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내 심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 이정도(코트디부아르 아비장교회 선교사)
  • 승인 2016.04.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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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첫 집회를 통해 교회와 연결된 이브 형제
새로 얻은 집의 위치가 좋아서, 지나가다가 교회 간판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사하기 전에는 매일 전도하러 다녔는데, 예배당을 옮긴 후로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감당하기가 벅찼다. 한국에서 서진기 목사님이 오셔서 새집에서 첫 전도 집회를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지만 ‘이브’라는 청년만 교회에 남았다.
 이브 형제는 미장공으로, 마음이 순수한 청년이었다. 구원받은 후 늘 교회와 함께했다. 당시에는 성도 수가 적었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모두 가깝게 지냈다. 이브 형제는 혼자 살았는데, 한번은 몸이 아파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교회에 머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갈수록 형제의 병이 심해졌다. 새벽에 형제를 위해 기도하면서 마태복음 8장을 읽었다. 백부장과 병든 그의 하인에 대한 말씀이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백부장이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하인이 병들면서 예수님을 만났고, 믿음의 역사를 경험했다. 백부장의 이야기가 내가 처한 상황과 아주 비슷해서 말씀을 자세히 다시 읽었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 8:7) 나는 이브 형제에게 달려가 간증하면서 “고쳐 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었다. 누워만 있던 형제가 내 이야기를 듣고 옥상에도 올라가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하나님이 이브 형제를 데려가셨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브 형제를 속인 것만 같았고, 앞으로 어떻게 말씀을 이해하고 믿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날 저녁은 지역 교회에서 처음으로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갈 수가 없었다.
 ‘말씀이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지? 말씀을 안 전하려면 무엇 때문에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하지? 그래. 더 이상 속이지 말고 떠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에 자매 두 명이 단기선교사로 와 있었는데, 교회의 모든 일과 돈을 자매들에게 맡기고 떠날 준비를 했다. 동고동락한 형제 자매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날 수는 없어서 예배당에 모두 모이게 한 후 내 마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쏟아냈다. 작별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동안 마음으로 연결되어 지내온 사람들이라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잠시 후 로제 형제가 방문을 쾅 열고 들어와 성경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선교사님, 이거 가지고 가세요! 선교사님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믿게 되었는데, 선교사님이 말씀을 못 믿겠다고 하시니 제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거 가지고 가세요!” 베나데트 자매도 나를 찾아왔다. “선교사님, 선교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 나오세요.”
 내가 선교사이고 인도자이지만 교회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베나데트 자매의 말에서 교회의 권위가 느껴졌다. 자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갔는데, 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선교사님, 저희들은 지금까지 선교사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선교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이 늘 말씀하셨잖아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 삶 속에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선한 일’이라고요. 선교사님, 이브 형제를 누가 데려갔습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그렇다면 선한 일 아닙니까? 돌보아주는 사람 없이 죽었어야 할 이브 형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선교사님 곁에서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께로 갔는데, 선한 일 아닙니까? ‘고쳐 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이브 형제를 데려가셨어요. 선교사님이 하신 일이 아니에요. 선교사님, 당장 포브웨이에 가세요. 가서 집회를 하세요.” 나는 베나데트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포브웨이로 향했다. 나를 붙잡아 주고 인도해 주는 교회가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나는 생각이 많고, 생각에 쉽게 이끌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 주위에 나를 돕는 사람들을 두셔서 연약한 내가 지금까지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었다. 연약한 것은 저주가 아니다. 나를 도울 자가 없는 것이 저주다. 믿음이 없는 것이 저주가 아니라 교회 없이 살아가는 삶이 저주인 것이다. 솔로몬은 넘어졌을 때 일어나지 못했지만 다윗은 일어날 수 있었다. 전도서 4장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9~12)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으므로 전도서 4장에 나오는 두 사람은 교회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브 형제의 일로 내 마음에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가 이끄는 신앙을 가르쳐주셨다.

