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데일리
월간 기쁜소식특집
14기 단기선교사 집중탐구(하)특집_돌아온 별들의 이야기
진행 김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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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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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
 단기선교지에 있으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못난 사람인지,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마음으로 흐르는 사이가 되어서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한 단기선교사가 간증하는 말이다.
5월의 햇살보다도 더 따듯한 기운이 전해져 오는
라찬양, 전희원, 최인수, 조은주 단기선교사의 간증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내가 너의 산성이고 방패야!"
라찬양 인도 아쌈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우리 집안 형편이 안 좋아졌다. 엄마와 나, 남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는데, 세상이 싫었고 모든 것이 비뚤게 보였다. 나 자신도 미웠다. 셋째 이모가 기쁜소식인천교회에 다니셨는데, 우리 가족을 교회로 이끄셨다. 처음에는 교회가 너무 싫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이거저것 물어보는데, 가식으로 느껴졌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도 거짓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 이끌어주시는 이모를 따라 기쁜소식광명교회에 가셨고, 말씀을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내게 학생수련회와 주일예배에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잔소리처럼 들려서 가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여자 친구를 만나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엄마는 나를 ‘공부는 못해도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셨지만, 사실은 안 그랬다. 대학에 가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여자 친구를 사귀느라, 입대 준비를 하느라 학교에 가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군대에서는 그런대로 잘 적응했다. 그런데 마음을 많이 주며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죽고 싶은 마음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시간이 많아서인지 군대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특히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동안 내 가까이에 있으면서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두 아들을 키우시느라 온갖 일을 하면서 힘들게 사셨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냈는데,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위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엄마가 기뻐하실 일을 한 가지만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하게 된 일이 ‘교회에 마음 열기’였는데, 교회에 마음을 열면서부터 내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다. 돌아보면 하나님이 내게 일하신 거였다.
 마음을 달리하고 보니 교회의 많은 분들의 진심과 미소가 보였다. 그분들은 나를 볼 때마다 단기선교를 다녀오라고 하셨기에 나는 여러 생각을 뒤로 하고 전역한 뒤 단기선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13기로 갈 계획이었지만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4기로 지원해서 단기선교사 훈련을 받는데,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셨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에 대한 말씀이었다. 야곱이 복을 받으러 아버지 앞에 나갈 때 절대 자기 이름으로 나가면 안 되었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만 믿고, 에서의 이름으로 나가야 했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 큰 소망을 주어서 그 말씀을 의지하여 인도로 떠났다.
 

   
 

인도에 갔을 때 선교사님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찬양아, 너에게는 ‘할 수 있어!’ 하는 너 자신을 세우려는 마음이 있어.” 선교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다들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나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나를 높이다니? 나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내가 하려는 게 아니라 야곱처럼 말씀만 들고 나가려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선교사님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정확히 보고 계셨다. 내가 계획한 일이 모두 망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나는 ‘그래도 괜찮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는데, 하나님은 사소한 일로도 나를 간섭하셨다. 몸이 아팠던 일, 현지인과 부딪히는 일 등이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특히 콜카타 월드캠프 때 망고 알레르기를 앓는 일을 통해서 자신 있었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숨쉬기도 힘든 더운 날씨에 월드캠프를 준비하면서 선교사님이 사주신 망고를 허겁지겁 먹었는데, 다음날 온몸이 부어오르며 아프기 시작했다. 무섭고, 아프고, 참을 수 없었다. 월드캠프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행복할 수 없었고, 알레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이 포기가 되었다.
 집에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교사님 사모님이 교제를 해주셨다. 시편에 나오는,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다윗에 대한 말씀이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정말 처참했다. 왕인 자신을 아들이 죽이려고 하고, 군사들은 다른 곳에 있고, 모두가 “하나님은 없어!” 하며 왕을 비웃는…. 하지만 다윗은 그런 형편에 휘둘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이루어 놓으신 일만 믿고 바라보았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 3:7) 다윗의 시를 읽는데, 소름이 돋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상황에 따라 흔들렸던 내 모습이 비쳐졌다. 마음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내가 나를 붙잡고, 내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나를 보게 하시네요.’ 하는 고백이 나왔다. 하나님이 나에게 “내가 너의 산성이고 방패야. 네 대적은 내가 다 물리칠 테니까 너는 나만 믿고 행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인도에서의 1년을 돌아보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나에게 마음을 쏟아 준 사람들이 고맙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마음을 교회에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끌어주고 계신다. 어머니도 “나는 정말 행복해. 찬양이가 변해서 더 기쁘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이끄실 거야.” 하시며 늘 웃으신다. 하나님이 당신의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 가족을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만드실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되고 소망스럽다.

