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으로 채워진 삭개오의 마음
예수님으로 채워진 삭개오의 마음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6.01.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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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설교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란 사람이 나온다. 그는 세리장이요, 큰 부자였다. 어느 날 삭개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일어났다. 마침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가서 보려고 나갔는데,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삭개오 속에 예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서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돈을 갖고 싶고, 명예나 지위를 얻고 싶고, 혹은 미움이나 음란 등 더러운 죄악들이 마음을 스쳐가며 순간순간 우리 마음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어느 시대, 어느 종족이든지 인간 속에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한 것이다. 짐승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짐승도 신을 찾거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결코 볼 수 없다.
 우리 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일어나는 때가 있다.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돈을 가지고 싶어서 세리장이 되었고, 많은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마음에 만족은 없고 공허했고, 죄로 인해 가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삭개오 속에 예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삭개오가 사는 여리고로 지나가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러 달려갔다. 하지만 키가 작아 볼 수 없자, 앞으로 달려가서
‘얼굴이라도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뽕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그 길로 가시다가 뽕나무 아래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삭개오는 깜짝 놀라 내려와서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삭개오 속에 어두운 생각들이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우리 마음에서는 미움, 음란, 슬픔, 절망 등이 일어난다. 내가 원하지 않고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일어난다. 그 생각들이 서서히 우리를 사로잡으면 우리는 슬픔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고, 두려움에 빠진다. 두려움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자살하거나 남을 죽이거나 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로 이끌려 간다. 오늘도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들에 이끌려 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처럼 악하고 어두운 생각에 이끌리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놀랍게도 그 마음에 예수님이 세워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죄를 사함받으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우리를 이끄신다. 예수님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절망 같은 어두운 생각들이 전부 떠나가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 일이 참으로 신기하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다.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는 뛰어가 뽕나무 위에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 순간 삭개오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예수님만이 그의 마음에 가득 채워졌다. 삭개오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지니,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삭개오의 마음에 어두운 생각들이 자리 잡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삭개오 속에 있었던 욕망, 쾌락, 낙망 같은 마음이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빛이 들어오면 그런 어두운 마음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생명의 빛, 사람들의 마음에 비취는 빛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이 없는 곳에서 음란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이 없는 곳에서 욕망에 빠질 수 있고, 예수님이 없는 곳에서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빛이 없어야 어둠이 있을 수 있듯, 예수님이 없어야만 악하거나 음란하거나 더럽거나 미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절망하는 마음이 자리할 수 있다. 방에 어둠이 가득해도 전등 스위치를 켜서 전깃불이 들어오면 어둠은 금세 물러가듯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오시면 모든 어두움이 물러간다.

삭개오는 예수님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삭개오는 욕망 속에서 살았다. 돈을 많이 벌려고 세리장이 되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채워져 있었지만 빈 마음은 채울 수 없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처럼 한없이 크고 넓은데, 돈이나 명예나 지위로 채운다고 채워지겠는가.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면 잠시 즐겁고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공허함이나 염려나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어두움을 내쫓을 수 없다.
 마음에서 어두운 것들을 내쫓기 위해서는 빛이 와야 한다. 어두움으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에 이끌려 길가로 뛰어나갔다. 가서 보니,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볼 수 없었다. 길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고, 눈빛이라도 보고 싶고, 표정이라도 보고 싶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예수님이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뽕나무 아래까지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얼굴을 위로 들더니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예수님에 대해 궁금했는데, 만나고 싶었는데,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얻고 싶었는데, 그분이 오늘 내 집에 오셔서 주무시겠다고?’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집으로 달려가서 집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러 집안에 앉으셨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마음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삭개오 집에 오셔서 마주보고 있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제 삭개오는 더 이상 욕망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빛이신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와서 삭개오의 마음을 비춰 주셨기 때문에 삭개오의 마음 어디에도 어둠이 있을 수 없었다. 삭개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이것은 삭개오의 마음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그렇게 재물을 탐하던 삭개오가 이제는 재물의 종이 아니고, 욕망의 종이 아니었다. 예수님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면…
우리는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하고, 우리가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예수님으로 채워지면 모든 것이 변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 안에 있던 소와 양과 비둘기 등 모든 더러운 것을 내쫓고 성전을 깨끗케 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면 내쫓지 않으려고 해도 슬픔이 물러가고, 절망이 물러가고, 미움과 악이 물러간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이, 기쁨이, 사랑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많은 사람들이 악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선을 행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이 물러가고 욕망이 물러가고 음란한 생각이 물러간다. 그리고 평안과 기쁨이 우리 마음을 채운다.
 예수님을 만나던 날, 삭개오는 재산을 많이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후 예수님이 그의 일생을 이끌어가 주셨을 줄로 확신한다. 성경을 읽으면 궁금한 것이 많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의 삶이 어떠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 교회에도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이 변화되어 사는 모습을 보면 삭개오도 그렇게 살았으리라 마음에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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