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스도의 사랑에 물들다
가을, 그리스도의 사랑에 물들다
  • 담당 박민희 편집장
  • 승인 2015.10.27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후감 공모전 당선작

 

 
 

*특별상 수상
책 읽는 즐거움, 행복한 신앙생활 / 오세재 목사(기쁜소식청주교회)

나를 행복하게 만든 책 읽기

 

2013년 2월, 책꽂이에 있던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폈다. 신앙에 간섭과 책망을 받을수록 길이 없고 혼돈스럽다. 도대체 신앙이 무엇인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30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니 답답하고 불쌍해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복음부터 정리해 보자는 생각으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들었다.
 내가 투자한 시간은 매일 30분. 같은 장을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읽고 묵상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일곱 번을 읽는 동안 저자인 박옥수 목사님이 사용한 예화, 간증, 주제, 소재, 키워드 등이 마음에 들어왔다. ‘네 명의 문둥이’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약속한 장소가 아닌 다른 도로변에서 박 목사님을 기다린 자매의 이야기. 선장 아들이 원숭이를 쫓아 돛대까지 올라갔다가 돛대를 놓고 바다로 뛰어내린 이야기. 신앙은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네 명의 문둥이’를 일곱 번 반복해서 읽는 동안 늘 애매했던 자백이 명쾌하게 풀렸다. 표범의 근성은 죽을 먹여도 변하지 않듯, 죄인은 죄를 짓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죄를 안 지을 수 있고,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자백은 곡해되는
것이다.
 두 번째 장 ‘야곱과 에서’ 역시 아마존강 하류에 들어와서도 목말라 하는 선원들의 이야기, 즉 생각을 바꾸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의 조건으로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행위를 온전히 포기하고 어머니를 의지해서 나가는 야곱,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진수다. 신앙이든 인생이든 우리 행위로는 안 되는 세계다. 야곱이 자신을 가리는 이야기는 자신을 온전히 부인하는 신앙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쉽다. 예수님으로 하는 세계가 신앙이요, 예수님만 의지하는 세계가 신앙 세계다.
 38년 된 병자가 나오는 4장에서는, 천자문을 엉터리로 가르친 소금장수 이야기를 통해 정확한 말씀을 근거로 만들어지는 신앙에 대해 배운다. 박 목사님은 오래 전부터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신앙’을 전해주셨다. ‘왜 이런 것을 작게 여겼을까? 대충 알고 넘어갔을까?’ 말씀을 따라가다 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의義의 세계가 보인다. 내 행위로 말미암은 의가 아니라, 예수님이 해주신 것만을 들고 나가는 의의 세계가 보인다. 예수님으로 사는 세계가 신앙의 세계인 것이다.
 한 장씩 읽고 또 읽는 동안 영원계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속죄도 지나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종과 교회’에 대한 말씀까지 정리가 되었다. 나는 전에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여러 번 읽었기에 내용을 잘 안다고 여기며 지냈다. 인생을 그렇게 대충 살아온 것이다. 매 장을 일곱 번씩 반복해서 읽는 동안 ‘신앙은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만을 믿는 것이요, 내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는 것’임이 선명해지고, 마음은 가볍고, 나를 축복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면 어느새 내 마음은 소망으로 가득 찼다. 그 축복은 너무나 크고 놀라웠다. 성경을 읽고 싶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다독(多讀)으로 신앙을 배웠다
다음으로 고른 책 <회개와 믿음>을 그렇게 일곱 번씩 읽었다. 목회자들의 교제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책 안에 촘촘히 적혀 있었다. 마치 개인적으로 신앙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주님의 눈으로 보면 나는 악할 뿐이기에, 나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고 주님만을 온전히 기대하게 되는 것. 책을 읽을수록 주님이 주신 내 영혼의 자유는 커졌다. 정말 내가 할 것이 없고 주님만이 일하시는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구원받기 전부터 내가 틀렸구나!’ 나를 믿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말씀만을 믿는 신앙의 길을 걸어오신 박 목사님과 ‘구원받았으니까 이제 내가 신앙생활하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나는 너무나 달랐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 나는 죄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이 쉬지 않고 끓어오릅니다. 