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 이정도(코트디부아르 아비장교회 선교사)
  • 승인 2016.07.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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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8회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
2003년에 처음으로 IYF캠프를 진행했다. 1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목요일에는 바닷가에 갈 계획이었지만 차비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차비 문제를 두고 기도했는데, 아침에 베나데트 자매님이 갑자기 와서 캠프에 쓰라고 돈을 주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가서 씨름도 하고 기마전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교회에 돌아와 보니 교회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바닷가의 날씨는 좋았는데, 교회가 있는 지역에는 강한 비바람이 불어쳤던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정리하면서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IYF캠프에 참석한 학생들이 모두 구원받았다. 그들은 우리와 한 가족처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아침, 캠프를 마치고 모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아내가 학생들에게 호떡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지만 설탕이 없었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 장롱에 있는 옷들을 꺼내 주머니를 하나하나 뒤집기 시작했는데, 기적같이 500원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기적의 호떡을 맛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돌아간 후 막크와 도르가 남매의 어머니가 토고에서 갑자기 오셨다. 아내가 부엌에 가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와 우리는 함께 먹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자 아내가 말했다. “이제 부엌에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쌀도 없고 소금도 없고 설탕도 없고 스파게티도 없어. 아무튼 아무것도 없어.” 한국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열흘 뒤에나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우리 정말 행복하지 않아? 이번 주에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나 구원받고 기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즐거워. 우리 열흘 동안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지내자.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 아내도 내 이야기에 “그래, 여보. 나도 지금 아주 행복해.”라고 했다.
 아내와 식탁에 앉아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데 막크 형제의 어머니가 무언가를 잔뜩 들고 들어오셨다. 자세히 보니 쌀 5킬로그램과 소금, 설탕, 스파게티, 파, 마늘 등 정확히 열흘 치 식재료였다. 캠프 기간 중에는 아내 혼자 부엌에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 사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정말 신기했다. 막크 형제의 어머니는 웃으며 “뭘 좀 사드리고 싶어서 사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셨다.
 아내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물 나게 감동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시 92:4~5)

제1회 코트디부아르 월드캠프
2010년에 제1회 코트디부아르 월드캠프가 개최되었다. 월드캠프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아가서의 말씀을 주셨다.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2:6~7) 술람미 여인은 가족들로부터도 무시당했던 여자다. 무시당하며 자란 사람들은 스스로를 무시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자신을 무시하고 살다 보면 결국 꿈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만난 이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 여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술람미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되었고, 솔로몬의 품 안에서 잠든 채 꿈을 꾸었다. 솔로몬이 원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깨울 수 없는 꿈을….
 당시 나에게도 세 가지 꿈이 있었다. 첫째, 박옥수 목사님이 코트디부아르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형제 자매들과 이야기하실 때 내가 통역하는 꿈. 둘째,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코트디부아르에서 보는 꿈. 셋째, 월드캠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복음반을 진행하는 꿈.
 처음으로 하는 월드캠프라 준비할 것들이 무척 많았다. 코트디부아르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입국 비자를 받아야 했고, 배편으로 도착하는 월드캠프 티셔츠를 무관세로 찾을 수 있는 허가서도 필요했기에 1년 가까이 정부 관청을 돌아다녔다. 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내무부 비서실에 전화해서 일의 진행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서실에서는, 책임자가 출장을 다녀오는 대로 무료 입국 비자 허가서에 사인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무료 입국 비자를 받게 된 소식을 알리고, 무관세 허가서 처리 또한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을 확인한 후 가나 월드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가나로 출발했다.
