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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행복으로 잠들고 소망으로 눈 뜨는 인도인도 하이데라바드, 김동엽 선교사
박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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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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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위치한 텔랑가나주 청사에서 IYF와 텔랑가나주 청소년부간의 MOU 체결이 있었다. 이 MOU를 통해 IYF는 주 정부로부터 5에이커의 청소년센터 부지를 제공받게 되었고, 청소년센터가 건립되면 이 곳을 통해 많은 인도의 젊은이들이 변화되고 소망을 찾게 될 것이다.
힌두의 나라 인도에서 선교하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으로만 발을 옮기고자 하는 하이데라바드 김동엽 선교사.
하나님이 김동엽 선교사를 어떻게 이끌어오셨는지 그 간증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구나!

2008년 2월에 선교지인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교회를 개척해 1년 반이 되었을 때, 2명이었던 성도가 20명이 되었고 작은 예배당도 지었다. 그리고 금방 그 예배당에 사람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복음을 전하니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가 세워져갔고 내가 뭔가 큰일을 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내게 은혜를 입었다는 말 뿐만 아니라 믿음이 좋다거나 신령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내 마음에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형제자매들로 가득 찬 예배당을 보면서 ‘내가 믿음이 좀 있기는 한가보다’하는 생각이 하나 들어왔다.

얼마 후, 필리핀에서 박옥수 목사님을 만났는데 ‘자네는 교만해서 사역하면 안 돼!’하고 딱 한 마디를 하셨다. 그 때까지 내 눈에는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의 교만을 보고 하신 목사님의 말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사역의 한계를 만났다.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흘러가는데 그들을 잡아줄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잘못을 할 때 책망하며 잠시 늦춰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을 건져줄 말씀이 없었다. 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지만 살아있는 교회는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구나!’
처음으로 내가 사역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인 걸 깨달았다. 사역을 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해 여름 한국에서 교제를 하면서 ‘나는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이구나!’ 그것 하나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사역을 하며 참 많은 은혜를 입었지만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사역이 아니라, 항상 염려하고 애쓰는, 내가 하는 선교를 해 왔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구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나니 나에게 다른 마음이 들어왔다.
‘하나님이 하시겠구나!’

그 즈음 박 목사님은 설교 중에 미국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얘기를 자주 하셨다. 처음에는 단순히 미국에서 되기 어려운 일이 잘 되어 기뻐하시는 줄 알았는데 박 목사님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걸 보며 기뻐하셨다. 설령 한 명도 우리 교회와 연결이 안 된다 할지라도 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 자체로 기뻐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종과 다른 삶을 살았구나!’
나는 복음을 전해도 나에게도 부담이 없는, 나도 위하고 복음도 위하는 순수하지 못한 삶을 살았었다는 게 보였다.
“올 해 겨울에는 우리가 칸타타 투어를 하겠습니다!”
돈도 없고 합창단을 할 사람도 없고 우리를 초대하는 교회나 사람도 없었지만 교회 형제자매들 앞에 선포했다.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도저히 음악 실력이 안 돼서 노래는 립싱크를 하기로 하고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연기를 따라했다. 그리고 노래나 연기뿐만 아니라 복음만을 위하는 합창단의 마음을 따라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무거운 소품들을 들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10시간 15시간을 다니는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구하지 못해 화장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가기도 했지만 둘 셋씩 모여 교제를 하고, 기도회를 하며 모두 행복해 했다. 늘 불평 많던 청년들이었는데 영에 이끌려가기 시작하니 눈에 보이는 어려운 조건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하나님이 일하신 귀한 간증을 남기며 일이 진행되어 갔다.
비제와다라는 도시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초대를 받아 2천 5백명 앞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을 감명 깊게 본 상원의원 한 분이 우리를 복지부장관에게 소개했다. 갑자기 복지부장관에게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안드라프라데시 주지사가 주관하는 정부 크리스마스 행사에 와서 공연을 해 달라고 했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도 하고 복음을 전하며 너무 감격스러웠다.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작은 한 걸음이었는데, 주지사를 만나 IYF를 소개하고, 목회자 모임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 지난 4월 21일 IYF와 텔랑가나주는 청소년센터 건립과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나는 어려서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다. 돈을 빨리 벌고 싶었고, 혼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역사업을 하려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대전 한밭교회에서 살게 되면서 박옥수 목사님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게 되었다. 박 목사님은 항상 전도자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항상 흔들리고 변하는 내 마음을 보며 나는 전도자와 아무 상관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성경을 보는 데 한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님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시119:32)
나는 늘 ‘나는 믿음이 없는 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나?’ 하며 내 마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씀에는 하나님이 내 마음을 넓히시고 주님의 길로 가도록 이끄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 마음을 두드리셨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전학을 간 학교의 교복과 체육복을 살 돈도 없었고, 심지어는 차비가 없을 때도 많았다. 차비가 없어 혼자 밤길을 걸어가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했다.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내 기도를 빠짐없이 다 들어주셨다. 가끔은 걸어가며 기도하는 그 시간들이 좋아서 돈이 있어도 일부러 걸으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했는데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 가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셨다.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하신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었고 교회 안에서 적당히 나를 숨기며 살았다.
단기선교 훈련도 포기하고 집에 내려가 있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서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내 이야기였다. 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버렸는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향해서도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셨다. 단기선교 훈련은 이미 다 끝난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2기 단기선교사로 인도 오리사에 파견되어 꿈같은 1년을 보냈다.