   
 

아들의 모습과 상관없이 약속대로 일하신 하나님
이은자 기쁜소식광명교회, 라찬양 어머니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하고 가정이 깨어진 뒤 교회를 만나 2005년 11월에 구원받았다. 두 아들을 키우며 사는데, 인간적인 훈계와 말로 아이들을 이끌 수 없었다. 내 마음이 ‘버럭’ 올라올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사야 54장 13절의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찬양이가 단기선교를 가기까지 하나님이 붙잡아 이끄시면서 많은 일들을 하셨다. 한번은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찬양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목사님이 하신 말씀처럼 내 마음에 말씀이 없었어. 그런데 지난 단기선교사 워크숍 때 창세기 27장 13절 말씀을 들었어.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이 말씀이 정말 좋아. 내가 받을 저주를 예수님께 다 돌리면 된다고 하시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는 찬양이를 보니 한없이 기뻤다.
 나라를 결정하는 부분부터 모든 일들을 교회와 목사님이 인도해주셨다. 또 하나님이 내 마음에도 일하셔서 아들을 향한 육신적인 기대와 욕망을 버리게 하셨다. 찬양이를 인도로 떠나보내면서 박성국 목사님께 “목사님, 찬양이를 인도에 팔아버리세요! 선교사로 써 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목사님이 박수치는 이모티콘으로 답해주셨다.
 찬양이는 요즘 교회와 목사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밝게 지내고 있다. 내게 “엄마,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나님이 도우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들과 한 마음으로 교제하며 지내는 행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들들의 모습과 상관없이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라는 약속의 말씀이 일하시기에 소망을 품고 산다.

내 마음에 은혜가 딱! 세워졌다
전희원 호주

단기선교를 가기 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기 때문에 호주로 떠나면서 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다짐을 하고 갔다. ‘1년 동안은 말 잘 듣고 잘해야지!’ 하는 다짐이었다.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사모님이 시키는 일들을 의욕 넘치게 하는데 자꾸 혼이 났다. 함께 지내는 여자 단기선교사들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번은 모임을 가지면서 내가 간증했는데, 한 언니가 “네 간증을 듣다 보면 단기선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변화되어 하는 간증 같아서 뭔가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이제 막 구원받은 언니가 뭘 알겠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흘려들었다.
 아침식사를 준비할 때면 머릿속으로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생각하며 바쁘게 움직였지만 매번 사모님께 혼이 났다. 사모님이 “너와는 마음이 안 통해!” 하시는데, 혼날수록 잘하려고 애썼고 마음이 흐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지치기만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떤 일로 내 마음이 드러났다. 선교사님은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희원이는 죄인이 되어 본 적도 없고, 구원을 받은 사람도 아니야.”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고,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기에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 갔다. 다른 단기선교사들은 그 섬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는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나도 구원받지 않았으면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울적하기만 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돌아온 뒤 사모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사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희원아, 네가 호주에 와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냐? 구원받은 줄로 알고 그냥 살았으면 지옥에 갈 뻔했잖아. 구원받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사모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정말 그렇구나. 이 일은 감사한 일이구나.’
 

   
 

이후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하셨다. 내 생각대로만 살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선교사님과 사모님을 따르려고만 했지 따를 수 없는 사람인 것을 몰랐다. 잘할 수도, 듣고 따를 수도 없는 내 모습이 인정되면서 조금씩 배우고 싶었다. 하루는 사모님이 나를 향한 사모님의 마음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그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모님이 인간적으로 잘해주려 하신 게 아니라  내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 위해서 싸워주신 것이었다. 나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시려고 계속해서 책망해 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사모님의 마음을 알고 나니 혼나도 자유롭고 행복했다.
 6월에 시드니에서 캠프를 가졌는데, 선교사님이 로마서 6장 말씀을 전하셨다. 설교 중에 역할극처럼 사람들을 불러 앞에 세우고, 죄와 의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 주인이 죄면 나는 죄의 종이 되고, 주인이 의면 나는 의의 종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죄를 짓고, 내가 악해서 죄인이 아니라 죄가 내 주인이 되어서 내가 죄인인 거구나. 죄인이 되고 의인이 되는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6월 30일에 구원받았다. 그동안 나는 죄 사함에 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악할 때마다 나를 정죄했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말씀이 능력이 되지 않았다. 사탄은 나에게 “네가 이래도 의인이야? 이렇게 악해도 의인이야?” 하며 끊임없이 생각을 넣는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믿음과 은혜로!”
 나는 요즘 은혜 속에서 산다. 내 마음에 은혜가 딱! 세워졌기에 생각이 찾아와도 괴롭지 않고 행복했다.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많은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고 교제해 주셨다. 하나님의 종이 가시는 곳에 함께 가고 싶어서 피지뿐만 아니라 쿡아일랜드에도 선교사님을 따라 다녀왔다. 그 일들까지 간증하려면 책 한 권은 써야 할 듯하다. 호주에서 내 영혼이 살아났고, 마음에서 말씀이 감사해졌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마음이 든다. 울산에 돌아왔는데, 1년 전과는 내가 너무 달라서 나도 놀란다. 교회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호주에서 배운 영어로 한 달 동안 새벽예배 때 외국인을 위해 통역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사랑하는 희원이에게
김명란 사모 호주 시드니은혜교회

