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와 둘리의 탄생 이야기
미키와 둘리의 탄생 이야기
  • 최순식 선생님
  • 승인 2015.01.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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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발명 이야기 19
전기나 연필 등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발명품들도 위대하지만, 작가의 창의력으로 만들어진 만화 주인공들 또한 훌륭한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기쁨을 주는 일 또한 값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달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디자인 발명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림과 함께 꿈을 키운 소년
        월트 디즈니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어린이 만화 캐릭터 중의 으뜸은 미키 마우스입니다.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킨 월트 디즈니는 1901년,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디즈니가 네 살 되던 해에 마셀린이라는 농촌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디즈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도 못가고 늘 그림만 그리며 지냈습니다.
하루는 디즈니가 이웃에 사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그렸는데, 그림을 본 의사 선생님이 디즈니의 그림을 병원에 걸어 놓고 “이 그림을 열 살짜리 소년이 그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하고 손님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농사마저 할 수 없게 된 디즈니 가족은, 다시 도시로 나와 신문 판매점을 시작했습니다. 디즈니는 형들과 함께 신문을 팔면서 상업 미술학교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했습니다. 디즈니는 틈틈이 학교 신문에 삽화를 그리고 광고회사에 들어가 도안사(그림의 모양, 색채, 배치 등을 생각하고 연구하여 설계하는 사람) 일을 하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습니다.
 
우연히 만난 생쥐 한 마리
어느 날, 디즈니의 집에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디즈니는 생쥐의 재롱을 보며 잠시나마 근심을 잊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는 가난에 쪼들리며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저 생쥐의 재롱을 보여주면 즐거워할 거야!”
그날부터 디즈니는 귀여운 생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28년, 마침내 ‘미키 마우스’가 탄생한 것입니다.
미키 마우스를 주인공으로 그린 디즈니의 만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매달 3,000만 부라는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자랑하며, 20여 개국에 번역 출판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들
그는 미키 마우스 개발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리 ‘도날드’를 만들었고, 최초로 3색 칼라 만화영화 <돼지 3형제>를 제작해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1937년에는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만들었고, 1955년에는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를 설립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1966년에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1923년에 형 로이 디즈니와 함께 창립한 디즈니 스튜디오는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을 위한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공주들
 
만화 잡지에서 태어난 둘리
          김수정 작가
미국에 미키 마우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아기공룡 둘리’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둘리는 미키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우리나라 만화 주인공의 대표로 꼽힙니다. 
둘리는 만화가 김수정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수백만 년 전에 태어나 빙하에 묻혀 있다가 초능력을 갖게 된 아기 공룡 둘리! 서울 변두리 평범한 가정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일으키는 사건은 신선한 재미와 웃음을 주었습니다. 둘리는 1983년 4월부터 <보물섬>에 연재를 시작해 10년 동안 어린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형들의 노트를 스케치북 삼아
1950년, 진주에서 11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난 김수정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형들의 공책에 그림을 그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를 따라 다니던 어린 김수정에게 시장통은 유일한 놀이터였습니다. 훗날, 김수정이 만화가로서 작품구상을 할 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장통의 장면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김수정은 다니던 대학을 중단하고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고생 끝에 1975년, 소년한국일보 신인 작가상을 받아 만화가가 되었지만, 그의 작품을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들고 출판사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학생잡지 <여고시대>에 ‘오달자의 봄’을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보물섬>의 연재작가가 되면서 당당히 유명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캐릭터 상품
둘리는 생긴 모습도 귀엽지만 다정하고 용감한 친구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우리나라 최초의 캐릭터 상품으로 개발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에는 만화는 작품 내용과 그림체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만화 주인공을 인형으로 만들어 판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을 때였습니다. 미국에 ‘미키 마우스’가, 일본에는 ‘키티’가 있었지만, 그건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캐릭터 상품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만화잡지인 <보물섬> 편집자로 있던 필자와 김수정 작가는 수많은 시도 끝에 지금과 같은 둘리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만화는 10년 동안 연재되고 끝났지만, 둘리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형은 물론이고 학용품, 장난감, 신발, 게임 등으로 어린이들 곁에 살아 있습니다.
   1982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잡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디즈니왕국이라고도 불리는 디즈니사의 캐릭터 상품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그림을 그리고 싶어 만화를 시작한 디즈니의 작은 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둘리 아빠’라고 불리고 지금은 ‘둘리 나라’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작가 김수정 또한 늘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유익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부와 명예를 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고 꿈이 있었기에, 가난과 무시를 이기고 큰 성공을 이뤄낸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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