 가나 월드캠프에서 나는 귀빈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있던 날에는 하루 종일 공연장에 있는데, 코트디부아르 장마크 전도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 출장 갔던 내무부 책임자가 오늘 돌아왔는데, 우리 서류에 하자가 있다고 서류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라고 합니다. 티셔츠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던 사람은 도와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 오늘 사고가 있었습니다. 선교학생 나데즈 자매가 오토바이에 치여 대학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데, 위중한 상태입니다. 전도자들이 모두 나데즈 자매에게 수혈할 피를 찾아다니고 있고요, 저희들이 가진 돈은 병원비로 다 썼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서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료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바람에 코트디부아르에 오시기로 한 목사님들, 그라시아스 합창단과 스태프들이 비자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가나 월드캠프가 끝난 후에는 일행이 곧바로 토고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비자를 받을 시간이 없는 데에다 비행기 표를 모두 구매해 놓은 상태라 무료 입국 비자를 못 받을 경우에 일어나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두 번째 칸타타 공연이 진행될 때 나는 객석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하나님,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까? 지금 제게 일어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 꿈에서 저를 깨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꿈을 꾸겠습니다.”
 다음 날 자크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아침에 대통령 고문이라는 분이 IYF 사무실에 전화해서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분이 계신 곳을 찾아가 보니 진짜 대통령 고문이셨습니다. 그분이 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가 하는 행사 포스터를 보고 관심이 생겨 차에서 내려 전화번호를 적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무료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내무부 책임자에게 전화해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티셔츠도 다음 주에 무료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데즈 자매도 위험한 고비는 넘겨서 일반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리얼 스토리는 반전의 절정을 이룬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기가 막히는 어려움도 있지만 기가 막히는 도우심 또한 있다. 가나에서 코트디부아르로 돌아와 보니 부족한 부분들과 준비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니 힘이 났다.
 며칠 후 박옥수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네, 왜 나는 초청 안 하는가? 코트디부아르에 꼭 한번 가고 싶은데….”
 “목사님, 오십시오. 저희들 모두 목사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케냐에 가는 길에 코트디부아르를 잠깐이라도 방문하도록 하겠네.”
 “네. 감사합니다.”
 기쁘고 감사해서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는데 딸 도희가 방에 들어와 물었다.
 “아빠, 왜 울어?”
 “너무 기뻐서. 너무 좋아서.”
 “기쁜데 왜 울어?”
 “기쁘면 웃는데 아주 기쁘면 눈물이 나와. 언젠가는 너도 이해할 날이 올 거야.”

 

박 목사님은 코트디부아르에 들르시기 위해 예약해 놓았던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다시 표를 끊으셨다. 오셔서 형제 자매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내가 옆에서 통역했다. 그리고 아비장에서 케냐로 가는 비행기 일정을 맞추다 보니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코트디부아르에 닷새나 더 머물게 되어 캠프 기간에 공연해 주었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은 정말 아름답고 멋있었다. 외교부 직원들 여러 명이 공연을 관람했는데, 감동을 받아 월드캠프가 끝난 후 IYF를 국제적인 NGO단체로 정식 승인해 주었다. 그로 인해 이후 IYF의 모든 물품이 코트디부아르에 무관세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며, 유류는 40퍼센트 할인되고, IYF 등록 차량에는 외교관 번호판이 부착되었다.
 월드캠프 때 나는 매일 복음반을 인도하며 매일 1,5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나의 세 가지 꿈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다. 월드캠프 마지막 날에 나데즈 자매가 퇴원해 캠프에 참석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존재를 내 마음에 확인시키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잊지는 않을까 해서….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동안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아져 간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청소년부 장관이 도운 2011년 월드캠프
2011년 8월에는 박옥수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해 월드캠프를 가졌다. 월드캠프는 전쟁을 겪은 코트디부아르의 청소년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6월 중순에 새 정부가 출범하기는 했지만 5월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에 시체들이 널려 있어서 형편을 보면 월드캠프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 기업체들을 찾아가 보면 전쟁 중에 물품들을 도둑맞아 사무실에 의자조차 없었다. 직원들이 책상 위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지만 몇 달째 임금을 못 받는 상황이었고, 공무원들조차 월급을 받지 못했기에 어느 누구도 월드캠프 참가비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5) 이 말씀은 하나님이 2011년에 우리 선교회에 주신 약속이다. 자식이 한 명도 없고, 자식을 가질 수도 없는 아브람에게 ‘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브람이 자신을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때 아브라함이 되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을 변화시켰다.
