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 진행 김소리
  • 승인 2015.07.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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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나빠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권태인(기쁜소식강북교회)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은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듣다가 자신이 못난 사람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어쩌다 교회에서 영화를 볼 때 형제 자매들이 영화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참 못난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영화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내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를 볼 때는 자막을 읽어야 해서 더 어렵고, 숫자는 아예 생각나지 않는다.
 복음을 잘 전하는 형제 자매들을 보고 있으면 특히 나의 부족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전도할 때 필요한 성경 구절을 지겹도록 듣고 읽었지만, 그 구절들이 몇 장 몇 절에 있는지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다. ‘나는 성경을 잘 못 찾잖아. 복음 전하는 건 내 소관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교회에 나오면서부터 7년을 복음 전도의 벙어리로 살았다. 8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성경을 펴지 않고 복음을 두 번 전했는데, 그때 ‘나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이 조금 일어났다. 한번은 로마서 3장부터 8장까지 주요 부분을 순서대로 읽어가며 설명해 주는 식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기긴 했지만 지금처럼 전도여행을 다니는 삶은 상상도 못했다. 그 후 2년 동안 여전히 벙어리로 살았다.
 2014년 2월, 주일예배를 마치면서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할 전도팀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하셨다. 나는 그때 그 광고를 잘못 이해했다. 중국 교회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데, 행사도 관람하고 전도팀을 따라다니며 집회에도 참석하는 ‘여행’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중국에 가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뭔가 착각했다는 사실을 곧 발견했다. 여행이 아니라 전도여행이었다. 너무 부담스러워서 참가를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현지에 가서 대충 따라다니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2014년 3월에 예정대로 중국 전도여행 길에 올랐다.
 나와 아내는 중국 남방의 한 지역 교회에 도착했다. 그곳 목사님과 마주앉자마자 나는 내 생각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저는 한국에서 교회 언저리만 맴돌던 형제입니다. 집사나 구역장도 아니고 말씀을 전해본 적도 없습니다. 성경을 펴놓고 복음을 체계적으로 전해본 경험은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저의 가장 큰 문제는 기억력이 너무 나쁘고, 숫자에 특히 약해 성경 구절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조용히 듣기만 하셨는데, 나는 목사님이 틀림없이 나에게 실망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튿날 목사님이 내 이야기와 상관없이 나를 전도팀의 맨 앞에 세우셨다. 떠밀리다시피 해서 무작정 전도여행 길을 나섰는데, 참으로 막연했다. 나는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딱 한 가지 이야기로만 말씀을 전했다.
 “저는 세상에서 다 망한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탕자가 되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로마서 3장부터 8장까지 중요한 구절의 장과 절을 메모지에 써놓고 보면서 성경을 찾아 읽어주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전도 방법이었지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셔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전도여행 마지막 주 일요일 아침에는 어느 교회에 주일예배를 인도하러 갔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그 교회에는 성도가 3명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나섰다. 그런데 내가 있던 곳의 형제 자매들 7명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정말 피하고 싶었다. 중간쯤 갔을 때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 3명이 추가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곳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새로 온 사람이 3명이 아니라 7명이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저 마음속으로 하나님만 불렀다. 같이 간 형제 자매들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나는 말씀을 전했다.
 이전에 했던 대로 로마서를 읽고 설명해 주었더니 감사하게도 대부분 복음을 받아들였다. 죄가 없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야고보서 2장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천국에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을 수 있습니까?” 순간 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나님께서 이 질문을 할 걸 아시고 대답을 미리 준비하게 하셨구나!’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야고보서 2장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날 아침에 신기하게 야고보서 2장을 펼쳐서 읽었다. 그때 말씀을 자세히 읽으면서 ‘야고보서 2장이 이런 뜻이구나!’ 하며 묵상했던 터라 어느 말씀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나는 2장 전체를 한 절 한 절 읽어 가며 ‘행함 없는 믿음이란 이런 뜻이다’라고 설명해 주고, 다시 복음을 전했다.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이 기뻐했고, 질문했던 사람도 죄 사함을 받았다며 손을 들었다. 
