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삼 형제
필리핀 삼 형제
  • 홍정기, 고윤석, 박주호
  • 승인 2016.06.2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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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간증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홍정기(4기 필리핀 단기선교사)

나는 대학 시절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서 한 자매님의 소개로 2004년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당시 문칠식 목사님과 허인수 전도사님에게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초등학생 때 동네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을 보면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구원받고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어 평안과 기쁨이 생겼다. 이후부터 기쁜소식춘천교회에 나갔고, 유난히 밝은 교회 학생들의 모습에 반해 단기선교사로 지원했다.

복음 전할 때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필리핀에서 형제 자매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구원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았기에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고, 사람들과 5분 이상 이야기하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그러다 지역 교회 성경세미나에 가서 선교사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나도 어느새 레위기, 히브리서, 요한복음 등을 펴서 성경 곳곳에 나타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때 케손교회의 올리브 자매님 남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구원을 받으셨다. 지금 그 형제님은 나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해 10월에는 1주일 간 섬 무전전도여행을 가서 마음껏 복음을 전했다. 동네 주민 20여 명을 모아놓고 내가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선교학생(현재 전도사님)이 현지 타갈로그어로 통역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입에서 타갈로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한 시간 가까이 통역 없이 말씀을 전했다. 단어도 틀리고 문장도 어설펐지만 듣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고쳐주며 진지하게 말씀을 듣다보니 모두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도 내 마음에 그때의 기쁨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다시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에 돌아오자 지나가는 오토바이 매연 냄새만 맡아도 필리핀의 트라이시클(필리핀 서민 교통수단)이 생각이 날 정도로 필리핀이 점점 그리워졌다. 한국 월드캠프에 오셨던 남경현 선교사님이 “홍 형제, 한국에서 직장 잡기 쉽지 않을 텐데, 필리핀에 다시 오지!”라고 하신 말씀도 내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2006년 겨울, 실버캠프에서 식당 봉사를 하고 있을 때 남경현 목사님이 국제전화를 하셨다. 케손교회 헌당 예배 때 필리핀에 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많이 반대하셨는데, 마침 수양회에서 구원받으신 아버지가 내 편이 되어 주셔서 2007년 2월 27일 다시 필리핀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필리핀 교회를 섬기며 살자’는 마음으로
필리핀에서 정착하기까지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에 다니던 회사가 자금난으로 문을 닫기도 하고, 아는 분의 소개로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근무지가 너무 멀다 보니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해 마음이 무척 힘들기도 했다. 새 직장을 기다리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필리핀에 올 때 하나님이 주신 ‘필리핀 교회를 섬기며 살자’라는 작은 마음 하나가 힘을 주어 월드캠프도 후원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혼자였는데 어느새 아들 둘을 둔 가장이 되었다. ‘내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처음에는 케손교회에서 나 혼자 한국인이었는데, 내 뒤로 필리핀 단기선교사 출신 박주호 형제(6기 단기선교사)와 고윤석 형제 부부(5기, 7기 단기선교사)가 왔다. 이제 세 가정이 함께 각자의 위치에서 복음을 위해 쓰임받고 있어 감사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서로 교제해 주고 즐거운 일에는 함께 기뻐하며 세 가정이 언제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감사하다.

마인드 강연 강사로 복음을 전하며
필리핀에서는 2013년부터 교사 마인드교육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마인드 강연을 듣고 복음을 듣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남 목사님은 외부 강사만 초청할 것이 아니라 필리핀 교회에서도 강사를 키우자고 하셨다. 우리 세 형제 부부도 마인드 강사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입었다. 나는 지금까지 바이오, 나가, 세부 지역에서 강연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6~10시간 떨어진 곳까지 강연을 다닌다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한 시간씩 강연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기쁨이 된다.
 6월 10일에는 케손교회의 한 자매가 일하는 마약환자 재활센터에서 강연했다. 한 시간은 마인드 강연을 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복음을 전했다. 120명이나 되는 참석자들이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감사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어떻게 하면 IYF 회원이 되어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10월 월드캠프 기간에 있었던 목사와 집사 안수식 때 나도 집사 안수를 받았다. ‘내가 집사 자격이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보니 안수하시는 목사님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직분임에 감사했다.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몇 년 전부터 교회 재정을 맡고 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2~13)라는 말씀을 보여 주셨다. 창세기를 여러 번 읽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말씀이었다. ‘아, 하나님이 나를 거부로 만들어 주시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거부가 되나? 부자가 되어 육신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마르다와 나사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마르다는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나사로는 죽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바로 반응하여 살아났다’고 하셨다. 내가 살아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를 위해 거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 교회가 건축을 마무리하고 기증 받은 땅에 IYF센터를 건축하는 일들에 하나님이 나를 많이 쓰고 싶어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감사했다.
 하나님이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어떻게 길을 여실지 소망이 된다. 물질뿐만 아니라 마음도 거부가 되어 구원받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될 것을 믿는다. 필리핀의 삼 형제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고윤석(5기 필리핀 단기선교사)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도 행방불명되어 누나들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 누나들이 먼저 우리 선교회를 만나 구원받았고, 나는 고등학생 때 구원받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갔다. 사춘기 시절에는 폭주족이 되었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중 누나의 권유로 2007년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갔다.

