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함께 보낸 젊은 날의 큰 행복!
복음과 함께 보낸 젊은 날의 큰 행복!
  • 편집부
  • 승인 2015.03.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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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단기선교사들

 

 

2014년 한 해 동안 세계 74개국에 파견되어 활동했던 굿뉴스코 단원 447명이 귀국했다. 갈 때의 마음은 각기 달랐지만 돌아온 이들의 마음에는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감사와 행복이 가득했다. 복음을 전해 천하보다 귀중한 한 생명을 구한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고, 주님의 마음으로 인도하는 교회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간다의 장영찬, 파라과이의 이유빈, 미국의 이정빈, 르완다의 김혜영 등 네 사람의 간증을 소개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김형진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10일간, 6개 도시, 1천 킬로미터’ 무전전도여행을 선물하셨다. 한편 걱정도 됐지만 ‘하나님은 모든 권세와 능력을 예수님께 주셨고, 그 예수님이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셔서 복음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실 것’이라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박은나•이다은 자매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다. 선교사님은 각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라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그 말씀이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가 되었다.

첫째 날_이간가Iganga 2014. 12. 30
오후 3시 즈음, 첫 번째 도시인 이간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높은 사람을 찾아다녔는데,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초라하고 작은 집들뿐이었다. 고민하다가 시내에서 제일 커 보이는 창고가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직원들은 우리를 사장님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분은 인도인으로 무신론자였다. 사장님이 흔쾌히 말씀을 듣겠다고 하셔서 바로 성경을 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자기도 죄가 없다며 놀랍게도 복음을 받아들이셨다.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와 길을 걷다가 호텔이 보여 들어가서 지배인을 만났다. 우리를 소개하며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자 그가 듣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다은이가 복음을 전했다. 지배인은 매우 신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한편으론 굉장히 아쉬웠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을 따라가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마음에 다시 힘이 났다.
 잘 곳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선교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아프리카에서는 오후 4시경에는 잠잘 곳을 구해야 위험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미 저녁 6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9시가 다 되고 밤이 찾아왔다. 순간 낙심이 됐지만 성경을 읽었다. 마가복음 5장에서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심히 통곡할 때,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 내 마음에는 잘 곳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것은 내 눈으로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다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것 같았다. 그 마음이 생기고 몇 분 안 되어 어느 교회에서 숙소를 제공해 주어 식사도 맛있게 하고 잠도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매순간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들을 만날 수 있었던 복된 하루였다.

 

 

둘째 날_음발레Mbale 2014. 12. 31
다음 도시 음발레는 이간가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한 자동차가 우리 앞에 섰다. 운전자가 우리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하자 자기 차가 한국 차라며 타라고 했다. 그분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몰랐는데, 직업이 판사라고 하셔서 율법을 이야기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감사했다. 그분이 구원은 받지 않았지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셋째 날_소로티Soroti 2015. 1. 1
음발레에서 소로티로 가는 길에도 자동차를 얻어 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운전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입을 열게 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아직 죄를 사함받지 못한 걸 시인하며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오후 2시쯤 소로티에 도착해 한 집에 들어갔다. 그 집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여서 말씀을 전하기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셔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였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복음을 전할 수 있어 감사했다.
 선교사님께서 보내주신 신년사 말씀을 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어디서 먹고 자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새 노래를 가르쳐 주셔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 숙소도 얻고 밥도 먹을 수 있어.’ 우리 노래 버리고 새 노래를 부르자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1월 1일은 공휴일이라 시내에 있는 가게와 건물이 문을 닫아서 동네로 들어가 한 집을 방문했다. 은나가 그 집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이 은나의 서툰 말과 상관없이 그들이 마음으로 귀기울여 듣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내가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이라며 행복해 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준비하신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녁이 되니 잘 곳을 구해야 하는 문제가 다시 우리 앞에 찾아왔다. 잘 곳을 찾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고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숙소를 주셨기에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여러 번 거절당한 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들어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주인인 찰스 아저씨는 이틀 간이나 지내라며 두 개의 방을 주셨고, 저녁 식사도 대접해 주셨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것이 아주 좋다며 돈은 안 받을 테니 대신 자신의 사업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기뻐하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게스트하우스를 4개나 운영하는 회장님이었다. 주님이 일하심을 분명히 보며 오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넷째 날_소로티 2015. 1. 2