 전도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처음 만났던 목사님과 다시 마주앉았을 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1주일 전 형제님이 여기 도착해서 이야기하셨을 때 ‘이분이 큰 은혜를 입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국 전도여행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하셨다. 내 모습,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하시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 복음을 전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것!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문제와 형편을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되돌아보면 유치하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라는 것!
 오랜 세월 동안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잡혀 산 것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살며 내 신앙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신다. 요즘은 거의 매달 1주일씩 중국 전도여행을 다닌다. 하나님이 신기하게 생업에 아무 문제가 없도록 은혜를 입혀 주신다. 앞으로 전도여행을 보다 확대해 좀 더 많은 중국 분들이 복음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 말하기와 글쓰기가 늘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항상 요점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간증문도 자세히 적어둔 요점을 나열한 뒤 살을 붙이는 식으로 작성했다. 글쓰기도 도우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마음이 비워진 전도자가 될 꿈을 가지고
김정민(기쁜소식구미교회)

 
2012년 전도집회 때였다. 집회 전 주에 추석이 있고 교회에 할 일도 많아 전도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형편은 그랬지만,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해 말씀을 주셨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견고한 여리고 성 같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무너진 성이었다. ‘안 되겠다’는, 여리고 성 같은 내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 전도하기 시작했다. 피아노학원 원장, 신발 가게 하는 분 등 세 분이 집회에 참석했다. 처음 만난 분들이었다. 집회에 참석하기까지 고비도 있었지만 집회 기간에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고 교회에 세워지기까지도 여러 고비를 넘어야 했다. 피아노학원 원장님은 다니던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교회 주일예배 때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심하게 대적하던 원장님의 어머니도 올해 대구 대전도집회 때 박옥수 목사님과 상담하며 마음이 열려 구원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2013년 봄 집회가 되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씀을 마음에 받았지만 사람들을 만나도 반응이 없었다. 형편 앞에서 믿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우리 교회 목사님 안에 있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믿음을 버리고 목사님의 믿음 안으로 마음을 옮겼다. 더 이상 형편을 보고 싶지 않았고, 설령 망한다 해도 말씀을 믿자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그 집회에도 내가 전도한 세 사람이 참석해서 구원받았다. 그 가운데 미장원 주인은 내가 보기에는 복음에 관심이 없어 ‘가끔 놀러나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집회에 참석해 구원받은 후 교회에서 믿음의 삶을 배우며 미장원에 오는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 애꿎게 우리 선교회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생겨 전도하려니 몹시 긴장이 되었다.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역시 견고해 보이지만 무너진 여리고 성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외롭지 않았다. 조롱과 무시를 당해도 담대한 마음이 생겼다.
 1년 전에 목사님의 인도로 ‘선기동’이라는 부자 동네에 전도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연결된 사람은 없었다. 1년이 지났지만 그곳에 구원받을 사람이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자매와 함께 그 동네를 찾아갔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마을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 차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주인이 차에서 내리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날부터 그분 집 마당에서 성경공부가 시작되었고, 그분이 집회에 참석해 구원을 받았다. 우리에게 마음을 닫고 있던 미국에서 온 40대 부인도 구원을 받았다. 나는 집회 전후로 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2015년 대구 대전도집회가 다가오면서 마음에 비상이 걸렸다.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고, 쥐어짜도 전도할 사람이 없었다. 목사님이 집회를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할 수 없는 인간인데, 하려고 했습니다. 악한 내 마음을 버리고 나니 ‘이 집회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았다. 일하실 하나님을 소망하며, 나는 쉬면서 전도하러 다녔다. 집회 이틀 전까지 집회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내 마음은 쉬었다.