 

벵상 형제님의 병 문제로 말씀의 권위를 세워주셨다
코트디부아르에 교회가 세워지고 초창기에는 성도의 대부분이 청년 형제 자매들이었다. 나이 드신 형제님이 한 분도 없었는데, 연로하신 ‘벵상’ 형제님이 구원받으셨다. 벵상 형제님은 매일 선교학교 수업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오후에는 선교학생들과 전도하러 나가셨다. 벵상 형제님이 교회에 계시니 집안에 어른이 계신 것처럼 분위기가 좋았고, 교회가 안정되어 갔다.
 한번은 가나에서 사역자 모임을 갖고 돌아왔는데, 벵상 형제님이 보이지 않았다. 선교학교 형제들에게 물으니 병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형제님은 고환에 질병이 있어서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임시로 관을 연결해 소변을 볼 수 있게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연결한 관에 문제가 생기면서 소변이 흘러 바지와 소파를 더럽히자 교회에 나오지도 못하고 전도하러 가지도 못하고 계셨다. 형제님 댁에 병문안을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가서 형식적으로 말씀 몇 마디를 이야기하다 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형제님에게 교회에 오시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수술비를 대주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정말 비참했다.
 말씀을 사모하고 전도하기를 원하는 형제님이 병으로 인해 교회에 오지 못하고 있는데, 인도자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열왕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엘리사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종이었다. 어떤 도시, 어떤 집, 어떤 사람의 문제이건 간에 하나님 종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능력으로 해결되었고, 문제가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문제를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마음에 정죄가 찾아왔고, 괴로웠다. “하나님, 당신이 저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습니까? 제가 당신의 종이라면 제게도 벵상 형제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과 능력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형제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제가 무슨 당신의 종입니까? 도와주십시오. 제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눈물만 흐르고 무능한 나 자신을 정죄하는 소리가 들려서 이틀 밤을 새웠다.
 성경을 읽고 기도해도 답이 없었는데, 사흘째 되던 날 새벽에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하셨다. 마음껏 말씀을 들을 자유! 마음껏 말씀을 전할 자유! 이어서 마태복음 8장 17절이 떠오르면서 연결되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짊어지신 것은 우리의 죄만이 아니었다. 모든 연약함과 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왜 우리의 연약함과 병까지 해결하셔야 했나? 죄 사함을 얻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로 힘 있게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을 아셨기에 복음을 가로막는 어떠한 장애도 있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해결하신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날아갈 듯이 기뻤다.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려서 다섯 시 반경에 벵상 형제님 댁으로 향했다. 그리고 형제님께 말씀드렸다. “형제님,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형제님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이 자유를 누리세요. 형제님에게는 말씀을 자유롭게 들을 권리와 자유롭게 전할 권리가 있어요. 교회에 나오세요. 전도하세요. 예수님이 형제님의 병을 다 지고 가셨고 해결해 놓으셨으니 오늘부터 바로 교회에 나오세요. 아셨죠?” 형제님은 그날부터 교회에 나오셨고, 며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이상하게 그날 이후 소변이 새지 않아요. 소변관이 잘 연결된 것 같아요.”
 “형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나님이 고치시면 완벽하게 고치시지 소변관만 연결하시겠습니까? 병원에 가서 당장 관을 떼버리세요. 형제님은 다 나으셨어요.”
 “예, 목사님.”
 형제님을 만날 때마다 병원에 다녀오셨는지 물었는데, 부담스러워하시며 대답을 안 하시고 교회에도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형제님께 전화를 드렸다. “형제님, 소변관을 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꼭 말씀하세요. 관을 제거하고 싶다고요. 그렇게 말하실 수 있지요?” 벵상 형제님은 의사에게 소변관을 떼내고 싶다고 하셨지만 의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수술하기 전에는 절대 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자 형제님의 소변관이 그냥 툭 떨어져버렸다. 형제님이 놀라서 소변 주머니와 관을 들고 병원으로 뛰어가려는데, 갑자기 ‘너 어디 가?’ ‘병원에 가지.’ ‘왜?’ ‘소변관이 떨어졌잖아.’ ‘목사님이 그거 떼라고 했잖아.’ ‘그렇지.’ ‘그러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겠네.’ 하는 마음이 들어  가지 않았다고 했다. 형제님은 그날 이후 정상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벵상 형제님의 일을 계기로 말씀을 향한 내 마음을 정결케 해 주셨다. 이브 형제의 일을 통해 교회의 권위를 가르쳐 주신 하나님이 벵상 형제님의 병 문제로 내 마음에 말씀의 권위도 세워주셨다. 신실하게 내 마음을 간섭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 감사했다.

