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선교사들의 이야기
단기선교사들의 이야기
  • 이유진 외 6명
  • 승인 2015.09.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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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강원도 춘천에서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사랑으로 길러주셨다. 부모님이 안 계신 나를 염려하시며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았다. 학교에서 공부든 뭐든 열심히 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말수가 줄었고, 속으로 생각들이 많아졌다. 부모님이 그리웠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내색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커져 갔다.
 고3 여름방학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엄마 같은 존재였던 할머니를 단번에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대학 입학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수도권 대학을 포함해 10군데에 수시 입학원서를 냈는데, 다 떨어져서 정시로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마음대로 살았다.
 친척 언니 두 명이 단기선교사로 가나와 대만에 다녀왔는데, 나에게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부산대연교회와 연결시켜 주었다. 대연교회에서 안상연 간사님을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관심조차 없었던 나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이 감사했다. 특히 구원받은 후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경을 배우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나를 얽어맬 수 없음이 믿어져 즐거웠다.
 2014년에 단기선교를 가려고 준비했는데, 가족들이 반대했다. 특히 아빠와의 갈등이 심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 해 2월에 대학 총학생회 임원으로 경주에서 신입생 행사를 진행했는데, 도중에 폭설로 행사장의 체육관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 학생들과 관계자들 몇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 이야기하시려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님 앞에 서니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셨다. 가족들의 마음을 바꾸시고, 단기선교를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2015년 2월에 멕시코에 왔다. 7개월째 이곳에서 단기선교사로서 사람들을 만나 전도하며 IYF 캠프와 한국어 수업 등을 진행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훌륭한 단기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알찬 1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며 많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한순간에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나를 보았다. ‘이유진’은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었다. 어느새 나를 높이 평가하며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곳에서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사람이야!’를 가르치고 계신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다 보니 모든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다. 하나님이 이처럼 못난 나를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사실이 정말 감사하다. 지혜 없는 나를 가엾게 보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
 하나님을 알기 전 내 마음은 걱정, 근심, 쓸데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세우기에 바빴다. 이곳에서 단기선교사로서 보내는 삶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한다. ‘왜 단기선교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와 연결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인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복음을 전하는 삶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곳 멕시코에서 그 사실을 배운다. 하나님이 부족한 나와 함께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크고 작은 복음의 일들을 이루실 줄 믿기에 감사하다.

 

 

미국으로 떠나오는데 몸이 아픈 것이 무척 걱정스러웠다. 아플 때 처음에는 성경 말씀을 의지해 넘는 듯하다가 이내 누워버리면서 결국 형편에 지는 사람이 나다. 항상 아픈 것에 매여 살았다.
 미국에 도착해서 3주쯤 되었을 때, 대전도집회를 준비하며 전도하던 중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쳤다. 절뚝거리면서 걷다 보니 다친 반대쪽 다리의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전도사님께 말씀드린 후 전도를 나가지 않고 교회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괜찮았던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 위가 좋지 않아 밥을 먹다 굶기를 반복했었다. 밥을 먹지 않는 것을 본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에 네 얘기를 들었을 때 무릎이 아프니까 좀 쉬면 낫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하나님이 이 일로 너에게 믿음을 가르치시려는 것 같아. 네가 마음을 안 바꾸면 하나님이 열 가지, 백 가지 재앙을 계속 주실 거야.”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얼마 후, 전도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물으셨다.
 “은비야, 네 마음은 어떠냐?”
 “말씀이 이해가 안 가고 계속 아파요.”
전도사님이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네가 미국 단기선교사들 중에 가장 악한 사람이야. 말씀을 안 믿고 지금까지 네 한계 안에서 살았잖아. 언제까지 미룰 거야? 믿음 배우는 거 말이야. 어렵지 않아. 네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다 버리고 그냥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 생각은 다 거짓되고 악해. 계속 생각해도 부정적인 것들밖에 안 올라와. 말씀은 뭐라고 하지? 히브리서 10장 14절 말이야. 온전하다고 했어.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거야. 형편은 아프지? 하지만 말씀은? 다시 말씀을 보고, 말씀만 믿는 거야.”
 나는 내가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씀을 전혀 믿지 않는 내 모습이 보였고, 그동안 얼마나 생각에 갇혀서 지내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전에 없던 새 힘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작은 문제 하나에 머무르던 나였는데, 믿음으로 형편을 넘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떠올리게 하셔서 문제에 지지 않는 새 힘을 주셨다.
 어느 목사님이 “단기선교사가 행복한 이유는 마음 꺾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전도집회 전도 시간이라고 답하겠다. 눈 오고 추운 3월 초에 매일 아침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 늘 부담스러웠다. 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 종일 괴롭기 때문에 내 마음을 내려놓고 말씀을 들고 전도하러 나갔다. 그런 날은 추워도 행복하고, 영어를 잘 못해도 즐거웠다. 안 되는 영어로 성경을 펴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꺾으면서 살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번은 “하나님, 제 꿈을 말씀으로 분명하게 보여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튿날 하나님이 요한복음 16장 15절을 보여주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내 모습을 보면 항상 생각에 이끌리고 육신적인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과실을 맺게 하신다고 하셨다. 미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단기선교사 생활을 이 말씀과 함께 하고 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실지 궁금하고 소망스럽다.

