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사한 사랑의 선율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사한 사랑의 선율
  • 글 박민희
  • 승인 2016.08.0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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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평화누리 '음악의 언덕'에서 가진 <세계 평화 콘서트>에 다녀와서

서울까지 53km 개성까지 22km, 임진각에서의 거리다. 임진각 바로 위에는 임진강이 흐르고 그 너머는 북녘 땅이다. 단절되어 오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이들의 그리움과 아픔이 배어 있는 곳, 임진각! 그곳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를 염원하는 아름다운 음악회를 가졌다.
 7월 10일, 임진각의 평화누리공원에 있는 ‘음악의 언덕’. 멋있고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그 언덕에서 저녁 7시부터 <세계 평화 음악회 World Peace Concert>가 열렸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해 탁 트인 ‘음악의 언덕’ 너머에 있는 풀밭에 잠시 앉았다. 둘러보니 산이 보이지 않는 들판인데, 시원한 바람이 연신 불어왔다.

 

 

하늘로 날아간 풍선들
저녁으로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나니 식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간은 저녁이지만 사방이 환했다. 무대 바로 앞에는 월드문화캠프에 참석한 3,000명의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뒤로 드넓은 잔디 언덕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구원받은 성도들일 것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저 멀리 부산에서도 목포에서도 차를 타고 달려온, 이 땅에서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 나는 ‘음악의 언덕’ 마루에 앉아 음악회의 이 모습 저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식전 행사를 마치고, 사회자의 인도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손에 들고 있던 풍선을 평화를 염원하며 하늘로 날려 보냈다. 파랑, 노랑, 보라, 주홍, 분홍, 하양, 색색의 풍선들이 함께 어울려 하늘을 예쁘게 수놓으며 바람을 타고 무대 맞은편 하늘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풍선들에 묘한 매력이 있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어느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어디론가 마음껏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롭게 여겨졌다. 혼자 가지 않고 여러 색깔의 풍선들이 어울려 무리 지어 가는 것이 외롭지 않고 멋있어 보였다. 풍선들은 하늘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 예쁜 색을 잃고 점들이 되어 사라졌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여정을 보는 듯했다.

 

 

 

평화는 어디에 머물까?
평화 콘서트가 막을 열었다. 평화란 무엇인지, 평화가 머물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러 인사人士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시에라리온에서 온 민카일루 바(Minkailu Bah) 교육부장관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먼 아프리카의, 이름도 낯선 시에라리온에서 한국을 찾아 온 장관이 임진각에서 갖는 평화 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한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놀라운 화합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월드캠프 안에서, 복음 안에서 너와 나의 벽이 허물어지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카일루 바 장관은 축사 중에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가 짐을 다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갑니다.”라고 하였다. 벗은 짐은 죄 짐일 것이다. 죄 짐을 벗은 가벼운 마음! 그 자유로움이, 내게 자유를 주려고 피 흘리신 예수님을 향한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싸움을 그치고 평화하게 만들 것이다. 마음의 짐을 벗는 것, 이것이야말로 평화의 기본 요소일 듯했다.