그래, 1년 동안 나를 다 드리자
필리핀에서 보낸 1년이란 시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하고 빛난 시간이었다.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도착하자 예배당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일도 처음 해보고 엄청난 더위와도 싸워야 했기에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온 단기선교사라는 이유로 섬겨 주시고 기뻐해 주시는 필리핀 교회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만나며 ‘그래, 1년 동안 필리핀에 나를 다 드리자’고 마음먹었다.
 조건 없이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필리핀 형제 자매님들을 보니 그동안 마음대로 살았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단기선교사로 보낸 1년의 시간은 내게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욱 크고 복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1년이 지나자 필리핀이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이곳에 다시 돌아와 살아야겠다는 꿈도 품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간 뒤 결혼하고 필리핀을 섬기고 싶은 마음으로 2013년 아내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먼저 필리핀에 와 있던 홍정기 형제와 박주호 형제의 도움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었고, 남경현 목사님의 인도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 필리핀 교회는 ‘마인드교육 전문가 훈련’ 때문에 무척 바쁘다. 박옥수 목사님이 “필리핀은 교사들이 참 좋네” 라고 말씀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필리핀 마인드 강연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복음의 길이 열리고 있다.
 우리 세 가정은 마인드교육 행사 관련 일은 물론 해외에서 오신 교육 강사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아 함께 의논하고 진행하며 복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지역 교회에도 차가 한 대씩 있었으면….”
나는 자동차와 중장비에 관련된 일을 하고, 형(4기 홍정기)과 동생(6기 박주호)은 통신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서 서로에게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필리핀에는 10개의 지역 교회가 있다. 어느 날, 남 목사님께서 마인드 교육을 준비하는 지역 교회 현지 사역자들이 자동차도 없이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지역 교회에도 차가 한 대씩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교회마다 형편이 넉넉한 것이 아니기에 저렴한 가격의 괜찮은 자동차를 찾아 구매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하는 중고차를 사려면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 좋은 중고차가 나왔다고 연락이 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 차량 상태를 파악하고 괜찮으면 계약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구매할 경우 허탕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일은 목사님의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마음으로 임하자 그때그때 하나님이 지역 교회에 합당한 좋은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게 도우시는 것을 보았다.

 

‘아! 목사님께서 내가 이런 행복을 맛보길 원하셨구나’
수도에 있는 케손교회에서 연합 행사가 있을 때면 지방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이 다 모인다. 그때마다 주차장이 자동차들로 꽉 차 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구매를 도와준 자동차를 타고 오는 현지 사역자와 가족들, 형제 자매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단기선교사 시절 나를 사랑해 주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내게 차를 부탁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한 형제가 있었다. 드디어 차를 구입했다고 형제에게 연락할 때 형제도 아주 기뻐했지만 나도 무척 기뻤다. 며칠 뒤 형제는 차를 가지러 오며, 버스로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지역특산물인 딸기를 세 박스나 들고 와 내게 주었다. 무척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 목사님께서 내가 이런 행복을 맛보길 원하셨구나.’ 내 마음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없는 마음이 문제 되지 않는 것은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일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아주 큰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를 보며 고마워하는 분들을 볼 때면 나 역시 매우 감사하다. 필리핀의 지역 교회가 복음의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거의 모든 현지 사역자들이 차를 가지고 다니며 바쁘게 일한다. 내가 이 일에 쓰임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필리핀에서! 내 분야에서! 최고이고 리더가 될 것이다
남 목사님께서 기드온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기드온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고, 주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로 택하셨다고 하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이 말씀이 나를 형편에 갇혀 살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 업무가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살아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를 필리핀에 보내셨다! 나에게는 주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어! 주님은 나를 필리핀에서 복음을 뒷받침할 큰 용사라 하신다!’는 마음이 나를 이끌고 있다. 대학생 시절 월드캠프 때 박옥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여러분, 세계로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최고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필리핀에서! 내 분야에서! 최고이고 리더가 될 것을 믿는다. 내 마음의 고향 필리핀에 나를 다시 이끌어 주시고, 종과 교회와 가족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세계 최고의 리더가 되리라
박주호(6기 필리핀 단기선교사)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나는 한동안 작은아버지 댁에서 살았다. 교회에 다니셨던 작은아버지께서 복음을 전해주셨는데, 처음에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후 2001년 5월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전해주신 말씀 가운데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라는 말씀이 믿어져 구원받았다.
 대학생이 되고 2007년에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왔다. 스물한 살 철없는 나이에 필리핀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매우 특별하고 소중했다. 더운 날씨, 이해할 수 없는 현지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음식 등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내 한계를 넘게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며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1년 간의 단기선교 활동이 끝나자 아쉬운 마음이 굉장히 컸다. 1년을 산 것뿐인데 필리핀이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현지인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보살핌을 잊지 못해 군복무를 마치고 2010년 12월에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욕설을 노랫소리로 들어 봐”
필리핀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현지어인 타갈로그어로 말한다. 필리핀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 이곳 대학교에 들어갔다. 가정 형편상 공부만 할 수 없어서 직장을 잡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낯선 땅에서 내 마음에 맞는 직장을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과장님이 매일 직원들을 무시하며 욕하고 화를 냈다. 과장님의 욕설을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욕하고 화내고 성질을 부리는 과장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과장님과 일해야 하나?’
 많이 고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남경현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이 “끊임없이 들리는 욕설을 노랫소리로 들어 봐. 아무 문제 되지 않을 거야.”라고 하셨다. 목사님 말씀대로 과장님의 욕을 노랫소리로 여기고 일하자 하나도 문제 되지 않았다. 신기했다. 다른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지만 나는 남아서 일할 수 있었다.
 