 그때 한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문제가 있는 아들을 고치려고 우리와 만났다가, 구원받으라 한다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던 분이다. 그런데 아들이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해 병원에 보냈다며, 스님과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그림자가 아들을 괴롭힌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그림자를 떼내려면 예수님밖에 없다는 마음이 들어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그분이 대전도집회에 참석해 박옥수 목사님과 상담하며 구원을 받았다. 그 후 예수님을 믿는 마음으로 아들을 병원에서 데려와 함께 생활하는데, 아들도 교회에 같이 오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또, 구원받은 분이 있다. 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 평신도로 지내던 권사님이었다. 그분은 처음에 나를 이단시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보고는 우리 교회와 박옥수 목사님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집회 하루 전에 자꾸만 그분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분이 나가는 교회에서도 같은 날 집회가 있기에 갈 형편이 아니었지만 자꾸 만나고 싶어서 가게로 찾아갔다. 그분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가서 통닭을 먹고 가라고 사정했다. 밤 8시가 넘었기에 마지못해 따라갔다. 집에서 그분이 갑자기 ‘우리 남편을 살려야 한다’며 울었다. 자기 교회에서는 선교비만 내라고 하지 남편 문제는 자신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며 ‘박 목사님을 만나 우리 남편을 살려 달라고 해야겠다’고 울며 소리쳤다.
 9시 30분이었지만 그분을 모시고 우리 목사님을 찾아갔다. 모태신앙에, 전도사에, 희생하며 사신 분이었지만 목사님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해 구원을 받았다. 집회를 마칠 즈음 그분 마음이 아주 밝아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교제 중이고, 후속 집회 때에는 아는 집사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말씀을 듣기도 했다. 두 분 외에도 한 분이 더 참석해서 구원을 받았다. 
 부담스런 일은 끝이 없다. 부담을 피하고도 싶지만 그렇게 하면 내 신앙은 끝이다. 한번은 외숙모가 아들과 딸들을 부른 후, 나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복음을 전할까 갈등하다 그냥 나왔다. 나중에 외숙모께서 아쉬워하며 “복음 전하라고 불렀는데 왜 그냥 갔어?” 하셨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부담과 부딪치는 것보다 부담을 피했을 때 오는 고통이 더 컸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사모한다. 그들의 노래도 아름답지만 그들의 빈 마음을 사모한다. 마음이 비워진 그들을 하나님이 세계 최고의 합창단으로 우뚝 세우셨다. 어색하지만, 나도 구미에서 마음이 비워진 최고의 복음 전도자가 될 믿음과 꿈을 가져 본다.

복음을 전함으로 얻은 새로운 행복
헬렌 마이놋(자메이카 킹스턴 교회)

 
내가 관광부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가 2010년 자메이카 월드캠프 직전이었기에,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나에게 주신 직장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6개월 뒤 연설문을 작성하는 담당자 2명이 그만두자 내 업무가 많아졌고, 새로운 일에 대한 경험과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굉장히 힘들었다.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했지만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관광부 수석대표에게 직접 업무 보고까지 해야 했다. 그분은 전 관광부 장관이자 자메이카와 카리브해 관광업계의 거물이었다.
 그분과 같이 일하는 동안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딪혔다. 나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그분은 늘 나를 찾고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보내는 가운데 내 마음도 조금씩 변했고, 언제부턴가 마음이 흘러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성경을 펴서 모든 사람이 악하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분은 화를 내고 사무실을 나갔다. 자신은 선한 사람이라고 하며 성경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복음을 전했다. 결국 그분은 가정과 직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이야기했고, 김진희 목사님을 만나 신앙상담을 나누었다. 그 후 교회와 선교사님, IYF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 ‘자메이카 IYF 지부의 고문을 맡아 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승낙했다.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볼 만한 눈이 없었다. 연설문 작성 업무가 부담스럽기만 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어 새 수석대표가 임명되자 나는 연설문 작성 업무에서 빠질 궁리만 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 대표는 연설문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연설문을 작성할 지침도 거의 주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연설문을 작성해야 했고, 연설문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배경을 확인하고, 어조를 정하고, 청중에게 전할 핵심 메시지들을 결정해야 했다. 그처럼 어렵게 작성한 연설문을 내가 썼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김 목사님이 전해주신 사도행전 27장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2~24)
 사도 바울은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기에 이러한 확신이 있었다. 박옥수 목사님도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복음 때문에 많은 대통령과 총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씀이 내 마음을 바꾸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를 장관님 가까이에서 일하게 하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루는 마음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런 내용으로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장관님이 내용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국민들과 국내외 언론사, 그리고 UNWTO(국제연합 세계관광기구)에 발표했다. 그리고 그 후로 장관님이 마음의 세계에 대한 용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관광부 직원 회의를 하면서도 국민과 관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한 변화에 대해 목사님에게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쓰라고 하셨다. 내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서 장관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관님은 나를 무척 신뢰했다. 직접 불러서 연설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한번은 나라의 생산업계 현황을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연례 행사 때 연설문을 쓰고 장관님 곁에서 일했다. 하나님께서 장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장관님에게 덧붙여 이렇게 조언했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장관님의 마음을 표현하세요. 국민이 듣기 원하고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리고 관광산업을 통해 자메이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세요.” 장관님은 무척 기뻐하며 내가 말씀드린 대로 연설했다.
