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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Samaria성지 순례 (31회)
장주현(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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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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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러 야곱의 우물 곁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대화하셨다. 구약에 나오는 ‘세겜’이 바로 수가였고, 세겜은 옛 사마리아의 중심이었다. 성경 속 사마리아 여자가 살았던 곳을 찾아가 보자.


‘나블루스, 쉬켐’이라 불리는 사마리아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는 현재 유대인들에게는 쉬켐(세겜)으로 불리고, 아랍인들은 ‘나블루스’라고 부른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로 현재도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요즘은 그 지역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자치구가 되었다.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있는 도시로 요르단 강의 서안 지구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의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다. 약 13만 명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6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에게는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쉬켐에는 안에 ‘야곱의 우물’이 있다는 그리스정교회의 교회 건물이 세워져 있다. 그 교회에 들어가 보려고 예루살렘에서 아침부터 서둘러 나블루스로 떠났다. 차를 타고 아랍 자치구와 유대인 지역 경계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해 옛 사마리아 땅 나블루스로 들어서자 온통 아랍식의 집들과 간판들, 그리고 상점들이 즐비했다. 여리고나 나사렛처럼 영락없이 아랍 마을 모습이었다.
 사마리아 지역은 북으로는 갈릴리 지방, 남으로는 유대 지방과 접하는 중간 지점으로, 낮은 산지가 많다. 엘리사 선지자 시절에는 아이를 삶아먹을 정도로 큰 기근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스트푸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한 가게에 들러 값싼 아랍 커피를 한 잔 하며 아랍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랍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웃는 얼굴을 보니 ‘나블루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성경 속의 사마리아, 이방의 땅 사마리아
성경에 사마리아는 ‘세겜’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머물렀고(창 12:6),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르러 장막을 친 곳이며(창 33:18),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땅이기도 하다. 그리고 축복의 산 ‘그리심’과 저주의 산 ‘에발’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신 11:29). 그 일이 유래가 되어,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마리아인들과 그 후손들은 세겜 옆 그리심 산에 터를 잡고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훗날 열왕의 시대에는 여로보암이 세겜을 건축하여 북왕조의 기초를 삼았고, 그것이 나중에 사마리아 성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왕상 12:25).
 세겜이 ‘사마리아’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이러하다. 히브리 음으로 사마리아를 ‘쉬므론’이라고 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쉬므로님’이라고 한다.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사마리아 지역을 그 땅 주인 ‘세멜’에게서 은화 두 달란트에 사는데, 땅 주인의 이름 세멜에서 ‘쉬므론’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왕상 16:24). 
 이후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침략해 이스라엘 거민들이 포로가 되어 앗수르로 잡혀간다(왕하 17:3~6). 그리고 사마리아에 앗수르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산다. 그 후에는 바벨론 제국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거주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에 헬레니즘 문화를 정착시키고 혼혈정책을 펴면서, 사마리아는 더욱 이방인의 도시로 인식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혈통이 섞이고 우상숭배를 행해 유대인들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어 간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30년 전쯤에는 헤롯 1세가 사마리아에 옛 도시를 재건하고 ‘세바스테’라는 이름을 붙여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도시 전체를 헌납하면서 이곳을 더욱 이방화 하는데 공헌한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귀향해 성전을 재건할 때-스룹바벨 성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도움을 거절했다(에스라 3~5장). 다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거주하며, 페르시아의 고위 관직을 이용해 유대인들의 성전 재건축을 방해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사마리아는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기근으로 굶주렸던 사마리아 성과 엘리사 선지자. 그리고 네 명의 문둥이와 하나님의 역사일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일 것이다.

   
 
사마리아인

잠시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자. 사마리아인은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레위 족속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제사장 시대를 거쳐 유대와 이스라엘 왕국으로 나뉘면서 그 다른 모습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옛 이스라엘 왕국에 살던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에게서 다르게 취급을 받은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곳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겜 땅 그리심 산을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장소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이다. 지금도 사마리아인의 후손들은 이 전통을 지키며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정하신 곳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종교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의 눈에 미운 존재가 되었는데,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 후 이방인들이 들어와 혼혈이 생기면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의 피가 섞인 더러운 사마리아인’이라는 명칭을 얻으며 격렬하게 천대를 받았다. 안 그래도 유대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그들이 이방인들과 혼혈한 것이 부정한 존재가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 중에, 여자가 예수님이 유대인인 줄 알고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서 있다 하더이다” 하며 앞에 있는 그리심 산을 가리켰다.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다른 마음을 먼저 이야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때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여자는 충격을 받는다.
 앗수르의 침략, 마케도니아의 침략, 그때마다 사마리아인들은 살기 위해 정복자들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했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혼혈해야 했으며, 이방의 신을 겸하여 섬겨야 했다. 그런 사마리아인들을 유대인들이 천대한 일이 예수님 시대 직전에 극에 달했고, 예수님 시대에는 사마리아로 통행하는 것조차 부정하게 여겼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은 이단자들 중에 이단자들이며, 결코 상종할 수 없고 상종해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러 그 땅을 통행하셨다. 성도들에게 복음의 일을 맡기실 때에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고 하시며 사마리아를 언급하셨다. 유대인들이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부담스런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말씀이었다.