 

 

50페소만 가지고 교회를 나와 몬테모렐로스로 향할 때 소망보다는 절망이 컸다. ‘안 될 거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면서 뜨거운 햇볕을 받는 것도, 걷는 것도 싫었다. 불평불만만 올라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자꾸 일어났다.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들을 만났다. 차비와 음식도 생겼다. 무전전도여행이 내 생각과 반대로 흘러가는 걸 보니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 나는 형편과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은 나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몬테모렐로스에 도착했을 때 선거 때문인지 광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잔디밭에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계셨는데, 카톨릭 신자였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나에게는 죄가 있어’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계셨다. 성경을 펴서 어떻게 죄가 세상에 들어왔는지, 어떻게 사해졌는지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내가 구원받은 간증도 이야기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기뻐하시면서 죄 사함을 확신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더욱 담대히 전도했다.
 밤이 되어 잘 곳을 찾아야 했다. 마침 선거홍보 때문에 와 있던 소방대원에게 은혜를 입어 소방서에서 이틀 밤을 잘 수 있었다. 광장에서 전도하는 것 외에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방문해 IYF를 홍보하고 복음을 전했다.
 하루는 어두워질 때까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전도하다가 광장에 도착했는데, 어디선가 한국 노래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청년들이 K-Pop에 맞추어 댄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며 인사하자 무척 좋아하며 마음을 열었다. 청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어 캠프와 IYF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앙헬’이라는 청년이 자기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앙헬의 어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복음을 전했다. 앙헬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틀 밤을 더 머물게 해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라고 생각하니 감사했다.
 앙헬의 집에 머무는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했다. 한번은 딸 하나를 둔 아주머니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구원받았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몬테레이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회의 참석차 몬테레이에 가야 한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는 몬테모렐로스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하다가 그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몬테레이로 돌아왔다. 

 