 

둘째 딸 선교의 체온이 40도가 넘어가는데, 두려웠다
아프리카의 특성상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는 항상 달고 산다. 내가 아픈 건 괜찮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만나곤 한다. 한번은 둘째 딸 선교가 아팠다. 밤새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동네 보건소에 가서 피검사를 하는데, 딸이 체질적으로 약해서인지 핏줄을 찾기가 힘들었다. 간호사가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 주사바늘로 두 번 찔렀지만 실패였다. 세 번째 찌르려고 할 때는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간호사에게 소리를 질렀더니 아내가 내 두 팔을 잡고 말렸다. 네 번째 주사바늘을 딸의 팔에 꽂았다. 간호사가 혈관을 찾기 위해 바늘을 살 속에서 돌리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욕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혈관이 터져서 피가 흘러나오자 간호사가 흐르는 피를 유리관에 담으며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딸은 울다가 지쳐서 쓰러졌다.
 검사 결과는 말라리아였다. 의사가 건네준 처방전에 여러 개의 약 이름과 링거주사 세 대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의사에게 “선생님, 이 보건소에는 제 딸에게 링거주사를 놔줄만한 실력을 가진 간호사가 없습니다. 간호사가 피검사를 하기 위해 주사바늘을 네 번이나 찌르다가 결국 혈관을 찢어버렸습니다. 근육 주사나 다른 처방전을 써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한 간호사를 불렀고, 그 간호사는 딸의 팔을 보더니 주사를 놓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몇 번을 물으며 확인했는데, 자신 있다고 했다. 병실로 가서 간호사가 딸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간호사는 혈관을 찾지 못했다. 나는 고함을 질렀고, 아내는 나를 밀어냈다. 간호사가 다시 주사를 놓았는데, 이번에는 성공했는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딸의 팔이 부어올랐다. 주사바늘을 빼내어 다섯 번째 다시 꽂았지만 실패였다. 두려워하며 우는 딸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주사바늘을 빼고 링거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간호사를 쫓아냈다.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나를 불쌍한 듯 쳐다보았다. 딸은 그날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병원을 나왔다.
 저녁에 선교의 몸에서 열이 났다. 체온이 40도를 넘어가는데, 두려웠다. 나는 새벽 두 시에 잠이 깨어 딸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선교는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 없이 누워 있었다. 아이를 한 번 잃고 난 후 버릇이 생겼다. 새벽에 깰 때마다 아이들의 가슴에 손을 대보는 버릇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딸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두려움을 물리칠 수 없었다. 선교가 신음을 하는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나직이 말했다.  “선교야, 무능력한 아빠를 용서해 줘. 내일은 아빠가 도둑질이라도 해서 너를 제일 좋은 병원에 데리고 갈게. 미안해.”
 

 

딸에게 이야기하고 나니 내가 선교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님, 제가 왜 이렇게 됐습니까? 전에는 당신께 기도하고 나면 어떤 형편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도해도 너무 두렵습니다. 이 마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모기에 안 물리거나 병에 안 걸리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고 싶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정했다. 새벽 네 시쯤 되었을 때 아내를 깨워서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선교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기로 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오전에 선교학교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전도하러 나갔다 돌아왔는데, 선교가 밖에서 놀고 있었다. 열이 떨어지고 건강해진 딸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던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전 10:2) 나의 심장은 왼편에 있다. 두려우면 빨리 뛰고 평안하면 천천히 뛴다. 상황이 변할 때마다 심장 박동 속도도 달라진다. 내 마음은 왼편에 있기에 형편이 어떠하냐에 따라 늘 변하지만 지혜자이신 하나님의 심장은 오른편에 있어서 언제나 변함이 없다. 내 감각, 내 느낌을 믿고 사는 동안에는 항상 두려웠다. 하지만 내 심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살 때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선한 것을 받아서 사는 삶이 정말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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