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이 만들어지기까지
통조림이 만들어지기까지
  • 글/최순식 선생님
  • 승인 2014.09.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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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에는 음식물이 쉽게 상합니다. 아이스박스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많은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먹고 싶은 메뉴를 제대로 먹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통조림입니다. 이번 달에는 식품 보존법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통조림에 대해 알아봅니다.
 
 병사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줄 방법을 찾아라!
프랑스혁명 이후 제1통령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1769∼1821)은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여 프랑스에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황제가 된 뒤에도 유럽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세력을 키워나가는 등 나폴레옹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한번은 나폴레옹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있는 병사들에게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할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전장의 고된 생활과 군인들의 어려움을 잘 아는 나폴레옹이었기에, 병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신하들과 과학자들과 식품 관계자들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병사들은 모두 우리의 소중한 아들이고 형제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질 각오로 전쟁터에 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항상 신선하고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연구기관을 만들어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더욱이 머나먼 길을 가야 하는 러시아 원정을 준비하는 나폴레옹에게 전쟁터에서의 식량 문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전 국민에게 알리십시오! 전쟁터에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에 많은 현상금을 걸겠습니다. 국민들의 지혜를 모아봅시다!”
 
훈장을 받은 병조림 보존법
 
1804년, 파리의 조그마한 과자공장 기술자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필요를 느끼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병조림’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입구가 넓은 유리병에 푹 삶은 고기와 채소를 넣고 가열한 뒤 코르크 마개로 덮어 밀봉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페르는 심사에 통과하여 1만 2천 프랑의 현상금(은 45㎏ 가치의 큰 액수)과 훈장을 받았습니다.
병조림 덕분에 프랑스 병사들은 전장에서도 비교적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음식을 담은 병을 운반하는 도중 병이 깨지는 사고가 끊이질 않은 것입니다. 아페르는 그러한 병조림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여 나폴레옹이 유배를 가는 바람에 아페르의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차가운 음식을 데워 먹다가
영국 런던의 주석(朱錫)기술자 피터 듀란드는, 공장 일이 바빠서 거의 매일 공장에서 병조림에 담은 음식으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날도 듀란드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병조림을 꺼냈습니다.
“음식이 너무 차갑게 굳어버려서 먹기 곤란하군. 어떻게 하지?”
듀란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는 주석 깡통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는 곧 깡통에 병조림 음식을 쏟아 붓고 난로에 올려놓고 데웠습니다. 그날부터 듀란드는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깡통에 담아 데운 음식을 먹다가 번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처음부터 유리병 대신 깡통을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깡통은 깨지지도 않고 또 유리병보다 가볍기도 하고…….”
듀란드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깡통을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었습니다. 1810년, 마침내 듀란드는 주석으로 만든 캔(깡통)통조림을 발명, 특허를 받았습니다. 양철을 잘라 둥글게 말아 납으로 땜질하여 만든 최초의 ‘캔통조림’이 탄생한 것입니다. 1812년, 듀란드는 런던의 갬블회사에 특허권을 팔았고, 1830년부터 캔통조림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통조림 따기가 보통 일이 아냐
양철을 잘라 땜질해서 원통 모양의 캔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능공 한 명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것은 60개 정도였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몰려드는 주문을 다 맞춰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초기의 캔통조림은 따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망치와 끌이나 칼을 사용해야만 열 수 있었습니다. 마땅한 도구를 찾지 못한 전쟁터에서 총을 쏘아서 캔통조림을 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한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끝에 1847년에 깡통 만드는 기계가 발명되었고, 1860년에는 더 얇은 강판으로 만든 캔통조림이 만들어졌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통조림산업은 미국에서 활발하게 발달해, 1870년에 미국의 윌리암 라이만이 ‘캔 오프너(통조림 따개 장치)’를 발명했고, 1921년에는 보스턴에 통조림 가공 공장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통조림을 주요 무역상품으로 선정, 처음으로 깡통에 화려한 그림을 인쇄하였고, 무역 시장에 유통시켜 크게 성공, 통조림의 세계화를 이룩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마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마트에 들어가면 참치, 고등어, 꽁치 등의 생선은 물론이고 파인애플, 복숭아 등 온갖 과일통조림들이 눈길을 끕니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음식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통조림!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통조림은, 신선한 음식에 사랑을 담은 귀한 양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통조림은 ‘안전한 식품’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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