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깊은 골짜기에서 예수님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
고난의 깊은 골짜기에서 예수님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5.09.04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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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_188회

고난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이 선교사님을 만나 주셔서
최근 우리 선교회에서 복음을 섬기는 목회자들이 많은 변화를 입었다. 특히 2014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선교회 역사 이래 어느 해에도 없던 큰 축복을 주시고 변화를 주셔서,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일어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8월 초에 탄자니아, 케냐, 가나, 베냉, 이렇게 네 나라에서 열린 월드캠프에 다녀왔다. 가나 월드캠프 때 한 선교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교사님이 마음의 세계가 깊고 성령이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깜짝 놀랐다. 선교사님이 그동안 하나님께서 교회에 베푸신 은혜들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감사하고 기뻤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며 겪었던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가운데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일이 있었다.
 ‘머나먼 아프리카, 그 척박한 땅에서 어린 딸이 죽어갈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이가 죽어가지만 음식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선교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죽은 아이를 땅에 묻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 아픔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누가 그 마음의 고난에 함께 참예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깊은 고난의 골짜기에서 선교사님을 만나 주신 것이 확실했다. 그 고난 중에 만났던 예수님은 다른 때에 만난 예수님과 달리, 선교사님의 마음에 깊은 믿음의 세계를 만들고 능력의 세계를 만들어준 것이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자
그리스도인들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곧바로 ‘내가 실수해서 어려움을 당하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쉽다. 물론 우리가 실수해서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고, 잘못을 행할 때도 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2장 3절을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면서 ‘나는 이런 고난을 받았지만 너희는 평안했으면 좋겠다. 너희는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난의 깊은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 많은 고난을 겪었으면서 자신만 말고 우리도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고난은 우리가 기쁘고 즐겁고 모든 일이 잘 될 때에는 가질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 모든 게 즐겁고 잘 되고 기쁠 때에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깊은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 나가기 어렵다. 고난은 우리를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하지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깊고 깊은 골짜기로 우리 마음을 인도한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고난의 골짜기로 이끄셔서 괴로움을 겪고 아픔과 슬픔을 겪고 외로움을 겪게 하여, 그 깊은 세계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신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세계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워서, 이전에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즐거울 때에는 맛볼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을 주시려고
얼마 전에 한 선교사님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4시쯤 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그 넓은 도로에 오가는 자동차가 없었는데 멀리서 오는 차를 왜 피하지 못했을까? 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추었을 텐데, 운전자도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형제도 차를 피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하나님께 그 형제를 살려 달라고 간구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형제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잃은 선교사 내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아프리카에서 딸을 잃은 선교사님이 생각났다. 그 선교사님이 딸을 잃었을 때는 가슴이 아팠지만, 그 아픔이 복음을 힘 있게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했다. 이어서, 가슴 아픈 어려움을 당한 다른 선교사님들도 한 분 한 분 더듬어 생각해 보았다. 그분들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분들의 목소리에서, 그분들의 얼굴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고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내가 처음 복음의 일을 할 때는 굶은 적도 많고, 어려움도 많이 당했다. 그래서 내가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교회 안에서 여러 해를 지나 이제 나이가 많아졌다. 지금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 일들을 고난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앞에 있었던 많은 하나님의 종들, 특히 귀하게 쓰임 받은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나, 모두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고난을 피하게 하실 수 없었을까? 하나님은 얼마든지 고난을 피하게 하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그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때로는 참혹하리만큼 가슴 아픈 고난을 당하게 하신다. 그 고난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깊은 은혜의 골짜기로 우리를 이끄셔서, 행복하고 즐거울 때에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고난이 유익한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 선교회가 선교사들을 뒷받침하는 것이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잘해 준다 해도 그분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막아줄 수는 없다. 그때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실까?’ 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고난을 받고 괴로움을 겪었던 하나님의 종들을 보면, 모든 일이 은혜로웠을 때 갖지 못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도 어떤 때는 고난이 싫고 피하고 싶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 고난이 나에게 유익한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지금은 하나님이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실 때 ‘내가 무얼 잘못해서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깊은 가르침을 주시고 유익하게 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에 잡혀서 일하는 종들이 많다. 그분들 모두 고난의 깊은 골짜기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예수님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을 받아서 빛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도 내 육체는 고난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기에 고난 앞에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최근에 아들을 잃은 그 선교사님을 위로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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