선교학교에 들어와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많은 내 생각에도 영향을 받으며 살았다. 선교학교에서의 훈련이 거의 끝나갈 즈음 추운 겨울, 잔뜩 언 몸으로 전도를 나갔는데 한 집사님이 사주신 음식을 급하게 먹고는 탈이 나고 말았다.
며칠 음식 안 먹고 운동을 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점점 더 아파오고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니 급성위염이 진행 중에 있어 위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 음식을 가려서 잘 먹어야 한다고 했다. 주위 분들이 비싼 죽을 사 주시기도 하고 부드러운 과일도 사 주셨지만 나는 뭘 먹든 그대로 토해버렸다. 약을 먹어서라도 빨리 병을 낫고 싶었지만 심지어는 약을 먹어도 다 토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믿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6)
혼자 방에 앉아 마가복음 11장을 백 번을 넘게 읽었다. 이전에 박 목사님이 위궤양에서 나은 간증을 들을 때는 소망스러웠는데 내가 급성 위염에 걸려서 아무 것도 못하니 말씀이 아무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눈에 보이는 내 모습과 정반대의 말씀 사이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이 말씀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박 목사님께 찾아가 이런 내 마음을 간증하니 “김 형제가 그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거야. 기도하세.” 하셨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라 고기며 떡, 과일 등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는데 다 나았다고 생각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음껏 음식을 먹고 숙소로 가서 화장실을 8번은 왔다 갔다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배가 깨끗이 나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 목사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무엇을 먹든지 다 소화하는 더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 텔랑가나주 청소년부 장관과 박옥수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MOU 문서에 서명을 하고 있는 김동엽 선교사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종이 되거라”

선교학교를 마치고 부산에서 사역을 하다 군에 입대했다. 특전사에 차출되어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성경을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2년 동안 성경을 안보고 산다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너무 막막했다. 그 때 목사님께서 군에 오기 전에 해 주신 말씀이 기억났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종이 되거라'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성경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입혀주십시오.’
다음 날 포켓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경계근무를 서고 나서 위병소로 들어와 조용히 성경을 폈다. 이등병이 병장 앞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전도사였던 내 이력을 다 아는 병장은 낮은 목소리로 군대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설명했다.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성경을 보게 해주세요. 은혜를 입혀주세요.’
며칠이 지나고 다시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근무를 나갔다. 성경을 꺼내자마자 욕설이 들려왔다. 한 대 맞을 뻔했지만 겨우 넘어갔다. 다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실 거라는 마음이 드는데 눈을 뜨고 생각하면, 고참을 세 번이나 무시했다가는 내 군 생활이 끝날 것만 같았다.