내 속에서는 더럽고 음란한 마음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내가 겉으로는 간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으로는 수없이 간음하고 수없이 살인하고 수없이 거짓을 행합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나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나를 부인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제 주님이 내 인생을 맡아주십시오. 이제 주님이 나를 주관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에서)
 나는 처음부터 잘못되었기에 처음부터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으로 잡은 책이 <다윗의 삶>이었다. ‘초창기 성도들은 신앙을 어떻게 배웠을까? 어떻게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모든 궁금증이 책 속에서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신앙은 지금이나 30년 전이나 똑같은 것이구나!’ 전도를 가장 부담스러워하던 자매가 말씀을 들은 후 전도를 가장 잘하는 자매가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사탄은 생각으로 성도들을 묶는다. 생각에서 정확한 말씀으로 가는 것이 신앙이다. 그것이 사역자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의 마음에 대한 전적인 순종으로 육신을 치는 삶이 보였다. 책을 읽을수록 혼자 읽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글들이어서 ‘어떻게 이 글들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카톡에도 올리고, 밴드에도 올려 보았다.
 “한강 수위가 한 해마다 50cm씩 높아져 몇 년후에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에 잠기지 않는 새로운 지역에 여러분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 속히 이사를 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세계를 열고 계십니다. 그곳은 망하지 않는 세계, 눈물과 고통이 없는 세계인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 신령한 세계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의 삶’에서)
 2014년에는 <겨자씨 한 알>을 읽었다. 삶 이야기는 설교집보다 진하다. 설교는 베껴서 할 수 있어도, 삶은 베껴서 말할 수 없다. 삶은 자신이 가진 믿음의 결정판이다. ‘우리 선교회 초창기 시절에 박 목사님은 인간의 방법이나 육신과 타협하지 않고 어떻게 복음 앞에 사실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놀랍고 감동을 받는다. 너무나 좋아서 복사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렸던 말씀을 소개한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마음의 죄를 씻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이론이지 믿음은 아니다. 성경 말씀은 이론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실제로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실제로 내 삶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능력의 말씀인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믿지 못할 때 인간에게 도움을 구하며 인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여 복음의 일을 하는 법을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겨자씨 한 알’에서)
 박옥수 목사님의 저서를 읽을수록 내 마음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세상은 작아져 간다. 저 종이 얻었던 말씀의 세계, 주님의 세계 속에 빠져들고 싶은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성경과 가까워졌다. 너무 행복했다.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삶을 배우지 못했을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으로 사는 행복한 길이 보인다. 사람의 눈치 보기에 바빴고, 일과 행사에 쫓겨서 허겁지겁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 뒤로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성경을 잡고 두 시간씩 읽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젖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었다.
 책 읽기가 나를 말씀의 세계 안으로 이끌어주었다. 말씀이 가져다준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말씀이 나를 이끄신 간증이 너무도 많다. 이렇게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등 수상
불태워져야 할 것을 거룩한 곳에 들고 갔기에 / 최영숙_<번제>를 읽고