희생 없이는…
서쪽 하늘에 펼쳐진 구름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이 짙어서 구름과 구름 사이로 석양이 하루의 마지막 붉은 빛을 음악의 언덕으로 보내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 용사 ‘델버트 레이 호레트(Delbert Ray Houlette)’ 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1950년에 부산에 도착해 8개월 동안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는 호레트 씨. 세월은 어느덧 66년이 흘러 만 17세였던 앳된 청년은 83세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긴 세월은 이 땅에서 전쟁의 상흔들을 지워 이제는 전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노병은 마음에 깊이 새겨진 참혹한 전쟁의 기억들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열일곱 살에 전투에 참가해 수많은 군인들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휴전이 되고 미국으로 돌아가 정신병을 앓았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오래 전투하며 앓은 동상으로 인해 발에 이상이 왔습니다. 밤이면 악몽에 시달렸고, 길을 걷다가도 운전하다가도 전쟁의 잔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싫어했습니다. 2015년에 몇몇 참전 용사들과 함께 한국 대표로부터 ‘평화의 상’을 받았고, 한국에 다시 가보자고 하여 이번에 어렵게 왔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이토록 발전한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기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나라가 세워진 데에 저도 작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자유나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릇된 생각을 가진 이들로부터 소중한 영역을 지켜야 하고, 지킴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반세기 전,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고 스러져 갔던가! 노병의 이야기처럼 살아 남은 이들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던가! 희생이 뿌려지지 않았다면 자유와 평화는 피어날 수 없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누리는 거침이 없는 자유와 한없이 깊은 평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위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슬픔과 고통과 죄악이 만연하는 어둠이 짙게 덮인 땅에서 아름다운 꽃은 그냥 피어나지 않는다. 그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예수님이 피를 흘려 우리 마음에 빛을 선사했으며, 그 빛 아래서 자유와 평화가 활짝 피어났다.
 호레트 씨가 이야기하는 동안 잔잔한 석양夕陽이 음악의 언덕을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플룻 수석을 지낸 폴 에드문드 데이비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가 연주했던, 귀에 익숙한 ‘타이타닉’ 영화 OST의 아름다운 선율이 플룻을 타고 흘러나와 언덕을 덮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을 그려내는 선율도 곱지만 평화누리 음악의 언덕을 덮는 선율이 더 아름다웠다. 플룻 소리에는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는 듯했다. 함께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으며, 헤어지지 않고 언제든 만나고 싶은….
 휴전선이 코앞이니 오래 전 이 언덕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을 것이고, 언덕은 온통 피로 적셔졌을 것이다. 그 언덕에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앉아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며 자유롭게 음악을 듣는다.
 어느덧 해는 지고, 서쪽 언덕 너머로 떨어진 해가 물들인 서쪽 하늘만 불그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위는 어둠에 묻혀 가고 사람들은 음악에 젖어들었다. 음악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힘이 있다. 넓은 언덕을 사랑으로 적시는 플룻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어떤 이는 한국전쟁이 있었던 때로 떠나고, 어떤 이는 그리운 사람을 찾아서 떠나고, 어떤 이는 아쉬웠던 날들로… 마음이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축제와 즐거움, 그리고 사랑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소프라노 이수연이 요한 스트라우스가 작곡한 ‘비엔나 왈츠’를 들려주었다. 화합이 있는 곳에는 흥겨운 춤이 필요하다. 음악이 펼치는 세계로 잠시 들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지만, 비엔나의 어느 곳에서 왈츠 스텝을 밟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나도 왈츠 곡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테너 우태직이 이태리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선사했다. 돌아오라고 간청하는 이의 애절함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추억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고 애틋하게 소리치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무언가를 남겼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마 23:37)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마음 태우며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날이 어두워지니 무대 위로 초승달이 보였다. 하늘과 달과 들, 마지막 석양에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의 구름들, 이따금 날아다니는 잠자리, 그리고 음악 소리…. 빛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하지만, 밤은 모든 것을 덮어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야외 무대가 아니라 거실에서 평화롭게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음악들이 이어졌다. 첼리스트 마사르스키 알렉세이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부드럽고 경쾌한 첼로 선율을 선사했다. 이어진 찬송가 470장 연주.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담담히 힘있게 뻗어나오는 첼로의 선율이 어려움을 잠잠히 헤치고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같았다. 이어 맑고 순수한 고백 같은 음색으로 들려오는 첼로 소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진실로 평안하다.
 오페라의 아리아들이 마음을 부드럽게 만지고 지나가고, 바이올리니스트 칭기스 오스마노프의 밝고 멋진 바이올린 소리가 마음을 훑고 지나가고, 소프라노 최혜미의 ‘브람스의 자장가’가 마음을 다독이며 지나가고, 오바울·훌리오·우태직이 함께 부른 ‘마이 웨이 My way’가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지나갔다. 멋진 흰머리를 가진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베제프의 ‘월광’ 연주가 음악의 언덕을 달빛으로 물들이고, 제자 석승환과 함께 연주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물결이 음악의 언덕을 적시고 지나갔다.
 메조소프라노 반효진의 ‘그리운 금강산’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이어진 소프라노 박진영의 ‘아리랑’ 가락이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다. 굴곡 깊은 한국인의 마음을 아리랑보다 잘 표현한 가락이 있을까…. 소프라노 박진영이 애틋하게 부르는, 나를 떠나는 사랑하는 임이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기를 바란다는 가사가 무척 따뜻했다. 사랑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념이나 사상을 앞세워 전쟁도 불사하지만 사랑을 잃은 인간처럼 가련한 존재가 있을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우태직·박진영의 ‘네순 도르마’ 듀엣이 있은 후, 박옥수 목사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 ‘세계 평화 음악회’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에 희망이나 기쁨이 있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어려움만 가득 찰 때 무너집니다. 아주 어려워도 다른 면을 보면 소망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져 소망을 볼 눈을 감아버립니다. 예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소망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소망이, 행복이, 사랑이 넘치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마음에 소망과 기쁨과 사랑을 담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행복을 찾아내기에 자신의 행복을 쟁취하려고 누군가를 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밤바람이 시원했다. 소프라노 최혜미가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에 나오는 고운 멜로디에 하늘에서 내려온 평화를 묘사한 가사를 붙인 ‘다이 피스 Thy Peace’를 부르고, 이어 음악회의 마지막 순서로 테너 한 사람과 바리톤 세 사람이 함께 ‘유 레이즈 미 업 You Raise Me Up’을 불렀다. 예수님이 붙드시기에 성도는 높은 산을 넘고 거친 바다를 지난다. 예수님과 함께 가기에 성도는 연약한 자 같으나 강하다.
 오래 전 총탄이 빗발쳤을 언덕에 평화로운 선율이 가득 찼다. 이전에 죄악 속에서 신음하던 이들이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어 음악의 언덕을 평화의 멜로디로 채웠다. 임진각 평화누리 ‘음악의 언덕’의 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선율 속에서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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