희원아, 작년 한 해 너와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면 참 감사하단다. 여러 가지 일이 많았잖아. 너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네가 호주에 왔을 때 처음에는 네 마음과 맞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다른 단기선교사들과 자주 부딪혔었지. 하나님이 그 일들을 통해 네 마음을 드러내시는 걸 볼 수 있었어. 마음이 드러나는 만큼 하나님이 아름답게 바꾸어 가셨고. 단기선교 생활이 마칠 때 즈음에 너의 밝아진 모습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고 또 정말 감사했단다.
 ‘희원이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간직하고 신앙생활 하면 더욱 은혜를 입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귀국발표회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더구나. 우리 마음이 얼마나 기쁘던지! 마음이 하나가 되면 무얼 해도 즐겁고 무슨 말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희원이가 마음에 감사를 품고 하나님, 교회와 하나 되어 살아가면 좋겠어.
 서로의 참맛을 알게 되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게 되지. 나 또한 희원이가 많이 그립단다. 희원이가 교회와 함께하면서 앞으로 더 큰 은혜를 입으며 살기를 언제나 기도할게. 사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불효자이자 쓰레기 같았던 나를
최인수 인도 오리사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기쁜소식선교회 마하나임신학교에 입학하셨고, 경기도 용인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셨다. 용인 교회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전도자 이동이 되어 강원도에 있는 기쁜소식횡성교회로 이사했는데,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형제님이 성도의 전부였다. 교회에는 쌀과 먹을 것이 없을 때가 많았다. 예배당 바닥을 밟으면 습기로 양말이 축축해졌고, 부모님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전도를 하셨다. 학교에 내야 하는 돈 문제는 말씀도 못 드렸다. 내 눈에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으로만 보였다. 항상 “기도하자”는 대답만 하시는 부모님이 부끄러웠고, 교회를 향한 불신 쪽으로 마음이 흘러갔다.
 횡성에서 몇 년을 지냈는데, 아버지가 이동 공문을 받으셨다. 당시 대전 기쁜소식한밭교회에 있던 목회자 연수원에 가셔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몰라주고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연수원에서 다시 파송받은 곳은 전라북도 무주였다. 중학생 어린 나이였지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두 얼굴을 가지고 세상과 교회를 넘나들었다. 집에서는 착하고 욕심 없는 효자, 밖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불량 학생. 술과 담배로 공허한 마음을 달래며 그렇게 살았다.
한번은 반에서 1박 2일로 놀러가는 일로 아버지와 다투다가 이렇게 소리치며 반항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에게 오천 원을 달라고 하면 오천 원을 주고, 만 원을 달라고 하면 만 원을 줘요. 나는 그런 아버지가 필요해요! 왜 목사를 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해요!” 아버지는 나를 혼내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이상하게 짜증과 분이 날 때마다 박옥수 목사님이 원망스러웠다. 선교회를 이끄는 위치에 계시는 분이 힘들게 사는 목회자들을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목사님이 하나님만 의지해서 복음을 전한 간증, 믿음으로 문제를 이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간증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강퍅한 마음만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 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지, 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불만과 증오만 쌓여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우리 가족은 내가 일으킨다!’는 마음으로 술과 담배를 끊고 공부에 전념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마침내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내게는 꿈같았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충남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기쁜소식한밭교회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라고 하셨다. 혼자 살 능력이 없어서 교회에서 지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랬듯이 가면을 쓰고 두 얼굴로 생활했다. 매일 거짓말을 하고 교회에 늦게 들어갔다. 예배와 모임, IYF 활동들이 지루하고 짜증스러웠다.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계획해야 하는데, 교회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교회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하고 짐을 쌌다. 마음은 이미 교회에서 멀리 떠난 상태였다. 교회를 나가면서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나님, 당신이 존재한다면 지금 자동차라도 한 대 보내서 저를 치어 보세요. 팔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가 되게 해보세요. 하나님은 없어! 내가 그걸 증명하겠어!” 2년 동안 자취를 하며 갈구했던 세상의 맛을 보았다. 달콤하고 황홀했다. 여자 친구도 사귀고 술자리를 마음껏 즐겼다. 부모님에게 절대 손을 벌리지 않고 떳떳하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과외로 돈을 벌어 생활했다.
 이어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할 무렵이 되자 미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싶었다. 외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는데,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가장 쉽고 금전적인 부담 없이 해외 경험을 하는 길이었다. 물론 단기선교를 가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성경이 진실인가?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계신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인도 오리사로 향했다.