소로티에서 둘째 날을 맞았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전도할 곳을 찾다가 한 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두 대학생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엔드류라는 학생이 구원받아 수양회에도 초청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다른 집을 방문하니 마침 온 가족이 함께 있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하자 가족들이 다 모였다. 다은이가 전하는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해 어머니와 딸이 구원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수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오후에는 날씨도 덥고 배도 고프고 복음 전할 곳도 마땅치 않아 몸도 마음도 쉽게 지쳤다.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길 바라고 내 속에서 감사가 계속 일어나길 바랐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니까 ‘난 부족해. 난 잘 못 해’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이 사탄의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하나님께서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가르쳐 주셨다.

다섯째 날_리라Lira 2015. 1. 3
소로티에서 떠나는 날, 우리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 준 찰스 아저씨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아저씨를 만나려니 염려가 됐는데, 하나님이 말씀을 보여 주셨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아저씨에게도 오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겠다는 믿음이 일어났다. 한 시간 넘게 말씀을 나누는 동안 아저씨는 많은 것을 물으셨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이 되려고도 했지만, 하나님은 분명 아저씨에게도 구주가 나셨다고 말씀하셨기에 형편과 상관없이 그분은 구원받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선물로 드리고 리라로 출발했다.
 리라로 갈 때는 차를 잡아 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차를 얻어 탔지만 가다가 중간에 내려야 했다. 땡볕이 내리쬐는 곳을 걸으려니 아쉬움이 컸다. 한참 걷다가 길가에서 사람들이 잭플룻Jack Fruit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그분들에게 다가갔더니 흔쾌히 과일을 주셔서 즐겁게 먹었다. 그분들은 한 가족이었다. 그들에게 은나가 복음을 전해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많은 생명이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셨다. 땡볕이 내리쬐는 도로에 내리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가족과 헤어져 다시 차를 잡아 탔다. 그 차에는 두 남자가 타고 있었다.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마음과 내 입을 여셨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는 말씀을 그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무척 감사했다.
 오후 3시가 넘어 리라 시내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는데 다음날이 주일이라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Assemblies of God’이라는 교회로 갔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우리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자녀들의 방도 쓰도록 주셨다. 더욱 감사한 건, 주일예배 때 우리에게 간증을 하고 오후에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큰 선물이었다.

 

 

여섯째, 일곱째 날_리라&굴루Gulu 2015. 1. 4~5
오전 주일 예배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다은이가 간증했는데, 교인들이 우리를 돕고 싶다며 헌금을 해서 모두 92,300실링(약 4만원)이나 되는 돈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자신을 보면 연약하지만 전도여행을 하는 우리는 이미 유명한 자였고, 항상 기뻐하는 자였고,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였다. 하나님이 전도여행 중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을 이 말씀처럼 이끄실 것을 생각할 때 크게 소망스러웠다.
 오후에 은나는 교인들과 교제하고 나는 목사님에게 복음을 전했다. 목사님께 말씀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바라보며 복음을 전했다. 목사님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오후에는 한 남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도중에 부루노라는 남자가 왔다. 원래 말씀을 나누던 사람은 바쁘다고 가서 부루노에게 영원히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는 오직 한 가지 길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부루노는 전에는 듣지 못한 놀라운 말씀이라며 무척 기뻐했다. 우리의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한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을 볼 때 기쁘고 감사했다.
 리라를 떠나며 목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마음껏 말씀을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인을 만나니 모든 부분에 돌봄을 받는 은혜를 입은 것처럼 주님이 이 교회를 돌봐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생겨 다음 도시인 굴루로 향했다.
 굴루까지 가는 데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굴루에는 우리 교회가 있고 전에 한 번 전도여행을 갔던 곳이었다. 자매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고 하여 전도여행을 갔을 때 성경공부를 했던 헨릿의 가게에 갔다. 헨릿은 음료수도 주고 자기 집에서 지내라며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구원도 받지 않은 그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놀라웠다. 헨릿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5남매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들도 우리를 무척 좋아했다. 하나님이 그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걸 생각하니 감사하고 기뻤다.