 몬테모렐로스 전도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까지 연락할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가기 싫어서 짜증만 부렸던 무전전도여행에 대한 내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는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버려졌다. 입을 열면 하나님이 일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고, 그들을 통해서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무전전도여행이 항상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했고, 나는 못 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를 복음의 일꾼으로 써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년 전만 해도 멕시코에 와서 복음을 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라는 마음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한다거나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주 가끔 학교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역시나 말을 더듬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단기선교사로 멕시코에 왔을 때 언어를 배우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여전히 가장 부담스러웠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성경을 읽는데, 말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입이 뻣뻣한 사람이었던 모세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말씀을 대언하며 많은 이적들을 행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말더듬이인 나의 입도 하나님이 붙잡으시고, 할 말을 가르치시겠구나. 그러면 말을 해보자!’
 그 주 토요일에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1시간 동안 복음을 전했다. 신기하게도 내 생각과 달리 복음을 전하는 내내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번 말을 잘한 거야. 지금 또 더듬잖아? 맞아. 우연이야.’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전도하지 않고 방안에만 있었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규영아, 로마서 1장을 읽어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되어 있어. 복음에만 초점을 둔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일하실 거야.”
 목사님 말씀을 듣고 곧바로 현지인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목사님은 멕시코 청년 형제와 함께 밖에 나가서 전도해 보라고 하셨다. 형제와 함께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갔는데, 막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같이 간 형제에게 먼저 전도하라고 했다. 형제는 “네가 먼저 해. 너는 단기선교사잖아.”라고 했다. 하는 수없이 주위를 살펴보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인사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져서 10분만 이야기하려던 처음 계획과 다르게 1시간이나 말씀을 전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나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는 마음이 들어 힘이 났다. 다른 사람에게 또 복음을 전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보였다. 멕시코 형제가 말씀을 전할 순서였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서 얼른 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말씀을 전했다. 그때도 막힘없이 말이 나왔다. 아저씨가 바빠서 10분 정도밖에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감격스러웠다.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뒤 다른 공원에 가서 여학생들을 몇 명 만날 수 있었다. K-Pop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는데, 교회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에 초청하니 오겠다고 했다. 그 여학생들이 다음 주부터 매주 토요일에 동생과 친구들을 데리고 교회에 왔고,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말씀을 믿고 발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다. 내 입을 붙잡아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이제 이곳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마음껏 복음을 전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교회를 만난 지 7년. 내 마음은 어둡고 온갖 복잡한 것들로 뒤얽혀 있었다. 대학생활은 1인 3역을 하듯 집, 밖, 교회에서 모두 다른 모습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열심히 하는 딸, 밖에서는 최선을 다해 죄를 짓는 악한, 교회에서는 미래를 위해 공부하느라 교회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학생. 이런 삶에 익숙해진 나에게 죄책감이란 없었다.
 단기선교를 가야겠다고 결정한 첫 번째 이유는 내 삶을 바꾸어 줄 무언가가 필요해서였다. 나는 지쳐 있었다. 공부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인간관계도 필요에 의해서 맺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두 번째 이유는 해외에 나가서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유학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단기선교를 나가면 ‘선교’ 코스를 밟으면서 동시에 외국어도 배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선교사 워크숍 때 박옥수 목사님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 주님이 대신해 주십니다. 우리 죄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면 주님이 해결해 주시지만, 내가 하려고 하는 동안에는 주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단기선교사로서의 1년을 ‘잘’ 마치고, 그동안 배운 것을 이용해 남은 인생을 ‘잘’ 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득 안고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하나님이 4월부터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하셨다. 작은 문제로 내 마음을 드러내시더니 죄인의 위치에 두셨다. 사실 살아오면서 죄인이 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랐다.
 하루는 마음먹고 사모님께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정리되지 않은 옷장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내 삶에서 더럽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조리 찾아서 말했다.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감옥 같은 집에 대해서도 꺼내놓았다. 엄마가 먼저 교회에 나가고, 나는 엄마를 따라 교회에 왔다갔다 했다. 아빠는 교회에 다니는 엄마와 나를 심하게 핍박했다. 나에게 가족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의지해보기도 했지만 친구들도 어두움이 가득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기댈수록 더 많은 상처만 남았다. 가족들을 향한 원망과 미움이 시간 속에 묻혀갔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의 이야기도 죽 늘어놓았는데, 다 이야기하고 나니 눈물이 나왔다. 나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망하기도 어렵다 싶을 정도로 망해 있었다. 이미 망한 나였는데, 망한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너무 비참했고, 온갖 죄책감이 밀려왔다. 사모님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을 보여주셨다. 그때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신 걸 처음으로 느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많은 정죄 속에서 나를 변호해주었다. 감사하고 감사해서 대성통곡했다. 이런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그제야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가 망한 걸 발견할 때 예수님이 찾아오신다’고 하셨던 말씀이 이해가 갔다. 예수님은 내가 찾아갈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자유로워졌다. 내 입으로 나를 시인하고 나니 사탄의 정체가 보여서 매일 선교사님께 ‘권소진’이라는 인간을 고발했다. 내 마음을 털어놓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나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가벼워졌다. 망한 나는 단기선교 생활을 잘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더 철저하게 망하기로 마음을 내려놓았다.
 5월에 ‘통가’에 다녀왔다. 통가에서 22살의 ‘소피아’라는 자매를 만났다. 소피아는 한국 월드캠프에 참가해 구원받았는데, 지금은 두 아들을 낳고 통가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다. 소피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 사실 놀랐다. 흙먼지 날리는 방바닥에서 밥을 먹고, 커다란 개들이 방 안에서 돌아다녔다. 행주 하나로 상 닦고, 그릇 닦고, 바닥 닦고, 아기 콧물을 닦고…. 소피아의 인생이 처량하고 불쌍해 보였다.
 통가에서 소피아와 함께 청소년부 장관과 총장님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런데 그날 내가 본 소피아는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니었다. 꿈에 부푼 소녀처럼 복음을 전하는 내내 정말 행복해했다. ‘교회 안에서 복음을 위해 살면 손해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나. 소피아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탄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치켜세워서 삶을 내가 계획하며 살게 했다. 하나님은 나를 뉴질랜드로 보내셨고,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형편 가운데 두셨다. 이곳까지 나를 이끄신 주님이 앞으로 어떻게 이끄실지 기대된다. 

