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칸타타를 준비하면서_이정훈 선교사
[미국] 칸타타를 준비하면서_이정훈 선교사
  • 북미 칸타타 투어
  • 승인 2015.09.1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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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도시, 뉴저지

뉴욕교회_이정훈 선교사

매번 뉴욕 세계대회를 마치면 단기선교사들과 함께 칸타타하는 지역으로 가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번에는 뉴저지에 가서 준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저지는 뉴욕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나는 오랫동안 뉴저지는 뉴욕과 가까워서 뉴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보게 되었다. 이번 칸타타는 뉴웍이라는 도시에서 하게 되었고 그 주변을 다니면서 집집마다 “Dear Neighbor” 라는 이름으로 초대편지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잘사는 집도 있었지만 내 눈에 비춰진 뉴저지는 내 상상을 깨트렸다. 2012년에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많은 집들이 쓸모 없게 되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을 보아도 이곳에는 소망이 없어 보였다. 뉴올리언즈나 디트로이트에서만 보았던 모습이 뉴저지에도 있었다. 사람들이 와서 이곳은 위험하다. 죽을수도 있다. 얼마전에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뉴웍시도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마약과 절망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뉴저지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정말 깜작 놀랐다.

   
▲ 다음날 편지 배달을 위해 편지를 정리하는 중

이번 칸타타를 뉴저지에서 준비를 하면서 내가 한 것은 없고 단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뉴웍은 뉴저지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곳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 크리스 마스 칸타타를 하게 되었고 단기들과 뉴저지 교회 형제자매님들이 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이 많으신 부친님 모친님도 매일 낮부터 오셔서 편지를 만드시고 단기들은 아침부터 집집마다 편지배달을 나갔다. 우리는 매번 칸타타 홍보를 할 때마다 누가 올지 전혀 알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배달한 칸타타 초대 편지와 티켓을 가지고 올 것을 생각하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우리가 배달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면 항상 궁금한 것은 '오늘 얼마나 많이 문의를 해왔지?'였다. 전화를 받으시는 자매님은 쉴시간도 없이 계속 걸려오는 칸타타 티켓 문의를 받으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칸타타 초청 편지와 티켓을 받고 더 요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이번에 많은 교회에서 칸타타 문의를 해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떤 천주교에 속해 있는 수녀 100명이 단체로 티켓을 요청하였다. 너무 재밌었다. 많은 사람들이 칸타타를 기다렸다는 식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칸타타를 준비를 하면서 시청의 관계자들과 가까워지면서 그곳에 김영호 목사님께서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가는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뉴웍의 여러 단체 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는데 뉴웍의 문제점을 토론하면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의논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되어진 이야기는 우리가 걷기 운동을 하자는 것이였다고 한다. 뉴웍이 문제가 많은것을 보지만 그 사라들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복음이 있어서 이곳에 마인드 교육이 되어진다면 정말 이 도시도 바뀌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뉴저지에서 가지는 칸타타를 통해 음악을 듣고 복음을 들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이곳에 칸타타를 통해서 뉴웍시가 바뀌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칸타타 준비를 하면서 정말 우리가 한것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이끄시는것들만 보았다. 준비 하는 과정속에는 항상 어려움과 형편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형편을 이길수 있는 힘과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말씀으로 담대히 나아가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주시고 도우시는것을 보았다. 이번 뉴저지 칸타타가 소망이 되어지고 칸타타 이후에 되어질 일들이 너무 기대가 되어지고 뉴웍시에 일하실 주님을 소망한다.

   
▲ 편지 봉투 작업 중

미국 동부 단기 선교사_신은비

단기를 오기 전 선배들로부터 몸이 가장 힘든 순간이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할 때라고 듣는데 칸타타 시즌이 다가 올수록 걱정이 많이 됐다. 월드캠프가 끝나고 다른 단기 선교사들은 하루가 걸려서 지역 교회로 가는데 저는 뉴욕에서 가장 가까운 뉴저지 주로 가게 돼서 굉장히 빨리 도착했다. 뉴저지가 투어 첫 번째 도시인데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10만장의 편지를 만들고 뿌려야 하는데 뉴저지 교회를 보니까 사람이 많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부인자매님들이신데 평균 나이가 70세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진짜 이제는 죽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목사님께서 민수기 13장, 14장을 얘기하시면서 우리가 믿지 않아서 문제이지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형편 말고 말씀을 믿으면서 칸타타를 준비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물질도 100% 후원으로 할 거라고 듣는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심도 들긴 했지만 목사님의 말씀을 믿고 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 편지 뿌린 곳을 지도에 체크하고 있는 단기 선교사들
   
▲ "칸타타 보러 오세요~"

그렇게 딜리버리(편지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일)를 하는데 처음엔 너무 힘들고 덥고 어깨가 부러질 것 같았다. 편지봉투 하나는 안 무거운데 가방에 400개를 들고 움직이려고 하니까 정말 무거웠다. 그럴때마다 그냥 빨리 끝내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대충 대충 했다. 딜리버리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목사님께서 어떤 집에 편지가 뿌려져 있는 것을 보시고 “이 집 누가 뿌렸어! 이렇게 뿌리면 사람들이 안 쳐다봐. 너희가 마음을 쏟아서 뿌려야 돼. 너희는 힘들다는 마음으로 그냥 대충 뿌릴 수도 있지만 이 편지를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어. 근데 너희가 마음 안 꺾고 너네 편한 대로 딜리버리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는 길을 막는 거야. 이것도 복음의 일이야. 나는 너희가 하나 하나 마음 써서 뿌렸으면 좋겠다.”라고 우리에게 말씀 하셨다. 그 때 그 집이 계단으로 되어있어서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서 내 마음을 드러내셨다. 딜리버리는 복음의 일이라고 생각을 안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다리는 아프지만, 시간은 좀 걸리지만 뿌릴때마다 한 영혼을 생각하면서 뿌리는데 제 마음에서 칸타타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그냥 하나의 멋진 공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이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이다는 마음이 들었다.

   
▲ 딜리버리를 위해서는 큰 가방이 좋다(많은 편지를 담기 위해)

우리가 딜리버리를 나가는 동안에 교회에서는 이모, 삼촌들이 편지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데 하루하루 돌아오면 정말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면서 계획했던 날짜보다 편지 만드는 것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불가능 해 보이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시더라. 옆에서 이모, 삼촌들이 일 하시는 것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입혀주시는 것을 봤다. 그리고 티켓 신청을 문의하는 전화도 끊임없이 오고 있다. 19일, 뉴왁 심포니홀(뉴저지 칸타타가 열릴 장소)에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서서 기다리고 나중에는 자리가 없어서 집에 돌아갈 것을 상상하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하나님의 역사가 활발한 뉴저지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같이 준비하게 돼서 정말 감사하다.

   
▲ 형제 자매님들이 밤늦게까지 봉투 작업을 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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