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이 된 백정
양반이 된 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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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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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양에 살던 김 대감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힐 처지에 놓였어요. 옥에 갇히지 않으려면 관아에 큰돈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돈이 없었어요. 마을 변두리에서 고기를 파는 백정이 그 소문을 들었어요.
“양반이 옥살이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김 대감님이 곤란하게 되었구먼. 나야 백정주제에 돈만 많으면 뭐하나? 이 돈으로 김 대감님이나 살려야겠다.”
백정은 한밤중에 김 대감 집을 찾아갔어요.
“소인은 하잘 것 없는 백정입니다만, 대감님을 돕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이 돈을 받아주십시오.”
백정은 돈 자루를 남겨놓고 부리나케 김 대감 집을 나섰어요.
김 대감은 백정이 놓고 간 돈으로 관아의 빚을 갚고 다시 벼슬을 얻어 잘 살게 되었어요.

 

얼마 뒤, 백정은 재산을 다 정리해 한양을 떠났어요. 돈은 많지만 천민 출신이라 늘 멸시를 받으며 사는 것이 서러웠거든요. 안동에 도착한 백정은 아담한 기와집을 한 채 구해서 종들도 부리고 양반 행세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안동 양반들이 가만히 지켜보니, 걸음걸이나 말투가 양반이라고 하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나 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수상했어요. 백정은 다른 양반들이 자신을 의심하자 불안해졌어요.
‘양반 행세 한 것이 들통 나면 내 명대로 못 살 텐데 어쩌지? 옳거니!’
백정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댔어요.
“한양에서 큰 벼슬을 하는 김 대감이 내 매부요. 내가 김 대감의 처남이라오.”
그 소문이 퍼지자 백정에 대한 안동 양반들의 의심이 수그러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김 대감의 아들이 암행어사가 되어 안동 땅에 왔어요. 그런데 그곳에 아버지의 처남이 산다는 소식을 듣고, 김 대감의 아들은 백정을 찾아갔어요.
“저는 암행어사입니다. 그리고 한양 김 대감님이 제 아버지시고요. 소문에 듣자하니 대감님이 김 대감님의 처남이라고 하셨다는데, 어머니에게 남자 형제가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러 왔습니다.”
백정은 기겁하고 납작 엎드려 벌벌 떨었어요.
“아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한양에서 고기 팔던 백정이온데, 괄시받는 것이 서러워서 이곳에 와서 양반 행세를 했습니다. 양반이 아닌 것이 들통날까 봐 김 대감님의 처남이라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랬군. 그런데 왜 하필 내 아버지를…?”
“전에 김 대감님이 어려움을 당하실 때 조금 도와드린 게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예? 그럼 그 백정이란 말씀입니까? 안 그래도 아버님이 은혜를 갚으려고 백방으로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계셨습니다. 이제야 은인을 찾았군요.”
“은인이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외삼촌!”
“예? 외삼촌이라고요?”
“예, 외삼촌. 내일 제가 관아에서 외삼촌을 부를 테니 외삼촌은 오지 마시고 저를 꾸짖어주십시오. 저를 진짜 조카로 생각하고 꾸짖으시면 됩니다.”
다음 날, 정말로 관아에서 포졸들이 가마를 들고 와서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백정은 고민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암행어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하고는 포졸들에게 호통을 쳤어요.
“지가 아무리 장원급제한 암행어사라 한들, 나한테는 조카가 아니냐!
어디 감히 삼촌을 오라 가라 해?”
곧 이어 김 대감의 아들이 백정을 찾아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빌었어요.
“외삼촌,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바빠서 그만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소식을 들은 안동 벼슬아치들과 양반들이 백정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김 대감의 아들은 한양에 돌아가 식구들에게 백정을 만난 이야기를 했어요. 김 대감은 “잘했다. 잘했어. 네가 아비 대신 은혜를 갚았구나.” 하고는 기뻐했어요. 그런데 작은아들은 “백정 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내 그 놈 버릇을 고쳐줘야지.” 하고는 말을 타고 안동으로 달려갔어요. 관아에 들러 포졸들을 데리고 백정 집으로 갔어요.
“네 이놈! 백정 주제에 외삼촌이라니! 우리 어머니는 오라비가 없어!”
백정이 보니, 김 대감의 작은아들이었어요.
‘어이쿠, 이젠 정말 끝났다. 아니지. 김 대감이 나를 그렇게 고마워 한다고 했지? 큰아들이 나를 외삼촌으로 대하고 갔으니 밀어붙이자.’
백정은 작은아들을 맞았어요.
“어서 오게, 작은 조카. 그런데 또 정신병이 도진 것이냐?”
“뭐라고? 누구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
“네가 예전에 정신이 안 좋을 때 내가 쑥뜸을 해주어 좋아졌지. 그때 다 나을 때까지 했어야 하는데, 하도 뜨겁다고 난리를 치는 통해 하다 말았더니 병이 도진 모양이다. 여봐라! 저놈을 잡아 손발을 묶고 방에 눕히거라. 내가 쑥뜸을 떠서 병을 고쳐줘야겠다.”
“쑥뜸은 무슨? 어서 내려와서 빌지 못할까?”
포졸들이 보니 작은아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 지르는 모습이 영락없이 정신 나간 사람이었어요. 포졸들은 백정 양반의 말을 따라 작은아들을 잡아 꽁꽁 묶고 방에 눕혔어요.
“꼼짝 못하게 잘 잡고 있어라.”
백정은 포졸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마른 쑥을 꽁꽁 뭉쳐 김 대감 작은아들의 등에 올려놓고 불을 붙였어요.
“앗, 뜨거! 앗, 뜨거! 어서 치우지 못해? 나를 어서 풀어줘!”
“이놈, 가만히 누워 치료를 받아라. 열 번은 지져야 네 병이 낫겠구나!”
작은 아들은 등짝이 뜨거워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어요. 난리를 치면 칠수록 포졸들은 백정 양반의 말을 믿고 더 꼭 붙들었어요. 백정은 또 다른 쑥을 뭉쳐 작은아들의 등에 올려놓고 불을 붙였어요.
“이게 나쁜 병을 잡는 데에는 그만이지. 어떠냐? 정신이 좀 드느냐?
내가 누구로 보이느냐?”
“누구긴 누구야? 백정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어서 나를 풀어줘!”
“어허! 그동안 병이 더 깊어졌구나! 예전에도 그렇게 사람을 못 알아 보고 헛소리를 하더니! 앞으로 스무 방은 더 놓아야겠다.”

백정은 다시 쑥을 뭉쳐 작은아들의 등 위에 올리고 불을 붙였어요.
“앗, 뜨거! 사람 살려!”
“그래, 이제 정신이 드느냐? 내가 누구로 보이느냐?”
작은아들은 이러다가는 백정이고 뭐고 자기 등짝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얼른 대답했어요.
“아이고, 외삼촌! 잘못했습니다. 이제 멀쩡합니다. 그만 놔주세요.”
“오,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그래도 더 맞아야 한다. 이참에 병을 뿌리 뽑아야지.”
“아닙니다, 외삼촌! 이제 깨끗하게 다 나았으니 걱정 마십시오. 이제 그만 풀어주세요.”
“정말이냐?”
“그럼요, 병을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됐다. 내 조카를 풀어주어라.”
작은아들은 밧줄을 풀자마자 두루마리를 걸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한양으로 도망갔어요. 그 뒤로 백정은 안동 작은 마을에서 편안히 지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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