요셉의 꿈처럼
6개월이 지날 때쯤, 기회가 생겨 새로운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한국은 IT 강국이지만 필리핀은 아직도 통신 분야가 굉장히 취약하다. 새로 옮긴 회사가 통신 분야라 앞으로 전망이 좋을 것 같았다. 입사 초기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직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그때 남 목사님이 요셉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다. 애굽을 치리하는 총리가 되는 꿈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리고, 강간범으로 몰려 감옥살이도 했고…. 하지만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꿈이 있었기에 결국 한 나라를 치리하는 총리가 되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나도 요셉처럼 한 회사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꿈이 생겼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라는 말씀도 내게 분명한 힘을 주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나를 넘어뜨릴 수 없고, 요셉에게 일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일하겠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입사한 지 2년 만에 지사장이 되다
어느 날,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보았다. 정상적으로 운영하는데 흑자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알아 보니, 지사장님이 불법을 저지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목사님께 교제를 받고 용기를 내 사장님을 찾아갔다. 현재 회사 상황과 지사장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내가 느낀 부분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놀랍게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고, 내가 회사를 위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나에게 지사장 직책을 맡으라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입사한 지 2년 만에 필리핀 중소기업의 지사장이 된다는 것은 너무 과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지만 그때마다 단기선교사 시절에 배웠던, 한계를 넘고 부담을 극복하는 마음과 남 목사님의 격려와 말씀이 힘이 되어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며
필리핀 교회에는 단기선교사 출신 세 가정이 있어 더 즐겁고 복되다. 때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툴 때도 있지만 교회의 음성과 종의 음성은 우리 세 가정에 동일하게 들린다.
 나는 교회의 인도로 현지인 자매(박피비)와 2012년에 결혼했다. 아내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출신으로 공부하기 위해 부모를 떠나 마닐라로 왔다가 2010년 필리핀 월드캠프에 참석해 구원받았다. 그 후 태국으로 1년간 단기선교를 다녀왔고, 교회의 인도로 나와 결혼했다.
 첫 아이를 출산할 때는 우리 부모님과 아내 가족들이 멀리 있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그런데 같이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형들과 형수님이 곁에 있어서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나이 서른에 필리핀 댄스부 반장으로
우리 삼 형제는 교회 안에서 여러 부분에 쓰임을 받고 있다. 나는 건전 댄스 그룹인 ‘라이쳐스스타즈’ 출신이라 댄스부 반장으로 쓰임받고 있다. 나이 서른에도 댄스부와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감사하다. 교사 마인드교육이 있는 날에는 식전 행사로 우리 댄스팀이 공연하는 은혜를 입는다.
 필리핀 교회 댄스팀은 한국 월드문화캠프 기간에 열리는 ‘국제댄스페스티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필리핀에서는 외부 댄스팀이 대회에 참가해 은상과 대상을 탔다. 남 목사님이 이번에는 필리핀 교회 댄스부가 대회에 도전하라고 하셨다.
 23명의 단원들이 공연 연습도 해야 하고, 한국에 가려면 비자 발급은 물론 항공료와 체류 경비까지 마련해야 하기에 부담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러 회사에 후원을 요청했는데, 최근에 한 사업가가 후원해 주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을 볼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오래 전 단기선교사 워크숍 때 박옥수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세계를 이끌어갈 세계 최고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당시 나는 ‘내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지도자가 되지?’라고 의심하기 바빴다. 놀랍게도 지금 나는 한 회사의 최고 지도자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을 본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요셉의 꿈처럼, 나에게도 꿈을 갖게 하신 말씀처럼 세계 최고의 경영인이 될 것을 믿는다. 요즘은 사장님의 권유로 중단했던 대학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단기선교를 통해 나는 아주 많은 것을 얻었다. 제2의 고향인 필리핀,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 교회 안의 형제와 자매들, 그리고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종까지. 단기선교가 아니었다면 얻지 못할 것들이다.
 나에게는 분명한 꿈이 있다. 필리핀 최고의 경영인이 되어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필리핀 교사 마인드교육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듬직한 후원자도 되고 싶다. 물론 많은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창 41:41)라는 말씀처럼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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