 

1993년에 구원받은 후,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복음 전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번제>
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내 열심과 내 노력,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제물이 불에 타서 재가 된 것을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다.
 번제의 이야기들이 성경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처럼 내가 보기에 좋고 선한 것을 받지 않으셨다. 내 생각, 내 관념으로 하나님과 먼 곳으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그걸 불편하게 여겼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좋은 것인데, 왜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구원은 받았지만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내 생각이 작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을 발견했다.
 ‘내가 보기에 선하고 내가 보기에 악한 것, 의로운 것 진실한 것 때문에 말씀을 그대로 받을 수 없었구나. 내 안에 내가 보기에 좋은 것들이 채워져 있어서 다른 것을 받을 수 없었구나. 순수하게 말씀을 대할 수 없었구나.’
 내 옳은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가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말씀과 많이 부딪혔다. 불태워 없어져야 할 것을 거룩한 곳에 들고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정淨한 분을 찾으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의 눈에 정한 사람이 없다. 나는 부정한 짐승 같은 인간이면서도 나를 다듬고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받으실지도 모른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부정한 짐승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을 때나 잘했을 때나 동일하게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마음에 채워진 것들이 비워지자 말씀이 흘러들어왔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어도 하나님께서 온전하다고 하시네. 실수를 해도, 우겨 쌈을 당해도, 어려워도 성경이 나를 온전케 해놓았다고 하시네. 온전한 게 이런 것이구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동안 주님을 믿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하실 동안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뭔가 해야 직성이 풀리고, 잘하지도 못하고 번번이 실패만 해놓고도 주님을 기다리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꼭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오죽 답답하시면 “얘들아, 들어라 들어. 돼지는 우유로 깨끗하게 목욕시켰다 해도 내가 안 받아.” 하셨겠는가. 하나님은 부정한 자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받으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착각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실망하고 어리석게 살았던 지난 날들. 하나님이 나를 받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제는 추하고 악해도 예수님 안에서 쉴 수 있다. 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끌어 가실 주님이 소망이 되고, 기쁨과 평안을 주심에 가슴이 벅차온다. 참다운 제사,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해준 <번제>가 감사하다. 

*2등 수상
하나님도, 인간도 풀려야 하는 화목제 / 박익규_<화목제>를 읽고

 

시간여행을 했다. 밀레니엄 시대를 눈앞에 둔 1990년대 후반으로 말이다. 그런데 전혀 지나간 과거 같은 느낌이 안 든다.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복음은 영원하기 때문일까. 이 책을 몇 번 접했지만 그때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보며 그 마음의 줄기를 따라가 보려고 애를 쓴다. 도대체 하나님의 그 성품은 왜 그렇게 우리를 가슴 저리고 벅차게 할까. (중략)
 번제燔祭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속죄제贖罪祭는 인간을 위한 제사다. 그런데 이 화목제和睦祭는 참 특이하다. 왜냐하면 화목제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된 화목은 하나님 편에서도 풀려야 하지만 인간 편에서도 풀려야 하는 즉, 양쪽이 다 만족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놀랍고 기이하다. 정말 죄밖에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면 그냥 고개가 숙여진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그런 마음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심은 하나님 당신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마음의 줄기를 보면, 정말 우리가 죄와 허물로 멸망받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고통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견딜 수 없어 그러신다는 말씀 아닌가. 어디에서 이런 마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니 한없이 감사하고 온 세상을 다 얻는 것 같은 마음이다.
 화목제의 깊은 의미를 잘 몰랐을 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부담으로 여겼다. ‘죄만 짓고 허물이 많은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렇게 형편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내 삶이 곤고한 것은 아닌가, 그러면 내가 뭔가 좀 잘해야겠다, 하나님께 온전케 나아가며 그래도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내가 하는 법에 매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바로 거리낌이 있는 자유가 없는 신앙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 책을 보면서 요셉의 이야기에서 풀렸다.
 요셉의 이야기는 늘 읽어도 감동이며, 눈물로 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도 감동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셉이 형들과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바로 베냐민을 화목제물로 세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형들이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요셉에게 자유롭게 나아오지 못함을 보고, 요셉을 팔아버린 죄에도 동참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형제인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을 화목제물로 세운 그 마음은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 아니던가.
 또한 화목제의 깊은 의미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먹으며 마음을 푼다’는 레위기 7장 15절과 계시록 3장 20절 말씀을 보면 한없이 감사하다. 다윗의 상에 다른 왕자들과 같이 자리를 하게 된 므비보셋이 문득 생각난다. 사울 왕이 죽고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 나오다가 떨어뜨려 어릴 적부터 절뚝발이가 된 요나단의 아들이었던 그는 숨어살면서 늘 가슴 졸이며 살지 않았을까. 다윗이 그를 찾을 때 또 얼마나 놀랐을까. 하지만 다윗의 상 위에서 다윗의 마음과 만났을 때 또 얼마나 큰 안도의 한숨을 쉬고 감사했을까.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약속 안에 있는 우리, 바로 우리가 므비보셋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떡을 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인생 최대의 행복이다. 그것도 우리가 어렵게 주선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상에서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한 미운 오리새끼가 자기의 정체성을 나중에 알았듯이 우리가 영원히 온전케 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생각하면 큰 힘이 솟고, 그런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며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중략)
 화목제물의 피는 제단 사면 어디에나 뿌려졌다. 예수님의 피를 밟아야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에겐 이제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열렸다. 바로 화목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늘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는 자로 남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강권으로 아버지 이삭에게 별미를 만들어 드린 야곱과도 같이 언제 형 에서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초조한 마음,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참으로 <화목제>는 복음에 대한 보석 같은 말씀이다. 20여 년 전의 말씀이지만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한 진리의 말씀이기에 여전히 놀랍고 위대하고 감사하다. 하나님 당신의 마음도 풀리고 우리 마음도 풀리도록 준비하신 아버지의 마음, 그래서 아무 거리낌 없이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 이 마음을 사람들이 안다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이가 없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을 알려주어 모두가 구원의 대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위대한 여정에 우리 기쁜소식선교회가 함께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주님 오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깨어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분명히 전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교회와 종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영광스런 이 자리에 있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3등 수상
읽을수록 예수님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 주영화_<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고

