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
우리 모두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5.06.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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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강단

 
하나님께서 땅은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많은 나무들이 열매를 잃어버리고 있다. 포도나무는 모양은 없지만 그 열매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선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귀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전도자 훈련 과정을 가졌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죄소를 만나지 못해 죄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우리 선교회 안에 힘있게 흐르고 있는 복음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 복음을 전해 가족을, 친척을, 이웃을 죄악에서 구원하기를 주님 앞에 소망한다.
세상에 지진 등 어지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교회에서도 배도하는 악한 일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 사탄은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게 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거듭난 성도들이 성령이 교회에 들려주는 음성을 들어 허망한 육신의 욕망을 좇아 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게 되기를 바란다.

• 예수님이 영원계永遠界에서 이루신 영원한 속죄
• 마음을 지켜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게 해야
•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어
•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율법은 물러가고

예수님이 영원계永遠界에서 이루신 영원한 속죄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손에 들고 마음에는 성막을 담은 채, 빨리 성막을 지을 생각을 하며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중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신이라고 섬기며 그 앞에서 뛰놀았던 것입니다. 율법이 내려오던 날 십계명 중 1계명과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죄가 형성되었는데, 죄를 사할 수 있는 성막의 기구들은 아직 없었습니다.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두었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부 죄인이 되어 죽겠다 싶어, 모세가 돌판을 땅에 던져 깨뜨려버립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치라고 하여 3천 명을 죽이게 한 후,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큰 죄를 사해 달라고 간곡히 구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2장 3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죄가 사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유는 속죄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지은 죄는 레위기 4장에 나오는 대로 성막에서 속죄제사를 드릴 때 사해집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시간이 흐르면 과거에 드린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지은 죄는 씻어 주지만 지금 짓는 죄는 씻어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속죄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 것의 그림자인 이 땅에 있는 성소가 아닌 하늘에 있는 참 장막에서 당신의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영원한 곳이기에 죄를 사하는 능력 또한 영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영원계永遠界인 하늘나라의 성전에 제단이 있고, 시간계時間界인 이 땅에 그 모형인 제단이 있었습니다. 시간계인 이 땅에서 드리는 제사는 영원하지 않기에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당신의 피를 이 땅에 있는 제단에 뿌리지 않고, 하늘나라에 있는 제단에 뿌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어디에서도 여러분의 죄의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씻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마음을 지켜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게 해야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도 속죄소가 없어서 어떻게 죄를 속하는지 몰라 죄 속에서 삽니다. 우리 교회에는 복음이 힘있게 역사하고 있는데, 사탄은 온갖 계획으로 이 복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 계획 가운데 하나가 우리 삶을 편하고 안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는 참 기쁨을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 차를 사면 조금 즐거워하다가 그 즐거움에서 금방 나와야 합니다. 집을 샀을 때, 아들을 낳거나 손자를 보았을 때 어느 정도 기뻐하다 그 기쁨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기에 머물면 마음이 안일해집니다. 안일한 가운데 있으면 부담스러운 일이나 핍박이 찾아올 때 싫습니다. 삶이 좋아질수록 안일한 것을 요구하고, 그럴수록 신앙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이 싫고, 기도하면 졸게 됩니다.
 돈이 많다고 삶의 균형을 깨뜨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하게 하십시오. 돈을 밀어내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돈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유익합니다. 잠을 마음껏 잘 수 있을 때 제한해 보십시오. 바쁘지 않으면 일부러 걸어다녀 보십시오. 삶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만듭니다. 38년 된 병자는 고통에 익숙했기에 마음을 꺾고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일어나는 것이 쉬웠지만, 나아만 장군은 삶이 편안했기에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땅이 있고, 하나님이 하신 “땅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말씀이 땅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땅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을 냅니다. 이것은 성경의 법칙입니다. 말씀 외에 다른 기쁨을 찾으려는 데서 우리 마음을 지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환난과 시련이 닥쳐왔을 때 우리를 거기에서 건져내고 이기게 해줍니다.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부담과 고통과 어려움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채워져 있으면 어떤 문제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채워지게 성경을 읽으십시오. 설교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일 설교를 다섯 번씩만 들어 보십시오. 자매님들은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집안 일을 해보십시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새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사십시오. 말씀을 읽고, 듣고, 전하고, 이 세 가지를 생활화하십시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굉장히 쉬운데 사탄이 작용하기에 어렵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성경은 우리가 거룩하다고 하지만 사탄은 어떻게든 말씀을 듣지 못하게 우리 귀를 막습니다. 그리고 ‘내가 거짓말했는데, 누굴 미워했는데, 도둑질했는데, 음란한 생각을 품었는데 어떻게 거룩해? 난 부족해’라는 생각을 넣어줍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을 가장 싫어해서 어떻게든 마음을 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반대되는 생각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죄를 짓기에 거룩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은 사탄이 넣어준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실 때,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내가 거룩하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셨기에 그렇게 믿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무얼 잘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옳은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의 은혜나 역사를 맛본 후 자신을 믿는 마음이 커져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싶다고 순종이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높아져서 육체의 욕구를 좇아 흘러간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높아질수록 주님의 일에 소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대하며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악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물질을 주님께 드리고, 몸을 드리고 생명을 드려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는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멸망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나를 위해 예

 
수님이 피 흘려 구원하신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계속 낮추어야 합니다.
 신앙은 어렵지 않지만 마음의 자세가 좋지 않기에 신앙이 어렵습니다. 마음이 낮아지면,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피가 나 같은 인간을 거룩하게 했구나! 내가 거룩하고 온전하구나!’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속에 흘러들어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삶을 살게 됩니다.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구약 시대에 7월 10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속죄일입니다. 그날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피 없이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담대함을 얻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잘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자유롭고 잘못하면 부끄럽다면, 그것이 우리 신앙에 오류를 만들어냅니다.
 육신에 끌리다 보면 우리가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아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은 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하면 그 사이에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데 빠져서 기도도 못 하고 성경도 읽지 못합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마음이 하나님과 더 멀어져, 사탄이 더 깊은 타락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을수록, 악을 행할수록, 잘못할수록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위해 흘려졌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 죄 값을 우리가 치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치러졌기에, 죄에 대해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기에 언제든지 성소에 담대하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쳐져 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흘려졌으니 아무나 지성소에 자유롭고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우리가 헌금을 드릴 수 있고, 주님을 위해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한 것이 감사하지만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실 것이다’라는 마음은 절대로 가져서 안 됩니다.
 저는 구원받은 뒤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서는 데 내 행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자신의 행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코 연결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에 예수님의 피 외에는 절대로 다른 것을 더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율법은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를 향연으로 가리고, 그 위에 피를 뿌리고, 천사의 날개로 덮으라고 했습니다. 법궤의 뚜껑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뚜껑을 열면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법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으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받아들인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기에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거룩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되려면, 하나님처럼 자비와 사랑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사랑이 생기고, 의와 거룩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해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죄를 이미 다 사했기에 쳐다볼 필요도 없고, 율법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이 왕 노릇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어느 여자가 간음하다 잡혔을 때 율법이 “너, 간음했어!” 하고 정죄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자를 끌고 예수님 앞에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자의 운명이 지금까지는 율법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의해서 결정되는 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시고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새 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예레미야 31장 34절 말씀으로 여자를 재판한 것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율법 아래 있을 때에는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자 율법은 물러갔습니다. 그 율법을 법궤 안에 넣은 후 뚜껑을 닫고, 그 뚜껑을 피로 덮고 천사의 날개로 덮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도 율법을 열지 말하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율법에 매이지 말고 믿음으로 달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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