수님에게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였고, 천하만국을 보여 주며 예수님을 유혹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다. 이처럼 광야는 우리 마음에서 육신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마음에 세우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교회 안에서 나는 때로 나를 거절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내모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경험했다. 그것은 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을 섞어서 살고 있는 내 마음을 비운 후 말씀만 세워 살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큰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유대인들의 높은 마음,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광야같이 비워 나가는 일을 하신다. 그것은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 일을 우리에게 먼저 약속하시고,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내 마음에 진실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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