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귀
  • 한국 전래동화
  • 승인 2015.01.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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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동화
옛날에 한 정승이 살았습니다. 정승은 나랏일을 자신의 일처럼 돌보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관직에서 물러난 정승은 남은 재산을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이 돈을 가지고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살게나.”
하인들은 정승에게 몇 번이나 허리 굽혀 절을 했습니다. 정승도 그동안 살던 집을 정리하여 천 냥을 가지고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정승과 아들이 강가의 나루터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한 노인이 나귀를 끌고 와서 말했습니다.
“선비님, 이 나귀를 사 주십시오. 급히 돈을 쓸 일이 생겨 팔려고 합니다.”
“보아하니 나귀 한쪽 눈이 성하지 않은 듯한데, 얼마나 받으려 하오?”
“천 냥이옵니다.”
“노인장, 이 애꾸눈 나귀가 어찌 천 냥씩이나 된단 말이오?”
“그러합니다만, 선비님께서 이 나귀를 사 주시면 두 목숨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두 목숨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 고을 이방이던 제 아들이 나랏돈을 훔쳤다가 잡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랏돈을 훔쳤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정승이 노여운 목소리로 말하자, 노인이 정승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10년이나 앓아누워 있는 바람에 제 아들이 약을 구한다고 나랏돈에 손을 댄 것입니다. 아들이 죽으면 제가 살아 무엇 하겠습니까? 뭐든 팔아서 돈을 갚아야 하는데 가진 것이라고는 이 나귀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이 나귀를 천 냥에 사주십시오.”
정승은 노인의 이야기를 듣자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귀로군! 하지만 두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니 사 주어야지.”
정승은 가지고 있던 천 냥을 노인에게 주고 나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나귀에 태워 고향으로 갔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정승은 늙고, 정승의 아들은 과거를 볼 나이가 되었습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날, 정승의 아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몸 조심히 잘 다녀오너라. 나귀가 늙어서 빨리 걷지는 못하겠지만 친구 삼아 함께 가거라.”
아들은 애꾸눈 나귀를 타고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정승 아들이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어 나룻배를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강을 건너려고 했는데 나귀가 빨리 걸어주질 못하니 원. 내일 아침 강을 건너려면 이곳에서 하루 머물러야 하겠는걸.”
아들은 나루터 바로 옆에 있는 기와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했습니다. 하인은 정승 아들을 맞아 안내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승 아들이 끌고 온 나귀를 보고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주인 나리, 여기 좀 나와 보십시오. 나귀 눈이…….”
하인이 호들갑을 떨자 정승 아들은 나귀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이래봬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귀라오.”
집 주인이 방에서 나오며 정승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나귀라니요?”
“오래 전 제 아버지께서 이 강가에서 천 냥이나 주고 산 나귀랍니다.”
정승 아들의 말을 들은 주인과 하인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시군요. 날이 저물었으니 어서 들어오시지요.”
주인은 정승 아들을 사랑채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하인에게 저녁상을 차려 내오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잘 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식사도 많이 하시고 편히 쉬시다 가십시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는 정승 아들에게 하인이 달려와 말했습니다.“선비님, 죄송합니다. 밤사이 나귀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갈 길이 바쁘실 테니, 우선 이 말을 타고 가십시오. 돌아오실 때까지 꼭 찾아놓겠습니다.”
“할 수 없지. 늙은 나귀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니 꼭 찾아 주시오.”
정승 아들은 날쌘 말 덕분에 시험장에 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잘 치러 장원 급제를 했습니다.
“아버지께 빨리 소식을 전해야지. 나귀도 꼭 찾아서 데려가야 할 텐데…….”
정승 아들은 쉬지 않고 말을 달려 나루터 기와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대문 앞에 애꾸눈 나귀가 묶여 있었습니다.
“나귀를 찾았구나!”
정승 아들은 반가운 마음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정승이 나오며 아들을 맞았습니다.
“잘 다녀왔느냐?”
“아니!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깜짝 놀란 아들을 보고 정승은 말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그때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고 말했습니다.
“선비님, 그 나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제가 감췄던 것입니다.”
“아니, 왜요?”
“제시간에 시험장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늙은 나귀를 감추고 빨리 달리는 말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선비님의 아버지는 제가 나귀를 몰고 가 모시고 온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요?”
“오래 전 강가에서 저 나귀를 천 냥이나 주고 샀다고 하셨지요?
그 천 냥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방이 바로 저입니다.”
그제야 정승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승님 덕분에 나랏돈을 갚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뒤로 은혜를 갚을 마음으로 이곳에 집을 짓고 혹시나 두 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귀를 끌고 오셨으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들어가 식사부터 하시지요.”
그날 나루터 기와집에선 정다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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