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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목사의 신앙관은? 가장 복음적이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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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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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옥수 목사의 신앙의 촛점과 형성배경

“거듭나기 전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목사님이든, 장로님이든 죄인인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모두 죄를 짓고 난 후 용서를 구하는 회개 기도만 했지, 심각하게 죄에 대해 고민하고 온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죄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도 쳤고, 상담도 했고, 회개 기도도 했고,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해결되지 않아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박옥수 목사, 2001년 4월호 월간중앙 ‘한국 기독교 뉴리더’ 중)
 

   
 
   
 

박옥수 목사는 처녀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고향 선산의 장로교회를 다녔지만, 죄 문제로 인해 늘 가책과 고통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회개 기도는 가르쳤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영원한 속죄(히 9:12)는 알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영국 웩 선교회)를 통해 구원 여부를 지적 받은 청년 박옥수는 자신의 죄와 구원 문제를 심상히 여길 수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와의 개인 상담, 철저한 회개 기도, 철야 및 금식 기도, 봉사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그의 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참된 복음이 없었다. 그로 인해 박옥수 청년은 1962년에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해 10월 7일 새벽 기도회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으셨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해결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후에 박옥수 목사의 마음에 죄 문제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통해 속죄의 기쁨을 전해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 열망이 자연스럽게 그의 신앙과 사역의 초점을 복음 전도에 맞추도록 해주었고, 그로 인해 ‘속죄 목사’란 별명도 얻는다. 특기할 사실은,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챨스 스펄젼 등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쓰신 복음 전도자들 대부분이 거듭나지 못한 교회에 속해 있을 때 죄와 구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 마음을 쏟았다는 것이다.

2. 전적인 헌신과 성령의 인도에 집중된 마음

“어느 날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드릴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진 게 몸밖에 없는데, 어디다 쓰겠습니까? 아무 쓸모없는 인간인데 드릴 게 없어 이거라도 드립니다. 당신이 받으신다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2002년 4월호 월간조선, 박옥수 목사와의 인터뷰 중)

   
 
   
 

1962년 10월 7일,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남을 체험한 박옥수 청년은 너무나 감사하여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고 싶었지만, 드릴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중 자신의 몸을 드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후 그의 삶은 자신 스스로 자기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 즉 성령의 인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모범적이고 신실하게 복음 전도 일을 해옴으로 써 기독교계의 뉴리더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었다.

“40년 전 거창 장팔리에서의 사역 당시, 퍽 가난한 시절이라 예배당에 갖춰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겨울이면 불을 떼지 않은 차가운 바닥에서 주일학교 궤도를 덮고 자곤 했는데, ‘이러다가 얼어붙은 시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선산에 집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다 죽을지라도 도움을 구하러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개울물 얼음장 밑으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저렇게 얼음장 속의 물고기들도 지키시는데 왜 나를 지켜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수많은 신앙의 겨울을 이기게 해주었습니다.”(박옥수 목사의 간증집, 겨자씨 한 알 중)

헌신된 참 신앙은 자기의 유익과 희생을 뛰어넘었기에 어떤 어려움이나 유혹에도 굴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있는 군 생활은 신앙의 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참 많은 기독 청년들이 군에서는 신앙의 한계를 만나는 것을 보는데, 1965년 10월 30일 입대하여 1968년 6월 8일 제대한 박 전도사의 군 생활은 그의 헌신된 신앙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는 특기할만한 것이었다.

“고시과에서 근무할 때 수많은 훈련병들이 돈을 줄테니 점수를 높여줘서 후방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여 큰 유혹이 되었지만, 당시 내게는 ‘오늘 밤 주님이 오시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맞아야 할까?’라는 마음과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섭섭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얻어진 모든 것은 결코 유익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 내 마음을 지켜주신 것이다.”(월간 기쁜소식 2002년 8월호)

“하나님은 군에서도 성경을 대하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사병들이 가장 싫어하는 새벽 4시부터 있는 말번 근무를 매일 자청해 서면서 2시간 동안 성경을 보며 기도했다. 그 후 하나님은 일반 사병이었던 나를 군목처럼 지내게 하셔서 3년 동안 외출 한 번 없이 매주 예배를 인도하며 수많은 사병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제대할 때는 훈련소장님의 후원 아래 예배당도 지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처럼 군 생활 중 여러 부분으로 도우셔서 그때 내 별명은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 였다.”(월간 기쁜소식 2002년 9월호)

물론, 제대 후에도 박 목사의 삶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자신의 뜻이나 원함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마음과 성령의 인도에 집중된 마음! 이 마음이 바로 40년이 넘게 복음만을 위해 일관되게 살아온 그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신앙관이었다.