 인도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015년 4월 6일에 뜻하지 않게 구원받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사람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인 적이 없었는데, 로마서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일하셨던 하나님을 내 마음에 영접했다. 육신적인 욕구에 이끌렸던 내 모습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하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더럽게 살았고, 얼마나 부모님을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된 불효자, 쓰레기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나를 교회 편에 서서 기다려주시고 기도해주신 부모님이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내 인생이 왜 이런지, 내가 세상으로 뛰쳐나갈 때 하나님은 왜 나를 억지로라도 붙잡지 않으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라는 말씀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과 교회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내 미래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진짜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할 때 내 영혼의 아버지인 김수연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 진짜 더러워! 너, 너무 악해! 그런데 너보다 더 악한 사람이 나야! 내가 더 더러운 사람인데, 박옥수 목사님은 뭐라고 하시는지 알아? 목사님 자신이 가장 더럽고 악한 사람이라고 하셔.” 선교사님과 상담하면서 히브리서 10장 14절의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믿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아껴주시고, 걱정해주신 교회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성경만을 세우며 말씀을 전해오신 박옥수 목사님이 정말 감사했다.
 나는 항상 내 인생을 내가 계획하고 설계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는데, 돌아보면 내 뜻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요즘은 기쁜소식한밭교회에 내 발로 들어가서 살고 있다.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김성훈 목사님은 못된 나를 말씀하나만 보고 받아주신 감사한 분이 되었고, 박옥수 목사님은 내 인생을 완벽하게 뒤바꾼 아름다운 목사님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부모님이 되었다.
 요셉이 ‘치리자’가 되는 과정 속에 요셉의 의지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듯이 내 인생이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펼쳐져 간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추한 나를 일꾼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미래를 향해 세워놓았던 내 계획들은 모두 무너졌고, 하나님이 교회의 이끌림을 받고 싶은 마음만 남게 하셨다. 한국에 돌아온 후 대학생활을 하면서 인도에서 만난 하나님을 다시 느낀다.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님 한 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종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그려 놓으신 아름다운 그림을 확인하는 삶을 살고 싶다. 선교회와 목사님들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평생 살아가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고 계신다
최종은 목사 기쁜소식창녕교회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곰방대로 머리를 맞아가며 가정에서의 삶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두 아들을 키울 때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키우면 잘 자라고 따라줄 줄 알았다. 나는 1994년에 복음을 듣고 이듬해에 신학교에 갔다. 신학교에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믿음을 배우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아내와 내가 전도하러 가서 말씀을 전하면 한번씩 사람들이 과일이나 사탕을 주는데, 어린 아이들이 생각나서 먹지 않고 가방에 챙겨 와서 아이들에게 주곤 했다. 나는 그런 게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인 줄 알았다.
 자라면서 아이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제멋대로 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수양회에서 머리에 물들인 학생이나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게 입고 바닥을 쓸며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나는 아이들을 저렇게 기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내가 잘 키워보려고 했다.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자 걷잡을 수 없이 비뚤게 흘러갔다. 타이르기도 하고 심하게 때리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대로 키울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자녀를 믿음으로 기르신 간증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목사님의 말씀을 참고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건전하게 자라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한번은 두 아들과 샤워장에 갔는데, 아이들 몸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맞은 자리라고 하는데, 너무 부끄럽고 아이들이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박옥수 목사님은 학생들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별’이라고 부르시며 ‘내일이면, 내년이면 모두 일꾼으로 변한다’고 하셨지만, 나는 안 변할 거라는 생각만 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 별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첫째 아들 정수가 학생캠프 첫날에 도망가는 일이 생겼다. 도망간 아들을 찾느라고 연락을 주고받는 중에 하나님이 내 모습을 보여주셨다. 내 마음 밑바닥에는 아들의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목사로 드러나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내 신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즈음에 기쁜소식한밭교회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사야 44장 21절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내 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주셨다.
 그때부터 학생들을 향한 내 마음이 달라졌다. 학생캠프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보면 ‘너희들이 내 아들보다 낫구나. 내 아들은 이 곳이 싫어서 도망갔는데, 너희들은 그래도 이 변화의 배 안에 있잖아.’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싫었고, 판단하는 눈으로 보았던 학생들이 소망스럽게 보였다. 하나님, 교회가 보는 눈과 내 눈이 다른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면서 악한 영에게 속아 살았던 내 마음을 바꾸어주셨다.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선교회를 만나고,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IYF를 만난 것이 감사할 뿐이다. 아이들을 하나님과 교회에 맡기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고 계신다. 정수는 대전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얼마 전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인수는 인도에서 마음이 바뀌었고, 갖춘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배워 왔다. 주위 사람들과 우리 부부에게 감사해 하며 ‘행복한 가정’ 안에 산다고 말하는 인수를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아빠, 사랑해요!"
조은주 미국