여덟, 아홉째 날_나카송골라Nakasongola 2015. 1. 7~8
지난 전도여행 때 성경모임에 참석해 구원받은 리차드 집으로 갔다. 당시 그의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그날 부모님께 복음을 전해 연로하신 리차드의 아버지가 구원받으셨다. 짧은 시간에 전한 복음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음날 나카송골라로 가기 전에 헨릿 가족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를 통해 허다한 별과 무수한 모래같이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말씀에 소망을 두고 나카송골라로 떠났다.
 나카송골라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넘어 어두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거리가 몹시 어두워 강도를 만날까봐 걱정도 했지만 무사히 호텔에 찾아갔다. 주인에게 전화로 허락을 받고 식사도 제공받아 밤늦게 저녁도 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께서 한 말씀을 내게 보여주셨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생각하다 호텔 직원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밤 아홉시 반에 한 직원과 성경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분은 말씀을 아주 달게 들으며 필기까지 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 적는 분도 그분이 처음이었다. 다른 여직원 두 명도 같이 와서 복음을 들었는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처음에는 죄인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의인이라고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시고 도우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다.

마지막 날_1월 8일
무전전도여행 마지막 날이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니 내게 다시는 오지 않을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 같아 너무나 감사했다.
 나카송골라에 전날 늦게 도착했기에 우리는 오후까지 복음을 전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호텔을 나와 전도할 곳을 찾으러 동네에 들어갔다. 마땅히 복음 전할 곳이 없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할 마음을 계속 주셔서 길가에서 고구마를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셔서 난감했다. 우리는 복음을 쉽고 간단하게 심어주자고 생각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의인”이라는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장면이지만, 우리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기도도 해달라고 하셔서 주위 분들을 불러모아 기도도 해주었다.
 동네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복음을 전하려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도 들으려고 하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분명 하나님이 여기에 보내신 이유가 있고 뜻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쉬고 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기에 ‘이대로 캄팔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가 마지막으로 다른 쪽 길로 가보기로 했다. 그때 지방 관청 건물이 보였다. 그곳 사람들은 바빠서 말씀을 나누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를 만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말씀을 듣다가 자신의 사업 파트너를 전화로 불러 같이 말씀을 듣자고 했다. 나는 두 분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두 분 다 복음을 받아들였고, 아주머니는 차비로 쓰라며 5천 실링(약 2천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너무나 신기했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나카송골라를 출발해 캄팔라로 무사히 돌아왔다.