 하나님은 직장에서 나를 만들어 가셨다. 나는 내가 싫으면 불평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셨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일하셨다. 또 내 입을 열어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나를 무시하고 비웃고 피했지만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점점 나를 돕기 시작했다. 관광부 대표는 여름 캠프 때 학생들이 최신 크루즈 유람선과 국제공항을 견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복음을 전한 한 동료는 비자를 발급하는 부서에서 일 하고 있었는데, 단기선교사들의 비자 신청과 신청비 면제, 선교사님 가족의 시민권 발급에 관련된 일들을 도와주었다.
 관광부에서 몇 년간 일하다 관광진흥공사로 옮겼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예비하신 새로운 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김 목사님이 마태복음 5장 말씀을 전해주셨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15)
 하나님은 나를 빛으로 세우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에게 다가와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신다. 새 직장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하나님이 많은 일을 하신 것이 보인다. 하루는 아침에 책상에 앉아 있던 동료에게 ‘성경공부를 하고 싶냐?’고 물었고, 지금 그 동료와 창세기를 공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고 있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눈다. 나는 그에게 악하고 더러운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복음을 전했다. 내 눈에는 그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는 말씀을 차근차근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의롭다’고 했다. 그런 동료를 보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는지 알았다.
 지금 나는 생명의 복음을 전함으로 새로운 행복을 얻고 있다.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노래하는 학생들
하쿠지마나 테오네스테(르완다 키갈리교회)

 
12년간 오순절 계통의 교회를 다니면서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삶을 반복했다. 금식기도를 자주했고, 악한 생각을 안 하려고 집을 떠나 예배당에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은 늘 실패로 끝났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7년에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나 구원받았다. 영원한 안식을 얻었고, 나의 노래와 대화의 내용이 모두 “예수님이 다 갚으셨어!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로 채워졌다. 그리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도, 어떤 주제의 대화를 나누어도 결국에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건 정말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준準 공립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얼마 후, 하나님이 교장 선생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나는 매주 1시간씩 종교 과목을 가르칠 수 있었다.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구원받아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어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사탄도 일했다. 교회에 다니는 교사들이 내게 싸움을 걸어왔다. 학생들이 다니던 교회의 대표들은 내가 학생들에게 독을 주고 있다고 했다. 때때로 마음이 어려웠지만, 3시간 떨어진 키갈리 교회에 찾아가 말씀을 들으면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서 학교에서 회의를 열기도 했다. 나는 나를 헐뜯는 목사들을 불러 학교 관계자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다. 한 달 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일하셨다. 나를 비방했던 교회의 대표가 그 교회에서 쫓겨났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셨다. 교회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교회와 함께 오늘도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있다. 나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다.