 

 

탄자니아에 온 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하나님이 류주영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주고 싶으셨구나!’ 하는 마음이 갈수록 든다. 한국에서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내게서 올라오는 생각들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금방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자연히 내 주위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 몇 명만 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안 좋았다. 특히 아버지가 밉고 싫었다.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주면서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잘것없고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탄자니아에는 한국•태국•중국•페루•잠비아•부룬디•케냐에서 온 여러 단기선교사들이 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많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단기선교사들이 이해가 안 가고 같이 있기 싫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이곳에서는 같이 살면서 부딪혀야 한다. 부딪히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고, 맛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단점만 보았던 내가 사람의 장점도 볼 수 있었다. 장점이 보이니까 함께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또,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이 점점 열리고 오해하는 일도 없어졌다.
 얼마 전, 자원봉사자 캠프 때였다. 둘째 날 바닷가에서 오후 활동을 진행하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여자 단기선교사 두 명과 몰래 근처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사다가 선교사님에게 들켰다. 배고픔 하나 참지 못하고 맡은 일을 팽개치는 사람.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류주영’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신다. 내 생각이 틀렸음을 계속 가르치신다. 그래서 감사하다. 남은 시간 동안도 나를 발견하며 행복하게 지내다가 돌아가고 싶다.

 

 

나는 2014년에 인도에 단기선교사로왔고, 올해는 재단기선교 과정에 있다. 작년 3월에 인천공항에서 부모님께 “잘 다녀올게요.”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부모님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게 보였다.
 내 삶을 돌아보면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것밖에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 2주 정도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수업을 듣다가 ‘저 교수님 강의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혼자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어 수업을 듣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처럼 부모님을 속이고 친구들을 만나 술, 담배에 찌들어 살며 허송세월을 했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 입대를 지원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안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쓸모없는 인간, 부모님께 상처만 주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 죽는 게 나아’ 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정말 죽고 싶었다. 문득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휴대폰에 단기선교를 위한 워크숍이 있다는 어느 간사님의 메시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마지막 워크숍에 간신히 참석해 훈련을 받고 인도로 왔다.
 인도에서의 삶은 천 가지 만 가지가 부담이었다. 기차를 타는 것부터 언어, 음식, 날씨까지. 사람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함께 생활하는 단기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을 무시하며 지내다 보니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나를 싫어했다. 그 일을 계기로 선교사님과 상담을 나누었다. 선교사님은 예레미야 45장 5절을 읽어주셨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요셉! 네 인생을 네가 계속 경영할 거야? 지금까지 네가 해서 된 거 있어?”
 “아니오.”
“네가 여기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알아? 호인뉴 자매가 영어 가르쳐주는 것도 무시했잖아.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알아? 네 마음의 주인이 너라서 그래.”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대로 살아온 삶이 보였다. 행복하지 않았던, 실패와 고통뿐이었던 삶. 나는 주위 사람들과 교회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와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전도하러 가서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영어 못하는 내가 인정된 후로 부담이 사라졌다. ‘하나님이 나를 단기선교사로 보내셨다면 영어도 하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번은 현지인 형제와 7일 간의 무전전도여행을 떠나 ‘모곡종’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하나님이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신다는 마음이 들어 하루에 10가구씩 복음을 전했다. 마지막 날 어느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 집 가족들이 구원받아 친척들에게도 말씀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복음을 전했다. 나는 오랫동안 말씀을 전할 사람이 아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보니 정말 기뻤고, 복음을 전하는 동안 음식과 잘 곳을 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했다.
 무전전도여행을 다녀와서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펴시고는 최요셉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고 하셨다. 자주 들었던 말씀이 새롭게 들리면서 다시 읽고 싶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나는 늘 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인데, 말씀을 읽을 때 전에 없던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어떻게 하면 그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복음을 위해서 살 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이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재단기선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는 말씀으로 나를 이끄셨다. 지금까지 내 계획을 따라 살았는데, 모두 실패였다. 그래서 교회의 인도를 따라 다시 단기선교사가 되기로 했다. 하나님이 “요셉아, 네 인생을 내게 줘봐.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간증을 적으며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들을 떠올려 보니 감사했다. 전 세계의 모든 단기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형제 자매님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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