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월드캠프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월드캠프
  • 이정도(코트디부아르 선교사)
  • 승인 2016.09.01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교사 수기 9회
 

“월드캠프 날짜와 대학 입학시험 날짜가 겹칩니다!”
2012년 월드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에 모여 회의를 했다. 그런데 교사인 라파엘 형제님이 월드캠프 날짜와 대학 입학시험 날짜가 겹친다고 했다. 심각한 문제였다. 호텔 공연장에서 월드캠프를 진행하려면 호텔 옆에 있는 고등학교를 빌려 숙식 장소로 써야 하는데, 대학 입학시험과 날짜가 겹치면 학교가 시험 장소로 사용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파엘 형제님이 내게 말했다.
 “목사님, 한국 월드캠프 진행팀에 연락해서 날짜를 조정해야 합니다.”
 “형제님, 월드캠프 날짜는 바꾸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월드캠프를 개최하기 때문에 연중 일정이 빈틈없이 짜여 있습니다. 우리가 날짜를 변경하면 다른 나라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캠프를 할 수 있는 다른 날짜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대학 입학시험 날짜를 변경할 수는 없을까요?”
 “시험 날짜를 바꾸는 것은 장관 회의를 거쳐야만 가능할 걸요.”
 “그럼 지금 이곳이 장관 회의라고 생각하고 시험 날짜를 바꾸어 봅시다. 언제가 좋을까요? 월드캠프 일주일 전이 좋을까요, 아니면 일주일 후가 좋을까요?”
 “일주일 앞으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시험을 끝낸 학생들이 월드캠프에 참석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네. 일주일 앞당기도록 합시다. 이제 시험 날짜가 바뀌었으니 월드캠프 준비를 계속 하면 되겠지요?”
 며칠 후 나는 2011년 월드캠프를 도와주셨던 알렝 로보뇽 청소년부 장관님을 찾아갔다.
 “장관님, 저희들이 올해에도 월드캠프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이지요?”
 “월드캠프 날짜와 대학 입학시험 날짜가 겹칩니다. 그래서 시험 날짜를 좀 옮겼으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하하! 목사님, 대학 입학시험 날짜는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도 바꿀 수 없어요. 입학시험을 후원하는 네 개 국제기구가 논의해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월드캠프 날짜를 바꾸도록 하세요.”
 “장관님, 만약 시험 날짜가 변경되면 월드캠프를 후원해 주시겠습니까?”
 “예, 그러지요.”
 “저희들이 이번에 이부아 호텔의 공연장에서 월드캠프를 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지요?”
 “… 예.”
 장관님도 호텔 공연장의 대관료를 알기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다가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 주가 지났는데, 라파엘 형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학 입학시험 날짜가 일주일 앞당겨졌습니다!”
 다음 날 장관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 장관님은 나를 만나주지 않으셨다.

 