특히, 박옥수 목사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주목하는 사실은, 1962년 거듭난 후 45년 동안 복음 전도 일을 해 온 그에게서는 오늘날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들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그의 신앙관의 열매인 것이다. 그는 지금도 두려운 마음으로 기쁜소식선교회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끌고 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저는 교회나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까봐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한 부분 한 부분 교회를 이끌었는데, 하나님께서 복음적인 교회들이 걸어간 그 길로 똑같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가장 복음적이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신(新) 한국인 대상(大賞)’ ‘참 목회자 상(像)’ ‘21세기의 참된 목자’ 등 박옥수 목사를 취재한 언론의 제목과 내용을 유심히 보면, 한결같이 외형보다는 그의 내면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각 분야의 정상에 도달한 이들만 취재하며 인터뷰의 달인(達人)으로 유명한 월간조선의 오효진 씨(前 정부대변인)는 박옥수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목사님 같은 분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썩었지만, 목사님은 타락하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하면서, 후에 아래와 같이 인터뷰 말미를 작성했다.

   
 
   
 

[ “목사님,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 같으면 세상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면 진짜 재미있지요!” 그는 절대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양보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바로 박옥수 목사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신앙관 중 하나였다. 이 마음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어우러져, 숱한 교회들의 타락 속에서도 기쁜소식선교회를 개혁의 선두 주자로 이끌어 올 수 있었다. 특히, 믿음에만 초점을 맞춘 거듭난 선교사들이 운영한 선교학교(믿음의 방패 선교회 선교학교 / 회장 : 딕욕 선교사)에서의 훈련이 그 마음에 바탕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러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다져주었다. 그래서 기쁜소식선교회가 태동하기 전까지 박옥수 목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일관되게 그 마음이 작용되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박옥수 목사는 교회 형성과 운영에 큰 비중을 두었다. 자신도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에서 고통을 받았고, 죄 문제로 고통하며 사는 여러 교인들, 특히 3년간의 군(軍) 생활 중 신앙의 갈등과 회의 속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기독 청년들의 모습을 본 그의 마음에는 ‘이 시대에 가장 복음적이고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고민을 깊이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드문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참된 복음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믿음이 아닌, 인위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교회 안에 스며들지 않도록 온 마음을 쏟았다.

박옥수 전도사가 군에서 막 제대했을 때 지인으로부터 좋은 제의를 받았지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사도 바울은 거듭난 후 율법적인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타락한 천주교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요한 웨슬레 역시 구원 받은 후 영국 성공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왜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합력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두가 타락한 기존 교회들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을 잘 알았지만, 타협보다 하나님 편에 서서 개혁을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편에 서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복음을 전할 것을 분명히 했다. 

그 후 박옥수 전도사는 경북 도내의 복성동교회, 사우동교회, 남사교회, 와이미교회, 바란교회 등 5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어린이 선교를 시작한다. 그 순회 집회를 통해 1,000여명의 어린이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박옥수 전도사는 ‘나는 한 평생 이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그 후 25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어린이 선교를 계속 하면서 1만여 장의 구원 간증문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1969년 5월부터는 하나님의 인도로 김천에서 복음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당시 박 전도사는 방을 얻을만한 비용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방을 얻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스에서 영국인 선교사 존 앤더슨을 만났는데, 박 전도사가 거처하는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낸 후 다음과 같은 마음의 고백을 한다.

“내가 한국에 온 후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나보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비록 일주일 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1년을 더 살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박옥수 목사의 신앙관과 참된 교회를 향한 열망이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기쁜소식선교회는 복음적이지 못한 기존 교단들과 구별된 채 독립 교단으로, 기독교 역사상 복음의 일에 힘 있게 쓰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걸어간 개혁의 길을 선두에 서서 걷고 있다. 지금도 박옥수 목사는 한국 교회에 대한 개혁과 아울러 자신은 물론, 기쁜소식선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저는 싸움꾼입니다. 제 자신하고도 싸우고, 전도자들하고도 싸우고, 우리 교회 성도들하고도 싸웁니다. 믿음이 아닌 부분을 지적하면 사람들이 잘 안 받지요. 그러면 또 싸우게 됩니다.”(박옥수 목사, 2002년 4월호 월간조선 ‘오효진의 인간탐험’ 중)

출처 : 기쁜소식선교회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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