 

아버지의 권유와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수많은 생각에 매이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도 나쁘고, 힘도 없고, 말씀도 못 듣고, 숫기도 없고, 말도 잘 못하고….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야. 나가야 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지쳐갔다. 잘해보려고 할수록 내 마음이 더럽고 추하다는 걸 전보다 더 느낄 수 있었다. 음란, 시기, 질투, 고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죄를 이기는 방법은 죄에게 지는 것이라고 했다. 다윗은 자신이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내가 죄에게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 근본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런 나를 보며 나는 힘들어하고 고통하고 정죄했다. 마음에 쉼이 오는 것 같았다. 책에서는 다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죄의 성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고 했다. 어둡던 내 마음에 작은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내 근본이 악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다 이루어 주신 것이다. 누가 봐도 안 될 사람이기에 예수님이 날 위해 오셨고, 누가 봐도 더러운 인간을 예수님의 은혜로 거룩하고 온전하다고 하나님이 정하셨다. 예수님이 날 바꾸셨고, 난 단지 그분을 믿는 것뿐이었다.
 전에 난 나에게 매여, 내가 잘하는 것 같으면 기분이 좋고 못한다 싶으면 어두워졌다. 말씀을 듣지만 모든 것이 내가 어떤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저주받은 에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야곱이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브가에 의한 것이었다. 리브가가 야곱을 부르고, 리브가가 요리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꾸며 주고, 심지어 야곱이 받을 수도 있는 저주도 대신 받아 주었다. 야곱의 모든 것은 어머니 리브가의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것과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었다.
 술 맡은 관원장이 포도주만 들고 나간 것처럼 내게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했다. 강도 만난 자를 사마리아인이 구원해준 것처럼 예수님은 악한 나에게 빛과 소망과 구원이 되셨다.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다. 난 단지 예수님께 맡기고 쉬기만 하면 된다. 책을 읽을수록 예수님이 마음에 깊이 남고, 내가 받은 구원이 너무 귀하고 감사했다. 