나는 우리 선교회 안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가장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과잉보호가 심하셨다. 집 앞 놀이터에 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싫어하셨고,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하면 잘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치마를 입으면 너무 짧다고 바지로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아버지 때문에 감옥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커지자 마음을 닫게 되었다. 힘들어도 아버지에게는 표현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장난을 치시면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셔서 저러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만 말하고 한 번도 아버지에게 마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작년에 미국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바쁜 일정 속에서 내 마음은 여러 번 한계와 부딪혔다. 한국에서는 어려움이 있으면 피하고 살지만 단기선교지에서는 그럴 수 없다. 단원들과 부딪히는 일도 많고, 잘하려고 할수록 실수하는 일이 많았다. 언어 때문에 자주 한계 상황을 만났다.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소책자를 건네며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말하면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듣지 않고 가버리면 힘이 빠지고 마음이 힘들어졌다. 영어를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 한탄스러워서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한번은 영어가 너무 안 되어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데, 사모님이 ‘왜 울고 있냐’고 물으셔서 이유를 말씀드렸다. 사모님이 “은주야, 영어를 못 하는 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마.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신 걸까? 네가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야. 영어를 못 하면 하나님께 구하면 되지, 왜 한탄하고 있어?”라고 하셨다. 영어를 잘하려고 했던 내 노력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힘들지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신기하게도 영어를 조금씩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셨고, 말하는 것도 배우게 하셨다.
 대전도집회를 준비할 때 ‘로이’라는 한 흑인 아저씨를 만났다. 한쪽 눈이 안 보여서 지팡이를 의지하여 사시는 분이었는데, 집회에 와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찬양과 말씀을 듣고 신앙상담도 나누고 가셨다. 아저씨는 말씀을 듣는 내내 종이에 적으면서 진지하게 들으셨다. 이런 말씀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시며 집회에 초청해줘서 고맙다고, 시간이 될 때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노라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이 이런 분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어려움을 주신 거였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홍보하는 기간에 초청하는 편지를 집집마다 돌리는 일을 하는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시기 때문에 새벽 세 시에 일하러 나가신다. 비가 올 때나 태풍이 불 때나 한결같이 일하신다.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새벽 여섯 시부터 하루 종일 다니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아픈데, 아버지가 퇴근하시면서 ‘힘드니 안마 좀 해달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그때는 아버지가 싫었기 때문에 그냥 형식적으로 안마해 드렸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해주시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누리며 살았는데, 하루 종일 걷고 뛰어다니다 보니 ‘아버지가 이렇게 한계를 넘고 사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뉴욕 월드캠프 때 오셔서 ‘부모님께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래, 사랑한다, 우리 딸!” 하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툭툭 던지는 말투에 화난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성이 무척 따듯했다. 아버지에게 섭섭했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해 굳게 세워져 있던 담이 모두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 미국에 있으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못난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귀국한 후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귀국발표회에 오셔서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셨다. 무척 감사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귀국발표회에서 (주)전남철강이 수여하는 장학금을 받을 때 아버지는 환호성을 지르셨다. 무대에서 내려온 나에게 아버지가 “수고했다! 우리 딸 최고다!”라고 하시면서 최근에 외할아버지와 이모가 구원받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버지와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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