현대의 사마리아인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마리아인은 750명 정도다. 그 가운데 절반은 그리심 산에 터를 잡고 유대 사회와 격리해 살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텔아비브 근처의 도시 ‘훌론’의 한 동네에서 자신들만의 정착촌을 형성해 살고 있다. 19세기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오스만제국이 사마리아인들을 대대적으로 핍박하며 차별정책을 폈는데, 당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사마리아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거나 이스라엘 땅을 떠났다. 그로 인해 150명 가량만 남았는데, 지금은 그 수가 늘어난 것이다.
 지금도 사마리아인들은 외부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고수하며 산다. 그곳 아이들은 공립학교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정해진 장소에서 율법을 연구하거나 공부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직도 제사장이 있어서 결혼할 때 철저하게 제사장에 의해 주관되며, 사마리아인끼리 결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유대인 중에서 사마리아인으로 개종하는 자들에게는 결혼을 허락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제사장이 모든 절기의 행사를 주관하는데, 유대력이 아닌 사마리아인의 달력 계산법을 적용한다. 현대 유대교인들은 성전이 없는 이유로 유월절에 ‘유월절 양’을 잡아 희생을 드리는 제사를 생략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그리심 산에 모여 율법대로 제사장이 양을 잡아 희생을 드린다. 번제단 대용으로 땅속에 번철을 놓고, 잡은 유월절 어린양을 그 수대로 불태운다. 대속죄일에는 젖먹이 아이까지 금식시키며, 유월절•오순절•초막절 세 절기 때에는 모두 걸어서 그리심 산으로 올라가는 의식을 치른다.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유대인들보다 더 심하며, 특히 불을 켜지 않으려고 크게 조심한다.

현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교인들의 차이점

   
 

선한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두 사람은 자비를 베푼 ‘어떤 사마리아인’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여자’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 기념터’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고대의 여관 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유대인들을 만나 성경 이야기를 할 때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신기한 것은, 그 이야기 속에서 강도 만난 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려고 하거나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인생길에서 죄로 인하여 쓰러져 거반 죽은 자가 바로 나 자신이다’고 이야기하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이 말씀을 처음 듣던 날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면, 유대교인들 중에는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강도 만난 자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유대인이 더러운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입느냐?’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가 거룩한 유대인들을 욕보이려는 예수님의 계략이라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을 유대인 제사장보다 더 나은 자로 표현하고 유대인이 그에게 도움을 입는 부분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탄 차를 운전하던 무슬림인 아랍 아저씨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로 나도 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이보쇼, 저기 그리심 산에 사는 사마리아인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시오? 자기들만 옳다고 하고, 자신들의 율법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오. 저런 인간들 중에 그토록 전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자가 있다고요?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좋은 말씀이지만 저는 믿지 않아요.”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자

나는 옛 세겜 성, 즉 ‘수가’라 이름한 성에 있었던 ‘야곱의 우물’이 있던 곳이라고 추정하여 세운 그리스정교회의 기념 예배당을 찾아갔다. 장식들이 어지럽게 있는 예배당 중앙에 우물이 하나 있고, 두레박을 올리도록 줄도 잘 감겨 있었다. 정교회 사람들은 이 우물이 야곱의 우물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고대 시대부터 있었던 우물 터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곳이 사마리아의 옛 수가 성 지역이 분명하기에, 예수님께서 그 우물이나 그곳 어디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더러운 이방인 취급을 받는 여자를 만나러 일부로 사마리아로 통행하셨다. 여러 남편과 살았던 이 여자는 마음에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목마름을 채우려고 곤고한 마음을 이끌고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여자와 이야기하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하시자 여자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부분이 마음에 감사함으로 깊이 와 닿는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오미가 룻과 오르바에게 ‘너희 갈 곳으로 가라’ 했을 때, 오르바는 입을 다물고 갔지만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고 마음을 쏟아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는 자기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간다고 예수님께 마음을 토했다. 수많은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토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마리아 여자도 예수님 앞에서 고통스럽고 목마른 자신의 마음을 ‘남편이 없다’는 말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분명하게 배웠다. 내가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이미 어그러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마음을 토해내고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내가 아무 능력도 없는 마음을 토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한다. 내 앞에 길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한다. 그런 일들을 나는 자주 본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여자, 그는 사마리아 여자였지만 구원자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에게서 복음을 듣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들을 마음에서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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