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푸에르토리코]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 조상오 기자
  • 승인 2015.12.22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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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푸에르토리코 세계대회를 마치고..

푸에리토 리코 교회 개척 그 이후 - 조상오 선교사 간증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는 카리브해 북동에 위치한 330만명의 인구 분포를 가진 미국의 자치령이다.  태어나면서 미국 시민권은 있지만 대통령 선거권은 없는 곳. 도미니카 공화국 옆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이고 인구의 99%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어느날 푸에르토 리코의 한 도시인 아레시보(Arecibo)시의 까를로스 몰리나(Carlos Molina)시장님이 2014년에 도미니카 시장님의 소개로 도미니카 세계대회를 통해 우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한국 세계대회에 참석하시고 너무 마음이 열리셔서 아레시보 시에 세계대회를 개최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도시에 돌아오셔서 차량, 숙소, 음식, 홍보등의 세계대회 개최를 위해 전폭 지원해주셔서 2015년 10월 19일 부터 22일까지 제 1회 푸에르코 리코 세계대회가 800여명의 참석자와 함께 성황리에 마쳤다.

캠프 장소 였던 콜리세오 마누엘 빼따까 이기나(Coliseo Manuel "Petaca" Iguina)

 
 

그러면서 캠프에 참석했던 여러 청년들과 시에서 우리 진행부에게 푸에르코 리코에 IYF 설립에 대한 질문을 했고, 그것을 보신 교회의 여러 종들의 의논과 결정으로 IYF와 교회가 세워지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래서 5년간 멕시코에 있었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캠프 후 바로 파송을 받았다. 캠프 후 해외에서 참석하신 형제, 자매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철수를 마치니 정신 없이 몇일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캠프에 연결되었던 자원봉사자들과 IYF와 교회로 쓰기 위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캠프는 끝났지만 매일 4-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시에서 빌려주어 임시 거처로 쓰던 건물에 찾아와 같이 찾았다. 그러면서 그 임시 건물에서 자원봉사자 20명과 캠프 후 첫 자원 봉사자 모임도 가지고 캠프 봉사 소감도 발표하고 같이 다과도 하면서 너무 좋은 시간들을 가졌다. 그리고 그 주부터 매일 3-4명씩 인터뷰를 하면서 각자가 일할 봉사 파트도 나누고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집은 찾지 못했지만 봉사자들과 뒷풀이 모임도 갖고 파트별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캠프 후 3주가 지나도 집은 찾아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몇몇 집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어떤 집은 가격은 좋지만 위치가 너무 안좋았고, 또 어떤 집은 위치도 좋고 안전했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고.. 그리고 제일 큰 어려움은 계약을 해야 하는 우리 부부가 종교비자나 시민권, 영주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비자나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 한 해 주는 주민 번호를 가지고 그 사람의 신용을 따져 집도 계약하고 차를 구입하는 등의 계약의 일들을 하는데, 우리가 가진 관광비자로는 누구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았다. 아니 믿을수가 없었다. 우리가 우리 이름으로 계약도 할 수 없지만, 계약을 해놓고 만약에 계약 기간을 지키지 않고 떠나거나 렌트비를 못 내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집들을 놓치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마음으로 찾은 집이 있었다. 위치도 좋았고 렌트가격도 좋았고 같이 간 봉사자들도 위치나 안정성, 집의 구조 등을 너무 좋아했고 계약하자고 했었다.

월드 캠프에 주방에 일해주었던 시청 직원 글로리아(Gloria)라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내 아내에게 참 많이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그분이 이름을 빌려주셔서 그분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려 했다. ‘이제 드디어 되었구나. 3주가 참 길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뻐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계약하려고 구체적으로 서류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계약서에 “만일 문제가 생길 경우 계약기간(1년) 내의 모든 렌트비를 (글로리아가) 책임져야 한다” 조항이 있어서 글로리아 아주머니가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이름을 빌려줄 수 있었도 그런 책임까지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 부부에게 설명을 하고 “IYF에서 서류를 받아 줄 수 있다, 기쁜소식 선교회나 IYF가 보증을 서줄 수 있다. 문제 없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라고 설명 해도 그 부부는 한결같이 우리 부부는 믿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지 모른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내 마음이 너무 어려워졌다.