예순 살에 전도부장으로
아우로라 엔리케즈(필리핀 케숀교회)

 
올해 내 나이 62세. 나는 1995년에 구원받아 20년 동안 교회와 함께했다. 흐르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 같은 삶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나는 구원받고 복음을 전하는 상담자로 활동하며 바쁘게 지냈다. 요즘은 전도에 많은 변화가 생겨 파워포인트•동영상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우리 선교회를 소개한다. 얼마 전에 내 속에서 ‘나는 늙었고 몸도 약해져서 늘 아픈데, 새로운 전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은 사탄의 속임수였다.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은 늙지 않는 분이고, 능력 있는 분이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인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요 11:40)와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내가 예순 살이 되었을 때 교회에서 전도부장으로 임명 받았다. ‘나처럼 늙은 여자가 이런 직분을 받다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남경현 목사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도부장 이름으로 교회의 여러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마닐라파사이교회의 김영주 목사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자매님, 이제 복음 전도자이지요? 저희 지역 OSCA(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협회)에 한번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세요. 저는 사람들에게 자매님을 여자 목사라고 소개할 생각입니다.” 김 목사님의 초청을 받아 매주 목요일에 2시간씩 20~30명 되는 협회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모두 마음을 터놓는 15분의 시간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서로 마음을 열었을 때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분들을 교회로 이끄셨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는 영화상영 집회를 열어 사람들을 파사이교회에 초청했다. 그런데 무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지자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하나님은 포기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영화상영 집회에 참석한 몇 분과 계속 만날 수 있었고, 복음을 전했다. 정말 기뻤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님을 깊이 느낀다. 내가 전하는 말씀을 모두가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복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일어나 감사했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형제 자매들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집에서 수요 예배를 드린다. 하루는 어느 자매님이 나에게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곳에 가보니 평소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는 형제 자매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이 ‘교회에 가려면 더운 날씨에 걸어야 하고, 차를 3번이나 갈아타야 하기에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며 살았다. 그리고 내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그런 분들을 잘 보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내 안에서 ‘하나님이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마음이 들어 그분들에게 담대히 말씀을 전했다. 그 중 몇 명은 수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변화되는 것을 보니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OSCA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마음을 나눈다. 쓸모없는 나를 복음의 일에 써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심 받은 자이기에
조규윤(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는 한평생 자신의 소리를 들으며 고통 속에서 살았다. 어느 날, 그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그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나도 오랫동안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 누구도 믿지 않고 나만 믿었고, 나를 위해 살았다. 목회를 하면서도 나에 얽매여 살았다. 늘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느라 참 피곤했다. 결국 목회는 실패로 끝이 났고, 대전에서 목사가 아닌 형제로 지냈다. 대전에서 지낸 수 년 동안 하나님은 나를 철저히 비우셨다. 배추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삶을 살게 하시려고 나를 벗겨내셨다. 그렇게 나를 비우신 후 하나님의 종의 마음과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입혀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힌 나를 발견하게 해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조규윤으로 사는 삶을 끝내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시작했다.
 목회를 실패하고 형제로 지내면서 복음 전도자의 직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복음을 전해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일이었다. 나를 벗고 내 안에 예수님이 자리 잡은 후로는, 직분이나 형편과 상관없이 생명 하나만을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다. 1년 동안 그렇게 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또, 복음 전하는 직분을 사모하는 한을 품었다. 하나님께 간구했다.
 ‘주님, 1년만이라도, 6개월만이라도, 한 달,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껏 복음을 전하다 주님 앞에 서고 싶습니다!’
 2010년 2월 1일, 주님은 나를 다시 전도자의 길로 불러 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힘 있게 복음을 전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대구의 기쁜소식수성교회에서 지내는 동안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셨다. 예배당을 지을 때나 복음을 전할 때나 예수님으로 살았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며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주님의 문제이기에 담대한 마음이 생기고 평안했다. 예수님으로 사는 삶은 항상 승리였다. ‘박옥수 목사님은 이런 삶을, 이런 세계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셨구나!’ 그런데 전에 나는 목사님이 하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냈다.
 작년 여름 캠프를 마치면서 박 목사님이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교제하세요”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말씀에 이끌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형제 자매들을 만나 신앙상담을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말씀을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사람들과 상담하다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영적 감각을 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의 세계도 보여 주셨다. 말씀이 한 사람, 한 사람 변화시키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다.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능력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다.
 얼마 전, 기쁜소식강남교회 부목사로 파송받아 매일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살고 있다. 미친 듯이 교제하라신 박 목사님의 말씀을 좇아 발을 내딛는 순간순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행복한 시간들이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는 것과 내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넉 달이 지나야 해. 지금은 때가 아니야’ 하며 머물지만, 하나님은 ‘지금이 추수할 때야. 내가 하면 돼. 네 눈을 버리고 나를 믿고 달려가 봐!’ 하신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버리고 복음만을 위해 달려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시고, 그 삶을 복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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