*장려상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을 완전히 열어준 책 / 송연주_<성막>을 읽고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인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 모임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늘 말씀테이프를 틀어놓거나 성경을 대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단지 습관을 쫓아 그러했는지 신앙에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얼마나 주를 사랑하는가. 주님이 베드로에게 던지신 질문이 내 마음에 던져질 때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할지 망설여졌다.
 기쁜소식강남교회에 오면서 박옥수 목사님을 가까이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목사님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셨다. 관심과 초점이 주님께만 있었다. 내게 없는 마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목사님처럼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주님만 섬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주님을 향한 목사님의 마음을 닮고 싶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셨던 걸까. 예수님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성막>이라는 책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하나님의 사랑에 젖을 수 있었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토록 완벽하게 갖추어 놓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신 주님이 항상 함께하시기에 신앙은 쉬운 것이었다. 성막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는 신앙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히 옮겨 놓으셨다.
 성막은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을 완벽히 열어주었다. 아직 신앙이 어렵거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면 꼭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아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읽는 내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며, 마음이 주님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내 신앙의 발걸음에 등불이 되어준 <성막>에 벅찬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마음에서 처음으로 사랑한 책 / 이원평_<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속죄제사>를 읽고

 

구원받고 24년이 흘렀다. 구원받은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달갑기보단 부끄러웠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예수님께 맡겨야 되는지 몰랐다. 성경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에서는 알 수 없었다.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집들은 내용이 다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예화에 죄 사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래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외에는 읽은 책이 없었다.
 어느 날 손에 잡은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속죄제사>. 책에서는 내 마음의 모양을 아주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었다. “자기가 달라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을 모르고 자꾸 하려고만 하지만…” 내 모습이 그랬다. 이번에는 잘못했지만 다음에는 은혜를 입어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지만 마음에서는 조금만 고치면 될 것 같았다. 그 조금이 안 되어 절망하고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 ‘나는 안 돼! 신앙은 너무 어려워!’
 책장을 넘길수록 “그 범한 죄에 대해 깨우침을 받거든”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변화를 입으려면 깨우침을 받아야 했고,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기에 하나님, 성령, 종, 교회가 필요했다. 나는 신앙생활을 거꾸로 했다. 내 신앙의 주체는 나였다. 내가 깨닫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그런 나에게 교회와 종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내 마음엔 종도 교회도 없고 나만 있었다. 내가 주인으로 있는 동안 실패와 절망과 고통이 가득했다.
 책을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내 모습,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 마음에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

전과 다른 참 자유가 마음에 찾아왔다 / 손경임_<번제>를 읽고

 

대학생 시절에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육체의 욕구를 이길 힘이 없었다. 그후 남편을 만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참 교회를 만나 구원을 받았다. ‘이런 내가 죄가 없다니!’ 기쁘고 감사했지만 신앙생활은 어려웠다. 마음대로 살던 내게 법과 신앙의 규칙들이 생겨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게 너무 많아.’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교회와 함께하지 못하거나 믿음이 부족하거나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이 꼭 저주하실 것 같았다.
 6년 전에 앓던 폐결핵이 완치되었다가 3년 뒤 재발했을 때, 내가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잘못하여 저주를 받은 것만 같았다. 둘째와 셋째 아이가 아토피로 몇 년간 고생했을 때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병을 낫게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간증을 들을 때면 내 모습은 초라했다. 나도 믿음이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번제>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은 내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옳고 그른 내 생각들은 모두 불살라져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믿음이 있고 없고, 내가 잘하고 못하고와는 상관없이 오직 온전하신 예수님 한 분만 받으셨다. 하나님은 나의 더러운 것을 아시고도 나를 사랑하셨다. 모든 것을 불태우듯 예수님이 내 속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해결하셔서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드셨다.
 <번제>를 읽고 내 마음에 자유가 찾아왔다. 구원받기 전에 육신을 따라 마음껏 살았던 것과는 다른 자유다. 하나님 앞에 번제물처럼 나를 다 벗기고 서니, 더 이상 가릴 수 없고 가릴 필요도 없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미 온전한 번제로 드려졌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기뻐 받으셨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