 전쟁 중이었음에도 다행히 우리 교회에 출판사가 있어서 월드캠프 홍보 전단지와 포스터를 제작할 수 있었고, 청년 형제 자매들은 교회에 모여 공연 준비를 했다. 하나님이 돕는 손길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2011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코트디부아르 새 정부의 장관들이 임명되고 1주일쯤 지났을 때 청소년부 장관님을 만나 한국에서 열리는 포럼에 초청했다. 새 정부가 세워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라 장관님이 업무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시기였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장관이 국가 차원의 일도 아닌 NGO단체에서 개최하는 제1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관님은 한국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셨고, 정부의 허락을 얻어내셨다.
 장관님은 오랫동안 반군의 대변인으로 활동하신 분이어서 당시 마음이 아주 낮았다. 한국을 방문하여 장관 포럼에 참석하면서 큰 감동을 받으셨는데, 장관님은 이후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월드캠프라고 하시면서 정부에 월드캠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정부는 4만 달러를 지원해 주었다. 정부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돈을 마련하러 다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월드캠프에 4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정부에서 월드캠프에 참석하려고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입국 비자 신청 허가서를 발급해 주었다. 월드캠프에 참석하는 외국인들은 이 허가서를 자기 나라에 있는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 제출하여 무료 비자를 받아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국에서 비자를 받지 않고 공항에 도착했다. 무료 비자 신청 허가서만 들고 온 사람들은 공항에서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부 장관님이 박옥수 목사님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오셨다가 그러한 상황을 알게 되어, 자신이 초청한 사람들이니 책임지겠다고 하시며 입국 도장도 찍지 않은 여권을 모두 걷어가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하나님이 2010년에는 대통령 고문을 통해, 2011년에는 청소년부 장관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니
2012년에도 은혜를 입어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월드캠프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장소를 구해야 했는데, 2011년에 사용했던 문화공연장은 전쟁으로 피해를 많이 입어 보수공사를 시작한 터라 사용할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부아호텔의 공연장을 써야 했기에 현지 전도자들과 함께 공연장을 방문했는데, 1년 간의 보수공사를 마친 직후라 깨끗하고 전쟁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쟁 전에 공연장 하루 임대료가 3천 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해 흥정하면 2천 달러에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비용을 물어보았다.
 “저희들이 이 공연장을 6일간 사용하려고 합니다. 임대료가 얼마입니까?”
 “3만 달러입니다.”
 “6일에 3만 달러면 하루에 5천 달러인데, 너무 비싸네요. 좀 깎아주세요.”
 “아니오. 하루에 3만 달러입니다.”
 “… 저희 행사는 정부와 함께하는 행사입니다. 할인이 안 될까요?”
 “지난주에 대통령 영부인이 주최한 행사도 3만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두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함께 간 형제가 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당연히 여기에서는 못 하지.” 하고 잘라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성경을 읽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생각되었다. ‘첫째, 내가 박 목사님이라면 학교 운동장에 설치해 놓은 천막에서 말씀을 전하고 싶겠는가, 아니면 호텔 공연장에서 전하고 싶겠는가? 당연히 호텔 공연장이지. 둘째, 내가 그라시아스 합창단이라면 학교 운동장에서 노래하고 싶겠는가, 아니면 호텔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싶겠는가? 당연히 호텔 공연장이지. 셋째, 내가 월드캠프 참석자라면 운동장에서 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싶겠는가, 아니면 호텔에서 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싶겠는가? 당연히 호텔 공연장이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지?’ 돈이 문제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주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이 말씀을 읽은 날이 수요일이어서 그날 저녁 예배 때 형제 자매들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나누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니 임대료를 다 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말씀이 우리를 한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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