그래도 나는 한줄기의 희망을 가지고 IYF에서나 교회에서 어떤 증명 서류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격 이라고 그 집 주인에게 연락이 와서 어디에서 들었는지 그 집은 아카데미나 종교적인 활동으로 절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한 부부만 조용히 살 집으로만 써야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을 하더라도 그런 모임을 하는지 안하는지 자기가 와서 수시로 검사하겠다고 했다. 설사 글로리아 부부가 이름을 빌려준다 해도 그런 조건이면 절대 그 집은 계약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3주동안 어렵게 찾은 마지막 집도 안되나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글로리아 부부는 더 찾아보자고 했지만 나는 그동안 봉사자들과 인터넷상으로 아레시보 시의 거의 모든 집은 다 찾아보고, 약속을 잡아 방문 했었기에 그 집이 나에게는 마지막 집 이었다.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다. 내 마음에 화도 좀 나고 실망이 되었다. 다른 도시도 가보고 싶었지만 목사님들이 시장님과의 관계로 아레시보 시에 집을 찾아야 한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날 시의 담당자가 언질 하기를 언론에서 “시장과 시청에서 시의 건물을 한국 목사들에게 숙소로 내주고 있다” 라면서 소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곳이 시의 건물이기에 그런 언론의 소문들이 문제가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안전이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실제로 캠프 준비 기간동안 매일 경찰차가 와서 우리 건물 밖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집이 우리에게는 최후의 옵션 같았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문제가 생기니 그 누구에게도 화를 내고 싶어도 낼수도 없고 그 누구도 믿을수 없었고, 어느것도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 다음날 아침 마음이 착잡해 임시 거처 앞 주차장을 걷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절망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지난 주에 들었던 영상채팅의 말씀이 생각났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사41:1)”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신데 서로 변론하자고 하신다고 하셨다. “너 이야기 해봐라 나도 이야기 할께” 그때부터였다. 믿음이 생겨서가 아니라 하소연을 하듯이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하나님께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나님 여기에 하나님이 보내셨잖아요. 3주가 지났습니다. 이 임시건물에 언제까지 살아야 합니까. 왜 집을 안주십니까. 집 안주시면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집 다 찾아봤는데요. 이렇게 하시면 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안도와주시면 어떻게 살아갈까요? 도대체 어떻게 하실겁니까?” 한 15여분을 정말 옆에 누군가에게 소리치듯이 하늘에 소리쳤다. 그때였다. 내 눈 앞에 까만 새가 한 마리 지나갔다. 마치 꼭 까마귀 같았다. 그때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말씀 한 구절.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눅12:24)”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기 싫었다. 형편은 너무 반대였으니깐. 하지만 마음 속에 들어온 그 말씀이 나가지 않고 회오리 치듯 요동치고 있었다. 임시 거처로 돌아와 성경을 펴고 그 구절을 크게 인쇄를 하고 쳐다보았다. 그 말씀과 내 마음이 싸움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까마귀도 기르신다고 하신다. 그것보다 내가 더 귀하다고 하셨다’ ‘야,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집이 구해져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집 있어? 집도 없는게.. 정말 믿어지지 않네. 집도 없는 데 뭘 지키셔’ ‘그런데… 말씀은 그게 아닌데?’ ‘아니야. 그냥 너 생각이야. 말씀 아니야. 그냥 너가 위로받고 싶은거야.’ 한참을 그 말씀 앞에서 싸움을 하던 중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온갖 변론을 했지만 하나님은 한결같으셨다. 말씀은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 그러면 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하니 그렇게 믿고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렇죠?’ “여보 이것 좀 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야” 상황은 전혀 아무것도 바뀐 것도 없고 오히려 악화 되었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아무 봉사자도 안오고(봉사자들도 3주간의 동행으로 지쳐있었다) 우리도 방문할 집도 없는 날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아내가 나가자는 것이다. 우리끼리라도 아무데라도 찾아가 보자고... 나는 ‘그게 되겠나. 그걸 우리가 안해봤나. 여지껏 한 것이 그것인데... 다 찾아봤어. 없어.’ 하지만 약속의 말씀이 생각이 났고 ‘그래 한번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 도와줄 봉사자도 없고 길도 잘 모르지만 구글 맵을 펴고 대충 시청 근처에 집이 많아 보이는 곳을 GPS에 찍어서 아내와 단둘이 나갔다. 총 세군데였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소를 갔을 때 우연히 한 집을 발견했다. 전화를 하니 바로 주인이 15분 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집은 너무 크고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것은 계약의 문제. 그러나 우리가 그 부분을 이야기 했을 때 주인은 아무런 꺼리낌 없이 내가 언제 나가든지 한달 전에만 통보해주면 집을 비워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즉 내가 1개월을 살던, 3개월을 살던지 의무로 지켜야 할 기간이 없는 것이라, 글로리아 부부가 걱정하던 부분이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을 봉사자들에게 보여주니 얼마나 다들 좋아하는지, 자주 일해야 하는 아레시보 시청하고도 가까워 급할 때는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또 안전하고, 깨끗한 집이었다. 결국 그렇게 이름을 빌려 계약을 하고 봉사자들 차를 은혜 입어 새 집에 하나하나 짐을 옮기는데 얼마나 마음에서 기쁜지.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좋은 집(1층)을 월세로 얻게 되었다.

