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과 종이컵
우산과 종이컵
  • 최순식 자문위원
  • 승인 2015.09.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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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발명 별견 이야기 27
요즘 같이 비가 자주 오고 더운 계절에 많이 쓰는 물건 중에 우산과 종이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오는 날이나 잔뜩 흐린 날에 외출을 하려면 누구나 우산을 챙깁니다. 시원한 물과 음료를 자주 먹고 싶을 때에는 종이컵이 쓸모 있습니다. 이달에는 늦여름의 필수품인 우산과 종이컵의 발명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한 사치품
요즘은 누구나 사용하는 우산이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우산이 특별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우산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1200년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왕족이나 귀족들은 비를 막는 우산을 만들어 썼습니다. 둥그런 우산은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했기 때문에 평민들은 감히 쓸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산은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사치품이었습니다.
로마 시대 때는 여자들만 우산을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우산이 비를 피하는 도구이기보다는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드는 도구, 즉 지금의 양산과 같았습니다. 우산을 영어로 ‘umbrella’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 ‘umbra(그늘)’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우산을 쓰는 나약한 남자?
▲ 우산을 만들어 쓰고 다녔던 젊은 시절의 조나스 한웨이.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우산은 연약한 여자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비가 올 때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고 다녔고, 마차를 탈 형편이 안 되는 남자들은 그냥 비를 맞고 다녔습니다. 남자들이 우산을 쓰면 비를 겁내는 겁쟁이라 여겼고, 남자들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무역업자 조나스 한웨이(1712∼1786)는 비오는 날은 물론, 맑게 갠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녔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동지역을 활발하게 다니며 넓은 시각을 갖고 우산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웨이는 직접 나무로 둥근 살을 만들어 천을 씌운 박쥐모양의 우산을 쓰고 다녔습니다. 우산을 든 최초의 영국신사가 된 것입니다. 당연히 주변으로부터 “나약한 남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여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습니다.
▲ 연약한 여자들의 물품으로 여기던 우산을 쓴 조나스 한웨이는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어요.

누구나 유용하게
한웨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나 조롱에도 굽히지 않고, 40세 무렵부터 3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우산을 들고 다니며 비가 오면 빗물을 막고 해가 뜬 날은 햇빛을 가렸습니다. 나중에는 한웨이 덕분에 남자들도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웨이는 수입에 지장을 받은 마차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오물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산의 발달과 대중화’에 기여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뒤로 우산은 다양한 소재로 발달했고, 1847년에 지금과 같이 금속으로 살을 만든 우산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말에 들어온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우산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요즘과 같이 비가 자주 오는 날, 우산이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비 오는 날 당연하게 쓰던 우산 하나에도 한 사람의 용기와 도전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번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쉽게 버리는 종이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00여 년 전, 종이컵을 발명한 미국인 휴그 무어(1887∼1972)는 발명과는 거리가 먼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 로렌스가 ‘생수 자판기’를 발명했습니다. 1센트를 넣으면 생수 140cc가 나오는 자판기는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관심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먹는 유리컵이 너무 잘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불평하며 점점 사용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마침 자판기에서 물을 뽑아 먹던 아이가 깨진 컵에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결국 생수 자판기 사업은 망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휴그 무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잘 깨지는 컵을 어떻게 해결하지?’
형의 사업과 꿈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무어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래, 깨지지 않는 컵! 혹시 종이로 컵을 만들면 어떨까? 깨질 염려도 없고 가볍고 값도 싸서 좋겠어.”
무어는 시장을 누볐습니다. ‘물에 젖지 않는 종이’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시중에 물에 젖지 않는 종이란 없었습니다. 그는 학교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관련 분야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노력이 결실을 맺어 물에 쉽게 젖지 않는 ‘태블릿(tablet) 종이’를 찾아냈고, 그것을 압축하여 컵을 만들었습니다.
▲ 종이컵이 발명된 직후, 깨지지 않고 깨끗하게 쓸 수 있다는 종이컵 광고예요.

깨지지 않는 컵의 탄생
1909년, 휴그 무어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종이컵 공장을 만들고 생수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어는 거리의 음료수 판매점은 물론 음식점이나 공원 매점 등을 찾아다니며 종이컵을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보다는 씻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유리컵이나 도자기 컵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한 자본가가 무어를 찾아왔습니다.
“내가 당신의 종이컵 공장에 20만 달러를 투자하겠소! 우리 손잡고 일해 봅시다!”
그때부터 무어의 종이컵 공장은 활기를 찾았습니다.
또한 그 당시 민간보건연구소의 사무엘 크럼빈 박사가, “세균으로부터 인간을 구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1회용 종이컵이다.”라고 발표함으로, 무어의 종이컵은 날개를 달아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무어는 1920년에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 종이컵을 만들어 큰돈을 거머쥐었습니다.

작은 발명품이 탄생하기까지
▲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휴그 무어는 형의 자판기 사업을 돕기 위해 연구하다가, 깨지지 않는 종이컵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어요.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120억 개가 팔리는 종이컵! 평범한 대학생 휴그 무어가 형을 돕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탄생시킨 종이컵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위생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작고 흔한 물건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기발한 아이디어와 노력, 아름다운 정신이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발명품을 만들어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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