군에 입대할 때, 박옥수 목사님 사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인사를 하는 나에게 사모님은 “매 맞으면서 복음 전해! 그러면 선교사 합격이야!” 하셨다.
내가 어려움 없이 복음 전하려니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매 맞을 생각을 하니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세 번째,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근무지로 향했다. 한 대 맞을 준비를 하고 성경을 폈는데 이상하게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고참들이 나를 못 본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성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무반으로 돌아가서 본때를 보여주려나 보다’ 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날 저녁 내무반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세 달 뒤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간절히 기도하던 그 시간 내무반에서는 병장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다들 분노하며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병장이 “내가 보니 김 이병은 보통 신자가 아닌데 성경 못 읽게 하면 큰 사고를 칠 수 있다”고 했다. 그 한 마디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더니 나에 대해 호의적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김동엽 이병은 성경 읽고 기도하는 걸 허락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병장이 이등병에게 와서 “이제부터 김 이병님은 성경 읽으셔도 됩니다.”하겠는가? 그냥 못 본 체 했던 것이다.
그날부터 내 별명은 ‘김병장’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소령인 본부대장이 나를 이단으로 여기며 성경공부 모임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핍박을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더 높은 분들을 통해 오히려 더 크게 나에게 은혜를 입히시기도 했다.
군에 있는 동안 육군본부 최우수 병사가 되어 유명하신 분들과 함께 만찬에 참석하기도 하고 그 일로 특별 포상휴가를 받아 대전도 집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군대 안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수양회, 세계대회, 대전도집회 등 모든 복음의 일 가운데 있을 수 있었고 하나님이 복음을 높이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대 전 휴가를 나가는데 인사처의 한 분이 말했다. “내가 군 생활을 오래 했지만 너처럼 휴가 많이 나간 병사는 처음 본다. 너는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야.”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말이었다.

   
▲ IYF와 텔랑가나주 청소년부와의 MOU체결은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에스더를 왕비로 세우는 모르드개의 믿음

2012년부터 세계대회에 매년 초대한 텔랑가나주(州) 청소년부 차관은 그 때마다 너무 바빠서 한 번도 캠프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내가 IYF 행사에 참석은 못했지만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유일한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청소년부를 곧 떠날 것 같은데 그 전에 IYF를 돕고 싶습니다.”고 하셨다. 그렇게 청소년부와 함께 마인드 강연, 직업상담 등을 진행하며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차관님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갔다.

최근 몇 년 간 인도의 상황이 우리에게 좋지 않게 되어 갔다. 힌두교 이외의 종교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인도의 정권이 바뀌면서 외국 단체를 없애고 기독교 활동을 제한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2015년 1월, 태국 월드캠프에서 이런 상황을 박옥수 목사님께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오히려 “인도 정부와 손잡고 힘 있게 일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서 우리 마음을 먼저 옮기시는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말씀도 믿고 내 생각도 믿을 수는 없었다. 눈에 보이는 형편에 굴복하지 않는 종의 믿음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하이데라바드에 돌아가자마자 청소년부 국장을 찾아가 수십 페이지의 자료와 제안서를 보여줬지만 청소년부에서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며 한 두 페이지 넘겨보고는 던져버렸다. 부담스러웠지만 또 다른 제안서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청소년부 국장은 다시 우리가 주는 제안서는 보지도 않고 자기들이 하려고 하는 사업을 이야기했다. 세계 청소년들을 20개 국에서 몇 명씩 초청해 텔랑가나 청소년들과 교류하고 국제적 감각을 갖도록 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가 제안한 세계대회였다.
“그런 것은 우리가 세계 최곱니다. 그 일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국장은 자체적으로 이런 행사를 못하기 때문에 외부 단체를 찾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주 정부로부터 청소년센터 부지를 받는 부분도 제안해보자고 했다.
인도에서 외국 단체가 더군다나 기독교 단체가 땅을 받는 다는 것은 99%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기뻤지만 한 편에서 고민이 되었다. 안 될 일을 지혜롭게(?) 포기할 것인가? 미련하게 하나님만 믿을 것인가?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통해 일하신다. 내가 책임질 것이 없었다. 박 목사님께 전화해서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2주 후 청소년부 국장을 찾아갔는데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며 땅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 일은 안 되는 일이니 다른 쪽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에스더 성경을 읽는데 모르드개의 믿음이 에스더를 왕비로 세우는 이야기가 너무 은혜로웠다. 모르드개가 하만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종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에스더는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다. 에스더는 그냥 은혜를 입을 뿐이었다. 소망을 가지고 성경을 덮었다.