말씀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월드캠프 준비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냈다. 아침에는 월드캠프 후원자들을 모집하러 다녔고, 저녁에는 박옥수 목사님이 쓰신 마인드 자기계발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의 불어판을 발간하는 작업을 했다. 두 달 가까이 매일 잠을 서너 시간도 못 자며 일했다. 여러 기업과 회사에서 월드캠프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소 대관료가 워낙 큰 액수여서 마지막 순간에는 등을 돌렸다. 그러던 중 아비장 시청과 연결되어 4만 달러를 지원받았고, 그 돈으로 대관료 선금을 지불했다. 하나님이 이후 계속하여 길을 여셨고 돕는 자들을 보내 주셨다. 대통령실에서도 3만 달러를 지원해 주기로 했고, 이곳저곳에서 식료품과 음료수 등을 후원해 주었다. 또 한국에서 정경환 목사님과 김시영 목사님이 오셔서 함께 월드캠프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렇듯 좋은 소식만 들린다 했더니 다른 문제가 생겼다. 숙식 장소로 사용해야 하는 고등학교가 대학 입학시험 채점 장소로 정해진 것이다. 월드캠프 참석자들의 숙식 장소가 사라질 상황이었기에 급히 교육부 장관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는 교육부가 가장 바쁜 시기였기에 장관님을 만날 수 없었다. 월드캠프가 7월 26일에 시작하는데, 7월 22일까지 장관님을 뵙지 못했다.
 22일에 주일예배를 마치고 모든 형제들이 장관님의 집을 찾아 나섰다. 오후 5시경에 한 형제로부터 장관님 집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갔다. 여러 명의 경찰이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 장관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이게 제 명함인데 장관님께 꼭 전해 주십시오.”
 “이곳은 장관님의 사택입니다. 공적인 업무로 장관님을 만나기 원하시면 내일 교육부를 방문해 절차를 밟으십시오.”
 “제가 절차를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상황이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제발 제 명함을 좀 전달해 주십시오.”
 집에 들어간 경찰이 잠시 후 명함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장관님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장관님은 모슬렘이어서 저녁 7시에 기도하러 나가실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장관님 집 대문 앞에 서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되자 장관님이 나오셨다. 장관님은 나를 보셨지만 그냥 지나쳐 사원을 향해 가버리셨다. 경비하는 경찰에게 다시 가서 준비해 간 IYF 소개 자료와 서류들을 주며 장관님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에스더 6장 1절의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라는 말씀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다음 날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자매님을 교육부에 보냈는데, 자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 장관님이 어제 저녁에 목사님이 두고 가신 서류를 모두 읽으셨답니다. 월드캠프의 취지가 대통령께서 추구하는 교육 방향과 같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숙식 장소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 빨리 오셔서 교육부 부장관님과 의논해 보십시오.”

 

“옮기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교육부에 가서 부장관님을 만나 월드캠프와 IYF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협조를 부탁드렸다. 우리가 사용하려고 하는 고등학교가 대학 입학시험 채점 장소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화요일 아침에도 다시 부장관님을 찾아갔다. 부장관님은 아비장의 중고등학교 전체를 관리하는 교육감님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그 학교는 시험 장소로 정해져서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부장관님, 그게 아닙니다. 그 고등학교는 시험 장소가 아니라 채점 장소입니다.”
 “교육감님이 시험 장소라고 하는데요.”
 “아닙니다. 채점 장소입니다.”
 부장관님과 나는 교육감님에게 전화해 한참 동안 이야기한 끝에 학교가 채점 장소인 것을 확인했다. 부장관님이, 교육감님과 의논해 일을 진행해 나가라고 하셔서 나는 급히 교육청으로 향했다. 교육감님은 나를 보더니 “당신이 채점 장소를 옮기려는 바로 그 사람입니까? 공문을 받고 전국에서 모인 300명이 넘는 교사들이 채점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어디로 어떻게 옮겨 가라고 하지요? 이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셨다.
 “교육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제가 담당자 열 명을 부르겠습니다. 그분들에게 말씀드려서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교육감님이 대학 입학시험 담당자 열 명을 불러 차례대로 질문했다.
 “지금 채점 장소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안 됩니다.”
 “아니요, 못 옮깁니다.”
 아홉 명의 담당자가 안 된다고 했는데, 열 번째 담당자가
 “옮기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너무 놀라 몸을 돌려 열 번째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그 분이 채점 장소를 어떻게 옮기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동감했다. 교육감님이 “더 늦기 전에 학교로 가서 교장 선생님과 채점 책임 교수님들을 만납시다.”라고 하셨다.
 고등학교에는 300명이 넘는 교사들과 경찰 및 헌병들이 모여 있었다. 곧바로 채점 담당 교수님 세 분과 교장 선생님을 불러 회의를 시작했다. 교육감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교수님들의 안색이 변하면서 언성이 높아졌는데, 교육감님이 이전과 달리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상황을 설명하셨다. 교육감님의 말씀에 분위기가 바뀌어 교수님들이 교사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보겠다고 하며 세 그룹으로 나뉘어 교실로 들어가셨다. 교사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채점 장소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월드캠프와 IYF에 대해 잘 모르는 교수님들이 어떻게 교사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염려가 되었지만 순간순간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잠잠히 기다릴 수 있었다.
10여 분 후에 교수님들이 나왔는데, 채점 장소를 옮기는 문제에 대해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고 모두 동의했다고 하셨다. 나는 교문에 서서 학교를 나가는 교사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힘내세요. 저희 교사들을 위해서도 일해주세요.”
 모두가 환한 미소로 나를 격려해 주었다. 경찰들과 헌병들까지 나가는 데 30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학교가 완전히 비워졌다. 혼자 서서 텅 빈 학교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기쁘기보다 두려웠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중에 해가 져서 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17절을 보면 야곱이 “두렵도다! 이곳이여…”라고 했다. 축복의 말씀을 들었으면 기뻐해야 하는데 야곱은 왜 두렵다고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창 28:16~17)
 야곱이 무슨 죄를 지었거나 형편이 안 좋아서 두렵다고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기 자신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교문 앞에 홀로 남아 텅 빈 학교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크고 위대한 분이었던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왔던 나 자신이 두려웠다.

