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더러운 인간의 의지를 고집하며 살아온 나를..
[간증] 더러운 인간의 의지를 고집하며 살아온 나를..
  • 굿뉴스데일리
  • 승인 2015.06.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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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석 (기쁜소식한밭교회)

중학교 2학년 때, 수업료를 몇 개월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간 적이 있다. 그때 받았던 충격으로 학창시절을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와 열등의식 속에 갇혀 살았다.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가급적이면 피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어두운 시절을 보낸 데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1988년 10월 19일, 그때 나는 26살이었다. 그날이 없었다면 아마 내 인생은 비참했을 것이다. 비틀어지고 망가진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면서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불행한 인생을 살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1988년 그날, 내 인생은 비로소 소망을 찾았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나를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대로 고통과 죄악의 어두움에서 구원해 주셨다.
하지만 신앙생활이 늘 감사하고 기쁘지만은 않았다. 사탄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심어놓은 죄악의 사상이 끊임없이 나를 속이고 괴롭혔기 때문이다. 은혜를 많이 입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종과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내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마음이 들지만 그 어떤 신앙의 단계를 넘어갈 수 없었다. 자연히 교회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없었고, 교회와 멀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는 많이 봉사했어. 다른 형제들은 안 하는 일들을 나는 했잖아. 그런데 왜 저 형제가 나보다 인정받지?’ 하면서 마음을 닫고 살았던 것 같다. 마치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처럼 말이다. 교회가 내 마음에 부당하게 여겨지고, 목사님께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몰랐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괴로움 속에서 사탄이 주는 생각을 따라 세월을 보냈다.
급기야는 ‘교회가 틀렸어.’ 하는 마음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이것이 문제고, 저것도 문제야!’ 소리치며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사탄이 내 생각과 행동이 옳은 것처럼 나를 부추겼다. 처음에는 내 결정이 옳은 것 같았다. 형제들이 나를 찾아와 권고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옮음 속에 빠져 있는 나를 하나님은 잠언 18장 1절 말씀으로 괴롭혔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 18:1) 나에게 있는 자유와 옳음이 이 말씀과 자꾸 부딪혔다.

 
결국 교회를 떠난 지 2년 3개월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기 얼마 전 마태복음 12장을 읽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바리새인들을 만나 대화하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1~8)
바리새인들의 옳은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틀렸다고 말했다. 바리새인들은 본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판단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한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에게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 어떤 열매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나님이 우리 선교회를 통해 일하심은 분명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말씀하심도 분명했다. 더러운 인간의 의지를 고집하며 살아온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2013년 박옥수 목사님의 신년사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활짝 열어 주었다. 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라는 핑계를 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하나님이 전도서 3장을 통해 말씀하셨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 3:1~8)
하나님이 내게 ‘지금 다시 교회로 돌아갈 때’라고 하셨다. ‘아! 내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구나!’ 내 마음이 거기에 이르렀을 때 신기하게도 이미 나와 교회는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교회에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바꾸어 주셨고, 말씀으로 이끌어 주셨다. 폭풍이 몰아치듯 하나님이 내 삶 속에 일하셨다. 온전히 하나님이 일하셨다. 나 스스로는 절대로 내 옳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비우셨다. 나는 교회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적하고 판단하는 자였다. 할 말이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20년 전에 어느 목사님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신 형제는 군것질 신앙이야!”라고 하신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모두들 내가 왜 그렇게 못마땅하지? 내가 뭘 잘못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며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하나님의 종과 교회가 세워져 있지 않은 신앙은 ‘군것질 신앙’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세우고 싶었다. 사탄이 주는 욕망과 생각을 그대로 따라 살면서 어쩌다 한 번씩 군것질하듯 신앙을 했다.

 
하나님이 잃어버렸던 당신의 종과 교회를 다시 찾게 해 주셨다. 그리고 내 생각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지금도 가르쳐주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다. 전에는 교회가 소중한 걸 몰랐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종들과 형제 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포도원에 11시에 들어온 품꾼처럼, 누가복음 15장의 맏아들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며 마음을 닫고 살았던 나를 버리지 않고 마음을 돌이키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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