나에게 모르드개가 박 목사님이라면 헤개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주겠다고 하신 전 청소년부 차관님이었다. 보건부로 이동한 차관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차관님은 우리가 가지고 갔던 제안서를 꼼꼼히 보시고는 내용을 바꿔주고, 땅을 얻기 위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사이라며 주지사 고문을 소개해주었다. 그 분이 반드시 도와주실 거라고 했다.
주지사 고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분이 신실한 힌두 신자이며 인도의 제 1계급인 브라만임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세계적인 청소년 단체입니다. 아시아의 두 번째 본부를 짓고 세계대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차관님이 일러준 말 한마디만 했다.
“당연하죠. 돕겠습니다. 땅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100kg이 넘는 거구의 고문님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 쉽고 간단한 5분의 대화를 마치고 그 방을 나왔다.

   
▲ MOU 체결 후 김동엽 선교사를 포옹하는 파드마 라오 청소년부장관

‘망하더라도 약속의 편에 서자’

2015년 6월, 박옥수 목사님이 인도를 방문하셨을 때, 하이데라바드에 꼭 모시고 싶었지만 주 정부의 초청이나 면담이 잡히지 않아서 그럴 수 없었다. 인도 마니푸르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이 잡혔다며 목사님을 모시고 오라는 주지사 고문님의 연락을 받았다.
아직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실 거라는 마음을 박 목사님께 말씀드리니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가자고 하셨다.
막상 박 목사님을 모시고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일이 취소될 위기에 있었다. 교육부 차관이 온 청소년부를 휘젓고 다니며 기독교 단체와 같이 일하면 안 된다며 방해하고 있었다. 청소년부 장관에게도 찾아가 면담을 막으려고 하는데 때마침 그 자리에 주지사 고문님이 함께 있었다. 교육부 차관이 말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주지사 고문님이 나무라며 말을 막았고, 20분 뒤 이뤄진 박옥수 목사님과 청소년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주지사 고문을 통해 주지사에게도 이 일이 전해졌다.
주지사님은 너무 좋아하며 기공식에도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주지사의 뜻에도 실무자들의 방해는 여전했다. 한 번은 청소년부의 실무자가 나를 불러서 외국 단체에는 땅을 절대로 줄 수 없다며 자기가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람이 청소년부 차관에게도 이미 다 얘기를 한 상태라 모든 것이 취소될 위기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에게 땅을 주는 사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내부회의가 있는데 장관이 너무 바빠 3일이 연기되고 다시 4일이 연기됐다. 그렇게 회의가 연기되는 동안 정식 인사이동도 아닌데 갑자기 청소년부 차관이 바뀌었다. 그리고 회의가 열렸다.
청소년부 장관은 우리를 너무 좋아했고 새로 온 차관도 좋은 것 같다며 의견을 같이했다. 함께 있던 그 실무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두 시간동안 침묵만 지켰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다.
‘망하더라도 말씀을 믿고 약속의 편에 서자.’
정부를 밀어붙이고 싸우는 일은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과 같았지만 우리 마음에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약속이 살아 있었다.
2016년 4월, 박옥수 목사님이 오시기 이틀 전에도 주지사의 특별 허가가 나지 않았고, 주지사는 병상에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일주일 동안 극적으로 일이 진행되어 박 목사님이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한 둘째 날, 주지사의 특별 지시로 MOU 체결뿐만 아니라 우리가 땅을 얻는 모든 문서에 최종적으로 사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우리의 눈은 다 잘못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는 종의 인도가 필요했다. 말로 다 하기엔 복잡한, 너무 많은 방해와 비방이 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종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처럼 인도의 청년들은 행복으로 잠들고 소망으로 눈 뜰 것이다. 하나님이 이 나라의 많은 청년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 하이데라바드 교회에 모여 박옥수 목사와 교제를 나누는 인도 형제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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