 

 

봉사자 모임 후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몄다.

벌써 캠프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났다.

캠프 이후에 봉사자들을 언어(한국어, 일본어), 라이쳐스, 마인드 강연팀 파트별로 나누어서 요일을 정해 모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봉사자들은 내년에 IYF 교사가 될 예정이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봉사자 각자의 행사와 약속으로 빠지는 날도 많고 12월이 가까워 지면서 가족 행사도 많고.. 하지만 집도 찾게 도와주시고 관광객 신분이지만 은행구좌도 은혜로 열게 해주시고(그 간증도 길다), 차도 은혜 입어 구입하려 준비하고 있는 등 여지껏 세밀하게 살펴주신 하나님이 왜 안도와주시랴? 그렇게 기도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수업과 모임을 진행해나가는 중에 봉사자들과 계속 교제가 되고 그 봉사자들을 데리고 오는 가족들과도 자연스럽게 사귐이 되고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구원받는 봉사자들과 가족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자기들 살아오던 습관들이 있어 교회를 완전히 분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자꾸 섞이고 분명한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면 구원의 확신과 교회의 분리도 이루게 하실 거라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봉사자뿐만이 아니고 주변의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도 하고, 또 캠프 교사로 참석한 형제, 자매들에게 종종 연락이 와서 자기반의 학생이었는데 IYF나 교회에 관심이 있다면서 연락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대회에 참석했던 푸에르코 리코 학생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IYF 멤버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봉사자 외에 17명이 되고, 학교나 거리 때문에 시간이 안되서 IYF 멤버는 못하지만 계속 IYF와 연결되어서 소식을 받고 행사에 참여 하고 싶은 학생들 50명이 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 계속 해서 할일이 많겠다 싶었다. 그리고 캠프에 우리를 알게 된 주변 시들을 찾아가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또 학교나 군부대, 경찰학교 등.. 마인드 강연을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파트도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여실 줄 믿는다.

 
 

지난 12월 6일은 집에서 봉사자 가족들과 함께 2015년 마지막 봉사자모임을 가졌다.

푸에르토 리코는 매일 대략 100명의 사람들이 소망이 없어서 미국의 타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런 사람이 1년에 총 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 누구도 희망이 아닌 절망을 이야기 한다. 모두가 정부를 탓하고 능력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범죄에 빠지는 청소년도 많다. 우리는 그런 희망 없는 곳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정부에 학교를 요청해 IYF 센터를 시작하고, 음악학교도 세우고 전 시내에 학교에서 마인드 강연을 할 것이다. 하나님이 길을 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귀한 길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변에서 계속 살펴주시는 교회와 종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더 많고 큰 복음의 진보를 위해 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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