무전전도여행을 하며, 종과 교회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는 나를 보았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온전하고 아름다웠다. 나 스스로는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해 주시고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행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10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당시 기쁜소식김천교회 목사님께서 바이올린을 켜는 형제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엄마가 내게 바이올린을 가르치셨다. 12살 때부터는 교회에서 찬송가 반주를 하며 취미 정도로 배웠다. 단기선교사로 갈 때는 엄마의 권유로 마지못해 바이올린을 들고 갔다.
 파라과이에 도착한 후, 4월 중순경에 대전도집회가 있었다. 그런데 집회를 앞두고 선교사님이 나에게 바이올린 독주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아순시온 교회는 예배당도 큰 데다가 집회 때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텐데, 그 앞에서 독주 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선교사님께 실력을 말씀드리자, 오히려 그때부터 선교사님은 구역예배 때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독주를 시키셨다. 한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도 혼자 버스를 타고 독주하러 보내시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 아팠을 때에도 멀리 지역 집회에 갔다 오라고도 하셨다. 그런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무척 미웠다.
 대전도집회가 시작되고, 3일 동안 오전과 오후에 독주를 했다. 그렇게 자주 연주하다 보니 어느새 10개나 되는 곡을 다 외우게 되었다. 바이올린 소리도 많이 좋아져 연주하다가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제야 비로소 선교사님과 사모님께서 왜 그렇게 나를 훈련시키셨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자주 연주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자주 연주하다 보니 사람들이 내 연주를 지루하게 여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공자처럼 기교 섞인 멋진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찬송가 정도만 연주하는 실력이다 보니,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연주할 때마다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지고 부담스러워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되었다.
 6월 말, 발례미라는 지방에서 성경세미나가 있어 그곳에 갔다. 차로 16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고등학교에서 단기선교사들이 준비한 공연을 했다. 학생들에게 문제가 많다고 들어 공연을 잘 봐줄지 많이 걱정했는데, 공연하는 내내 호응이 좋았다. 그리고 성경 말씀도 아주 잘 들었다. 내가 연주하는 것도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연주를 듣고 감동해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곳은 교육수준이 낮아서 학생들이 대부분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 들었을 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학생들 앞에서 더 마음을 쏟아 연주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부족한 내 연주를 들어준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부족한 내 실력으로 연주해도 주님이 쓰시니까 큰 박수를 받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에 힘이 생겼다. 내가 마음을 열고 보니, 그 학생들뿐 아니라 교회 성도들도 내 연주를 무척 좋아해 주시는 것이 보였다.
 마태복음 21장에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나귀처럼 내 생각에 메여 사는 사람인데, 주님이 나를 쓰겠다고 하시며 내 위에 올라타시니 내가 사람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도 시장님과 국회의원 같은 분들 앞에서도 연주했는데,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날 떠밀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자리에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님이 나를 써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고 감사한 것인지 알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아이티 영어캠프에서 소니라는 학생을 만난 일이다. 캠프에서 나는 학생들을 교실로 안내하는 일을 담당했다. 하루는 불량스러운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한 교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남학생이 와서 그들이 수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마침 취재팀에서 봉사활동 소감을 묻길래 그 학생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인터뷰하자고 했다. 그 학생의 이름이 소니였다. 소니는 그 학생들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할까봐 염려했고, 자신도 수업을 받기 위해 그랬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을 생각하는 소니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이어 복음반에서 말씀을 들은 소감을 물으며 내가 다시 복음을 전했다. 불어 통역이 잘 되지 않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하며 복음을 전하자 구원을 받았다. 소니는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믿은 후 이제 의인이 됐기에 죄가 없다며 무척 행복해 했다. 그때 나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아이티에 보내신 이유라는 생각이 들며 무척 감사했다.
 나는 소니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주고 싶어 시청 영어캠프에도 초청했다. 소니는 꼭 가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시청 행사에도 아주 많은 아이티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을 인솔하는데 한 학생이 멀리서 뛰어왔다. 소니었다. 너무 반가웠다. 캠프에 다시 와 주어서 고맙다고 하자, 이런 캠프에 초청해 주어서 더 고맙다고 했다. 그의 말에 내 마음이 울컥했다.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며 그런 행복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소니에게 아이티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하며 그때는 소니도 봉사자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소니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올해 다시 미국으로 간다. 아이티에서 소니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르완다에서 ‘피아노 아카데미’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성경 공부반에 갔고, 내가 그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나는 복음 전하는 법도 공부하고 내가 복음을 전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쉽게 구원을 받을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아카데미에 왔기에 성경공부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말씀을 듣고 간 한 학생은 내가 전한 복음을 목사인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가 혼났다면서 나에게 와서 따지기도 했다. 매일 복음을 전했지만 몇 개월 동안 학생들이 복음을 받이들이지 않자 내 마음도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그때 선교사님께서 아카데미에 오는 학생들 모두 구원받을 거라는 약속을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느냐고 하시며, 형편 때문에 약속을 버리지 말고 복음을 계속 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학생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나는 그동안 말씀을 믿지 않고 내가 학생들을 구원시키려고 노력했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낙심하며 어려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학생들이 구원받는 것이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을 주셨을 때는 학생들을 이미 구원시켜 놓으시고 말씀하신 거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때부터는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몇 달이 흘러 내가 한국에 오기 한 달 전, 놀랍게도 피아노 아카데미 학생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 어떤 학생은 나 때문에 구원받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구원받아 행복하다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와 상관없이 약속대로 일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르완다 선교사님과 나눈 교제로 내 마음이 바뀌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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