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앙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앙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5.12.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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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어떤 눈으로 보는가?
신약 성경에서 ‘보다’를 헬라어로 몇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는 망막을 통해서 단순히 사물을 본다는 ‘블레포’이고, 두 번째는 깊이 사고思考하며 통찰력 있게 본다는 ‘데오레오’이며, 세 번째는 인간의 사고와 노력으로는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호레오’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입구를 막은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본’ 것은 ‘단순히 보다’로 기록하고 있는데, 자기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아 울었습니다. 보기는 보았으나, 막달라 마리아는 죽은 자 중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며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4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산에 서신 것을 보고 대화했지만, 예수님이신 줄 모르고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보다’는 ‘깊이 사고思考하고 이성적으로 보다’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눈으로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18절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고 할 때에는 ‘영으로 보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영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키리바시의 탕인데부 신학교에서
40여 년 전, 박옥수 목사님은 배가 고파 차가운 예배당 바닥에서 먹을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에게 장래를 볼 수 있는 당신의 눈을 주셨습니다.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고, 책을 출판하고, 방송을 하고…. 기도 마지막에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에는 누가 복음을 전합니까?”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일(목), 저는 몇 사람과 남태평양의 키리바시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키리바시에 머물 나흘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수도 타와라 공항에 도착한 후 숙소로 가는 길에 먼저 ‘탕인데부’ 신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신학교 학장님을 만나 “저는 한국에서 온 목사인데, 이번 주일 예배 때 제가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요청했고, 다음날 ‘설교는 할 수 없고 예배 후에 인사는 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신학생들과 교수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주일에 설교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예배를 드리러 가겠다고 회신했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길을 여시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탕인데부 신학생들과 교수, 학교 관계자 등 150여 명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 목사님이 설교하는 내내 신학생들은 거의 바닥만 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마친 후 우리를 일어서게 하여 소개했습니다. 내가 앞에 나가서 인사하고 싶다고 하니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를 소개하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20분 정도 말씀을 전했는데, 모두 경청했습니다. 말씀을 마치자 교수님들과 신학생들이 더 듣고 싶다고 하여 다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후, 학장님과 예배를 인도한 목사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었습니다. 학장님은 “굿뉴스미션 목사님이 우리 신학교를 방문하면 주일 예배 때 설교해 주시고 신학교 수업도 해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려 4시간이나 신학교 교수들, 학생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보기에는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님의 눈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키리바시교육대학’에서 가진 마인드 강연, ‘남태평양대학’에서 가진 마인드 강연, ‘베티오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가진 3일 간의 마인드 강연, 타라와 섬의 모든 학교 교사들 앞에서 가진 마인드 강연, 아네토 통 대통령과의 만남…. 처음에 우리 눈에는 어디를 가야 할지 보이지 않았지만, 주님은 이미 우리가 마음껏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 타라와 섬에서 지낸 4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네토 통 대통령과의 면담
키리바시에 도착해 보니, 대통령께서 해외에서 토요일 오후에 귀국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에 출국하기에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요일 오후에 남태평양대학에서 마인드 강연을 하고 있을 때, 옆 강당에서는 교육부장관께서 교사 연합 행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장관께서 우리가 남태평양대학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를 불러 그 행사에 함께하자고 하셨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장관께 대통령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자, 잠시 후 대통령과 극적으로 연락이 되었다며 우리를 대통령께서 계시는 별장으로 안내했습니다.
 아네토 통 대통령과 영부인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셨고, 우리는 박옥수 목사님이 대통령께 드리는 친서를 전했습니다. 편지에는 ‘세계의 청소년들을 아름다운 키리바시로 초청해 월드캠프를 열어서 전 세계에 키리바시를 알리자’는 제안이 담겨 있었는데, 대통령께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느냐? 너무 좋다!’고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대통령과 대학생 교양지인 ‘Tomorrow’에 소개할 인터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키리바시를 위해 기도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나는 기도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믿습니다.” 하시며 두 손을 모으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주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만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보면 행복해집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의 눈에 보이는 것은, 통에 있는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있는 기름 조금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 죽으려고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눈으로, 기근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그 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어 기근이 끝날 때까지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울 왕과 온 이스라엘이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할 때, 다윗은 하나님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았고 그를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성도의 삶에서 어떤 눈으로 보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전혀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주님께서 성도에게 영의 눈을 밝혀 주실 때 그 눈으로 부활의 세계를 볼 수 있고, 그때 성도는 모든 것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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