 

기록된 말씀대로 월드캠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학교를 정리하고 이틀 후 목요일에 1,800여 명의 월드캠프 참석자들이 몰려들었다.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흘은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야외무대에서 월드캠프를 하고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사흘은 호텔 공연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문제가 또 발생했다. 일요일에 토고에서 월드캠프를 마치고 코트디부아르로 들어오는 방문자들 중에 자국에서 무료 비자를 받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경찰국에서 이러한 경우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기에 비자를 받지 않고 온 사람들은 출국 조치를 당할 상황이었다.
 일요일에 박옥수 목사님과 월드캠프 참석자들이 코트디부아르에 입국했는데, 모두 아무 문제 없이 들어오셨다. 대체 무슨 영문이지 알 수가 없었다. 월드캠프가 끝나고 출입국 일을 담당하던 주주 형제가 이렇게 간증했다.
 “목사님, 방송 장비와 각종 물품들이 들어오려면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 금요일까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갑자기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경찰국과 내무부, 외무부, 헌병대 간부들이 정부청사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외무부 간부들의 요청으로 경찰국장님이 비서에게 ‘모든 물품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서류를 발급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비자 없이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비서가 서류에 ‘모든 물품’이라고 적지 않고 ‘모든’이라고만 적어서 공항 경찰국에 보낸 것입니다. 공항 경찰들이 ‘모든’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모든’에는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아무 문제 없이 들어온 것입니다.”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이부아 호텔의 공연장에서 월드캠프를 시작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에서 지원하기로 약속한 3만 달러를 받지 못해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연습할 때 전기가 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가 끊어진 지 5분 만에 대통령실에서 보낸 수표가 도착해 다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월드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일들 중에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일이 없다. 비용 부분도 놀라웠다. 2011년에 4만 달러를 후원받았고 2012년에 8만 달러를 후원받았으니 2013년에는 더 많은 액수를 후원받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2013년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모자라지 않았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월드캠프를 아비장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2013년에는 지방 도시인 야무소크로에서 진행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출 16:17~18) 하나님이 말씀에 기록된 대로 역사하셨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으면 문제 없이 살겠지만 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지 못하기에 항상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야 한다. 소는 불평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이유인 것이다. 소가 없는 구유는 깨끗한 구유가 아니라 더 이상 구유가 아니듯이, 복음의 짐을 지지 않고 복음의 일을 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매년 열린 월드캠프에서 많은 학생들이 구원받았다. 월드캠프가 끝나면 참석한 학생들의 집을 방문해 월드캠프 설명회와 가정 집회 등을 가졌는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교회와 연결되었다. 또한 교회가 없는 도시에서 월드캠프에 참석하려고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도시들을 방문해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다섯 개의 지역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월드캠프가 복음의 지경을 넓혔고 형제 자매들의 삶도 부유하게 만들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